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대기업 오너 일가가 과거 정·관계 중심의 ‘정략결혼’에서 벗어나 재계 및 일반인과의 결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올해 지정 총수가 있는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81곳의 총수일가 중 혼맥 분류가 가능한 380명을 조사한 결과, 오너 2세는 정∙관계 혼맥 비중이 24.1%에 달했지만 오너 3세 14.1%, 오너 4~5세 6.9%로 크게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오너 2세 가운데 정∙관계와 사돈을 맺은 기업은 HD현대, LS, SK가 대표적이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고(故) 김동조 전 외무장관 딸인 김영명 씨와 결혼했고,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은 고 이재전 전 대통령 경호실 차장의 딸인 이현주 씨와 결혼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1988년 결혼했으나, 세기의 이혼 소송 끝에 지난달 대법원에서 최종 이혼이 확정됐다.
정·관계 혼맥 비중이 줄어드는 데 반해 기업 간 혼맥 비중은 증가세인 것으로 조사됐다. 재계 집안 간 혼맥 비중은 오너 2세 34.5%에서 오너 3세 47.9%, 오너 4∼5세는 46.5%로 늘어나는 추세다.
기업 총수 집안과 일반인 집안과의 결혼 사례도 오너 2세 29.3%, 오너 3세 23.3%, 오너 4∼5세 37.2%로 증가했다.
CJ 오너 4세인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는 아나운서인 이다희씨와 결혼했고, 현대자동차 4세인 선아영씨(정성이 이노션 고문 딸)는 배우 길용우씨 아들과 혼인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딸 정유미씨는 일반인과, 정준씨는 세계적 프로골프선수 리디아 고와 결혼했다.
“정∙관계 혼맥, 과거엔 사업에 도움됐지만 지금은 리스크”
CEO스코어는 이런 변화에 대해 “과거에는 정·관계와 혼맥을 맺으면 사업에 보탬이 됐지만, 최근에는 더 큰 감시와 규제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경향은 2000년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00년 이전 재계의 정·관계 혼맥 비중은 24.2%(58명)였으나, 2000년 이후에는 7.4%(9명)로 3분의 2가량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재계 간 혼맥은 39.2%(94명)에서 48.0%(58명)로 8.8%포인트 증가했고, 일반인과의 혼맥도 24.6%(59명)에서 31.4%(38명)로 6.8%포인트 늘었다.
그룹 간 혼맥 관계를 보면 LS그룹이 두산, 현대차, OCI, BGF, 삼표, 사조, 범 동국제강(KISCO홀딩스) 등 가장 많은 대기업과 사돈을 맺었다.
이어 LG와 GG가 각각 4개 그룹과 연결됐다. LG는 DL, 삼성, GS, 두산과 혼맥을 형성했고, GS는 LG, 삼표, 중앙, 태광과 이어졌다. GS는 범 GS 계열로 확장하면 금호석유화학, 세아와도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