투르다 협곡 여행을 포기하고 식물원으로 향하다

클루지나포카를 떠나기 전날, 케일레 투르지 국립공원의 투르다 협곡을 다녀올 계획이었다. 시내에서 약 30분 거리이며, 버스도 15~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고 해 반나절 일정으로는 충분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막상 길을 나서 보니,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할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남자가 31번 버스를 타라고 알려주었지만, 터미널에선 협곡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맥이 탁 풀리는 순간이었다.

이미 체력도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결국 협곡 여행은 접고, 클루지나포카에 왔다면 꼭 가봐야 한다는 '식물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클루지 나포카의 최초의 정교회

식물원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눈에 띈 것은 삼위일체 정교회(Biserica Ortodoxă). 작지만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다. 자료에 따르면 이 교회는 1795~1796년 사이에 지어진, 클루지나포카 최초의 루마니아 정교회다. 올드타운 성벽 남쪽의 하종가르드 언덕(Hajongard area)에 자리하고 있어 ‘언덕 위의 교회(Biserica din Deal)’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18세기 후반, 여러 부유한 아로마니아인(Aromanian) 가족이 클루지에 정착했지만, 이들이 주요 공휴일에 참석하던 가장 가까운 정교회는 외곽 지역인 소메셰니(Someșeni)에 있었다. 이에 따라 1788년, 두 상인이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요제프 2세 황제 측 위원이었던 아담 텔레키 백작에게 청원서를 제출해, 도시 내에 정교회를 세울 수 있는 허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시의회는 기존에 승인된 교파만이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결국 1790년 2월, 왕실의 승인이 떨어졌고, 상인들은 하종가르드 언덕에 부지를 매입했다. 이후 브라쇼브와 왈라키아 지역 루마니아인들의 도움을 받아 공사를 진행했고, 1796년 크리스마스에 첫 예배가 거행되며 정식으로 봉헌되었다. 이 교회는 1932년까지 클루지나포카 유일의 정교회로 기능했으며, 다음 해인 1933년 테오토코스 대성당(Theotokos Cathedral)이 문을 열기 전까지 그 지위를 유지했다.

작고 예쁜 바로크 스타일의 정교회

삼위일체 정교회는 길이 19m, 너비 9m에 첨탑 높이도 19m에 불과한, 아담한 규모의 건물이다. 외관은 직사각형의 현관과 팔각형 본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바로크 양식 특유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내부의 이콘소타시스(iconostasis)는 화가 콘스탄틴(Constantin)이 1796년에 그린 작품이다. 교회 앞의 작은 묘지에는 여러 사제가 안장되어 있다.

1811년에는 바실 모가(Vasile Moga)가 이곳에서 주교로 즉위했지만,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곧 라시나리(Rășinari)로 떠나야 했다. 이후 1921년, 니콜라에 이반(Nicolae Ivan, 1855~1936)이 바드-펠락-클루지 교구(Vad, Feleac and Cluj Diocese)의 초대 주교로 임명되면서 이 교회는 그의 대성당 역할을 하게 된다.

문화적 의미도 깊다. 주교 플로레아 무레샤누(Florea Mureşanu, 1907~1963)의 배려로 빅토르 파필리안(Victor Papilian, 1888~1956)의 ‘문학 다락방’이 이 본당에서 열리기도 했다. 루마니아의 대표적 시인이자 철학자인 루시안 블라가(Lucian Blaga)도 이 다락방 모임에 참여했다.

1877년, 당시 사제가 작성한 추모비가 첨탑에서 발견되며 교회의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되었고, 이에 따라 1919년에 복원 공사가 진행되었다. 건물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황폐해졌고,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전면적인 수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이 교회는 루마니아 문화·종교부에 의해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클루지 나포카 식물원의 역사

정교회 바로 위쪽 언덕에는 클루지나포카 식물원(Alexandru Borza Botanical Garden)이 자리하고 있다. 매표소를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구획별로 잘 정리된 식물 분포도 사이로 건물, 동상, 온실 등이 이어진다.

이 식물원은 1920년에 설립되어 1925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 이름은 루마니아의 식물학자이자 그리스-가톨릭 신부, 그리고 클루지의 명예 대제사장이었던 알렉산드루 보르자(Alexandru Borza, 1887~1971)의 이름에서 따왔다.

하지만 클루지나포카의 식물원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식물원의 기원은 1872년, 클루지에 프란츠 요제프 대학교가 설립되면서 시작됐다. 당시에는 미코(Mikó) 백작이 기증한 울창한 나무와 관목이 가득한 공원(Clinilor Street 5-7)이 식물원의 전신이었다. 공원 입구에는 식물 연구소와 사무실로 사용되던 네 개의 방이 있는 건물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 명의 초기 관장들이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식물원은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결국 1910년부터 1912년 사이 새 부지를 구입해 현재의 식물원 조성이 본격화되었다. 새로운 입지는 연구와 전시 모두에 적합했으며, 관장과 직원, 가족들을 위한 별도의 건물도 함께 마련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부지에서의 식물원 개발은 곧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큰 영향을 받았다. 전쟁 이후인 1919년, 다치아 수페리오아레(Dacia Superioare) 대학이 설립되면서 알렉산드루 보르자가 식물원 운영을 맡게 되었고, 이듬해인 1920년부터 본격적인 조경 사업이 시작되었다.

1923년에는 저수지와 급수탑이 포함된 댐이 건설되었다. 이 급수탑은 오늘날에도 일반에 개방되어 있으며, 식물원을 내려다보는 파노라마 전망대 역할을 한다. 바위가 많은 구역은 지중해 식물에 맞게 조경되었고, 일본식 정원도 함께 조성되었다. 1924년에는 야자수를 위한 온실이 세워졌고, 정원 내부에 새로운 산책로도 포장되었다. 그리고 1925년 6월 25일, 클루지나포카 식물원은 정식으로 개장했다.

이때 조성된 주요 시설은 대부분 현재까지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1930~1935년 사이에는 식물 연구소 건물이 추가로 건립되었고, 1937년에는 당시 국왕 캐롤 2세의 주도 아래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현재 이곳에는 식물 박물관과 루마니아 최대 규모의 식물 표본관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식물원 운영이 일시 중단되고, 기관은 티미쇼아라로 피난했다. 전쟁 이후인 1957~1960년 사이에는 대규모 온실 단지가 새로 건설되었고, 1960년대 전반에 걸쳐 여러 차례 리노베이션과 확장 공사가 이어졌다.

다양한 구획으로 정리된 식물원 

클루지나포카 식물원은 약 14헥타르(약 4만 평)의 넓은 면적에 1만 종이 넘는 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식물원은 기능과 테마에 따라 관상용 정원, 식물지리학 구역, 온실 단지,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간 등으로 구획되어 있다.

루마니아 식물 구역에서는 트란실바니아 평야와 고원, 카르파티아 산맥, 흑해 연안, 바나트 지역의 고유 식생을 재현하고 있다. 지역별 생태 환경을 반영한 식물군을 관찰할 수 있어, 루마니아의 자연지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장식용 정원에서는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약 250종의 화초를 감상할 수 있다. 튤립, 수선화, 히아신스, 다알리아, 글라디올러스, 백합 등 다양한 원예 식물이 모양과 색상으로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눈에 띄는 공간은 일본 정원이다. '교토 정원(京の庭園)' 양식을 따랐으며, 바베스-볼리나이 대학교(Babeș-Bolyai University)의 교육 및 연구 시설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 정원은 2010년 루마니아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고대 로마 분위기를 담은 ‘필리니스 정원(Pliny’s Garden)’도 인상적이다. 곡물과 풍요의 여신 케레스(Ceres)의 동상이 중심에 서 있고, 루마니아 농업의 기초가 되는 주요 재배 식물이 전시되어 있다. 관람 공간의 양쪽에는 고대 로마 도시 나포카(Napoca)에서 출토된 두 개의 진짜 관이 장식처럼 배치되어 있다.

또한 ‘경제 식물 구역’에서는 식물의 실용적 쓰임을 기준으로 식품, 사료, 꿀, 염색용 식물 등으로 분류해 전시하고 있다.

온실 단지는 여섯 개의 주제별 공간으로 나뉜다. 수족관 온실, 야자수 온실, 지중해·호주 식물 온실, 다육 식물 온실, 브로멜리아과(Bromeliaceae) 온실, 그리고 난초 및 양치류 온실이 그것이다. 이 온실 단지는 관람객에게 기후대별 식생의 다양성과 생태학적 특징을 생생히 보여준다.

식물 박물관의 식물 표본관

식물원 내 연구소 1층에는 식물 박물관과 식물 표본관(Herbarium)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이 식물 표본관은 루마니아 최대 규모로, 75만 장에 이르는 압착 식물 표본이 보관되어 있다. 전시된 표본은 루마니아 전역에서 자생하는 식물 종의 특성과 분포를 보여주며, 총 13권에 달하는 방대한 식물학적 해설서로 정리된 기념비적인 작업의 결과물이다.

클루지나포카 식물원은 루마니아를 넘어 세계 각국의 약 450개 식물원, 연구기관, 도서관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활발한 학술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식물원은 매년 『기여 식물학(Contribuții Botanice)』이라는 학술 저널과 씨앗 교환 목록인 '씨앗 카탈로그'를 정기 간행물로 발행하고 있다.

식물원의 조각상들

식물원에는 다양한 인물과 신화를 형상화한 조각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식물원의 설립자 알렉산드루 보르자 교수의 흉상은 조각가 비르길 풀리체아(Virgil Fulicea, 1907~1979)가 1973년에 제작해 1977년에 공개되었다. 또 조각가 엘슈 도이나(Elș Doina, 1928~2014)가 제작한 루마니아 아카데미의 정회원이자 대표적인 식물학자로 꼽히는 플로리안 포르치우스(Florian Porcius, 1816~1906)의 흉상도 있다. 

또 시인 미하이 에미네스쿠의 동상은 조각가 오스카 한(Oscar Han, 1891~1976)의 작품으로, 1935년 클루지나포카 시청이 식물원에 기증한 것이다.

로마 정원에는 농업의 여신 체레스(Ceres)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다. 체레스는 고대 이탈리아의 농업 신과 그리스 여신 데메테르(Demeter)의 성격이 결합된 존재로, 로마 정원의 상징적인 존재다. 또 온실 단지 고원에는 물병을 들고 있는 소녀 조각상이 놓여 있는데, 이는 루마니아 플라스틱 예술가 연합 회원인 조각가 푸스캬스 산도르(Puskás Sándor, 1928~2020)가 트르구 무레슈(Târgu Mureș)의 워크숍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외에도 식물원에는 다양한 동상과 조각들이 산책길 곳곳을 채우고 있다. 

Travel Data

클루지나포카 기차역:주소:Strada Căii Ferate, Cluj-Napoca 400394

루마니아파니 버스 터미널(Fany터미널(Terminal): 주소:Str.):주소:Str. Giordano Bruno 1-3, Cluj-Napoca 400000 루마니아

성삼위일체 정교회(Biserica Ortodoxa): 주소: Str. Republicii, Cluj-Napoca

루마니아알렉산드루 보르자 클루지나포카 대학교 식물원(Alexandru Borza Botanical Garden):주소:Str. Republicii 42, Cluj-Napoca 400015 루마니아/전화:+40 264 592 152

이울리우 하치에가누(Iuliu Hatieganu) 의과대학 및 약학대학(Iuliu Hațieganu University of Medicine and Pharmacy):주소:Strada Victor Babeș 8, Cluj-Napoca 400347 루마니아/전화:+40264597256/웹사이트:https://umfcluj.ro/

오베의 집 호스텔(Ove's Home Hostel): 주소:Strada Alexandru Ciurea 6, Cluj-Napoca 400019 루마니아/전화:+40 751 171 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