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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 벨기에 브뤼셀의 그랑플라스

  • 기자명 이신화
  • 입력 2025.08.04 08:00
  • 수정 2025.08.0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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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제공) : 이신화
브뤼셀 중심에 자리한 ‘그랑플라스’는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건물로 둘러싸인 광장이다. 야경 명소인 시청사와 옛 길드하우스가 위치해 있으며, 골목마다 맥주 바와 초콜릿 가게가 가득 들어서 있다. 이곳에선 올드타운 특유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랑팔라스 광장.
브뤼셀의 그랑팔라스 광장.

벨기에 브뤼셀로 향하다

런던에서 정한 목적지는 사실 브뤼헤(Brugge)였다. 하지만 빅토리아 코치스테이션에서 표를 끊으려다 브뤼헤행 버스가 이미 매진된 걸 알게 돼, 어쩔 수 없이 수도 '브뤼셀'로 목적지를 바꿨다.

교통편을 이용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버스마다 기재된 행선지가 명확하지 않아 주변 행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브뤼셀에 도착한 이후에도 문제는 이어졌다. 브뤼헤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전광판을 확인했지만, 출발 시각과 도착 역이 제대로 표시돼 있지 않았다. 

게다가 다음 목적지였던 안트베르펜(Antwerpen)은 대중교통 파업으로 결국 포기해야 했다. 숙소까지 예약해뒀건만, 루벤스의 고향이자 플랑드르 화풍으로 유명한 그 도시를 그렇게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다채로운 느낌의 골목.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던 벨기에

우여곡절 끝에, 브뤼셀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는데 복잡한 길목이 보였다. 단순한 유럽의 한 도시가 아니라 복잡한 역사와 문화가 층층이 쌓인 공간이라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 배경엔 벨기에의 '연합 왕국' 시절이 있다. 

벨기에는 네덜란드 남쪽, 프랑스 북쪽에 위치한 나라다. 국토 면적은 약 3만㎢로, 한국의 경상도보다 조금 작다. 현재 수도는 브뤼셀이지만, 한때는 네덜란드와 함께 ‘연합 왕국’을 이루었다.

때는 1815년, 벨기에는 네덜란드와 함께 하나의 왕국으로 묶였다. 하지만 이 '연합'이 오래갈 수  없는 이유가 있었는데. 벨기에는 인구가 340만 명으로 빠르게 늘고 있었고, 산업과 경제 기반도 벨기에보다 앞서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권력은 네덜란드가 쥐고 있었다. 결국 1830년 벨기에는 혁명을 일으켜 독립을 선언했다. 

브라반트 공작의 집.
브라반트 공작의 집.

벨기에 수도 브뤼셀

브뤼셀은 벨기에의 수도이자, 유럽의 심장이라 불리는 도시다. 7세기엔 센 강의 중간 섬을 중심으로 요새가 세워졌고, 14세기를 지나며 브라반트 공국의 주도로 성장했다. 이후 17세기, 도시는 스페인 합스부르크 가의 손에 넘어가며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수도’가 됐다.

1695년,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영국·네덜란드 동맹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브뤼셀을 포격했다. 이 공격으로 주택 4천 채와 도심 대부분이 불탔고, 그랑플라스도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5년 만에 광장은 재건돼, 그 뒤로 도시의 상징으로 기능했다.

1830년, 벨기에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면서 브뤼셀은 정식으로 수도가 됐다. 이후 아프리카 콩고에서 들어온 자원으로 도시가 번영할 수 있었고, 교외에 흩어져 있던 18개 자치시를 흡수해 지금의 ‘브뤼셀 대도시권’을 이루게 됐다.

이후 1958년 열린 '원자력 박람회'를 계기로 도시에는 활력이 더해졌다. 현재는 EU 본부와 나토(NATO)가 자리한 정치 중심지가 되어, 해마다 수많은 국제회의가 열리는 ‘서유럽의 수도’로서 그 위상을 높이고 있다. 

프랑스어가 들리는 거리.
프랑스어가 들리는 거리.

프랑스어를 쓰는 나라

벨기에 여행 중 가장 낯선 건 '언어'였다. 거리에서 온통 프랑스어가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벨기에는 ‘자국어’가 따로 없다. 대신 세 가지 언어, 네덜란드어·프랑스어·독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왕이 공식 연설을 할 때도 세 언어를 번갈아 쓴다. 프랑스어 한 줄, 네덜란드어 한 줄, 마지막 문장은 독일어로 마무리하는 식이다.

지역별 사용 언어도 다르다. 북부 플랑드르(Flemish) 지역은 네덜란드어, 남부 왈롱(Wallonie) 지역은 프랑스어를 쓴다. 다만 19~20세기 프랑스계 이주가 늘면서, 지금은 벨기에 인구 다수가 프랑스어 사용자인 상황이다.

수도 브뤼셀은 두 언어가 모두 공용어다. 거리 표지판과 공공기관 명칭도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로 병기된다.

순교자 극장.
순교자 극장.

브뤼셀 라모네 왕립극장

브뤼셀 시내 중심부에는 유서 깊은 공연장이 여럿 자리하고 있다. 먼저, 순교자극장(Martyrs Theater)은 1998년 에투알 영화관 자리에 지어진 공연장으로, 이탈리아 스타일의 대극장과 소극장으로 이뤄져 있다. 

라모네 왕립극장.

그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 1700년 문을 연, 라모네 왕립극장(Royal Theatre of La Monnaie)이다. 1695년 프랑스 군의 포격 이후, 브뤼셀 궁정과 시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세워진 오페라 공연장이다. 당시 브뤼셀을 관할한 인물은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이자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막시밀리안 2세 에마누엘로, 예술 후원에 힘쓴 인물이다.

1795년, 프랑스 혁명군이 벨기에 지역을 점령하면서 이 극장은 프랑스 부서 산하로 편입됐다. 19세기 중반까지는 오페라와 발레, 연극, 콘서트가 두루 공연되었으나, 1818년 새로운 네덜란드 연합 왕국의 후원으로 철거되고 새로운 극장이 세워졌다.

1819년 5월 개관한 두 번째 건물은 프랑스 건축가 루이 다므메(Louis Damesme)가 설계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극장이다. 이 극장은 브뤼셀 도심에 조성된 새 광장의 중심에 자리 잡았으며, 1830년 8월 25일, 공연 중 폭동이 발생하며 벨기에 독립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1855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외벽과 현관 일부만 남게 됐다.

세 번째 극장은 1856년, 건축가 요제프 폴라에르트(Joseph Poelaert)의 설계로 14개월 만에 재건된 건물이다. 강당은 1,200석 규모이며, 내부는 네오바로크·네오로코코·네오르네상스를 혼합한 절충주의 양식으로 장식되었다. 1980년대에 대대적인 보수를 거쳤고, 1986년 완공되어 오늘날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박물관.

라모네 극장과 자코모 푸치니의 죽음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 자코모 푸치니(1858~1924)는 생의 마지막을 브뤼셀에서 보냈다. 1924년, 65세였던 그는 급성 인후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 실험적 단계에 있던 ‘라듐 치료’를 위해, 의사들은 브뤼셀의 르루 박사(Dr. Leroux) 병원 방문을 권유했다. 당시 라듐 요법은 유럽 내에서 브뤼셀과 베를린 두 도시에서만 시행되고 있었다.

치료를 결심한 푸치니는 아들 안토니오와 함께 이탈리아 비아레초를 떠나 브뤼셀에 도착했다. 그들이 머문 곳은 루아얄 거리 294번지. 투란도트의 피날레 악보를 지닌 채였다. 이 저택은 후에 ‘호텔 푸치니’로 불리게 되었고, 현재는 가정 간병 단체 ‘가족 지원(Familiehulp)’의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그의 치료는 르루 박사의 개인 병원(l’Institut de la Couronne)에서 시작됐다. 외부 라듐 노출과 인후부 종양 수술을 병행한 요법이 진행되었고, 이탈리아 대사관과 병원 측은 푸치니의 치료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 위해 만전을 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곡가의 후두 제거 수술 가능성이 보도돼 소문은 일파만파 커졌다. 

치료 초반, 그의 건강은 호전되는 듯했다. 하지만 대수술 이후 합병증이 발생했고, 결국 그는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66세 생일을 몇 주 앞둔 시점이었다. 장례는 브뤼셀의 성 마리 왕립 교회(St. Mary Royal Church)에서 치러졌으며, 시신은 밀라노로 이송됐다. 그의 유해는 1926년, 푸치니 박물관(Museo Villa Puccini)에 안치됐다.

미완성으로 남은 그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Franco Alfano, 1875~1954)에 의해 완성되었다. 푸치니가 생전에 며칠을 보냈던 병원 건물 정면에는 여전히 그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이 남아 있다.

길드 건물.
길드 건물.

브뤼셀의 랜드 마크, 그랑플라스

브뤼셀 시가지 한복판에 자리한 그랑플라스(Grand-Place)는 도시의 중심이자 벨기에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이다. 이름 그대로 ‘큰 광장’이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천 년 넘게 브뤼셀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사방을 둘러싼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 덕에,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 하나로 꼽히며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광장을 감싸고 있는 건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브뤼셀 시청사다. 첨탑이 우뚝 솟은 이 건물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섬세한 조각과 장식이 인상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맞은편에는 ‘왕의 집’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있다. 현재는 브뤼셀 시립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신고딕 양식으로 복원된 외관이 웅장함을 더한다.

이 외에도 상인 조합 건물인 길드홀들이 광장을 빼곡히 둘러싸고 있다. 각각의 건물은 옛 브뤼셀 길드의 자부심을 보여주듯 정면 장식이 화려하고, 일부 건물에는 직업을 상징하는 조각이나 문장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청사.
시청사.

11세기부터 이어진 시장 광장의 역사

그랑플라스는 본래 11세기, 브뤼셀 초기 도시의 시장으로 시작됐다. 당시 이 지역은 모래톱과 습지 사이에 형성된 요새 근처의 마른 땅이었다. 하지만 곧 플랑드르에서 독일 라인란트 지역으로 이어지는 주요 무역로를 따라 상업이 활성화됐고, 자연스럽게 야외 시장이 형성됐다.

13세기 초, 광장 북쪽 가장자리에는 공작령 직영의 고기·빵·옷감 시장이 세워졌다. 지붕이 있는 구조로, 비가 와도 물건을 진열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353년, 브뤼셀 시는 남쪽 구역을 대규모 실내 옷감 홀로 개발하기 위해 기존 건물들을 철거했다. 광장 구조에 본격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1401년부터 1455년 사이에는 광장에 브뤼셀 시청사가 건립됐다. 시청사 첨탑은 약 96m 높이로, 꼭대기에는 악을 물리치는 수호성인 성 미카엘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처음엔 ‘공작의 집’으로 불렸으나 이후 ‘왕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오늘날 네덜란드어로 ‘빵집’(Broodhuis)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됐다. 

임시 병원으로 활용되던 시청사.

그랑플라스의 파괴와 재건

1695년, 프랑스 군대의 대규모 포격으로 그랑플라스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브뤼셀 도심은 방어 시설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프랑스의 포격은 시청사를 주요 목표로 삼았지만, 시청사가 아닌, 광장과 그 주변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후 브뤼셀의 길드와 각 건물의 소유주들은 그랑플라스를 신속히 복구했고, 약 4년에 걸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될 수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브라반트 혁명 당시 광장은 다시 한번 약탈당하며 훼손을 겪었다. 

19세기 중반부터는 문화재적 가치가 재조명되며 복원과 정비가 이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는 전쟁을 피해 들어온 난민들과 부상병으로 도시가 가득 차서, 광장 내 시청사가 임시 병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현대사에서도 사건은 이어졌다. 1979년,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이 설치한 폭탄이 광장 내 야외무대를 강타해 영국 군악대 단원 4명을 포함한 최소 15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도시 당국은 광장 보호와 시민 안전을 위해 1991년 1월 1일부터 이 일대를 보행자 전용 구역으로 지정했다.

아름다운 가게 내부.
트리를 파는 가게.

전통 시장에서 문화광장으로

그랑플라스는 1959년 11월까지 시장으로 기능했으며, 현재도 네덜란드어로 '큰 시장(Grote Markt)'이라 불리고 있다. 광장을 둘러싼 길드 홀은 대부분 상점, 계단식 레스토랑, 브라스리(brasserie) 등으로 개조되었고, 이 중에는 유명 브랜드 고디바(Godiva)의 초콜릿 숍과 비스킷 전문점 메종 댄도이(Maison Dandoy)가 있다. 양조업자 길드의 옛 건물에는 술 박물관이 들어섰고, 코코아 및 초콜릿 박물관(현 Choco-Story Brussels)도 이 일대에서 위치해 있다.

또한 그랑플라스는 각종 문화 행사와 축제가 열리는 무대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꽃 융단 축제’다. 성모 승천 대축일에 맞춰 2년에 한 번 열리는 이 행사에서는 광장 중앙에 대형 플라워 카펫이 펼쳐져 수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트리와 조명 쇼가 더해져, 이곳은 겨울철 명소로도 사랑받고 있다. 


Data

순교자극장(Martyrs Theater, Théâtre des Martyrs):주소:Pl. des Martyrs 22, 1000 Bruxelles, 벨기에/전화:+3222233208/웹사이트:https://theatre-martyrs.be/

와플집(Galet):주소:Nieuwstraat 27/29, 1000 Brussel, 벨기에/웹사이트:https://galet.be/
라 모네 왕립극장(Royal Theatre of La Monnaie):주소:Pl. de la Monnaie, 1000 Bruxelles, 벨기에/전화:+32 2 229 12 00/

드럭 오페라(drug opera):주소:Rue Grétry 51, 1000 Bruxelles, 벨기에/전화: +32 2 229 16 66/메뉴: drugopera.be

그랑플라스(Grand-Place):주소:Grote Markt, 브뤼쉘/전화:+3225138940/웹사이트:https://www.brussel.be/브뤼셀 시청사:주소:Grand Place 8, 1000 Bruxelles, 벨기에/전화:+32 2 279 22 11/웹사이트:https://www.bruxelles.be/hotel-de-ville

왕의 집(시립박물관, Maison du Roi):주소:Grote Markt van, 1000 Brussel, 벨기에/전화:+32 2 279 43 50/웹사이트:https://www.brusselscitymuseum.brussel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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