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인터뷰] 사진작가로 첫 개인전, 부산에서 만난 박찬욱 감독

국제갤러리 부산 '너의 표정(Your Faces)' 전시

  • 기자명 임언영 기자
  • 입력 2021.11.02 10:12
  • 수정 2021.11.02 10:30
  • 댓글 0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이 아닌 카메라를 든 것은 제법 오래된 일이다. 꽤나 진지하게 말이다. 사진집을 통해, 또 서울의 한 극장에서 조금씩 선보였던 그의 수준급 사진 작품들을 ‘전시’라는 이름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의 첫 개인전 <너의 표정(Your Faces)>이 열리고 있는 국제갤러리 부산을 찾아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환한 가을 햇살이 들어오는 국제갤러리 부산점. 박찬욱 감독의 사진 작품 30여 점이 각자의 표정을 짓고 자리하고 있다. 10월 1일 전시 개관에 맞춰 이루어진 만남의 자리. 박찬욱 감독이 담백하지만 정성스럽게 그리고 따뜻하게 본인의 작품을 소개했다.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을 한 적은 없어요. 비행기도 싫고 자동차도 싫어하는데,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져서 할 수 없이 많은 곳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게 호텔 생활은 힘들고 지치는 일이라, 사진 작업은 일종의 하기 싫은 일을 즐기려는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해외 촬영을 하면 하루나 이틀 정도 개인 일정을 빼달라고 요청해서 시간을 갖는 편입니다.” 

‘너의 이름’이라는 이름으로 선택된 작품들은 발리에서 마주친 과일, 크로아티아의 하늘, 모로코 호텔의 새벽 산책길, 스페인 시골의 돌 벤치, 런던의 클럽 등 시간과 공간, 소재가 굉장히 방대하고 흥미롭다. 집 근처를 산책하다 담은 파주의 농촌 풍경도 있고, 길에서 만난 고양이도 있다. 얼핏 이들 사이에 무슨 연결성이 있나 싶지만, 그의 영화 작품들이 그렇듯 사진들 역시 박찬욱의 질감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그 어렴풋한 느낌을 단어로 표현하자면 ‘생경함’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작가노트에서 그는 “어쩌면 풍경이고 정물이고 간에 모든 사물을 초상사진 찍는 기분으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피사체가 되신 그분의 신분과 성격, 삶의 역정, 지금의 기분과 표정을 담아내는 것이다. 내가 세상 만물과 나누는 대화의 방식이 이러하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그렇게 너무나 일상적이고 익숙한 사물들에게서 생경한 표정을 발견했다.  

사진 하나하나의 질감이 인상적이다. 여기 걸린 작품들은 언제 촬영한 건가. <스토커> 작업하던 시절에 촬영한 것도 있으니 2013년부터 최근까지의 작품이다. 이번에 전시와 함께 같은 제목의 사진집도 출간되는데, 거기에는 더 오래된 작품들도 들어 있다. 모두 디지털 사진이라서 2000년대 이후 작품들이라는 공통점이 있겠다.  

<너의 표정>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보시는 분들 개인의, 사적인 감정을 읽혀드리고 싶었다. 그런 감정의 조우를 제안하기 위해서 초대하는 의미의 제목을 붙였다. 어떤 관람자가 어떤 작품을 앞에 두고 섰을 때, 그 사진 속 피사체와 일대일로 대면하면서 ‘너의 생각은 이런 것이겠구나’, ‘너의 감정은 이것이 아닐까’ 하고 각자 생각하고 상상해보시라는, 그런 초대의 의미다. 

한편으로 굉장히 역설적인 제목이다. 작품에는 표정을 짓는 인물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영화에서 담으니까. 인물을 만들어내거나 그들(배우)의 평소 감정을 촬영해서인지 사진에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다. 인물이 들어와서 만들어내는 감정은 다른 종류다. 무생물이 가지고 있는, 무생물에서 찾아낼 수 있는 생명력이고 내가 만나서 생기는 내 마음속의 감정이다. 그리고 무표정도 표정이니까. 기쁨과 슬픔 같은 감정을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아직은 없다.

대부분의 작품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내가 영화 작업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가령 긴 대사가 있는 어떤 컷이 있으면, 배우가 긴 대사를 시작하기 직전의 표정을 편집에서 자르기가 쉽지 않다. 때때로 그 부분을 자르지 않고 좀 더 일찍부터 보기 시작하면 독특한 영화의 리듬이 생길 때가 있다. 배우가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 혼자 준비하거나, 생각하거나, 감정을 끌어올리는 그 순간의 표정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배우가 자신도 편집해서 잘려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들어가서 공개됐을 때 ‘나에게 저런 표정이 있었나’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드라마가 펼쳐지기 직전 상태의 고요한 모습이 나에게는 영화에서처럼 사진에서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사진에서는 상상력이 어떻게 작용하나. 가령 런던의 클럽을 촬영한 작품이 있다고 치면, 의자와 테이블과 뒤에 반짝거리는 배경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파티가 시작되거나 무대의 막이 오른다거나, 그런 상태를 기다리는 순간 동료들끼리 긴장하거나 위로해주고 달래주는 속삭임이 있지 않을까라는, 그런 류의 상상을 말한다. 

앞서 작품을 두고 질감이 인상적이라는 말을 남겼지만, 또한 굉장히 아름답기도 하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누군가는 방수포를 접어놓은 것 하나도 아름답게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겐 아름답지 않은 물건에서 찾아내는 아름다움이다. 나는 이것이 흥미주의라기보다는 배경, 존중,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아가씨>처럼 하나하나 디자인되고, 정성껏 꾸며지고, 조명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아름다움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반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가씨>처럼 추악한 세계를 묘사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것처럼, 그런 면에서 연관되는 것이 있다. 

그래서 박찬욱스러우면서 박찬욱스럽지 않기도 하다. 오늘 전시장에서 보여드린 작품들에 한정되어서 말씀드리면, 이 작품을 보고 나의 영화를 떠올리는 분은 없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담아 사진집 <아가씨 가까이>에서 보여드렸지만, 그건 영화와 관련된 것이다. 물론 거기서도 인물 사진은 없다. 

영화와 사진에서 박찬욱의 아이덴티티는 동일하지 않은 것인가. 완전히 다른 작업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분야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겠지만, 거기서 거기다. 나의 사진도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창작자의 한계는 있지만 매체 자체의 속성 때문에 작업의 차이는 있을 것이라고 본다. 
 

# 영화 vs. 사진 

카메라가 눈(렌즈) 앞의 것을 사각 프레임 안에 담아낸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영상과 사진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혹자는 그 잘나가는 영화감독 박찬욱이 왜 굳이 사진에까지 뛰어드느냐고 물음표를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많은 영화 작업을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쉼 없이 사진 작업을 할 수 있었느냐고도 묻는다. 그는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본인의 직업이라면 사진은 일종의 돌파구였다고 말했다. 

영화와 사진, 감독과 사진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차이가 있던가. 영화는 계속 흘러가는 시간이다. 영화도 사각형의 프레임이 정해져 있다. 카메라가 정지할 때도 있지만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사진은 시각적으로 아주 한순간이고 정해진 프레임밖에 없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영화보다 큰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을 늘 생각한다. 영화는 상영되는 것과 관객이 앉아 있는 것이 동시에 벌어진다. 반면 전시는 관객 없이 작품만 있다. 한 바퀴 휙 둘러보는 것은 갤러리에서의 특별한 경험이다. 영화는 창작자가 하나도 남지 않는 꽉 찬 공간이라면 갤러리는 꽉 차면 재미없다. 적당히 띄엄띄엄 일수록 좋다. 

작업 환경에서도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영화는 여럿이 함께한다는 점이 사람을 행복하게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한없이 힘들다. 영화는 여러 사람의 의사가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정말 그런 성격의 인간이 아니다. 여러 사람을 끌고 가는 리더십이 강한 사람도 아니고, 내성적이고 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세계적인 감독 박찬욱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의아하다. 여럿이 하는 일에 항상 어려움을 느낀다. 내가 늘 작업하는 사람들하고만 하는 것도 그 이유다. 새로운 사람과 일하는 것이 어렵다. 늘 같이 일하는 사람과 10년째 해도 어렵다.(웃음) 의견 차이가 있고,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내 실수로 상대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다. 모여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 게다가 영화는 몇 십억씩 큰돈(제작비)이 들어가기도 한다. 무서운 일이다.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반면 사진은 홀가분하고 자유롭다. 영화 일이 바쁘고 힘들어도 사진을 찍는 카메라를 놓지 못하는 이유다. 사진은 죽이 됐든 밥이 됐든 혼자 책임지는 일이다. 실패해도 내 시간만 날리면 되는 일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다. 사진만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나는 즐겁게 작업하고 있는 것 같다. 

주로 어떤 마음 또는 환경일 때 촬영을 하나. 다른 (영화)감독들의 경우는 잘 모르겠다. 나는 준비를 많이 하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잘 실행하지 않는다. 각본을 쓸 때나 어떤 단계에서도 처음 떠오른 생각이 가장 직관적이고 좋은 생각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반대다. 처음 떠오른 생각은 대개 유치하거나 감상적이거나 상투적이다. 영화를 만들 때는 직관이 중요하지 않다. 심사숙고하고 계산하고 철학적이다. 사진 작업은 그 반대인 것 같다. 사진은 ‘무언가를 어디에서 건져야지’, ‘어디 가서 조명을 설치해서 연출해야지’가 아니다. 그냥 카메라를 메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큰 소리로 들으면서 미친 듯이 걸어 다닌다. 두리번거리면서 걸어가다가 딱 마주치는 찰나의 만남이 있다. 그때 아무 생각 없이 찍는다. 

그렇게 딱 한 번 찍나. 어느 각도가 흥미로울지 생각해서 찍기는 하지만, 대개는 하나의 피사체로 두세 번 찍는다. 물론 찍으면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감성은 있다. ‘무시무시한데?’, ‘웃긴데?’ 이런 생각들이 있지만 그런 감성이라고 할 만한 것은 주로 촬영 후 태블릿에 옮겨서 꼼꼼하게 볼 때 든다. 어떤 사진을 지워버릴지 선별할 때 오는 느낌이지, 찍는 순간에는 본능적이다.  

사진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전문 사진작가는 아니고 아마추어셨다.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시는 분이다. 어렸을 때 가족들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다. 그림을 그리시고, 사진을 인화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거기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아버지의 카메라를 가지고 놀았고, 처음 찍은 사진도 아버지의 카메라였으니 영향이 없진 않았겠다. 

평소 감정이나 추억도 영상이 아닌 사진으로 기록하나? 나는 영화를 찍을 때 세계 최고의 미술감독과 일한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움직이는 영상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눈이 높다. 내가 캠코더로 아무렇게나 찍으면 안 된다.(웃음) 아마 다른 영화 하시는 분들도 이해하실 거다. 아이가 클 때도, 디지털로 사진은 많이 찍었지만 영상은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다. 

사진작가로 진행한 인터뷰인데 영화 이야기도 끊임이 없다. 비교해서 이야기하는 게 나에게는 쉬워서 그렇다.(웃음)
 


사진 국제갤러리

저작권자 © 여성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Editor's Pick
최신기사
포토뉴스
추천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