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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썰 ⑰]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인연, 운명, 두고 온 삶에 대한 이야기”(인터뷰)

  • 기자명 임언영 기자
  • 입력 2024.03.24 08:00
  • 댓글 0
  • 사진(제공) : CJ ENM
데뷔작으로 오스카에 입성해 주목받은 셀린 송 감독이 <패스트 라이브즈> 한국 개봉에 맞춰 내한했다. 일정이 빡빡했지만 언론시사회 이후 만난 셀린 송 감독은 한국에서의 시간을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보내는 중이었다.

 

3월 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작품상과 각본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그 과정은 찬란하고 눈부셨다. 
그 과정의 어느 하루였던 2월 29일, 셀린 송 감독과 서울 삼청동에서 인터뷰를 나눴다. 한국 개봉(3월 6일)과 아카데미 시상식(3월 10일)을 앞두고 인터뷰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 관객들의 반응도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여부도 예측할 수 없는 시점이었다. 그만큼 여러 가능성이 열린 상태였고, 그래서 기분 좋은 상상을 펼칠 수 있을 때였다. 셀린 송 감독과 인터뷰를 나누며 상을 받은 이후보다 여러 가능성을 상상하는 순간이 더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과 해성의 이야기다. 갑작스러운 이민으로 헤어진 두 사람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 온 인연을 돌아본다. 이들이 보내는 이틀의 시간이 주는 감동과 여운이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 세계 72관왕, 212개 부문 노미네이트라는 독보적인 행보. 셀린 송 감독이 첫 장편 데뷔작의 주제로 잡은 ‘인연’이라는 한국적인 정서가 보편적이고 글로벌한 공감을 끌어낸 것이다. 

 

# 한국적 정서 통했다  
데뷔작으로 오스카 입성

셀린 송 감독에 대한 이해가 영화에 대한 몰입을 즐겁게 돕는다. 먼저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열두 살까지 한국에서 자란 셀린 송 감독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대학에서는 심리학을, 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한 그는 이후 10년 동안 오프 브로드웨이 극작가로 활동했다. 

한국 개봉의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기분이 어떤가. 촬영할 때부터 한국에서 언제 개봉하나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인연’이 자주 쓰는 말이니까 거기에 대한 임팩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궁금하다. 한국 사람들이 볼 때는 어떨지. 캐릭터들의 이야기로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다. 

한국적 정서를 담은 작품이 해외에서 먼저 사랑을 받은 이유는 뭐라고 보나. <패스트 라이브즈>는 이민자들의 이야기지만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 다들 이사도 자주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살아가니까.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고 헤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과거 인연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샀다는 분도 있었다. 다양한 관객 반응을 들었다. 영화는 상황이나 마음에 따라 바뀐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 봐도 그 사람의 것이 된다.  

덕분에 해외 관객들의 ‘인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첫 신에서 나영, 해성, 아서(나영의 남편) 셋이 나란히 바에 앉아 있다. 이 세 사람이 서로에게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쓰는 단어지만 해외에서는 모두가 모르는 단어라서 이걸 영화에서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제목은 왜 <패스트 라이브즈>인가. 우리 모두는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시간과 공간을 지나가면서 살고 있다. 나이를 먹고 이사도 다니고. 그럴 때마다 두고 오는 삶이 있다고 생각한다. 변호사였다가 셰프가 되었어도,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어도 ‘두고 온 삶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가 포용할 수 있는 의미가 많았다. 

첫 장편영화로 이 주제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삶에는 ‘안녕’을 해야 하는 순간이 많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할 때도 있지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안 하고 지나가는 순간도 있다. ‘안녕’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운이 좋은 선물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패스트 라이브즈>에는 세 번의 안녕이 있다.  
  

#  자전적인 이야기 
아버지 송능한 감독의 인생 자체가 영화적 조언 

셀린 송 감독의 아버지는 <넘버 3>를 연출한 송능한 감독이다. <패스트 라이브즈> 속 나영의 아버지도 영화감독인데, 송 감독의 <넘버 3>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등장해 한국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작업할 때 아버지 송능한 감독의 조언이나 도움이 있었나? 받지 않았다. 프리랜서 아티스트를 부모님으로 둬서 인생 자체에 배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 자체가 부모님과 연결되어 있다. 영화를 만들면서 한국에서 찍었던 시간이 소중했다. 한국 영화인을 만날 일은 없는데, 크루들 중에 아빠 강의를 들으셨다는 분도 있고 존경한다는 분들도 많았다. 아버지가 궁금해서 같이 일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의 인생 자체가 조언인 것 같다. 

영화의 정서가 전체적으로 따뜻하다. 필름 카메라로 촬영해서 그런가? 35㎜ 카메라로 찍었다. 굉장히 노스탤지어가 많은 프로세스다. 이 영화와 필름이 맞는 것 같다는 감정만으로 시작했는데, 첫 영화여서 뭘 몰랐다. 얼마나 비싸고 복잡한지. 현장에서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가 있는데, 마치 돈이 흐르는 소리로 들렸다.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 한국에서 촬영할 때 어린 배우들은 필름 카메라를 처음 봤다. 공룡 같다면서 신기해했다. 자칫 잘 못하면 제작비 임팩트가 크기 때문에 겁을 주고 촬영했다(웃음).  

유태오의 오디션 과정이 대단했다고 들었다. 300명 정도 됐고 그중 30명 정도 추려서 2차 오디션을 봤다. 유태오가 마지막으로 들어온 배우였다. 3시간 반 정도 오디션을 했다. 그것은 나에 대한 테스트이기도 했다. 내가 본 첫인상이 맞는지, 욕심을 내서 계속 물어봤다. 

이방인의 감성을 가지고 있는 배우 유태오를 섭외한 데는 무엇이 작용했나. 아이덴티티 이슈도 중요하지만 해성의 캐릭터는 얼굴에 어린아이와 어른이 공존해야 했다. 해성의 얼굴은 그게 중요했다. 유태오는 그 둘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타임스퀘어의 전광판 같은 얼굴”이라고 농담을 했는데, 그 정도로 작은 감정도 잘 드러나는 배우다. 

영어가 유창한 유태오가 콩글리시를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연기 디렉션을 했나. 옷에서 시작한다. 관객으로서 해성이 멋있기를 바라지만 나는 좀 잔인한 생각을 했다. 바지는 작게, 셔츠는 크게 입혔다. 마치 잘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표현했고, 그래서 더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살았다. 기본적으로 유태오 배우가 불편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해성 친구로 등장한 장기하, 영화 <넘버 11>은 한국 관객들만 호응할 수 있는 부분이었을 것 같다. <넘버 3>를 넣을 수 없어서 <넘버 11>을 넣었다. 숫자에 의미는 없다. 1부터 10까지 모든 숫자의 사용권이 없었다. 장기하는 해성 역 오디션을 봤었다. 재미있게 오디션을 봐서 친분이 생겼다. 친구 역이 있는데 해보겠냐고 하니 장기하가 하고 싶다고 해서 촬영했다. 

 

 

 

# 두고 온 삶과 제대로 ‘안녕’ 하길 
해성과 나영은 다음 세상에서 만났을 것 

<패스트 라이브즈>는 영화 <미나리>의 제작사 미국 A24와 <기생충>의 제작사 CJ ENM의 합작이기도 하다. 셀린 송 감독은 좋은 환경에서 첫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었다면서 제작 환경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무엇을 하든 ‘올인’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다음 영화 작업으로 또 한국에 방문해서 대화하고 싶다는 마음을 비추기도 했다.  

해성과 나영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인연밖에 없을까. 둘의 관계를 사실 어떻다고 정의하기 어렵다. 남자친구, 여자친구도 아니고 너무 어려서 첫사랑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손 한 번 잡았다. 친구라고 부르기에는 별로 안 친하고 남이라고 하기에는 서로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난다. 어떤 관계냐고 물어봤을 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인연’밖에 없다. 해성과 아서도 그렇다.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남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인연이다. 

나영과 아서가 나눈 베드 타임 토크가 인상적이라는 반응이 많다. 아서가 나영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관계가 깊을수록, 오래될수록 사랑을 많이 한다는 걸 표현하기보다는 ‘어떤 부분에서 우리는 끝까지 이해할 수 없다’가 더 깊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나영이 꿈을 꾸면서 잠꼬대를 한국어로 한다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 

우정과 사랑의 차이가 있다고 보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느끼는 사랑이라는 것은 로맨스 장르와는 관계가 없다. 연애라는 게 있고 사랑이라는 게 있다. 연애는 당연히 기승전결이 있다. 인생의 파트너십을 구하는 게 연애다. 사랑은 다르다. 친구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면 사랑이다. 

엔딩 장면은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맞나. 셋 다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나영은 해성을 만날 때까지 열두 살짜리 자신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대부분의 우리가 그렇듯이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안녕’에 대해 관심 없이 살다가, 해성을 통해 선물같이 안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엔딩에서는 나영이 드디어 그 시절의 자신과 안녕이라는 인사를 한다. 

나영과 해성은 훗날 다시 만났을까?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음악이 있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서 흐르는데, 나영과 해성이 처음 스카이프로 통화할 때 흐르는 음악이다. 의도적으로 배치했다. 나영과 해성은 다음 세상에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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