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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국민가수’ 우승 박창근, 대중이 그를 선택한 이유

#내일은국민가수 #우승

  • 기자명 이근하 기자
  • 입력 2022.01.24 10:46
  • 수정 2022.01.26 10:58
  • 댓글 0
  • 사진(제공) : 안규림
박창근은 4분 남짓한 노래 한 곡에 인생을 담는다.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서 노년이 되는 세월을 노래한다. 울컥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노래하기도 여러 번이다. 그런 그의 진심이 ‘국민’의 마음을 관통했다. 박창근은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 초대 우승자가 됐다. 

나이도 장르도 국적도 성별도 제한이 없었다. 노래를 사랑하고 무대를 갈망하는 누구든 참가할 수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 오디션  <내일은 국민가수>(이하 ‘국민가수’). 3개월 대장정의 결말은 ‘쉰 살 포크 가수 박창근의 우승’이었다. 

“제가 이 나이 먹도록 참 변변치 않아요. 자존심 하나로 음악 하나로 살면서 주변을 힘들게 했어요. 하지만 엄마는 힘들지 않아 보였어요. 늘 응원해주시는 모습에 방송 첫 회 딱 한 번 나가서 많은 국민이 보시는 큰 방송으로 생일 선물을 해드리고 싶었는데 너무 많이 온 것 같아요.”
1999년 정식 데뷔해 포크 외길을 걸었다. 이번 오디션에서는 무명부 소속이었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김광석 노래를 잘 부르기로 유명한 가수다. 2012년부터 3년간 고 김광석 노래로 만든 소극장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주연을 맡았고, 대구에서 열린 ‘김광석 노래 다시 부르기 대회’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박창근은 ‘국민가수’ 첫 회 무대에서 “이런 모습으로 이런 노래를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런 모습과 이런 노래’는 결코 흔한 장면은 아니었다. 논리적이지 못한 감정들로 가득 차 글로 다 형용하기 어려운 신비한 사람, 그런 그가 표현하는 음악들. 박창근은 유난히 청명한 하늘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눈물이 차오르는 기분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의 노래를 감상하며 눈물을 흘린 심사위원, 관객들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박창근 씨 무대를 보다가 우는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제 안에 쌓여 있는 감정이 전해졌나 봐요. 노래를 하면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것들에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감정은 정해둘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사랑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이별한 연인’, ‘사랑하는 사람’만 떠오르는 게 아닌 것처럼 순간순간 생기는 감정들이 있어요. 아픈 노래를 부를 때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제가 아팠던 기억도 떠오르고…. 뭉뚱그려보면 결국 인연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이긴 해요.

개인적으로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곡은 창근 씨 경연무대로 처음 알게 됐는데요. ‘어쩌면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 만나면 행복하여도/ 헤어지면 다시 혼자 남은 시간이/ 못 견디게 가슴 저리네’ 이 평범한 가사가 너무 와 닿더라고요. 경연곡을 선곡한 기준이 있나요? 실은 포크를 되게 좋아해서 시작한 건 아니고 금전적으로 부족하니까 선택한 장르였어요. 기타나 하모니카만 있어도 무대가 채워지잖아요. 근데 포크를 하면 할수록 이야기를 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게 매력이자 장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제 정서와 잘 맞기도 하고요.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찾았던 것 같아요. 

‘국민가수’는 심사위원 점수도 중요했지만 사실상 대중 투표로 승패를 가르는 오디션이었어요. 최종 결승 무대가 심사위원 평가로는 4위였는데 실시간 문자 투표로 우승까지 했으니까요. 대중은 왜 ‘박창근’을 뽑았을까요? 우선 제게 투표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그분들이 결승 무대만 보고 표를 주신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그 정도 점수를 받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제 홈페이지에 와서 욕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웃음) 앞으로 제가 표현하려는 노래들에 대한 궁금증, 보듬어주는 노래를 해줄 것 같다는 기대감. 그런 의미에서 저한테 투표해주신 것 같아요. 
 

자작곡 ‘엄마’로 결승을 치르는 건 반칙 아닌가요.(웃음) 그런 멜로디에 엄마라는 단어가 들어가는데 어떻게 눈물이 안 나겠어요. 경연 곡으로는 진짜 무모했다고 생각해요. 가사가 짧고 들어가는 단어도 많지 않고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였으니까요. 2절 가사를 보강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 노래 연습보다 가사 수정에 집중해서 이것저것 붙여봤는데 아니더라고요. 숙성되지 않은 가사는 이질감만 들었어요. 

추가된 가사로 불렀다면 진짜 전략처럼 비쳤을지도 몰라요. 와, 정확해요. 진짜 맞는 이야기예요.

‘내가 주변을 힘들게 만들었지만 엄마는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는 수상소감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머니는 정말 힘들지 않았을까요? 제가 예전부터 “엄마는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있을 거야”라고 말해도 엄마는 아니라고만 했어요. 스트레스도 안 받는다고. 그래놓곤 위장병을 달고 사세요. 몇 년 전에 가족들이랑 과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모든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했었는데 엄마는 기억을 못 하시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책도 찾아보고 정신의학 전문가에게 여쭤봤더니, 우리 뇌가 너무 싫었던 기억은 스스로 지우는 작용을 한대요. 그건 엄마는 그때 그 시절 제가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괴로웠다는 말이잖아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엄마가 기억을 지워버려서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해요. 

어릴 적 가정형편이 어려웠나요? 집안이 너무 힘들어서 저는 외가로 많이 보내졌어요. 교육이라는 것도 없었고요. 아버지가 공장을 시작하신 초반 딱 2년 정도만 괜찮았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맞춤옷을 입고 다녔을 정도였다가 2학년 때부터 거의 외갓집에서 자랐어요. 

창근 씨의 행복을 비는 사람이 많아진 만큼 환경도 더 좋아질 거예요. 어느 네티즌은 창근 씨 노래하는 영상에 ‘감미롭고 사랑이 넘치는 노래에요. 그렇게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세요’라는 댓글까지 적었던데요? 흔들리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댓글을 읽고 위안을 받아요. ‘이제는 네가 좀 행복해라’, ‘건강만 해달라’ 등등. 그보다 더 좋은 말이 뭐가 있겠어요. 간혹 나쁜 댓글도 보이지만 흔히 있을 수 있는 내용이라 크게 동요하지 않아요. 

몇몇 무대에서는 허공을 보며 노래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거예요? 저는 무대 밖이 오히려 불편해요. 그래서 앙코르도 그렇게 많이 했었나 봐요. 한 시간 반짜리 공연이면 앙코르도 한 시간 반을 했거든요. 주변 사람들은 “살짝 아쉬움을 남겨야 하는데 너무 많이 한다”면서 싫어했어요.(웃음) 노래하면서 보내는 4~5분이 저한테는 인생이에요. 노래를 부르는 내내 인생을 사는 거지요. 태어나고 자라고 후주 부분에서 절정을 맞다가 마무리 즈음에는 노년처럼 서서히 힘을 빼면서 끝내잖아요. 노래는 실재하는 인생 같아요. 그래서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푹 빠져서 무대 위를 즐기게 되는 것 같아요. 무대 밖에서는 굉장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기도 하지만 무엇인가 불편해요. 제가 진짜가 아닌 거 같은 느낌. 겉도는 이야기를 하는 순간들도 많고요.

좋게 말하면 고고하고 나쁘게 말하면 답답한 사람?(웃음) 너무 순수한 사람인가 싶기도 해요. 아휴, 너무 좋은 쪽으로 생각해주셨어요. 저 돈 좋아해요. 근데 그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아요. 돈이 있으면 좋지만 그걸 위해 살기엔 너무 괴로워요. 

답변을 듣고 나니 2019년 지역방송국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면이 떠오르네요. 함께 출연한 후배가 “창근이 형은 의식 있는 가수라서 기회를 잃었다”고 했어요. 그 ‘의식’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운동권적인 의미가 아니에요. 이것이 옳으니 무조건 관철시켜야 하고 투쟁해야 하는 그런 것만이 아니에요.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지 고민하는 과정들. 저는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을 심하게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제 자신에 대한 걱정이 끝없어요. 김광석이라는 인물이 가진 의식과 비슷한 점도 있어요. 김광석 님과 직접 이야기 나눈 적은 없지만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분은 사회에 대한 측은지심이 많았어요. 민중가요라는 게 뭔가 막 쟁취해야 하고 끓어오르는 느낌이 있는 반면에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쓰다듬기도 하고 위로도 하잖아요. 저는 ‘싸워서 뒤엎고 공격하자’ 이런 식의 노래는 좋아하지 않아요.  
 

‘국민가수’ 경연 중에 과거 이력 논란(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 등 진보 진영 집회에 참가한 그가 TV조선이 주최하는 오디션에 참가한 사실이 모순적이라는 의견이 있었다)이 있었어요. 그때 심경은 어땠어요? 되게 많이 힘들었어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갔었죠. 그곳에는 제가 생각하는 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도 있고요. 물론 모두에게 환영받진 못했어요. 투쟁가를 부르는 친한 형님이 있어도 사람이 친한 것과 생각, 철학, 가치관은 다르잖아요. 그렇다고 제 이야기가 옳다고 말씀드리는 게 아니에요. 저 역시 편협한 부분이 있겠지만, 싫어했던 것들도 자꾸 접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결과적으로 박창근 씨는 우승자가 됐고 많은 사람들이 아는 가수가 됐어요. 더 많이 들려주고 싶은, 추천하고 싶은 ‘나의 곡’은요? 아휴, 그게 한두 곡만 꼽을 수 있겠어요? 제가 그거까지 겸손한 줄 아세요?(웃음) 한 곡을 꼽는 건 진짜 어려운데… 앨범으로 따지면 디지털 싱글은 다 좋고요.(웃음) 3집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거 만들 때 제 일상이 여러 가지 면에서 너무 괴로운 시기였어요. 뜻하지 않게 벌어지는 일들. 다 뒤로하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었어요. 그 앨범에 ‘미친밤을 걷네’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어느 날 귀가하다 갑자기 발길이 안 떨어지는 거예요. 내 집이 집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몰려오면서, 사방을 둘러봐도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고. 갑자기 너무 이상한 충격이 몰려와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무작정 걷기만 했었어요. 그때 만든 곡이에요. 

우승을 했다고 당장 큰돈을 벌게 되는 건 아닐 테지만, 창근 씨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시작됐어요. 좀 전에 말한 것과 같이 갑작스러운 감정이 덜 느껴질 수도 있고요. 그런 면에서 음악에 대한 신념도 달라질까요? 어떤 선배님이 결혼하고 행복해졌더니 노래가 안 써진대요. 저는 사서 고생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안락한 걸 못 즐겨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오해 아닌 오해도 생겼던 거고 원망도 하고. 만약 지금보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면 악기를 더 놓을 수 있어서 좋은 것뿐, 등이 따뜻하고 배가 부른 거랑은 상관없을 거 같아요. 어릴 땐 무대에서 노래하는 자체로 행복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꼈거든요. 이제는 제 노래를 좋게 들었다는 분들, 몸이 아픈데 창근 씨 노래를 듣고 힘이 났다는 분들이 계셔서 행복해요. 여전히 제 정서는 뭔가 불안하고 뭔가에 쫓긴다는 점에선 행복하지 않지만, 제 노래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을 보는 순간순간 행복한 걸로 만족합니다.(웃음)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박창근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촬영 초반에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위해 노래를 요청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박창근이 노래를 계속 해도 되느냐며 기타를 만졌다. ‘다시 사랑한다면’을 짧게 노래하다가 눈물이 맺혔다.

‘이젠 알아요/ 너무 깊은 사랑은/ 외려 슬픈 마지막을 가져온다는 걸/ 그대여 빌게요/ 다음번에 사랑은/ 우리 같지 않길 부디 내 아픔이 없이’ 그 순간 그가 어떤 상념에 잠겼는지는 모른다. 그가 겪었을 삶의 애환을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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