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보호무역주의

  • 기자명 유기선
  • 입력 2020.07.13 17:46
  • 댓글 0

“미국의 미래는 상공업에 있다.”

1791년 말에 해밀턴이 의회에 제출한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the Subject of Manufactures)』의 핵심 내용이다. 그의 보고서는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영국의 자신감이 미국 제조업을 영원히 도태시킬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나왔다. 당시 영국은 약 200년간 유지해오던 항해조례(영국 무역을 규제한 규정)를 폐지하고 수입 공산품에 대한 관세율을 크게 낮춰 자유무역을 선도했다.

 

해밀턴은 상공업 육성을 위해 국가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수입 공산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매겨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유치산업보호(Infant Industry Argument)이다.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산업을 경쟁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해서 육성시키자는 논리였다. 당시 산업 발달이 늦었던 미국으로서는 외국과의 경쟁에 필요한 조치로 보였다. 독립 직후의 미국은 농업이 경제의 중심이었다. 미국의 수출품 대부분은 가공하지 않은 원재료였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은 공업제품이었다. 미국이 원재료를 수출하면, 유럽은 미국에서 수입한 원재료에 부가가치를 붙여서 완성된 제품을 미국에 되팔았다. 해밀턴이 보기에 이런 구조는 이익을 남에게 넘겨주는 꼴이며,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에서 농업 중심의 국가는 국가 방위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거나 스스로 제조할 수 없는 위험에 끊임없이 노출된다고 보았다. 해밀턴은 농업만 하는 국가보다 농업과 상업, 공업을 모두 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밀턴은 영국의 산업혁명 열기가 미국에서도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 문제는 숙련된 기술자의 부족이었다. 그는 기계를 잘 다루는 장인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이고자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중 하나가 영국인 새뮤얼 슬레이터(Samuel Slater 리처드 아크라이트가 만든 수력방적기를 사용하는 공장에서 교육받은 사람이었다)였다. 그는 큰돈을 벌기 위한 열망 하나로 머릿속에 도면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방적기계를 조립하고 가동했다. 미국의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방적 공장에서 생산된 면은 비단이나 양털보다 가격이 저렴했을 뿐만 아니라, 세탁을 자주 해도 탈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내구성이 좋았다. 실용적인 면은 점차 미국 시장을 잠식했고 슬레이터의 공장은 미국 공업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미국의 제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은 그의 공장을 방문해서 ‘미국 공업의 아버지’라고 치켜세웠을 정도였다. 해밀턴은 제조업 바람이 미국 대륙에 번지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수입품에 관세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무조건적인 관세 인상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미정부의 수입(수입품의 약 70%는 영국에서 건너왔다) 대부분은 수입품에 붙은 관세에서 발생했는데, 무작정 관세를 올리면 연방정부의 세수가 줄어들 수 있었다.

 

끝난 이후에도 미국의 관세율은 대폭 상향 조정되었다. 1816년에는 새로운 관세법에 따라 평균적으로 30%가 넘는 관세가 부과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유치산업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고율의 관세를 유지하며 공업을 착실하게 키워나갔다.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는 “자국보다 더 발달된 나라가 있다면, 보호관세를 통해 뒤처진 문명을 끌어올려야 한다”라고 했다. 보호관세는 뒤처진 문명을 동등한 입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이다. 그는 산업이 충분히 성숙한 뒤에 자유무역 무대에 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즉, 자유무역은 비슷한 수준의 산업적 발전을 이룬 국가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각국은 자유무역을 이뤄내기 전까지 보호무역 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리스트는 “선진국이 후진국에게 자유무역을 권하는 것은 뒷사람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차버리는 것과 같다”(‘정치경제학의 국민적 체계’(The National System of Political Economy), 1841년)라고 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그간 비축했던 힘을 어김없이 보여주었다. 관세와 보조금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공업국가의 지위에 오른 다음에 경쟁력을 확인한 미국은 자유무역으로 돌아섰다. 준비되지 않은 국가들을 상대로 자유무역을 통해 더욱 부자가 된 것이다.

 

애초에 미국은 자유시장이 아닌 보호무역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한 국가였다. 이제 미국은 자유무역을 천명하고 개발도상국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한다. 보호무역이나 정부 보조금 지원정책을 시행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GATT(관세, 무역협정)나 WTO(세계무역기구) 설립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자유무역국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뿌리는 보호무역주의이다. 대공황 시절인 1930년에는 후버 행정부가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해 세계적인 보호무역과 함께 무역 혐오 바람을 일으켰다. 지금은 각 산업에서 경쟁력이 밀려난 분야를 높은 관세로 유치산업 보호론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남의 사다리는 걷어차고, 자신들에게 사다리가 필요할 때는 어김없이 다른 사다리를 꺼낸다.

 

이 글은 <자본의 방식>(행복우물출판사)의 일부분입니다.

 

경제 큐레이터 유기선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금융시장과 경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여러 학자들의 사상을 거슬러 올라가 ‘돈과 자본이란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한 의문을 토대로 금융의 역사와 철학, 금융을 움직이는 심리 등에 관한 글을 썼다. 그 중 인사이트가 있는 ‘자본과 관련된 48가지 이야기’를 추려서 쉽게 단순화했다. 저자가 집필한 <자본의 방식>은 ‘2019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사업’ 선정작품으로 당선되었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있지만 먼 듯한 이야기, 돈과 자본에 대한 통찰력있는 큐레이터를 꿈꾼다.

 

 

 

저작권자 © 여성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Editor's Pick
최신기사
포토뉴스
추천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