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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최초 칸 남우주연상, 송강호

#브로커 #칸영화제 #칸남우주연상

  • 기자명 임언영 기자
  • 입력 2022.07.02 04:35
  • 댓글 0
  • 사진(제공) : 써브라임
송강호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인터뷰 며칠 전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는데 아직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감기몸살은 어쩌면 몸이 보내는 축하 신호가 아니었을까. 칼칼한 목소리에 칸의 여운이 묻어 있었다.

송강호는 칸 영화제와 인연이 많았다. 한국 영화의 역사적인 순간에 늘 그가 있었다. 2007년 <밀양>으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박쥐>로 박찬욱 감독이 심사위원상을, <기생충>으로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때 송강호는 주연 배우로서 그 현장을 지켰다. 송강호가 출연한 영화가 칸에 가면 상을 탄다고 해서 ‘수상 요정’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정작 본인은 상과 인연이 없던 송강호가 올해 드디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은 한국 최초, 아시아 배우로는 세 번째의 기록이다. 송강호 개인뿐 아니라 한국 영화사의 쾌거를 기록한 작품은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다. 송강호는 오래된 세탁소를 운영하는 자칭 ‘선의의 브로커’ 상현 역을 연기했다. <의형제>에 나란히 출연했던 강동원, 네 작품을 함께한 배두나, 첫 상업영화에 도전하는 이지은 등과 연기 호흡을 맞춘 작품에서, 송강호는 선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며 존재감을 지켰다. 

 

# 수상 요정에서 주인공으로 한국 최초, 아시아 세 번째 기록  
칸 영화제에 함께 참여한 이지은은 여유롭게 칸을 즐기는 송강호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만큼 송강호의 모습에서는 유난히 여유가 느껴졌다. 그는 수상과 상관없이 영화제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연륜이 생긴 것 같다면서, 이번 수상이 영광이지만 전과 후가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고 힘줘 말했다. 

축하합니다. 이번에는 본인이 직접 수상해서 ‘수상 요정’의 전통을 잇게 됐네요. 하하하, 그러게요. 어떻게 이렇게 계속 상을 받게 되네요.(웃음) 너무 좋은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큰 상을 받아서 너무 행복하고, 너무너무 운이 좋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너무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기쁘다’ 이런 감정보다는 최고의 영화제에서 이런 순간을, 우리 <브로커> 팀과 나란히 앉아서 맞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잊지 못할 순간이었어요. 다른 작품으로 참가했지만 박찬욱 감독님, 박해일 씨도 계셨고 두루두루 너무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트로피와 상장은 어떻게 보관하고 있나요. 집에 잘 있습니다.(웃음) 보관은 잘 하고 있지만 진열을 해놓지는 않아요. 가끔씩 들여다본다든지 그러지는 않습니다. 오가면서 우연히 보면 왠지 감사하고 고마운 생각이 들긴 합니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던가요.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빈말이 아니라 영화배우로서 작품에 임하는 것이 영화제 출품이나 상을 받기 위해서는 아니에요. 그런다고 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화제에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그걸 위해서 연기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목표가 될 수 없어요. 영화라는 작업은 관객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에요. 좋은 작품을 통해 많은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입니다. 배우로서 이 수상이 영광이고 기쁜 일이지만 전과 후가 달라질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칸 영화제에 참석한 송강호의 모습이 처음이 아니라 익숙하기도 한데요. 이번에는 유난히 해맑게 즐거워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뭔가 달라진 포인트가 있나요? 정말 이제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이번에는 후배들도 같이 가서, 뭔가 든든한 선배가 앞서면 후배들이 편하게 따라오지 않을까라는 심리도 작동한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는 그냥 편안하게, 좀 긴장될 수 있으니까 즐기라는 조언을 해줬어요. 

가족들도 함께해 더 의미가 컸을 것 같습니다. 아들이 SNS에 자랑스럽다는 말도 남겼던데, 수상 이후 가족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누구나 중요한 자리에서 하는 중요한 이야기는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에 대한 표현 아닐까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귀한 자리에서, 가족들 앞에서 그런 수상 소감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은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이 이번에 (칸 영화제에) 처음 갔어요. 딸은 어릴 때 몇 번 갔었는데, 아들은 축구선수를 하다가 군대에 가서 한 번도 기회가 없었어요. 덕분에 이번에는 네 가족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어서 더 의미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 부산 첫 만남으로 시작된 <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덕장(德將)’

송강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처음 만난 건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이었다. <밀양>으로 칸에 다녀온 해였다. 호텔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 게 처음인데, 그 만남이 송강호에게는 기억에 남았다. <브로커>는 6~7년 전 부산에서 정식으로 미팅 후 작업이 시작됐다. 그때는 <브로커>가 아닌 <요람>이라는 제목이었다. 

고레에다 감독과 작업은 어땠나요. 15년 전 처음 뵀을 때부터 이분이 갖고 있는 심성이 인상적이었어요. 첫 번째로 든 생각이 인격적인 깊이와 어마어마한 철학으로 무장된 덕장이라는 거였어요. 현장도 정말 예상 그대로였어요.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물어보면서 소통하시는 모습이 굉장히 놀라웠어요. 어떤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시더라고요. 친구처럼 즐겁고 행복하게 작업한 현장이었습니다. 

일본 감독이 한국 제작진과 만든 작품이라 어려운 부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고레에다 감독은 송강호 배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극찬했어요. 감독님께서 자꾸 도움을 받았다고 말씀하셔서 민망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말의 어감이나 미묘한 차이, 이런 부분만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어요. 사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제가 나오는 장면만 말씀을 드렸는데 감독님께서 제 도움을 받았다고 크게 말씀해주셔서 민망합니다. 

감독뿐 아니라 동료 배우들도 송강호 선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던데요. 거꾸로 함께한 후배들은 본인에게 어떤 존재가 됐는지 궁금합니다. 상대 배우를 100% 존중하지 않으면 어떤 장면에서의 앙상블이나 배우끼리의 교감이 이루어질 수 없어요. 저도 지켜보고 존중하면서 연기를 하는 입장입니다. 이지은 씨는 깜짝 놀랐어요. 논리정연하게 말씀도 잘하시고, 나이에 비해 삶의 깊이나 시선들이 예사롭지 않은, 알면 알수록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주영 씨의 매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진다는 느낌이에요. 배우로서 장점과 잠재력이 누구보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두나 씨와는 네 번째 만났어요. 베테랑이 갖고 있는 그 노련함은 늘 깜짝 놀라지만, 이번에 또 깜짝 놀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셨어요. 강동원은 제 막내 동생 같아요. 그 정도로 소탈하고 사심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형제 같은 느낌입니다. 진심으로 이야기했지만 ‘길 잃은 사슴 눈망울’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연기 열정과 태도까지 사랑하는 배우입니다. 

송강호에게 <브로커>는 어떤 작품으로 남게 될까요. ‘일본 감독님, 한국 감독님’ 같은 국적의 개념보다는 존경하고 좋아하는 감독님, 배우들과 같이 잊지 못할 작품을 관객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잊지 못할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관객이 얼마나 들었느냐의 개념보다는 강동원, 이지은, 이주영, 배두나를 비롯한 수많은 보석과 같은 배우들, 최고의 스태프들과 맺은 인연의 가치가 배우로서의 삶을 떠나 평생 살아가면서 더 클 수 있어요. 위대한 예술가들과 공동으로 협업했던 것이 저에게는 큰 의미로 남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배우” 
33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더 잘해라” 말할 것 

송강호의 무수한 필모그래피 중 “배신이야 배신”을 외치던 <넘버 3>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다. 덕분에 이번 수상을 두고 “넘버 3의 송강호가 넘버 1이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를 두고 송강호는 “단 한 번도 넘버 1이 됐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33년 동안 꾸준히 배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송강호가 한국 최고의 배우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송강호라는 배우에 대한 대중의 큰 기대가 간혹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온 적은 없나요. 저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똑같죠. 늘 새로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있는데, 그 기대가 얼마만큼 팬들에게 전달될까 하는 생각들은 큰 부담이에요. 극복의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스스로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요. ‘더 열심히 잘해야지’라는 단순한 생각도 있겠지만, 배우라는 직업이 단거리 주자처럼 짧게 결과를 내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요. 그런 것들이 나름 부담을 관통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고레에다 감독뿐 아니라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김지운 등 한국 최고의 감독들과 모두 작업을 하셨습니다.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들이 본인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질문을 가끔씩 받아서 생각을 해봤어요. 딱히 떠오르지 않는데 하나 떠오른다면 잘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이니까 제일 쉽게 찾아주시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영화라는 것이 우리의 삶과 이웃과 자신을 표현하고 연구하는 직업이라면, 저처럼 평범하게 생긴 사람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외에는 해답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면,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배우예요. 그런 훌륭한 분들과 평생 동지로서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배우로서 큰 행운이고 축복이에요.

작품을 선택하는 방향성이 궁금합니다. 제가 작품을 선택할 때 어떤 기준이 있는 건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 기준은 새로움인 것 같아요. 소재의 새로움이라기보다는 뭔가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형식이든 내용이든 연기든, 신선한 새로움을 전해줄 수 있다면 선택합니다. <거미집>이라는 작품을 며칠 전에 공식적으로 크랭크업 했는데, 그 영화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뭔가 도전하고 싶고 새로움을 창조하고 싶고, 이게 가장 큰 방향성인 것 같아요. 

혹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때의 본인에게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나요? 글쎄요, 제가 1989년부터 연기를 시작한 것 같은데, 그때 막 군대 제대를 했어요. 33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저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더 잘해라!” 하하하하, 그 말밖에 없네요. 

왜 “더 잘해라”입니까. 연기라는 것이, 어떤 작품이든 완벽하게 마음에 들진 못하잖아요.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늘 어떤 작품이든, 제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가지지 않게끔 연극 시작하던 그때부터 더 잘해서 좋은 배우로 스타트하라는 바람에서 떠올린 말이에요. 

여름 극장가에 <브로커>와 <비상선언> 굵직한 두 작품에 등장하는데요. 큰 상을 받아서 더 관심이 높습니다. 팬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요. 수상 소감 때 제가 마지막에 했던 이야기가 대한민국의 영화 팬들에게 영광을 바친다는 말이었어요. 늘 예의주시하고 격려해주시고 질책도 주셨던 한국 영화 팬 여러분께 영광과 기쁨을 다 바칩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칸 수상 이전이든 이후든 변함없는 송강호의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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