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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가 남은 천년고도 자다르 올드타운

  • 기자명 이신화 작가
  • 입력 2021.11.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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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제공) : 이신화 작가
크로아티아 아드리아 해안에 위치한 자다르는 고대 로마제국 시대부터 문헌에 나오는 오래된 도시로, 비잔틴 제국 시절 달마티아의 주도였다. 중세에는 슬라브의 상업·문화의 중심지였다. 201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자다르의 올드 타운은 전체가 사적지다. 고대 로마 때 만들어진 골목의 대리석 보도블록은 물기가 없어도 미끄러울 정도로 닳고 달아 긴 세월의 연륜을 보여준다. 자다르를 대표하는 랜드 마크는 바다 오르간이다.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아름다운 자연의 음악을 연주한다.

자다르(Zadar)에서 내려 불법 자가용 택시에 오른다. 버스가 멈춘 그곳에는 시내버스도 없고 여행 안내소도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낡은 자가용을 가진 중년의 아저씨는 2km 거리를 5km로 늘리더니만 요금을 50쿠나(kuna, 한국 돈 1만원 정도)나 요구한다. 숙박지 찾는 것에 염려하지 말라는 제스처를 하더니만 결국 숙소 근처에 내버려 둔 채 떠나 버린다. 숙소를 찾긴 했으나 또 한 번 끔찍한 경험을 안겨준다.

숙소에서 올드 타운까지는 시내버스를 타고 두 세 정거장을 가는 거리인데 버스 노선을 알 수 가 없어, 터덜터덜 바닷가를 향해 걸어간다. 날씨는 너무 더워서 머리에서 지진이 날 지경이다. 이곳의 여름철 평균 온도는 34~35도 정도지만 기온이 오를 때는 40도가 넘는다. 기진맥진 했지만 다행히 헤매지 않고 올드 타운 앞에 도착한다. 바다 안쪽으로 뚝 떨어져 있지만 섬은 아니다.

배를 타고 유람하는 관광객들.
배를 타고 유람하는 관광객들.

 

으레 그렇듯 관광명소 앞에는 여행사들이 진을 친다. 자다르에서 유람선 여행 할 계획은 아니지만 여행 정보라도 얻으려는 심사로 한 남자에게 다가선다. 그는 자다르 토박이로 ‘엘리자베스호’라는 거대한 유람선을 운행하는 선장이다. 20여 년 동안이나 이 사업을 하고 있단다. 우리나라 인천과 서울도 알았는데 인천 항구에 정박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자다르 근교 크르카(Krka)의 폭포 사진이 멋지다. 그는 “자다르에서 배를 타고 갔다가 다시 미니버스를 타고 도착해서는 수영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가격은 67유로(8만5천원 정도). 그의 친절한 대응에 앞으로 여행할 토르기르에 대한 질문도 쏟아낸다. 당장 필요한 음식점 정보도 구한다. 결국 투어도 안 할 필자에게 찬찬히 설명을 다 해주는 그가 고마워,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사준다. 선장과 함께 일하는 젊은이도 옆에 있어서 사주려는데 극구 사양한다. “괜찮아. 이게 한국 문화야”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받는다. 수줍고 정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올드 타운에서 한참 놀다가 나오자 가게 문이 닫혔는데 그가 친절하게 숙소 가는 방향을 알려줬다. 특히 그가 소개해 준 식당(Konoba Malo Misto)은 다른 곳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좋았다. 얘기하는 품새가 꼼꼼해서 사업을 잘 할 듯 하다.

윤기가 반질반질한 대리석 골목길.
윤기가 반질반질한 대리석 골목길.
올드 타운을 잇는 다리.
올드 타운을 잇는 다리.

 

자다르 대리석 골목길은 반질반질
바다를 잇는 다리를 건너면 성벽이 올드 타운을 둘러싸고 있다. 이 성벽은 16세기 초 베네치아 공국 지배 시절에 만들어진 요새다.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을 막기 위해 도시에 성벽을 쌓아 요새화 했다. 자다르는 15~17세기 베네치아 공국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씨티 게이트라 불리는 4개의 성문이 있었지만 현재 항구의 문(Port gate), 육지의 문(Mainland Gate)만 남아 자다르 구시가지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베네치아 통치 시절에 만들어진 육지의 문의 사자상.
베네치아 통치 시절에 만들어진 육지의 문의 사자상.

 

소개받은 식당으로 가기 위해 메인 도로를 비껴 우측 작은 문으로 들어선다. 길목에서 복숭아를 사들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간다. 손님은 거의 없다. 야외 자리에 앉아 해산물 리조또, 샐러드, 탄산수를 시킨다. 웨이터에게 복숭아가 든 비닐봉지를 보여 주었는데 선뜻 들고 가더니만 씻어온다. 밥을 먹은 뒤 무더위 탓에 움직일 수가 없어, 얼음을 더 달라고 한다. 얼음물을 마시고 과일을 먹으며 혀 내민 개처럼 늘어져 있는데 웨이터가 얼음 컵을 가져다준다. 말이 없는 그그 행동으로 살가운 마음을 보여준다. 결국 와인도 한잔 시켜 마시고 나서야 길을 나선다. 참고로 이 식당은 너무 괜찮아서 저녁에 또 찾았다. 낮과 달리 저녁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나 낮에도 왔었거든”이라며 자리를 차지해 또 해산물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질 좋은 와인. 
질 좋은 와인. 
해물 파스타.
해물 파스타.

 

어슬렁어슬렁 타운으로 들어선다. 여느 도시처럼 묵은 향기가 가득 찬 골목길이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올드 타운의 가로 길이는 약 3km 정도. 그런데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골목길은 미끄러워서 걷기가 힘들다. 대부분 유럽 올드 타운의 골목은 자갈돌이 깔려 울퉁불퉁 한데 비해 자다르는 대리석이다. 긴 세월동안 닳고 닳은 흔적이다. 비가 오면 어떻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걸까?

기원전 로마 비잔틴 제국의 달마시아 수도
자다르는 BC 9세기 일리리 안들이 정착한 게 도시의 기원이다. 고대 로마가 지배(BC 3세기 말~BC 1세기)할 때만 해도 중요한 입지가 아니었으나 로마가 분리된 4세기 경부터 비잔틴 제국의 달마시아 주도가 된다. 이때 전형적인 고대 로마 도시가 만들어진다. 직사각형의 일정한 도로 통신망, 포럼광장 및 사원 등. 크로아티아 인이 살기 시작한 때는 7세기 경이며 10세기 때는 크로아티아 최초의 통치자가 이 도시를 장악한다.

성벽에 난 작은 문.
성벽에 난 작은 문.

 

그러다 12~13세기 세력이 강해진 베네치아 공국은 십자군의 힘을 빌려 자다르를 정복한다. 16세기 초 베네치아 공국은 투르크 인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았다. 이 시대에 많은 문학가들이 등장한 때이기도 하다. 18세기 베네치아가 나폴레옹에 의해 무너진 후에는 프랑스 통치(1805~1813)를 잠시 받았고 그 이후 1918년까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배에 들어간다. 제2차 세계 대전 뒤인 1947년 이탈리아와 연합국 사이의 평화 조약으로 유고슬라비아 령이 되었다. 1991년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에서 세르비아 군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어 현재도 일부는 복구 중에 있다.

로마 카톨릭 대교구가 있던 도시
오랜 역사가 한데 모여 있는 올드 타운 골목에서는 길 잃기 십상이지만 규모가 크지 않아 두어 시간정도면 충분히 둘러 볼 수 있다. 유럽 도시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오래된 건축물 그대로 숍, 레스토랑 등이 영업 중이다. 주교의 집, 영주의 집 등은 박물관, 미술관 등으로 이용된다. 엇비슷한 건축 형태라 구분은 쉽지 않지만 오래된 성당, 세례당, 교회가 많다는 것을 알게 한다. 자다르는 중세 때 로마 카톨릭 대교구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로마 포럼 광장 주변.
로마 포럼 광장 주변.
도나트 성당.
도나트 성당.

 

골목을 헤매다 보면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포럼(Forum) 광장을 만난다. 9세기경에 지어진 성 도나트 성당(Crkva Sv. Donata)은 자다르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전쟁 때 파괴된 후 남은 파편조각으로 성당 전체를 재건축했다. 1~3세기 로마 황제 오거스투스(Augustus)가 세운 포럼 광장에는 부서진 유적들이 모아져 있다. 포럼은 로마시대 집회장이나 시장으로 이용되었다. 포럼 옆에 있는 옛 주교관은 고고학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그 옆에 큰 종탑이 있다. 이것 말고도 12~13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마리 성당, 성 아나스타샤(St Anastasia, 자다르 대교구) 성당 등이 있다.

올드 타운에 무수한 유적들이 있어
로마 광장에서 남동쪽으로 가면 나로드니 광장(Trg Narodni)이다. 이곳에도 작은 시계탑, 시청사, 공개 재판소 등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몰려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육지의 문(Mainland Gate) 쪽으로 향하면 5개의 우물(Trg 5 Bunara)을 만난다. 16세기 베네치아 인들이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을 대비해 만든 식수원이다. 19세기까지 이용된 다섯 개 우물은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한 여름 이곳에선 음악회가 열린다. 우물 옆에는 캡틴 타워가 있고 그 옆에는 1829년에 만든 헬레나 마디예브카 여왕(Queen Jelena Madijevka)의 이름을 딴 공원이 있다. 식물학자이자 오스트리아 지휘관인 바르론 프란츠 루드비히 본 웰덴(Baron Franz Ludwig von Welden, 1780년~1853년)이 설립 한 이 공원은 달마티아 최초 공공 공원이었다.

바로 옆에는 1543년에 건축된 육지의 문이다. 승리를 상징하는 3개의 아치로 구성되어 있는 문 위에는 베네치안 공국을 상징하는 날개 달린 사자상이 눈길을 끈다. 이 문은 당대 베네치아 유명 건축가인 미켈레 산미켈리(Michele Sanmicheli, 1484~1559)의 작품으로 자다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로 손꼽는다. 문을 나서면 바로 바다로 이어진다. 한 여름에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바닷가로 뛰어 들어 물놀이를 즐긴다.

사진가 브르칸의 작품.
사진가 브르칸의 작품.

 

다시 구시가지로 들어서 서쪽을 향해 걷다보면 로마네스크 스타일의 성 시메온(St. Simeon) 교회 근처를 스친다. 성 시메온 교회의 성인 석관은 축일(매년 10월8일)에 오픈해 미이라를 보여준다. 시메온 성당 옆은 조라니치 광장. 최초로 크로아티아어로 소설을 쓴 페타르 조라니치(Petar Zoranić, 1508~1569)의 이름을 붙였다. 이 곳에서는 사진가인 안테 브르칸(Ante Brkan, 1918~2004)과 그의 동생인 즈보니미르 브르칸(Zvonimir Brkan, 1920~1979)의 작품들이 길거리에 펼쳐져 있다. 자다르 사진 학교의 창시자인 이 형제는 자다르의 유명한 사진가다. 전시된 흑백 사진들은 매력적이다. 그들의 작품은 시립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바다 오르간 쪽 바다.
바다 오르간 쪽 바다.

 

서서히 올드타운의 명물이라는 바다오르간(Morske Orgulje)으로 향한다. 2005년 달마티안 석공들과 건축가 니콜라 바사치가 만든 오르간(75m 길이, 35개 파이프)은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연주된다고 해서 유명하다. 밀·썰물 때 파도의 크기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데 큰 배가 지나면서 큰 파도를 만들면 소리의 음량이 커진단다. 또 낮에 태양에너지를 모아두었다가 저녁에 조명 빛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그날 바닷물은 잔잔해서 오르간까지 오르지 못해 소리는 들을 수 없다. 12살 어린이 두 명과 우스개 대화를 나누고 낙조를 기다릴 뿐이다. 아드리아 해의 여름 시간은 너무 길어서 해 질 생각을 안 한다. 주변 공원을 기웃거리면서 자다르 문학인들의 동상을 본다. 그때 어디선가 귀에 익숙한 팝송이 흘러든다. 음악소리를 따라 가보니 어린아이들이 축구를 즐기는 작은 운동장이다. 운동장 벤치에 앉아 한참동안 음악을 듣고 서서히 해안가로 나선다. 영화감독 히치콕이 반했다는 지는 해는 그날 썩 아름답지 못했다. 거기에다 숙소에서도 끔찍한 경험을 한다.

늦은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으나 단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샤워장은 여성들의 머리카락에 막혀 배수가 되지 않았고 숙박객인 외국인 남녀 중 여성은 속옷차림으로 활개를 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불을 켜놓았다며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친다.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야외로 도망 나왔지만 모기 떼가 기승이다. 이 나라 바닷가 모기는 한국산 파스로는 치료 안 될 정도로 가려움을 유발한다. 자다르는 도망쳤다는 말이 맞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 그 이후 더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 크로아티아에는 분명히 친절한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아 껍질만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진다.

Travel Point
찾아가는 방법: 직항은 없다. 크로아티아 수도인 자그레브로 가서 버스(www.autobusni-kolodvor.com)나 기차를 이용하면 된다. 자그레브에서 자다르까지 비행기도 운항된다.
현지교통: 자다르 공항(www.zadar-airport.hr)에서 시내까지 25km. 공항버스로 약 20분 정도 소요 된다. 버스 터미널에는 여행 안내소가 없으니 유의해야 한다.
음식 정보: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 말로 미스토(Malo Misto)는 지역 주민이 소개해준 맛집이다. 또 맘마미아(Mamma Mia), 라 파미그리아(La Famiglia), 프로토 푸드 앤 모어(Proto Food&More)는 인터넷에서 점수표가 높은 식당들이다. 또 크로아티아는 크라스(Kraš) 초컬릿이 유명하다. 맥주는 오쥬이스코(Ožujsko)와 카르로바츠코(Karlovačko)가 대표적이다.
숙박정보: 자다르 올드 타운 보다는 주택가 쪽을 선택하는 게 가격이 저렴하다. 단 버스 터미널에서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쉽진 못하다.
축제 정보: 매년 7월에는 더 가든 페스티벌(The Garden festival)이 열린다. 전자 음악 축제로 다양한 밴드 음악과 파티를 즐길 수 있다.
참고: 항구도시 자다르에서는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까지 페리로 이동 가능하다. 이탈리아 안코나 지역으로 갈 수 있다. (크로아티아 페리 www.jadrolinija.hr, 자다르 관광청: www.tzzadar.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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