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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

  • 기자명 이신화
  • 입력 2025.08.08 09:15
  • 댓글 0
  • 사진(제공) : 이신화
브뤼셀의 메인 광장, 그랑플라스에서 멀지 않은 골목 안쪽.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그곳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줌싸개 소년 동상’이 있다. 독일 쾰른의 로렐라이 언덕,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동상과 함께 ‘유럽 3대 허무 관광지’로 불릴 만큼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도 있지만, 그래도 이 동상을 보지 않고 돌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동상이 내뿜는 ‘독특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에베라르트 세르클래스 부조.
에베라르트 세르클래스 부조.

메종 드 레투알 건물에 새겨진 기념비와 부조

그랑플라스에서 오줌싸개 동상으로 향하는 길목엔, 시선을 사로잡는 한 벽면이 있다. 바로 ‘찰스 불스 기념비’와 ‘에베라르트 세르클래스(Everard t'Serclaes)의 황금 부조’가 새겨진 곳이다. 관광객이 몰려 있지 않아도, 벽을 따라 길게 누운 황금빛 부조가 단번에 눈길을 끈다. 

이 부조가 있는 건물은 ‘메종 드 레투알(Maison de l'Étoile, 별의 집)’로 불린다. 기록에 따르면 13세기부터 존재한 건물인데, 14세기에는 '암만(Amman)', 라틴어로 법무관(praetor, officialis)을 의미하는 중세 행정관의 집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695년 8월, 프랑스군의 포격으로 브뤼셀 전역이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이 건물도 함께 파괴됐다. 이후 1853년에는 말이 끄는 전차의 통행로를 확보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철거되기도 했다. 이후 1896~1897년, 당시 시장이었던 카렐 불스(Karel Buls)의 주도로, 건축가 아돌프 사민(Adolphe Samyn)이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당시 1층에는 보행 통로 역할을 하는 갤러리가 설치되었고, 이후 이 건물은 인근의 ‘백조의 집(Maison du Cygne)’ 별관으로 사용되었다.

중심가의 건물들.
중심가의 건물들.

그랑플라스 주변, 길드의 집들

건축가 아돌프 사민은 ‘별의 집’ 외에도 그랑플라스 일대의 여러 길드하우스를 재건한 인물이다. 대표적으로는 황금나무의 집(또는 양조장의 집, Maison de l'Arbre d'Or, 10번지), 골드 상인의 집(Maison du Marchand d'Or, 28번지), 요셉과 앤의 집(Joseph en Anna, 22·23번지), 천사의 집(또는 올리브나무, Den Engel, 23번지), 사슴의 집(Maison du Cerf, 20번지), 스페인 국왕의 집(제빵사 조합의 본거지, Den Coninck van Spaignien, 1번지) 등이 있다. 모두 그랑플라스를 대표하는 역사적 건물들로 평가된다. 

불스의 기념비.
불스의 기념비.

카렐 불스 기념비

오줌싸개 동상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1899년 브뤼셀 시장 카렐 불스의 이름을 따 ‘카렐 불스 거리’로 이름이 붙여졌다. 같은 해, 메종 드 레투알 건물 1층의 갤러리에는 아르누보 양식의 기념패도 설치됐는데, 벨기에 아르누보 건축을 대표하는 빅토르 호르타(Victor Horta), 조각은 빅토르 루소(Victor Rousseau)가 맡아 작업했다. 장식적 구상은 호르타가 맡고, 실제 제작은 루소가 담당했다고 한다.

에투알 궁전의 푸른 돌 갤러리 아래 자리한 이 기념 조형물은, 흰 석재 벽에 부착된 청동 부조로 구성돼 있다. 전체는 세 개의 장면으로 나뉘며, 다양한 우화적 요소를 담고 있다. 중심에는 브뤼셀을 상징하는 날개 달린 여성상이 조각돼 있으며, 인물은 계몽과 평화를 뜻하는 횃불과 올리브 가지를 각각 들고 있다. 

조각상 아래에는 불스의 이름이 새겨진 정교한 대리석과 청동 받침대가 놓여 있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비문도 함께 새겨져 있다. “브뤼셀 시장 Charles Buls에게, 감사하는 예술가들, 1899” 또는 “브뤼셀 시장이자 유명한 예술가인 카렐 불스에게, 1899”라는 문구다.

이 기념패는 예술과 도시의 조화를 추구했던 불스의 철학을 반영해, 브뤼셀 문화유산 보호에 기여한 그의 공적을 기리는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

에베라르트 세르클래스의 동상.
에베라르트 세르클래스의 동상.

에베라르트 세르클래스 동상

카렐 불스 기념비 옆에는 황동의 옅은 부조인 에베라르트 세르클래스(Everard t'Serclaes, Lord of Kruikenburg, 1320~31~1388)의 기념비가 있다. 얼핏 보면 종교적 인물, 성모마리아를 형상화한 듯 보이지만, 실은 14세기 브뤼셀을 지킨 시민 영웅, 에베라르트 세르클래스(Everard t'Serclaes, 1320~1388)를 기리는 기념비다.

에베라르트는 ‘크루이켄부르크의 영주(Lord of Kruikenburg)’이자, 브뤼셀을 플랑드르 군으로부터 되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사건의 발단은 1355년, 브라반트 공작 존 3세(John III, Duke of Brabant)의 사망에서 시작된다. 그의 딸 조안나(Joanna)와 사위 벤체슬라스 1세(Wenceslaus I, 룩셈부르크 공작)가 공국의 통치권을 계승하자, 이에 반발한 플랑드르 백작 루이 2세(Louis II de Flandre)가 곧바로 브라반트를 침공해 브뤼셀을 점령한 것이다.

1356년 10월 24일 밤, 에베라르트는 뜻을 함께한 시민들과 함께 비밀리에 브뤼셀에 잠입한다. 기습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플랑드르 군을 몰아내며 도시 탈환에 앞장섰고, 이 승리는 브뤼셀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그는 다섯 차례나 브뤼셀의 시의원직에 해당하는 '쉐펜(schepen, alderman)'으로 선출되는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말년은 비극적이었다. 1388년, 에베라르트는 브뤼셀 왕립 토지 일부의 매각에 반대했다가 가스베이크(Gaasbeek)의 군주였던 스웨더(Sweder of Abcoude)의 암살 지시에 희생당한다. 말을 타고 혼자 이동하던 중, 적의 하수인들에게 붙잡혀 팔과 혀를 잘린 채 브뤼셀로 끌려왔고, 결국 ‘메종 드 레투알’ 인근에서 숨을 거두었다. 1388년 3월 31일의 일이었다. 그의 죽음은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브뤼셀 사람들은 가스베이크 성을 공격해 파괴했고, 그 여세를 몰아 전쟁에서도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사람들이 행운의 상징, 에베라르트 동상을 만지고 있다.
사람들이 행운의 상징, 에베라르트 동상을 만지고 있다.

1898년, 벨기에 조각가 줄리앙 딜런스(Julien Dillens, 1849~1904)는 브뤼셀의 시민 영웅을 기리기 위해 이 청동 기념물을 제작했다. 전경에는 죽어가는 에베라르트의 모습을, 배경에는 세 겹의 옅은 부조를 덧붙여 서사적인 구성을 완성했다. 기념비는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2016년, 청동 사본으로 교체되었다. 원본은 현재 시청 내 오기발레 홀로 옮겨졌고, 딜런스가 1898년 시의회에 제출했던 석고 모형과 함께 전시돼 있다. 이 작품은 2018년부터 박물관 소장품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 부조는 현재 행운의 상징으로도 통한다. 특히 동상의 팔을 만지면 행운이 찾아오고, 소원이 이루어지며, 언젠가 다시 브뤼셀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수많은 손길이 닿은 덕에, 오늘날까지도 동상은 반질반질 윤이 난다.

오줌싸개 소년 동상.
오줌싸개 소년 동상.

오줌싸개 소년 동상

기념비적인 부조를 지나 골목 안쪽으로 240m쯤 걸어 들어가면, 드디어 그 유명한 ‘오줌싸개 소년 동상(Manneken Pis)’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기대는 잠시 접어두는 편이 좋다. 동상은 마치 어느 집 정원 한켠에 놓여 있을 법한 작고 평범한 모습으로, 철제 보호벽 안에 놓여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높이는 55.5cm로, 생각보다 훨씬 작아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쉽지 않다. 

기록에 따르면, 오줌싸개 소년은 본래 분수의 일부였다. 첫 등장은 15세기 중반으로, 1451~1452년경 브뤼셀 분수에 물을 공급하던 수도관 관련 문서에 등장한다. 당시엔 돌로 된 사각 통 위에 서서 물을 붓는 형태였다.

현재의 청동상은 1619년, 브뤼셀 시의회의 의뢰로 새롭게 제작된 것이다. 조각가는 브라반트 출신의 제롬 뒤케스누아 1세(Jerome Duquesnoy, 1570~1641). 처음에는 길가에 세워졌으나, 1697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며 문 형태의 보호 구조물이 설치되었다.

정면에서 바라본 오줌싸개 동상.
정면에서 바라본 오줌싸개 동상.

오줌싸개 소년 동상의 수난

수 세기 동안 브뤼셀을 지켜온 오줌싸개 소년 동상은, 작지만 상징적인 존재다. 전쟁과 약탈, 수차례의 도난 시도 속에서도 살아남으며 도시의 역사 한가운데를 지켜왔다.

1695년 프랑스군의 브뤼셀 포격 당시에도 동상은 손상 없이 남았지만, 내부 파이프가 파괴돼 한동안 물을 내보낼 수 없었다. 이 일화는 같은 해 출간된 팸플릿에도 기록돼 있다.

이외에도 여러 차례 도난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1745년에는 벨기에를 침략한 영국군에 의해 분리되어 플랑드르 지방의 게라르츠베르겐(Grammont) 마을에서 발견되었다. 최초의 도난 시도는 1747년, 브뤼셀에 주둔 중이던 프랑스 군대에 의해 발생했는데, 이때 격분한 시민들은 유혈 사태를 불사할 만큼 강하게 반발했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는 조각상에 금사로 수놓은 브로케이드 신사복을 입혀 돌려보냈고, 이후 외국 정상들이 동상에 선물용 옷을 바치는 전통이 생겨났다. 그렇게 모인 의상은 무려 1,000벌. 이 의상들은 브뤼셀 시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그중에는 한국의 전통 한복도 포함돼 있다. 축제 기간이면 오줌싸개 소년은 그날에 맞는 의상을 차려입고 거리에 선다.

1817년에는 도망자 앙투안 리카스가 동상을 훔쳐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범죄 과정에서 원래의 청동상은 11조각으로 부서졌고, 조각가 질-랑베르 고드샤를(Gilles-Lambert Godecharle)의 감독 아래 전문 용접공들이 파편을 맞춰 복원 작업에 나섰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주조 틀을 제작했고, 새로 만든 받침대에는 ‘1620–1817’이라는 연대가 새겨졌다. 참고로 앙투안은 이 사건으로 종신 강제노역형을 선고받았으며, 그랑플라스에서 한 시간 동안 족쇄에 묶인 채 공개 처벌을 받았다. 

20세기에도 동상은 잇따른 도난 시도의 표적이 됐다. 1955년과 1957년에 각각 도난 시도가 있었으며, 일부 기록에 따르면 총 7번까지 도난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1963년 1월에는 앤트워프 대학교 학생들이 장난 삼아 동상을 납치해 5일간 숨긴 사건도 있었다. 이 해프닝은 지역 및 국제 언론에까지 보도됐고, 이를 계기로 조성된 기금은 두 곳의 고아원에 기부되었다.

1965년에는 괴이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도둑이 동상을 훼손한 뒤, 발과 발목만 남긴 채 유기한 것이다. 이듬해인 1966년 6월, 벨기에 잡지 <드 포스트(De Post)? 편집부로 한 통의 익명 전화가 걸려왔는데, "몸통이 샤를루아(Charleroi) 운하에 있다"는 제보였다. 잡지사는 다이버를 보내 수색했고, 실제로 동상의 몸통을 찾아내 6월 27일 브뤼셀로 다시 옮겨올 수 있었다. 현재는 원본이 복원돼 브뤼셀 시립박물관 1층에 영구 보관 중이다. 

오줌싸개 동상 주위에 모인 사람들.
오줌싸개 동상 주위에 모인 사람들.

오줌싸개 소년 동상의 전설

오줌싸개 소년 동상(Manneken Pis)에는 수세기에 걸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여럿 있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모두 '어린아이의 오줌'으로 무언가를 구했다는 이야기라는 것.

가장 유명한 전설은 12세기 루뱅의 고드프리 3세(Gottfried, 1142~1190) 공작과 관련돼 있다. 1142년, 그의 군대가 흐림베르헌(Grimbergen)의 베르토우츠 영주와 랜스베이크(Ransbeek, 현재 브뤼셀 북부)에서 전투를 벌일 당시, 장병들은 두 살 된 어린 영주를 바구니에 담아 참나무에 매달았다. 아이의 존재가 용기를 북돋았고, 심지어 아이는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바구니 안에서 오줌까지 쌌다고 한다. 전투는 고드프리 측의 승리로 끝났다.

또 다른 전설은 14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외국 세력이 브뤼셀을 포위하고 성벽에 폭약을 설치하려 했을 때, 줄리안스케(Julianske)라는 소년이 우연히 불이 붙은 도화선 위에 오줌을 싸서 도시를 폭발에 위기에서 구해냈다고 한다. 실제로 15세기 중반, 1388년 무렵에는 이 이야기를 형상화한 돌 조각상이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실종된 아이를 둘러싼 일화다. 부유한 상인이 가족과 함께 브뤼셀을 방문했는데, 어린 아들을 잃어버렸다. 도시 전체를 수색한 끝에 한 정원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고, 상인은 감사의 의미로 분수를 기증했다는 이야기다.

우유자는 아낙 동상.
우유자는 아낙 동상.

우유짜는 아낙 동상

브뤼셀을 걷다 보면 크고 작은 조각상과 분수를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그중 하나는 성 니콜라스 교회(Saint Nicholas Catholic Church) 옆, 보터슈트라트(Boterstraat) 골목에 위치한 ‘우유 배달원의 아내(De Melkboerin)’ 동상이다. 1678년, 조각가 마크 드 보스(Marc de Vos, 1645~1717)가 만든 작품이다. 

이 동상에는 중세 시대의 흥미로운 전설이 얽혀 있다. 우유를 팔던 한 여인이 고객들을 속이며 부정한 장사를 했다는 이야기다. 처음엔 우유에 물을 타 희석했고, 나중엔 위조된 용량 측정기로 소비자를 기만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천국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성 베드로는 그녀의 입장을 단호히 거부한다. 대신 매일 밤 자정마다 브뤼셀 골목을 떠돌며 이렇게 외치도록 벌을 내렸다. "우유와 물을 반반씩 섞은 것을 판매한다!"

이 공포의 외침에 밤잠을 설치던 시민들은, 도시 행정관에게 우유 배달부의 유해를 정식으로 발굴해 장례를 치러달라고 청원했다. 놀랍게도, 장례가 끝난 뒤부터 유령의 울음소리는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현재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동상은 2006년에 설치된 복제품이다. 원작은 1787년 바란데 공원으로 옮겨졌으나, 1830년 벨기에 독립 전쟁 당시 네덜란드 군대와의 충돌로 큰 손상을 입었다. 이후 20세기 초 복제품이 만들어졌고, 1920년에 원래 위치에 다시 공개됐다. 이 동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부정직한 상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조용히 경고하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카렐 불스의 분수대.
카렐 불스의 분수대.

카렐 불스의 분수대

그랑플라스 인근 아고라플레인 광장(Auguste Ortsplein)에는 한 남성과 개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청동 분수 조형물이 있다. 실물보다 약간 크게 제작된 이 조각상은 브뤼셀 시민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 카렐 불스(Karel Buls)와 그의 반려견을 형상화한 것이다. 작품은 벨기에 조각가 앙리 레나에르츠(Henri Lenaerts, 1923~2006)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처럼, 브뤼셀을 걷다 보면 카렐 불스를 기리는 흔적을 여러 곳에서 마주치게 된다. 그는 벨기에의 정치인이자 브뤼셀 시장으로, 1881년부터 1899년까지 시정을 이끌었다. 메헬렌 지역의 금세공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그는 브뤼셀에서 성장했고, 파리와 이탈리아에서 예술을 공부한 뒤 금세공 장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모국어는 네덜란드어였지만, 영어·독일어·이탈리아어·라틴어까지 능통했던 지식인으로 전해진다. 

시장 재임 중, 그는 경찰이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도록 정책을 도입했고, 도시 전역에 이중 언어 표지판을 설치했다. 특히 그의 공로로 높이 평가되는 것은 도시 건축유산 보존 정책이다. 그랑플라스를 비롯한 브뤼셀 구시가지의 보존·재건 작업은 그의 주도 아래 이뤄졌으며, 지금까지도 성공적인 도시 유산 보존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버르토크 벨러 동상.
버르토크 벨러 동상.

헝가리 작곡가 바르토크 벨러 동상

브뤼셀 중앙역 인근을 걷다 보면, 뜻밖의 조각상과 마주하게 된다. 헝가리 작곡가 바르토크 벨러(Béla Bartók, 1881~1945)의 동상으로, 바르토크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민족음악학자로, 프란츠 리스트와 함께 헝가리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 작품은 조각가 임레 바르가(Imre Varga, 1923~2019)의 작품으로, 바르토크 사망 50주년을 맞아 부다페스트 시에서 기증했다. 

다음 회에서는 도시의 또 다른 상징, 벨기에 왕궁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갈 예정이다.(계속)


Travel Data

메종 드 레투알(Maison de l'Étoile):주소:Grand-Place n°8 

에베라르트 세르클래스 동상(Everard 'T Serclaes):주소:그랑플라스 8번/브뤼셀 시립 박물관/전화:+32 2 279 43 50

오줌싸개 동상(Manneken Pis):주소:벨기에 1000 Brussels/웹사이트:https://www.brussels.be/manneken-pis

찰스 불스의 분수대(Charles buls fountain):주소:Rue du Marché aux Herbes, 1000 Bruxelles, 벨기에/웹사이트:https://statues.vanderkrogt.net/object.php?record=bebr004

우유 짜는 여인상/성 니콜라스 교회(Saint Nicholas Catholic Church):주소:Rue au Beurre, 1000 Bruxelles/웹사이트:https://www.upbxlcentre.be/eglises/saint-nicolas

헝가리 작곡가 버르토크 벨러 동상:Rue du Marché aux Herbes 104, 1000 Bruxelles, 벨기에/웹사이트:https://statues.vanderkrogt.net/object.php?record=bebr002

로시난테를 탄 돈키호테와 산초 동상(Don Quichot en Sancho Panza - Lorenzo Coullaut-Valera):주소:Place d'Espagne, 1000 Bruxelles, 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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