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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olleen Park 박칼린이 사는 법

"끊이지 않는 창작의 즐거움, 내 인생은 Trot"

  • 기자명 이상문 기자
  • 입력 2024.03.01 08:00
  • 수정 2024.03.01 11:55
  • 댓글 0
  • 사진(제공) : 안규림

 

<미스트롯 3>(TV조선)가 방송 막바지다. 이번 시즌 볼거리는 출중한 참가자뿐만이 아니다. 새로 충원된 ‘마스터(심사위원)’도 흥밋거리. 특히 박칼린(56)의 존재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듯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비롯된 ‘악마의 편집’이라는 신조어에 이어 ‘악마의 심사평’이라는 말도 생겼다. 그를 지칭하는 듯하다. 물론 호의적인 농담이다. 
화면엔 뜸했지만 늘 바빴다는 그의 일과 일상,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오래 각인될 만남이다.

TV 화면으로 보는 건 오랜만이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지난해 창작뮤지컬 <시스터즈>를 무대에 올렸다. 고맙게도 큰 상을 받았다. 6월에 국립창극단과 함께 신작 <만신>을 공연하기로 돼 있다. 방송하고 있는 지금도 죽어라 쓰고 있다(웃음). 창극단용으로 맞춰 쓰느라 고생이다.

<미스트롯 3> 마스터로 등장할 줄은 몰랐다. 박칼린과 트로트… 연결이 쉽지 않다. 액면으론 그래 보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연결점이 많다. 트로트 오디션에 국악 베이스 참가자들이 많지 않은가. 나도 국악 전공자다. 국악 출신들이 많이 나오니까 나와서 심사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이미 <풍류대장>이나 <트로트의 민족>에서 심사한 경력도 있다. <트로트의 민족>은 송가인 씨 ‘땜빵’으로 갔다가 고정으로 눌러앉게 됐었다.

트로트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던데…. 꼬맹이 때부터 이미자 선생님 노래를 듣고 자랐다. 많이 따라 불렀다. 선생님을 내 공연에 모시기도 했다. 직접 노래를 불러주셨다. 트로트 중에서도 정통 트로트를 좋아한다. 김연자 쌤 노래도 좋아한다. 그래서 방송도 즐기며 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제작진 몫이다. 난 보석을 발굴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다들 그렇겠지만 누구보다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

너무 심사하기 어려워 포기 선언을 했다는 기사를 봤다. 실력들이 출중한가 보다. 초반에는 별로였는데 결선 가보니 너무들 잘한다. 그런 기사는 못 봤지만, 심사하기 정말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마음속으로 꼽은 유망주들이 몇 있다. 꼭 뽑고 싶은 친구는 서너 명 정도?

오디션마다 어린 미성년자들이 끼어 있다.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다. 다양한 연령대가 오디션에 참가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를 못 느끼겠다. 하지만 트로트 경우엔 어린아이들에겐 조금은 한계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한국의 트로트는 미국으로 치면 컨추리 음악 같은 거다. 어른들의 포퓰러 송이다. 가사가 어른들의 가사인 건 어쩔 수 없다. 사랑이 있고 버림이 있고 한이 있는 노랫말을 어린아이가 백 프로 소화한다는 건 쉽지 않지 않겠나. 어린아이가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잘 뽑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일시적인 이벤트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물론 그런 아이들을 발굴하고 잘 키워서 10년 뒤에 진짜 어른의 장르에 짠~ 하고 나타나게 해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 오디션이 많은 건 좋은 일 같다.

제일 인색한 점수를 주는 마스터다. 알고 있나? 다른 분들 점수를 보고 매기는 건 아니니 의도적인 건 아니다. 까보면 그런 거지(웃음). 냉정하고 짜다, 기계적이다 말할지 모르지만, 나도 늘 그런 건 아니다. 때로는 나도 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 뮤지컬 오디션을 열면 한 500명 정도가 온다. 1차에서 3차까지 진행해 그중 스무 명 남짓을 골라야 한다. 절대 안 될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게 인간이 하는 일인 이상 단순하지 않다. 이 친구의 미래를 위해 한 번은 더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낙방한 어떤 친구들은 포기와 함께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로 어떤 경우엔 실력이 괜찮은데도 쓰지 않아야 할 친구들이 있다. 실력만 믿고 오만한 친구는 ‘쓴맛’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오디션 심사라는 건, 심리전이다. 단지 눈앞의 작품만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의 미래를 위한 선택도 고민하는 편이다. 굳이 그런 책임까지 떠안을 필요는 없지만 뮤지컬계가 좁으니 그냥 외면하기도 힘들다. 트로트 심사도 같은 마음으로 한다.

재능과 마인드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점수 주는 기준이 그건가? 응시자는 어차피 주어진 3분 안에 자신이 가진 걸 최대한 보여줘야 하는 거고, 우리는 그걸 포착해야 하고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해야 한다.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요소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냥 예쁘게 차려입고 나온다고 될 일이 아니다(웃음). 나는 내 점수에 대해 당당하다. 법정에 선다 해도 그럴 것이다. 재벌집 딸내미를 떨어트려도 돈 앞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은 내 진실 아니겠나. 공개되는 점수인데 상대적으로 너무 낮은 점수를 주면 나도 힘들다. 그래도 악역이지만 해야 된다고 믿는다.

오디션 할 때마다 메모 노트가 수북해진다고 하던데….  나만의 수기법으로 종이에 기록한다. 내 판단의 근거를 자세히 적어둔다. 그 인물에 대한 데이터가 되는 셈이다. 간혹 오디션에 떨어지면 서운함을 내비치며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니 소상히 설명해주려 애쓴다. 결과엔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때 기록해둔 노트가 큰 도움이 된다.

소상히 쓰려면 머리 아프겠다. 놉! 되게 쉬운 일이다. 짧게 요점만 쓰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기자들이나 속기사처럼(웃음). 음정이 어땠고 동작이 어땠고 등이 기본이고, 노래는 잘하는데 선곡이 안 어울렸다든가 등등 데이터를 만든다. 노트에 남아 있지만 때론 머릿속에도 몇 달간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뮤지컬 경우에는 연습 내내 참고하고 무대가 오픈되고 나서야 노트를 버린다.

온라인 인기투표 비중이 너무 크다는 의견이 있다. 실력보다 인기에 쏠릴 우려 때문인 것 같다. TV는 약간 다르지만 뮤지컬 무대는 모든 게 무조건 ‘라이브’다. 누가 더 유명하냐에 상관없이 그날 라이브에서 베스트인 사람이 위너다. 재능이 출중한 배우라도 관리를 잘 못해 무대를 망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뮤지컬 현장과 다르게 TV라는 특성상 인기투표가 영향을 끼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게 대중예술의 특징 아니겠나. 실력만이 아니라 매력, 퍼포먼스가 다 중요하고 영향을 끼친다. 그게 인기다. 대중의 마음은 ‘퍼펙트’에 의해 움직이는 건 아니지 않은가. 순수예술을 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잣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조율이 필요하긴 하다. 인기투표 때문에 흔들리니까 좀 줄여가는 추세인 것 같다.

박칼린은 알려진 대로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수차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자랐다. 성장의 터전은 복잡했지만 줄곧 가까이 두고 공부한 것은 음악.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했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을 전공했다. 앞서 말한 대로 어려서는 트로트와도 친했고, 한때 무용도 배운 바 있다. 첼로 외에도 갖가지 악기를 두루 섭렵한 듯하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음악감독으로 데뷔한 게 스물여덟 무렵. 이후 <사운드 오브 뮤직>, <페임>, <시카고>, <렌트>, <노틀담의 꼽추>, <미녀와 야수> 등 국내에 공연된 상당수의 뮤지컬 음악을 담당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 ‘박칼린’에는 <남자의 자격>이라는 훈장(?)이 뒤따른다. 2009년에 인기를 끈 KBS 예능프로그램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합창단을 이끌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합창 지휘는 그때가 처음이었냐?”는 질문을 던졌다가 무안을 당했다. 
“뮤지컬 음악감독이 만날 하는 일이 그거 아니었겠느냐”는 답이 돌아온다. 음악감독뿐 아니라 연출가로, 배우로도 활동했으니 프로필난이 여간 빡빡한 게 아니다. 직접 연출한 공연은 8년 여정의 <미스터쇼>, 배우로 무대에 선 공연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이 떠오른다. 근작은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쇼 뮤지컬 <시스터즈>였다. 말하자면 한국의 원조 걸그룹들을 소환해내는 야심찬 프로젝트였고, 급기야 대상 수상의 영광도 얻었다. 

 

 

트로트를 잘 부르기도 하나? 세 살 때 부산에 살다가 여덟 살에 미국에 갔는데 그 무렵이 이미자 선생님 노래가 장안에 히트였다. 가난한 시절인데 어찌된 일인지 집에 TV가 있었고, 그 안에서 이미자 선생님이 만날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성악을 공부한 분인데, 그분처럼 쉽게 노래 부르는 사람은 지구상에 또 없을 거라고 했다. TV 앞에 꼭 붙어 앉아 선생님 노래를 다 외울 정도로 불렀었다. 사람들 앞에서 부른 적도 많았다. 한국 가요보다 뽕짝을 훨씬 많이 부른 것 같다. 정통 트로트에 강하다(웃음).

판소리 인간문화재 박동진 선생 수제자가 될 뻔도 했다. 아쉽지 않은가? 아쉬울 건 없다. 그 길로 갔다면 전수자로서 끝까지 책임져야 하니 다른 걸 못했을 것 아닌가. 목전에서 벽에 부딪쳤을 때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엔 그게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었겠나. 미국이든 유럽 어떤 나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전통 인간문화재 자격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주긴 힘들었을 거다.

연출도 하고 노래하고 연기하며 연주하고 글도 쓴다. 박칼린의 아이덴티티는 뭔가? 뭐라고 불러주면 가장 흡족한가? 창작하는 사람. 그건 아이 때부터 변함없는 생각이자 바람이다. 뭐가 됐든 판을 벌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요즘 말로 하면 크리에이터인데 입맛에 딱 맞는 단어는 아니다. 아무튼 창작할 때 가장 살아 있는 나를 느낀다.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분야든 내 아이디어가 현실화되어 갈 때 느끼는 희열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연습실에서의 첫 2주가 제일 재미있다. 이후로는 구현된 장면에 살붙이고 반복하는 거니까. 정작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나서는 큰 재미가 없다. 녹화 촬영은 하지만 TV 본방은 안 보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웃음).

잘 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박칼린은 어느 쪽 능력이 더 큰가?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을 통해 구현하는 것보다 직접 하는 걸 더 잘 하는 것 같다. 무대에 직접 서는 경우가 적어서일 뿐 나는 그게 더 좋다. 뭔가 나만이 알 것 같은 ‘쿵’ 하는 느낌이 있지 않겠나. 잘 구현되도록 최대한 전달하지만 그 느낌을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을 것 아닌가.

시키는 입장일 때가 많으니 답답할 때도 있겠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잘 설명한다. 엄청 설명을 잘하면 똑똑한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나한테 달려 있다. 노래든 춤이든 연기든 그걸 똑바로 구현해내는 배우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남자의 자격> 덕에 이름이 크게 알려졌다. 그 프로그램이 남긴 게 뭘까? 내 고집과 신념을 지키길 잘했다는 생각. 그걸 기억하게 만드는 프로였다. 섭외 받고 나갈 때 편집은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리얼로 합창단을 훈련시켜 대회에 참가시킬 목적만 생각했다. 그 약속을 고집하고 앞으로 나아갔더니 단원들도 모두 진심의 노래를 하게 됐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울고 웃을 수 있었다. 방송과 상관없이 우리끼리 느끼는 진한 감동이 있었다. 열두 팀 중에 9등 했지만 꼴등은 아니었으니 만족했다(웃음).

TV 예능은 처음이었을 땐데 용케 결심했다. PD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이경규 선배님이 카메라 밖에선 상당히 진지한 분이다. 열심히 하는 데 영향을 주셨다. 사실은 출연 결심 전에 신원호 PD 뒷조사도 했다. 그가 왜 나를 찾았는지, 도대체 뭘 만들려는 것인지, 후배들이랑 파헤치고 토론했다(웃음). 곡은 내가 고른다, 예능 연기 하라고 하면 하차하겠다 등등 조건을 걸고 허락했다. 합창 지도 자체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뮤지컬 준비하며 허다하게 하는 일이다. 정렬해 있는 단원을 지휘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배우들을 한꺼번에 잡아야 하니까.

직업도 다양했고 나이 든 분들도 많았다. 뮤지컬 연습실에서처럼 강훈련이었나? 그때도 본방을 안 봤다. 편집이 어떻게 돼서 방송됐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원래 하던 대로 했을 것 같다. 카메라와 상관없이 난 언제나 온에어 상태다. 예컨대 브레이크 타임이면 어떤 친구를 불러 혼을 내기도 했다. 합창보다는 다른 데 생각이 가 있는 친구가 눈에 띄었다. 다른 목적이 있는 거라면 당장 나가달라고 한 적 있다. 연습을 하다 보면 그런 건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예능 만들기가 목적 아니었으니 그런 말 할 수 있었던 거다. 여러 단원들을 다루는 것도 심리전이다. 한 아티스트를 기른다는 것은 사이코테라피스트가 되는 거랑 거의 마찬가지다.

한국 뮤지컬은 짧은 역사에 비해 이례적으로 급성장했다고 말한다. 왜일까? 뮤지컬 장르 자체의 특성 때문이다. 대중음악은 아무나 할 수 있고 언제 뭐가 뜰지 모르는 살아 움직이는 음악이다. 너무 어려워 우러러 보게 되는 아트 뮤직과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은 오페라 같은 아트와 포크 같은 대중음악 사이에 있는 장르다. 공감하고 감동하기 쉽고 따라 하기도 어렵지 않다. 한국인이 뮤지컬에 빨리 동화된 것은 우리 뿌리와도 상관있다. 마당놀이나 악극이 우리 식의 뮤지컬이었기 때문이다. <이수일과 심순애>가 딱 좋은 예다. 노래와 연기가 섞인 대중극, 그게 뮤지컬이다. 오페라와 달리 관객과 무대 사이에 벽이 없는 장르다. 극대화된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는 건 배우가 관객을 향해 퍼주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감정 표현과 잘 어울린다. 한국인의 DNA랑 잘 맞는 것 같다.

라이센스 작품보다 창작 뮤지컬에 열성을 쏟는다. 창작물이 다양해져야 하는 건 당연한 바람이다. 당장 살겠다고 라이센스 작품에만 의존하는 건 위기를 자초하는 일이다. 좋은 창작 뮤지컬도 있지만 아직 아쉬운 점도 많다. 일단 뮤지컬이 왜 뮤지컬인지를 모르고 만드는 게 문제다. 왜 갑자기 노래를 하는지, 왜 그 대목에서 춤을 추는지, 이유와 타이밍이 불분명하다. ‘뮤지컬은 무조건 노래와 춤이 있는 것’이라는 막연한 이론적 태도 때문이다. 그냥 대사로 해도 되는 걸 갑자기 노래로 하면 민망할 때도 있지 않겠나. 그냥 외국 거 보고 우리 음악이랑 노래랑 춤을 넣으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은 완전 잘못이다. 그러다 보니 말만 창작일 뿐 외국 작품 틀에다 우리 요소를 끼어 넣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소재가 한국이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수익이 안 돼서 그럴 테지만, 그렇다고 자꾸 피해가기만 해서는 발전이 없다. 한국적인 것은 없고 외국 소재가 판을 치는데 이런 걸 한국 창작 뮤지컬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뮤지컬은 서양식 장르라는 인식 때문 아닐까? 그럴 수 있다. 게다가 외국 소재로 만든 작품이 손대기 쉽고 수익 면에서도 나으니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마당놀이나 악극이 있지 않나. 이미 전통적으로 존재해왔던 한국적 DNA를 생각한다면 뮤지컬이 한국적 소재로 성공 못 하리란 법은 없다.

음악감독이기도 하고 연출가이기도 하다. 뮤지컬에선 두 영역이 뚜렷이 구분될 것 같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뮤지컬 만들기> 책 첫 챕터에 아마도 이런 문구가 있을 거다. ‘뮤지컬은 코어퍼레이션이다.’ 자기 영역이 있되 누구도 절대 따로 놀 수가 없다. 라이센스는 이미 만들어진 것이니 어느 정도 훈련을 통하면 된다. 이미 팬덤도 형성돼 있으니 수월하다. 하지만 창작물은 50배 힘들다고들 말한다. 모두가 자기 일을 똑바로 한다고 전제했을 때 가장 힘든 사람은 연출자다. 첫 아이디어를 낸 사람일 경우 더 그렇다. 연출과 작가, 음악감독, 배우, 안무가가 질긴 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뮤지컬이다.

상상의 이미지나 아이디어가 서로 다를 수 있다. 충돌할 경우도 많을 텐데…. 강하게 끝까지 설득하고 그 자리에서 관철해내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좀 기다렸다가 다른 방법으로 구슬려 동의를 구하는 때도 있다. 작품 처음 들어갈 때 대개들 레퍼런스를 들고 오는데 난 싫어한다. 나 역시 레퍼런스를 준비하지 않는다. 수십 가지의 레퍼런스보다 자기 생각이 뭐냐를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대본에 집중하고 분석해 하루에 열 번 스무 번씩 시뮬레이션을 돌리면 그림이 입혀진다. 동양화처럼 한 번에 그려지는 게 아니라 유화처럼 색이 입혀지고 또 덧칠해지는 식이다. 일단 남의 의견을 다 들어주는 편이다. 잘못된 생각이 있으면 왜냐고 묻는다. 경우의 수를 많이 아니까 잘못된 것, 이견의 핵심을 끄집어내는 데 익숙하다. 처음부터 내 걸 고집하는 것보다 먼저 설득당한 뒤에 거기에 내 의견을 입혀서 다시 얘기하는 게 내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그러니 감독의 달란트 중 참 중요한 게 말이다. 설령 나중에 틀리더라도 일관된 생각으로 말을 잘해야 한다(웃음). 머릿속에 있는 걸 똑바로 말해서 듣는 사람한테 그림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약 파는 거랄까(웃음).

어디에선가 ‘인생의 매 순간이 오디션이고 면접’이라고 했더라. 사람을 뽑는 일뿐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과정도 죄다 오디션 같다. 그런 셈이다. 사실 하는 일 전부가 설명하고 설득하고 공유하는 일이니까. A4용지를 반으로 접어서 갖고 다닌다. 제목을 쓰고 그 안에 작품에 대한 모든 것을 메모한다. 대본이자 구성표이자 일정표이기도 하다. 용지 한 장 또는 반 장이 하나의 작품인 셈이다. 사람을 만나 설명할 때 그걸 보고 하게 된다. 중요한 자리에서 처음 설명할 때는 긴장되고 공포도 느낀다. 한국말이 아주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를 염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긴장감이 행복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엊그제 <만신> 설명하러 국립창극단에 다녀왔다. 5대륙 무속이 다 나오는 작품이고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다. 이걸 잘 설명해내려니 얼마나 약을 많이 팔았을까(웃음).

전혀 떨 것 같지 않은데…. 떤다기보다 지금 내 머릿속 생각을 이 사람들이 잘 캐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 정도다. 말로 잘 구현해야 한다는 부담 같은 거(웃음).

여윳돈 있으면 물건보다 경험을 사는 일에 쓴다고 했다. 특히 여행이 최우선이라던데…. 진짜로 어려서부터 집안에 굵직한 세간살이가 없었다. 가족 전체가 그런 분위기다. 미니멀리스트라고나 할까(웃음). 그 대신 어려서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다. 엄마가 딸 셋을 데리고 자장면 먹듯이 여행을 다녔다. 물론 여행은 자장면보다 소중하지만(웃음). 커서도 아무리 바빠도 매년 어디든 가는 편이다. 한 동네에 모여 사는 우리 팀(배우 최재림, 작가 전수양)이 각자 바쁜 사람들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셋 모두 비는 시간이 꼭 나온다. 떠날 땐 함께 가지만 가서는 각자 알아서 논다. 돌아오는 날도 다르다.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하고, 게임만 하기도 하고, 종일 돌아다니기도 한다. 코로나 직전 미국에서 한 달 넘게 지낸 게 인상 깊었다. 무조건 쉬는 여행인데 특별히 움직인다면 바다 수영을 좋아한다. 이번엔 북해도에 가서 학을 보고 올 생각이다. 보호구역이 있다고 들었다.

여행 내공이 대단하겠다. 아직 안 가본 희망 여행지는? 남극에 가보고 싶다. 나는 환경파괴에 대해 굉장히 화가 나 있는 사람이다. 후배들과 모의한 적 있다. 돈을 많이 벌어 배를 사고 바다 쓰레기 주우러 다니자는 작당이었다. 아니면 탐험선을 구해서 아직 남아 있는 남극의 동물들을 보고 오자고도 했다. 동물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어머니들 모시고 아프리카 사파리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별히 ‘여기 살고 싶다’ 할 만한 나라는?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지도를 펼쳐놓고 보는 걸 좋아했다. 지구촌 곳곳의 지형과 기후, 인구 수, 동식물 분포 등이 머릿속에 다 있을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어디에 가서 살까 생각도 한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게 의미가 없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남극이든 시베리아든 어디에서도 했을 일이다.

특별히 싫어하는 나라는? 동물 학대하는 곳은 싫다. 자연을 망가뜨리는 국가, 인권의식 없는 사회도 피하고 싶다.

집에서 쉬는 날의 루틴은? 고양이들과 지낸다. 집이 깨끗하진 않지만 있을 건 다 제자리에 있다. 물건 정리하는 게 소일거리다. 안 쓰는 물건은 누굴 주거나 버린다. 정리가 안 돼 있으면 머리가 안 돌아간다. 시간이 많으면 요리하는 걸 즐긴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시간이 내겐 명상의 시간이다. 원래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아주 꼬맹이 때 혼자 케이크를 구웠던 기억이 있다. 언니들은 좋아하지도 않고 소질도 별로였는데,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게 그렇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일종의 창작 아닌가(웃음). 하루 종일 요리만 하는 날도 있다.

내세울 만한 베스트 쿠킹은? 웬만한 한국 요리는 다 할 줄 안다. 후배들이 원하는 건 립 바비큐나 미국식 파이와 쿠키 등이다. 배우들 연습실에 미국식 디저트를 만들어 가는 날도 있다. 집 안에서 제일 완벽한 곳이 주방이다(웃음). 장비발도 최고이고 뭔가 꽉 차 있지만 깨끗하다. 주방 말고 다른 방은 허름하다 싶을 정도다. 이사할 때 아저씨가 “이렇게 옷 없는 사람 처음 본다”고 했을 정도다.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도 슬럼프가 올 때도 있나? 옛날에는 있었던 것 같다. 1년에 한 3일 정도는 무지무지하게 힘들 때가 있었다. 이유 없이 디스프레스 되는 날이 오곤 했다. 일에 미친 듯이 매달려 시달린 것 아닌가 싶다. 다행히 증세가 없어진 지 10년 정도 됐다.

자신에게 있는 가장 좋은 습관이라면? 거짓말을 안 한다. 습관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그냥 나의 좋은 점. 거짓말을 하면 너무 티가 난다. 난 그걸 내 무기라고 생각하고 산다. 거짓말을 안 하니 머리 굴릴 일도 없고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다. 버릇이나 습관이라면… 안전이나 보안에 무척 신경 쓴다는 거? 혼자 사니까 그런 것 같다. 동네 옆집에 왜 불이 내내 켜져 있는지, 고양이가 왜 두 시간째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지에 오감의 촉이 발동한다. 360도로 주변을 늘 살피고 사는 것 같다(웃음). 창작하는 사람이라 예민해서 그럴 것일 수도 있다.

잘 고쳐지지 않는 안 좋은 습관은? 잘 모르고 별 기대가 없는 사람한테는 너무 신경을 안 쓴다. 하지만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한테는 기대가 높아 더 엄하게 대한다. 그러다가 사람이 떠난 경우들이 있다. 정말 아끼는 사람들은 결국 다 돌아오긴 했지만, 버럭 하는 습관이 좋다고 볼 수는 없다. 내가 그런다고 떠날 사람이면 어차피 끝내 있을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어쨌거나 내 신체 건강을 위해 버럭을 덜 했으면 좋겠다. 너무 힘들어…(웃음).

인생 살면서 사람이 꼭 해야 될 세 가지로 음악과 동물 키우기와 체육을 꼽은 걸 봤다. 두 가지는 이미 실천하고 있다. 체육으로는 뭘 하나? 버럭? 그런가? 그것도 배에 힘을 주어야 하니…(웃음). 원래 산에 엄청 다니는 사람이다. 바다 수영도 잘한다. 수영을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지칠 줄 모르고 계속한다. 지금은 덜하지만 한때는 수영 아니면 등산, 등산 아니면 수영이었다. 긴 거리를 헤엄치는 것도 아니다. 한 시간 이상 둥둥 떠 있다가 나오고 먹고 또 들어가고 또 먹고 나가고… 종일 물에서 그렇게 논다. 

요리 외에 취미나 잡기는? 퍼즐 맞추기가 오래된 취미고, 집에서 뭐든 고치는 거 좋아한다. 인테리어 감각이 대단히 있는 게 아니고 나 편하자고 막 고친다. 침대에 누워서 손이 닿도록 침대 옆 서랍장 손잡이를 하나 더 만든다든지…. 톱질하고 드릴 쓰는 게 어색하지 않다. 페인트칠도 재미있다. 목수였다면 진짜 잘했을 것 같다(웃음).

미니멀리스트에다 능률주의자다. 그런 것 같다. 미니멀리스트다. 작은 오두막에서 나무 열매나 따먹고 동물 사냥해 먹던 시절에 살았으면 잘 어울렸겠다. 아닌가(웃음)?

혼자 살림이니 보안 좋고 편리한 아파트 생활이 낫지 않을까? 자연과 가까운 단독주택이 좋기도 하지만 꼭 자연주의 삶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워낙 프라이빗한 생활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공동주택에 시선도 많고 신경 쓰이는 일이 많으니까. 벽 너머에 누가 살고 위아래엔 누가 있는 것도 불편하다. 집에 들고 나는 걸 여럿이 안다는 것도 편하지 않다. 도시 냄새도 싫어하는 편이다.

요즘엔 MBTI가 기본 프로필에도 들어간다. 애들(후배들) 때문에 해봤는데 INTJ다. 애들은 I가 아니라고 ENTJ라고 우기지만. I와 E 중간 어디쯤이겠지.

결혼 또는 연애에 대한 질문은 질리도록 받았겠다. 지금 타이밍엔 생각이 어떤가? 지금 타이밍에 맞게 압축해 답하면 이렇다. 첫째, 결혼이라는 시스템이 날이 갈수록 시대에 맞지 않으므로 생각이 없다. 둘째,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나 좋다. 셋째, 오늘날의 연애를 물으신다면 이미 충분히 했으므로 안 해도 된다. 넷째, 살면서 한 번도 외롭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일과 가족과 동물들과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사니 누가 더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귀찮을 것 같다. 지금, 누가 옆에 붙어 있으면 너무너무 싫지 않을까(웃음)?

박칼린은 서울 근교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에 산다. 유기묘들을 친구처럼 엄마처럼 돌보며 말마따나 외로울 틈 없이 지내고 있다. 자택 인터뷰를 예상했지만 동네 카페를 선택했다. 덕분에 상쾌한 오전 공기를 마시며 커피를 나눌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북적이기 시작한 손님들 중 사진 촬영과 사인을 요구하는 이들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아직 <남자의 자격>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옷을 얇게 입어 추운 탓인지, 주방에 잔뜩 쌓아놓았다는 요리 재료들이 눈에 밟혀서인지, 주차장으로 총총걸음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인상적. 절묘한 타이밍에 절묘한 단어가 떠올랐다. 
‘Trot’. 
‘빠르게 걷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다. 걷기보다는 빠르지만 달리기보다는 느린 걸음. 트로트 오디션 심사를 하고 있는 그의 인생이 트로트라는 생각이 든다. 창작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흥겨운 걸음, 박칼린의 Trot. 부러운 일이다.   

 


장소제공 피아나(P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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