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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이 물결처럼 일렁대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 기자명 이신화 작가
  • 입력 2021.12.22 15:02
  • 댓글 0
  • 사진(제공) : 이신화 작가
동유럽 루마니아는 여전히 낯선 나라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선입견으로 똘똘 뭉쳐진 채 수도 부쿠레슈티에 입성한 사람들은 깜짝 놀라게 된다. 공산권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건물 속에는 루마니아 인들의 문화, 예술이 뒤섞인 자유로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거기에 순수한 루마니아인들의 친절함에 반하게 된다.
도심의 건축물들.
도심의 건축물들.

 

사회주의 국가라는 고정관념
‘루마니아’에 문외한인 필자는 ‘사회주의 국가’임을 뇌리 속에 박아 놓고 수도 부쿠레슈티(Bucharest, Bucureşti)에 입성한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는 드라큘라가 살았다는 ‘브란성’을 가는 거점지일 뿐이다. 거기에 불가리아에서 국경을 넘어 루마니아로 오면서 바라본 풍경은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더욱 기대치는 없다. 구 시가지만 대충 훑어 볼 참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다소 떨어진 숙소에 짐을 둔 뒤 지도 한 장을 들고 지하철을 탄다. 옆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여인에게 말을 건넨다. 하차할 대학 역에 대해 물으면서 루마니아인과 첫 말문을 튼다.

지하철 역 광장.
지하철 역 광장.

 

28살의 마리나라는 여인은 아가씨처럼 보이지만 23살에 결혼을 해서 애가 둘이나 있단다. 그녀의 표정은 매우 들떠 있다. 그녀는 한국을 아주 좋아한다며 한국인을 만난 것을 아주 즐거워하는 중이다. 그녀는 매일 한국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본다. 한국 탤런트나 가수 이름을 줄줄 꿰고 있다. 영상매체가 전 세계를 가깝게 좁히는데 엄청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첫 루마니아 현지민과의 대화를 통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고정관념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 예상은 시내에 들어서도 틀리지 않는다. 시내에서 스치듯 만난, 많은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정겹다. ‘직접 접하지 않고 평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 루마니아의 첫 인상이다.

‘작은 파리’라고 불리는 수도 부쿠레슈티
‘루마니아’라는 국명은 로마제국의 후손이라는 뜻을 지닌 ‘로마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로므니아(România)로 부르며 영문표기로는 로마니아(Romania)다. 루마니아는 발칸 반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동쪽으로는 몰도바, 서쪽으로는 헝가리, 남서쪽 및 남쪽은 도나우 강을 경계로 세르비아, 불가리아와 각각 국경을 접하며 남동쪽은 흑해에 면한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의 최초 기록은 1459년에 블라드 체페시 왕(드라큘라 백작)이 요새를 만들었을 때다. 1861년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 시절, 몰다비아 공국과 왈라키아 공국이 합병해 루마니아 공국이 탄생돼 부쿠레슈티는 왕국의 수도가 된다. 부쿠레슈티는 루마니아어로 ‘기쁨이 넘치는 곳’ 이란 뜻이다. 부쿠레슈티는 수도가 되면서 급속히 발전한다. 이후 1948년 소련의 영향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 1989년에 이르러 시민혁명을 통해 자유를 얻었다. 부쿠레슈티에는 담보비타(Dambovita) 강이 흐르고 도심 중심인 빅토리에이 광장에서 9개의 거리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

올드 타운 골목.
올드 타운 골목.
대학 건물.
대학 건물.

 

오래된 건축물에서 만난, 정겹고 순수한 루마니아인
부쿠레슈티 대학 역을 빠져 나오면 부쿠레슈티 대학 건물 두 동을 만나게 된다. 루마니아 최고 명문인 부쿠레슈티 대학 건물은 캠퍼스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데 이곳이 가장 오래되었다. 1694년 왕립 아카데미가 설립되었고 이후 법과대학, 의과대학 등 독립된 단과대학들이 차례차례 생겨나자 1864년, 단과대학들을 통합해 종합대학이 되었다. 대학광장을 비껴 중심부의 올드 타운을 찾아간다. 골목길엔 사각형 돌이 박혀 있어 옛 향기가 물씬하다. 시내 거리에는 거대한 회색 건물들이 이어진다.

루마니아 여성들.
루마니아 여성들.

 

군사박물관, 국립은행, 처음 지어진 극장 등. 옛 건물 마다 문화유적지에 대한 안내 팻말이 있다. 아기자기한 쇼핑숍, 빵집 등을 기웃거리는 동양인에게 현지민들은 관심을 가져 준다. 특히 여성들은 키가 크고 날씬하며 옷을 잘 입는 패셔니스타들이다. 키가 훤칠하고 자연스러운 멋을 낸 꽃집 아가씨와는 대화 몇 마디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그녀는 부리나케 내게 달려온다. 그녀의 질문은 엉뚱하게도 필자가 신은 양말이 ‘어느 제품이냐’다.

건축가 스테판 부르쿠스가 만든 증권 거래소. 
건축가 스테판 부르쿠스가 만든 증권 거래소. 

 

증권 거래소 건물의 엑스포 바자르 아트.
증권 거래소 건물의 엑스포 바자르 아트.

 

길을 걷다가 눈에 띈 건축물인 증권 거래소(현재 국립 중앙 도서관 본부) 앞을 지난다. 옛스러움과 웅장함이 더해져 눈길을 끄는 이 건물은 루마니아의 유명한 건축가인 스테판 부르쿠스(1870~1928)의 작품이다. 1906~1912에 건축된 유적지 건물 안에서는 ‘엑스포 바자르 아트’가 열리고 있다. 보호해야 할 건물에서 스스럼없이 그림,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내 시내로 접어들다 갑자기 내린 폭우 속에서 갈 길을 잃고 만다. 여러 사람이 비를 피하고 있는 상점의 공간은 계속 좁아지고 있어도 주인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길을 나서는데 상점 주인이 비를 피하라며 비닐봉지를 내어 준다. 이런 모습이 사회주의 국가의 현실 아닐까.

오래된 여관 마눅.
오래된 여관 마눅.

 

부쿠레슈티 옛 것에 고스란히 남은 루마니아 민속
시내 중심가에서는 여행 정보서에 소개된 마눅 여인숙(hanul lui manuc, 1808년)부터 찾는다. 약 210년 전 아르메니아 부호가 만들었다는 마눅 여인숙은 예상보다 크고 건재하다. 한 눈에도 오랜 연륜이 물씬하다. 여인숙 안쪽의 멋진 인테리어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바로크와 분리파 양식을 가진 1층과 2층으로 된 건축물은 사각진 공간을 따라 야외 정원이 만들어져 있다. 갑자기 내린 폭우로 정원에 놓인 파라솔과 의자는 접혀 있어 2층으로 올라선다. 나무 발코니와 넓은 회랑이 이어진다. 회랑에는 오래된 스토브, 싱어 미싱 등은 물론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다.

마눅 여인숙.
마눅 여인숙.

 

앤티크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나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소고기와 감자가 들어간 스프(ciorba de vacuta)와 그릴에 군 닭에 야채가 곁들여진 스테이크(pui parmezan, servit cu rucolla)를 시킨다. 작게 조각낸 소고기와 감자가 들어간, 붉은 빛을 띤 스프 위에는 동유럽 사람들이 즐겨 먹는 스메타나(Smetana) 소스가 올라가 있다. 국물은 약간의 신맛이 난다. 군 닭고기 요리는 담백하면서 맛이 좋다. 이 집 상차림에서 관심을 끌게 한 것은 약간 매운 청고추 한 개와 장식처럼 뿌린 고춧가루다. 이들이 고춧가루를 즐겨 먹는다는 것이 반갑다.

옛 왕궁터와 드라큘라 흉상.
옛 왕궁터와 드라큘라 흉상.

 

립스카니 거리 중심에 남은 중세 유적들
마눅 여인숙을 나와 주변의 립스카니 거리를 훑는다. 500년 전인 15세기 부쿠레슈티 도시가 형성될 당시부터 조성된, 중세풍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구 시가지의 핵심이며 백미다. 쇼핑 중심가인 우니리(Unirii) 광장의 대부분 상가는 국가가 운영하는 국영 상점들이라는 것이 특이점. 현대식과 고전식이 뒤섞인 거리에서 부서진 왕궁터 유적지(La Curtea Veche)를 본다. 드라큘 백작의 흉상이 있고 왕궁터 주변에는 스타브로폴레오스(Stravropoleos) 정교회(1724)를 비롯해 많은 교회, 수도원 등, 역사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구획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야누스 국립 역사 박물관을 만난다. 박물관 계단 앞에 있는 동상(Statue of Trajan and the She-wolf)이 뭔가 어색하다. 루마니아 인들 조차 ‘길 잃은 개들에 대한 기념비’라면서 비야냥 거리는 동상이다. 박물관 옆, 좁은 골목이 예사롭지 않다. 관광객들은 물밀듯하고 특히 세련된 옷차림을 한 여성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이 골목에서 ‘카루 쿠 베레(Caru Cu Bere, http://www.carucubere.ro/ro/homepage)’라는 맥주 바를 만난다. 누군가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공사가 끝나지 않은 건축물임에도 손님들도 인산인해다. 1879년에 오픈한 이 맥주 바는 시내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맥주가 가득한 마차’ 라는 뜻을 지닌 이 레스토랑은 원래는 왕족의 만찬 장소였다. 차우셰스쿠의 큰 아들이 이곳에서 자주 파티를 열던 곳이다.

맥주홀 카루 쿠 베러의 내부 모습.
맥주홀 카루 쿠 베러의 내부 모습.

 

맥주홀은 층층마다 테마가 다르다. 1층에는 남자 무희, 여자 무희 두 명이 댄스 복을 차려 입고 손님들과 함께 춤을 준다. 지하층은 클래식하다. 악사는 바이올린을 켜면서 손님 테이블로 다가선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한국에도 왔다고 말한다. 흥을 즐기는 루마니아인들의 깊은 문화 속살을 들여다보는 재미에 폭 빠진다. 따로 루마니아 전통 박물관을 가지 않더라도 이 나라 문화체험을 하기에 이렇게 좋은 공간이 있을까? 루마니아인들은 오래전부터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부쿠레슈티 국립 오페라단이 세계적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기록하는 이유일 것이다. 문득 성악가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를 떠올린다. 이 노래의 원작이 루마니아의 왈츠 작곡가이자 군악대장이었던 요시프 이바노비치(1845~1902)가 만든 도나우 강의 잔물결(1880년 작)이기 때문이다. 비록 짧은 부쿠레슈티 여행이지만 한 조각의 케이크를 먹은 듯 달콤하다. ‘도나우 강 잔물결’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듯 행복해진다.

Travel data
찾아가는 방법:
루마니아로 바로 가는 항공편은 없다. 카타르 항공을 이용해 도하를 거쳐 부쿠레슈티로 갈 수 있다. 도하까지 약 10시간 소요, 부쿠레슈티까지 약 5시간 소요된다.
현지교통: 구 시가지는 걸어 다니면 된다. 숙소가 멀리 있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면 된다.
음식정보: 음식은 수준급이다. 올드 타운에는 연륜 깊은 식당이 아주 많고 루마니아 전통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숙박정보: 올드 타운에 숙박할 곳이 많다.
기타 볼거리: 세계에서 가장 큰 행정용 건물인 의회궁(차우세스쿠 궁전)이 있다. 방이 3100개나 되는 어마어마한 이 의회궁은 미국의 국방부 건물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큰 건물이다. 의회궁을 만든 이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1918~1989). 그는 1967년부터 89년까지 24년간 독재정치를 했다.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가까웠고 독재가를 열망했다. 이 건물과 어마어마한 거리 조성을 위해 7만 명의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인민들은 식량이 떨어져 굶어 죽어도 의회궁에는 국비를 쏟아 부었다. 그는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했다. 궁전이 마무리되기 전인 1989년, 크리스마스 날 민중들은 유혈 혁명을 일으켰고 이들 부부는 공개 처형당했다. 처형 장면을 전 세계에 고스란히 보여준 곳도 이 나라 뿐이었을 것이다. 그 외 루마니아의 ‘작은 파리’라 칭하는 개선문, 문예진흥원, 구 공산당 본부, 루마니아 정교회와 옛 비잔틴 양식의 교회들, 국립 박물관인 코트로체니 궁, 군사 박물관, 역사 박물관, 농촌 박물관, 국립 극장, 루마니아 음악당(아테레움), 오페라 하우스, 혁명 광장, 헤러스트러우 공원 등 볼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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