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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상선언’ 이병헌의 새삼스러운 감정들

  • 기자명 임언영 기자
  • 입력 2022.08.24 17:16
  • 수정 2022.08.24 17:19
  • 댓글 0
  • 사진(제공) : BH엔터테인먼트

“많게는 두세 번, 아니어도 일 년에 한두 편으로 관객을 만나는 것이 저에게는 어떤 삶의 일부였어요. 루틴처럼 이루어졌던 저의 일상인데, 팬데믹으로 인해 몇 년 동안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어요. 몇 년 만에 <비상선언>으로 극장에서 관객을 만났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순간을 보면서 감사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했어요.”

오랜만에 극장에서 관객을 마주한 이병헌은 새삼스럽게 벅차오름을 느꼈다고 한다. 순제작비 260억원을 들인 대작, 항공재난 블록버스터 <비상선언>은 코로나로 인해 몇 차례 개봉이 미뤄졌었다. 촬영을 다 했는데 아직 개봉하지 못한 작품이 두 작품이나 있는 이병헌은, 그래서인지 이번 <비상선언>을 바라보는 심경이 더 특별하다.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항공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와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병헌은 비행 공포증임에도 불구하고 딸의 치료를 위해 비행기에 올라탄 승객 재혁을 연기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시청자를 만났는데, 영화 개봉으로 느끼는 감정은 그 결이 다른 가 봅니다. 드라마는 영화와는 다른 이야기로 만나니까 그런 점이 재미있는데, 영화는 짧지만 극장에서 그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초집중해서 보는 것이 또 다른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대 인사를 통해서 직접 관객을 만나고 호흡하면서 팬과 영화인들이 만나서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요.

공교롭게 팬데믹 시기에 맞아떨어지는 내용이에요. 영화가 시작되고 조금 후에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모두가 힘든 시간을 맞게 됐어요. 코로나랑 연관된 영화는 아니지만, 어느 부분은 그것과 맞닿은 감성이 있다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어요. 코로나라는 현실도 걱정스럽지만 우리 영화도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라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막상 다 만들어지고 가편집본을 봤는데, 그때는 팬데믹 시기를 경험해서인지 몰입감이 훨씬 크게 왔었던 기억이 나요.

몇 년 전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셨나요. <비상선언>을 보신 분들은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확 긴장을 하기 시작해서 그 긴장의 강도가 갈수록 점점 커지면서 끝난다”고 하더라고요. 두 시간 동안 계속 긴장의 연속이라는 말도 들었고요. 저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 그 기분이었어요. 롤러코스터를 타고 끝까지 달리는 기분. ‘아, 진짜 센 영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게 너무 좋아서 작품을 하게 됐습니다.

한재림 감독과는 첫 작업이었는데,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감독님 작품들을 보면서 좋은 감독이고,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나리오를 단번에 읽었을 만큼 재미있게, 숨 막히게 읽어서 작품을 결정하는데 긴 시간이 안 결렸어요.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감독님이었고, 촬영하면서 마음도 놓이고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 실제 공황장애 경험
코로나 시기와 딱 맞아떨어지는 내용

이병헌은 실제로 20대 중반 처음으로 비행기에서 공황장애를 겪어봤다고 고백했다. 그 느낌과 증상들을 이후로도 여러 차례 경험한 그는, 이번 <비상선언>의 재혁을 연기하면서 개인적인 경험들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대부분 비행기 내부에서 촬영을 했어요.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 정신적으로 계속 고민했어야만 했던 것은 비행기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비행기를 타자마자 공포를 느끼고, 과호흡이라는 공황장애 증상이 나오는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재난이 닥치고 극단적인 상황들을 대하면서, 재혁의 당황스럽고 불안하고 어찌할지 몰라 하는 감정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공황장애를 겪었을 때 기분을 떠올리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과호흡을 하면 어지럼증이 생길 수 있어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보다는 이것을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애를 썼어요.

김남길 배우와 항공 교육을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칠판을 앞에 두고 이론 교육도 받고 시뮬레이터에 들어가서 실제로 조종도 해봤어요. 비행기를 띄울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실제 파일럿들의 손의 터치나 익숙함을 익히려고 했어요. 항공사의 허락을 받아 같이 비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실제 비행기를 어떻게 조작하는지, 바깥이 어떻게 보이는지, 착륙할 때 어떤 조작들을 하는지 직접 보고 배우면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백두산>에 이어 두 번째 아버지 역할이네요? 되게 재미있는 건 <백두산>에서도 딸의 아버지이고 <비상선언>에서도 딸의 아버지인데, 두 딸이 친자매 배우들이에요. 둘 다 아역이라고 하기에는 쿨한 연기와 세련된 감정표현을 하는 배우들이라, 어머니에게 제가 정말 좋은 배우가 될 친구들인 것 같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아역배우와의 연기에서 더 집중한 부분이 있다면요? 앞서 제가 두 자매 배우가 아역임에도 세련된 연기를 한다고 했는데, 상황 속에 감정을 설명을 해줄 때가 있어요. 그런 말들을 단번에 알아듣고 표정으로 표현해내는 걸 보면 이해력이 뛰어나고 표현력이 훌륭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로베르토 베니니가 자식을 한 번 더 웃게 만들며서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의 모습처럼, 비행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자식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위로해주고 안심시켜주는 포인트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아들을 둔 아빠인데, 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시는지? 아이는 딸이 됐건 아들이 됐건 정말 굉장히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직접 경험을 해보니까 이런 행복감은 없는 것 같아요.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은 없습니다.(웃음)

 

 

송강호, 전도연 등 무게감 있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작품입니다. 이것이 부담이 컸는지, 도움이 컸는지 궁금합니다. 좋은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면 일단 신이 나요. ‘이 작품은 진짜 좋은 작품이 되겠구나’ 싶어서요. 실제로 훨씬 더 좋은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관심과 사랑을 받을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완성도 측면에서도 보장이 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되게 좋은 힘이 되어요.

후배 임시완의 연기는 어떻게 보셨나요. 평상시에는 막내 역할을 톡톡히 하는 정말 귀여운 후배예요. 그 해맑고 예쁘장한 얼굴로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내면서 한순간에 관객들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에너지를 보면서 ‘참 좋은 배우구나,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걸 보여줄 수 있는 후배를 만났구나’ 생각했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항공 관련 장면들이 많은데요. 명장면을 꼽아본다면요? 비행기가 360도 돌아가면서 사람들의 머리가 치솟고 떨어지는 장면들은 굉장히 기억에 남을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의 맨 마지막에 비행기 창을 통해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그 장면도 명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비상선언>의 엔딩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건 해석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반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해피엔딩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씁쓸한 느낌을 주는 엔딩이라고 생각도 하게 되고요. 저는 중간의 느낌이에요.

 

 

# 영화 연출이나 제작은 관심無
연기에 몰두할 것

재혁이 비행기 사고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지만 다시 조종대를 잡은 점이 인상적입니다. 본인도 스스로 갖고 있던 한계나 트라우마를 극복한 경험이 있으신지? 공황장애건 또 다른 정신적인 어떤 아픔이 있을 때, 이게 왜 그런지 이유도 원인도 알 수 없을 때는 너무너무 괴롭고 어떻게 할지도 모르겠는 심정이었어요. 그런 감정을 내가 느끼는 것은 남들보다 특별한 상황들을 나에게 주면서, 특별한 감정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기특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그 괴로운 상황을 좋게 생각하려고 별의별, 자신에게 하는 위로의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게 저에게는 정신적인 위기감이 느껴졌을 때 이겨내는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좀 더 현실에서 접할 수 있는 소시민적 인물을 연기하시는 듯합니다. 연기나 영화에 대한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나요?딱히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우리들의 블루스>나 <비상선언>은 정말 평범한 동네 형, 아저씨 같은 캐릭터인데 우연찮게 작품 선택이 그렇게 됐어요. 연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거나 그런 역할을 해야겠다고 해서 주어진 건 아닌 것 같아요.

<비상선언> 배우들과 ‘출장 십오야’ 출연이 화제였는데, 예능에 출연해보시니 어떻던가요. 예능 출연이 익숙하지 않고 공기 자체가 낯설었는데, 해보니까 제가 그 안에서 긴장이 싹 사라지면서 놀고 있더라고요.(웃음) 이런 매력이 있구나, 했습니다. 나영석 피디님이 워낙 잘 이끌고 그 안에서 잘 놀 수 있는 토대 마련을 잘 해주신 것 같아요. 그분의 노력에 놀랐고 저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되게 신나게 놀다가 나온 느낌이었어요.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앞둔 작품이 두 편 더 있죠? <승부>라는 영화가 있고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개봉을 남기고 있어요. <승부>는 바둑기사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예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이 벌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어요. <비상선언>이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실적인 영화라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상상이 들어가고 판타지가 들어간 블랙코미디 장르의 영화입니다.

이정재 배우의 감독 데뷔가 화제인데, 영화 연출이나 제작에는 관심이 없으신지? 저에게 그런 탤런트가 있으면 좋겠는데, 무(無)의 상태에서 뭔가를 만들어내서 기획하고, 선장의 입장이 되어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서는 탤런트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대신 현장에서 감독님에게 작은 아이디어들을 이야기하기는 해요. 상황을 주면 그 안에서 아이디어는 많은데 전체를 보는 탤런트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연기에 몰두하려고 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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