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40년 전 연인과 옥중 재혼, 나한일·정은숙 부부

  • 기자명 임언영 기자
  • 입력 2018.07.05 13:47
  • 댓글 0

중견배우 나한일이 동료 배우 정은숙(본명 정하연)과 재혼 소식을 알렸다. 지난 2016년 해외 부동산 투자를 미끼로 수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그가 교도소로 면회 온 정은숙과 재회하며 이뤄진 만남이다. 알고 보니 이들은 40여 년 전 연인 사이였다가 결별 후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한 사연을 갖고 있었다. 부부를 만나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배우 나한일의 삶은 그야말로 곡절의 연속이었다. 1989년 당시 톱모델이던 유혜영과 만난 지 3개월 만에 초스피드 결혼을 했고, 9년 만인 1998년 이혼했다. 그러나 2년 후 두 사람은 재결합한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딸을 위한 선택이 부부가 밝힌 재결합 이유였다.

다시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중 나한일은 2016년 해외 부동산 투자사기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다. 투자사기 혐의로 옥중 생활을 하던 그는 두 번째 이혼을 한다. 옥중에서 겪은 일이라 그가 받은 충격과 상처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컸다. 삶의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힘든 시간을 맞았다.

그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옥중에서 참회와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그는 오래전 지나간 연인인 정은숙과 재회한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지인의 주선으로 이루어졌고, 이후 두 사람은 매일 편지를 주고받으며 영화처럼 사랑을 키웠다. 그리고 2016년 4월, 교도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혼인신고도 했다.
 

그렇게 운명처럼 다시 맺어진 두 사람은 나한일이 출소한 뒤 지난 5월 27일 강남 팔래스 호텔에서 지인들을 초대해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스토리가 세간에 알려졌다.

결혼식 일주일 후, 부부를 여의도 모처에서 만났다. 평범하지 않은 시간을 보낸 주인공들이라 그런지 부부는 어떤 이야기든 솔직하게 가감 없이 쏟아냈다. 각자 아픈 이야기를 할 때는 숙연해지기도,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행복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처럼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내가 나쁜 놈입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던 나한일이 결혼식을 올리게 된 이유를 먼저 설명했다.

“이미 혼인신고도 끝났고 교도소에서 결혼식도 올려서 사실 필요는 없었는데, 전처와 이혼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치렀어요. 방송활동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아직 우리가 부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요.”

결혼식 사실이 알려지고 난생처음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경험을 한 정은숙은 이 모든 사건을 한 번은 겪어야 할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밤중까지 제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떠 있는데 놀랍더라구요. 흔치 않은 만남이니까 축하해주시고 잘살기를 기도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이젠 남들 앞에 같이 가도 떳떳하고 홀가분해서 좋아요. 떳떳하지 않을 것도 없는데 괜히 혼자 찔리는 기분이 들고 그랬거든요.”
 

# 40년 전 결혼 전제로 만난 사이
“4년 교제 기간 중 3년은 같이 살았죠. 임신도 했었고…”
 
두 사람의 인연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번에 알려졌지만, 당시 두 사람은 결혼을 전제로 4년간 교제한 사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한일이 소위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바람에’ 헤어졌다. 성인 남녀가 연애하다가 헤어지는 것이 있을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지만 당시 분위기는 지금과는 달랐고, 알려지지 않은 둘만의 이야기도 있었다.

“제가 죽을죄를 졌죠. 한 여인의 마음에 상처를 줬으니까요. 둘이 같이 MBC에 있었는데 제가 KBS로 소속을 바꾸면서 멀어졌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 제가 결혼식을 올렸고요.”

당시 나한일은 남성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배우로 주목받았다. 드라마 <무풍지대> 등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말 그대로 잘나갔다. 정은숙 역시 유망 배우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MBC 14기 공채 출신으로 <조선왕조 500년> <수사반장> 등에 출연했다.

두 사람은 비공개로 연애했다. 교제 기간 4년 중 3년은 동거 생활을 했다. 서로 집을 오가며 가족처럼 지낸 사이였다. 나한일이 어머니 환갑잔치 때 찍었다며 보여준 가족사진에는 주황색 한복을 똑같이 차려입은 네 명의 여성이 있었다. 며느리들과 딸이었고, 그중 한 명이 정은숙이었다. 3형제 중 막내였던 나한일의 집에서는 정은숙을 ‘막내며느리’로 불렀다.

“나쁜 놈입니다,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한 여인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게 맞아요.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때 제 아이까지 임신했었어요. 제 주장으로 낳진 않았지만 그만큼 진지하게 만난 사이였고, 그래서 더 평생 잊지 못하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여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큰 상처였겠어요.”
교도소에서 보내는 시간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나한일 역시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약을 먹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두 번째 이혼을 한 후에는 정도가 더 심해졌다.

“한 평밖에 안 되는 독방에 있으면 절로 회개의 시간을 갖게 돼요. 저는 성경책을 많이 봤어요. 의지할 곳이 하느님밖에 없으니까 열심히 기도를 했죠. 그리고 글을 썼어요. ‘내가 뭘 잘못했을까’를 떠올리면서.”

그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시련을 겪고 있는지 찾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가며 글을 쓰다 보니 정은숙을 만나던 시기가 탁 걸렸다.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려보니 ‘내가 참 나쁜 놈이구나. 고생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이런 생각을 평소 친하게 지내던 40년지기 친구인 신승수 감독에게 했고, 그녀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르지만 한 번 볼 수 있다면 용서를 빌고 싶다는 말도 전했다.

“그 말을 전했는지, 한 달쯤 지나서 면회장에 쑥 들어오더라고요.(웃음) 얼마나 놀랐던지 10분 동안 땀을 줄줄 흘렸습니다.”

놀랍기로 따지면 정은숙이 더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나한일 친구인데, 지금 교도소에 있다.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하더란다.

“느닷없었죠.(웃음) 가정을 가지고 있는 분이니까 잘사시겠거니 했는데, 교도소에 있고 이혼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거든요. 하도 설득을 하시기에 바로 면회를 가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한 달 보름 지나서 얼굴만 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40년 만에 재회가 이루어졌다. 한 사람은 수의를 입은, 유리벽을 사이에 둔 만남이었다. 나한일은 그 순간 정은숙을 잔잔한 미소 속에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고 기억했고, 정은숙은 마음이 찡했는데 어떤 말도 생각이 안 나 그냥 웃음만 났다고 했다.

“제가 ‘왜 거기 계셰요?’ 하고 물었더니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잘못해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기에 ‘벌 받는 거죠’라고 대답했어요. 웃음만 났죠. 면회가 끝나고 ‘다음에 또 올 거냐’고 묻는데 대답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이유 없이 몸과 마음이 아프더란다. 일주일 정도 몸살을 앓으면서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마음 아프고 궁금하기도 했어요. 말년에 왜 거기 있으면서 이혼까지 당했나 안된 마음도 들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죠.”

두 사람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됐다. 매일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웠고, 수시로 면회를 갔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얌전한 캐릭터였던 것 같은데, 목소리도 커지고 굉장히 쾌활하고 명랑해졌더라고요. ‘이 여인은 그동안 어떻게 살았기에 세상 걱정 하나 없는 여자처럼 살까’ 생각했죠. 편지를 매일 주고받았어요. 하루에 5~6장씩. 토요일과 일요일은 편지가 없거든요. 월요일은 편지가 세 통이 들어와요. 편지를 그렇게 많이 받아본 게 제 인생에서 처음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자 죽을 것만 같던 옥중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 매일 편지를 쓰는 기쁨, 기다리는 기쁨이 있었다. 삶에 희망이 생겼다.

“봄에 새싹이 올라오잖아요. 제 눈에 네잎 클로버가 눈에 쏙 들어오는 거예요. 제가 복권 한 번 당첨된 적이 없는데, 그때 교도소 앞마당에서 네잎 클로버를 15개나 발견했어요. ‘당신 만나서 잘될 모양이다’ 하면서 편지에 붙여서 보내고 그랬죠.”

40년 전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써본 적이 없는데, 편지에는 ‘사랑한다’는 표현이 넘쳐났다.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40년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깨달은 두 사람이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작된 만남인지라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추억도 많다. 옥중에서 혼인신고를 하게 된 사연도 재미있다.

“1년에 한 번, 교도소에 가족이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제도가 있어요. 그 시간을 보내려면 혼인신고를 해야 했어요. 4월 7일에 혼인신고를 하고 교도소 면회를 신청했죠. 교도소 담장 안에 예쁜 주택이 있는데, 거기서 2박 3일간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신혼 첫날밤을 교도소에서 보낸 사람은 우리밖에 없겠죠?”
주택은 탈옥 우려가 있어 밖에서 문을 잠그는 시스템인데, 그럼에도 두 사람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둘이서만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고 한다.
 

# ‘막내며느리’ ‘나 서방’이라 부르던 양가 어머니
“세상 떠난 두 분이 이어준 인연 같아요”
 
비교적 노출된 나한일의 삶이 고통스러웠다면 정은숙의 삶 역시 녹록지 않았다. 정은숙 역시 짧은 결혼생활을 끝낸 아픔의 시간이 있었고,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며 살았다. 두 오빠가 세상을 떠나면서 조카들을 키우는 것이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 됐다. 본인의 아이도 있었다.

“오빠가 돌아가시고 새언니도 집을 나가고. 아이들을 엄마와 제가 책임져야 했어요. 어린아이들과 조카들이 불쌍해서 제가 살아야 했어요. 방송국 일을 못 하겠더라고요. 살기 위해서 장사를 시작했죠. 카페도 하고 음식점도 하고, 목욕탕도 했어요. 다행히 다 잘되어서 금방 집을 샀어요.”

경제적으로 생계는 유지했지만 여자 혼자 가장 노릇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현실이 고단해서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도 있었고, 속세를 떠나 잠깐 출가한 적도 있다.

“열심히 사니까 복이 오는구나 싶어 절에서 기도를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어요. 절 생활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때까지 번 걸로 아이들 학교는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절에서 살겠다고 하고 나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큰오빠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큰오빠 아이들이 중학생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제가 맡아서 키워야 했어요. ‘절에 들어갈 팔자는 아니구나’ 하고 나와서 큰언니, 엄마와 함께 아이들 키우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키운 조카들을 결혼까지 다 시킨 게 2010년이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했구나, 시원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엄마가 편찮으셨다. 엄마는 요양원에 다니고 병원 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고, 그녀는 또 호되게 아팠다.

“엄마가 돌아가시니 세상이 무서웠어요. 이제야 세상 짐을 다 내려놓은 상황이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과정도 싫고, 남자를 만나겠다는 마음도 없었죠. 그러던 중에 이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어머니가 보내주셨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정은숙은 두 사람의 만남에 돌아가신 어머니들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조카들도 다 키우고 후련한 마음으로 이제 봉사활동만 하면서 살아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 단순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엄마가 ‘나 서방’이라고 부르면서 좋아하셨는데, 우리를 이어주신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막내며느리로 집안 대소사에 참가하면서 조카들과도 가족처럼 지냈고, 우리 집에서도 그랬거든요. 그 사람이랑 결혼해야 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나한일은 2011년 옥중에 있을 때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정은숙을 ‘막내며느리’라 부르며 예뻐했던 어머니다.
 

# 고단한 삶 끝내고 시작한 만남
30년 후에 “후회합니다” 안 하길
 
부부는 2년째 함께 살고 있다. 남들과 다르게 시작한 결혼생활이지만 신혼 풍경은 여느 부부들과 비슷하다. 청소와 설거지, 빨래로 서로 잔소리하는 평범한 일상이다. 당연히 소소한 의견충돌도 있다.

“각자 살아온 습관이 있으니까 부딪히기도 하죠. 아직 못 고친 부분도 있고요. 앞으로 남은 세월이 있으니까 심심하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 사람도 저도 이제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마음 편안한 게 우선이죠. 앞으로 둘이 같이 좋은 일하고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도록 아름답게 늙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지가 중요한 연예인으로서 치명타를 입은 것이 사실인지라 아직 나한일에게 구체적인 방송 계획은 없다. 그러나 언제든 기회가 되면 작품으로 재기하고 싶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제가 수장으로 있는 해동검도는 저를 지키는 힘이에요. 많은 체육관이 문을 닫았지만 예전 수준으로 활성화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작품을 언제 시작할지 모르지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살고 싶습니다.”
각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이루어진 만남이기에 두 사람은 앞으로 더 귀하고 소중하게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40년 전에 결혼해서 살았으면 그사이 헤어졌을지 잘살았을지 모르잖아요. 하나님이 마지막은 같이 가라고 만나게 해주셨다 생각하고 기쁘게 살아가고 싶어요. 저는 이 사람 만나서 좋아요. 두 어머니가 이어주신 것 같기도 하고요.”

나한일은 다시는 후회하지 않을 사랑을 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30년 후에 또 “후회합니다”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따뜻하고 짠한 표정으로 나한일을 바라보던 정은숙이 “가여운 남자예요”라면서 손을 잡았다.

사진(제공) : 안규림

저작권자 © 여성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Editor's Pick
최신기사
포토뉴스
추천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