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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화 작가의 유럽 인문 여행] 500년의 역사가 뒤섞여 만든 색다른 문화

  • 기자명 이신화 작가
  • 입력 2024.03.20 17:56
  • 수정 2024.03.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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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제공) : 이신화 작가
폴란드 크라쿠프의 카지미에시의 유대인 지구는 500년이라는 긴 역사가 뒤섞여 있다. 크라쿠프 메인 타운이 왕궁의 풍치라면 카지미에시의 유대인 지구는 자기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디시어 간판, 해묵은 오래된 회당과 박물관, 책방 등. 거기에 골목 곳곳에서 만나는 역사적인 벽화, 갤러리, 카페, 음식점 등이 뒤섞인 유대인 지구는 또 다른 여행 재미를 주는 곳이다.
갈리치아 유대인 박물관
갈리치아 유대인 박물관

갈리치아 유대인 박물관

옛 회당을 나와, 한 골목에서 갈리치아 유대인 박물관(Żydowskie Muzeum Galicja)을 만난다. 간판이 이끄는 데로 안으로 들어섰는데 그냥 거대한 책방 같은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폴란드에서 가장 큰 유대인 서점 중 하나다. 서점에 진열된 책들이 볼만했지만 긴 시간을 할애하진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박물관이라는 간판을 단 서점인 줄 알았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이 박물관은 단지 서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박물관은 ‘갈리치아(Galicia)에 있는 유대인들의 역사에 대한 사진 및 역사 전시관이다.

갈라치아 대형 책방
갈라치아 대형 책방
갈리치아 유대인 박물관
갈리치아 유대인 박물관

갈리치아 지방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서부와 폴란드의 남동부에 걸쳐 있는데 이 지역에는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이라는 행정 구역이었다. 갈리치아는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일부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폴란드 제2공화국의 영토가 됐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던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영토로 확정됐고, 서쪽 일부 지역만이 폴란드 인민 공화국의 영토가 됐다. 대부분이 우크라이나 영역이다. 현 중심 도시는 우크라이나의 리비우이다.

사진가 크리스와 교수 조나단 웨버의 만남

유대인 마을에 갈리치아 전시관을 만든 이는 영국의 사진작가인 크리스 슈워츠(Chris Schwarz)와 영국 인류학자이자 교수였던 조나단 웨버(Jonathan Webber)다. 크리스는 북아일랜드에서 일본, 캐나다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여행하며 활동한 사진가다. 그는 노숙자, 장애인, 불치병 등. 주로 사회 문제에 초점을 맞춘 사진 작업을 했다. 1981년, 크리스는 연대(Solidarity) 사진을 찍기 위해 처음으로 폴란드에 왔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후 그는 크라쿠프 주변 도시와 마을에서 발견한 유대인 과거에 관심을 갖고 이곳으로 되돌아왔다. 크리스는 독립적으로 또는 대규모 연구 그룹의 책임자로 도시에서 도시로, 마을에서 마을로 여행하면서 폴란드에서 여전히 발견되는 유대인 과거의 유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1993년, 크리스는 약 1,000장의 사진을 골라 갈리치아 유대인 박물관을 설립하기로 했다.

또 조나단 웨버는 1988년부터 폴란드-유대인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문서화해 왔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18년 동안 가르쳤고, 2002년에 버밍엄 대학으로 옮겨 5년 동안 유대교 및 종교 간 연구 부문 유네스코 석좌를 맡았다. 2011년, 그는 야기엘론 대학 교수를 맡았다. 조나단은 ‘기억의 흔적(Traces of Memory, 폴란드 갈리치아의 유대 문명 폐허)’이라는 논문을 출간했다. 조나단은 논문 프로젝트를 위한 사진작가를 찾는 동안에 크리스를 만나게 된다. 이 두 사람은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리치아 박물관 개장

크리스는 10년 동안 프로젝트에 전념한 후, 2004년 4월에 박물관을 등록했다. 그리고 조나단에게 이사회 의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2004년 6월에 갈리치아 유대인 박물관을 개장했다. 카지미에시의 오래된 가구 창고 건물을 개조한 건물이다. 박물관 구성은 기억의 흔적이라는 타이틀로 사진들을 전시했다. 그러나 2007년, 크리스는 59세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의 사후, 박물관은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현재까지 살아 있다.

갈리치아 박물관은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크리스의 140여 점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상설 전시 말고도 임시 전시 및 컨서트, 작가와의 만남, 강의 및 워크숍 등이 열린다. 카페와 대형 서점이 있다.

코웨아 이팀 레 토라 회당

랍비 회당 골목
랍비 회당 골목
코웨아 이팀 레 토라 회당 건물
코웨아 이팀 레 토라 회당 건물

갈리치아 박물관에서 나와 골목을 걷다가 강력하게 필자의 눈길을 가장 깊게 끌어당긴 곳이 코웨아 이팀 레 토라 회당(Kowea Itim le-Tora Synagogue)이다. 이 회당 건물은 특히나 해묵은 향기가 가득하다. 건물 입구에는 두 개의 시나고그 표시가 있다. 건물 1층에는 작은 책방이 있는데 여느 서점하고는 다른 연륜을 자아낸다. 궁금함에 차마 발을 빨리 못 떼고 건물 안쪽으로 들어서니 옛 유대인들의 빛바랜 사진들이 걸려 있다. 설명 없어도 랍비(Rabbi, 선생) 사진들이다. 거기에 이 회당의 옛 사진도 있다. 한참을 이 건물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 요소들이다.

코웨아 이팀 레 토라 회당 서점
코웨아 이팀 레 토라 회당 서점
코웨아 이팀 레 토라 회당의 명판
코웨아 이팀 레 토라 회당의 명판
코웨아 이팀 레 토라 회당
코웨아 이팀 레 토라 회당

원고를 쓰면서 자료를 찾아보니 이 건물에는 히브리어 비문이 남아 있는데 그곳에는 '토라(Torah, 구약성서의 첫 다섯 편) 사회를 위한 시간 만들기'라는 글귀가 있다. 이는 랍비(토라의 교사)의 탈무드 연구와 수업이 이곳에서 진행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옛 메주자(mezuzah 문설주, 토라의 특정 히브리어 구절이 새겨진 양피지 조각) 흔적이 출입구에 남아 있다. 메주자는 유대인 추종자들이 랍비 집에 부착했다.

두 개의 회당 마크
두 개의 회당 마크

비문 양쪽에 있는 두 개의 ‘다윗 별’ 중 하나는 이 조직이 1810년, 코웨아 이팀 레 토라 형제단에 의해 설립됐고 다른 한 개는 1912년에 건물이 개조됐음을 알려준다.

높은 회당
높은 회당

어쨌든 이 회당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에 의해 황폐됐는데 개조 없이 낡은 채로 남겨 둔 것. 그래서 가장 오래된 회당처럼 보였던 것. 현재 이 건물은 주거지로 사용한다.

두 회당
두 회당

높은 시나고그

‘코웨아 이팀 레 토라 회당’과 같은 방향이며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유교 회당이 하이 시나고그(High Synagogue)다. 이 회당은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회당이라서 ‘하이 회당’이라고 부른다. 이 회당은 한 부유한 상인이 지기스문트 2세 아우구스투스(Sigismund II Augustus) 왕의 동의를 얻어 1563년에 건축을 시작했다(일부 자료에는 1556~1563년으로 추정). 이 회당은 카지미에시에 세 번째 세워졌다. 건축은 그리스나 이탈리아 출신의 세파디 유대인(Sephardic Jewish, 이베리아 반도의 유대인 공동체)에 의해 지어졌다고 추정한다. 1층은 기도실이고 2층은 상점이었다. 성소의 내부 벽에는 이스라엘 왕들의 무덤, 통곡의 벽, 멋진 사자 한 쌍 등이 그려져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들은 모든 가구를 치워 버렸다. 그중에서 바벨 성으로 옮겨진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하누카 메노라(Hanukkah menorah, 봉헌 촛대)가 전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이 촛대는 현재 올드 시나고그에 상설 전시돼 있다.

현재, 회당 동쪽 벽에 아론 하코데시(Aron HaKodesh, Torah ark, 토라가 보관되는 곳)와 21세기 초에 발굴된 벽화만이 남아 있다. 아론 하코데시는 폴란드에서 가장 크고 동시에 가장 오래된 르네상스 양식이다.

이 회당에서는 전간기 유대인 공동체의 관습과 전통에 관한 사진과 기타 전시회가 열린다.

카지미에시 역사 벽화들

길거리 벽화
길거리 벽화

유대인 거리를 걷다 보면 간간이 벽화를 만나게 되는데 완전히 눈길을 끄는 흥미로운 벽화가 있다. 과거, 유대인의 문이었던 요제파(Józefa) 거리 근처에 있다. 이 벽화 속 인물들은 카지미르의 왕(King Casimir the Great), 에스테르카(Esterka, 카지미르 대왕의 연인), 카롤 크누스(Karol Knaus, 건축가이자 기념물 보존가), 헬레나 루빈스테인(Helena Rubenstein, 이 지역에서 태어난 화장품 기업가), 황제 요제프 2세(Joseph II, 신성 로마 황제)의 얼굴들이다.

유다 벽화
유다 벽화

이 벽화는 폴란드 시각 예술가인 피오트르 야노프지크(Piotr Janowczyk)의 작품으로 2015년 가을, 펍 브랭가(Pub Wręga) 외부에 그려졌다. 이 또한 역사적인 벽화(Kazimierz Historical Murals)라는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다.

푸드트럭
푸드트럭

또 유대인 푸드트럭에서도 '유다'라는 벽화를 만난다. 이스라엘의 가장 유명한 거리 예술가 중 한 명인 필 펠레드(Pil Peled)가 만든 이 대형 벽화는 2013년 7월 유대인 문화 축제의 하나로 제작됐다.

카지미에시의 심장, 신광장의 원형홀

신광장
신광장

유대인 지구에서 또 인상적인 곳은 신광장(The New Square)이다. 유대인 지구의 이 신광장은 카지미에시 지구의 심장부로 일컫는데 노바(Nowa), 베라(Beera), 마이셀사(Meiselsa), 바르세우라(Warszauera), 에스테리(Estery) 거리가 이 광장으로 몰려드는 위치에 있다.

신광장
신광장

이 신광장은 16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리부슈호프(Libuszhof)라고 불리는 건물과 거리가 복합된 지역이었다. 1808년과 1844년의 규제 설계에 따라 지역을 정리하고 카지미에시의 오래된 레이아웃 요소를 적용한 후 현재의 모습이 됐다. 오늘날 광장 주변의 건축물은 주로 1870~1923년에 형성됐으며 1900년부터 이 지역은 시장 역할을 해왔다.

이 신광장이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중앙에 있는 오크롱글락(Okrąglak, Rotunda)이다. 12각형으로 각진 둥근 모양의 건물은 식당으로 나뉘어져 각양각색의 음식이나 음료를 파는 코너로 이용되고 있다.

신광장 원형홀
신광장 원형홀

이 건물은 1900년에 시장 홀로 지어졌다. 1927년, 유대인 공동체에 임대돼 가금류 도살장으로 바뀌었다. 독일 점령 기간에는 청산됐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시장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수년 동안은 대부분의 상점은 노점상들의 물류 창고로 이용됐다. 2008년, 이 건물은 크라쿠프 역사 기념물 등록부에 등록됐다.

현재, 상인 가판대는 이른 아침부터 신선한 야채, 식품, 공산품을 포함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벼룩시장이 열린다. 다양한 귀중한 골동품(고서, 보석 등)이 있어 폴란드 전역의 수집가들이 모여든다. 또한 지난 수십 년 동안 일요일에는 의류 장터가 열린다. 거기에 매년 크라쿠프 유대인 축제 콘서트가 옥상에서 공연된다.

길거리
길거리
길거리
길거리
자피에칸카
자피에칸카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이유는 패스트 푸드 코너가 있기 때문이다. 크라쿠프 전체에서 최고라는 자피에칸카(zapiekanki, Casserolles, 폴란드식 피자 바게트)가 유명하다.

유대인 지구에서 기타 볼거리

유대인 거리
유대인 거리

앞서 말한 대로 유대인 지구를 꼼꼼히 다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필자는 유대인의 중심지인 세로카 거리와 바볼 거리가 붙어 있지만 발길을 잘못 들이면서 정반대의 길로 가게 돼 레무 회당, 유대인 묘지, 미크바, 헬레나 루비스타인의 집 등을 다 놓쳤다.

또한 세로카 거리를 거치면서 만날 수 있는 베르카 요셀레비차(Berka Joselewicza) 거리에 있는 음유시인 모르데차이 게비트릭(Mordechaj Gebitrig, 1877~1942) 기념관도 못 봤다.

모르데차이 게비트릭은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 가난한 목수 노동자였다. 그가 유명한 것은 민요시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을 독학해 양치기의 피리를 연주했으며, 한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두드렸다. 그는 악보를 몰랐기에 그의 시에 흥얼거리면 그 선율을 듣고 그와 음악가 친구들이 악보를 만들어 녹음했다.

그의 마지막 시는 사후에 출판됐다. 가장 유명한 노래인 ‘스브렌트'(S'brent)’는 1938년에 작곡한 이디시어 노래다. 유대인 말살에 반대하는 저항을 외치는 스브렌트는 국가사회주의 통치하의 게토와 수용소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상징한다. 전쟁 중 크라쿠프 게토에서 싸우는 젊은이들의 국가가 됐으며, 이스라엘에서는 전통적으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연주된다.

또 요제프 문의 벽화가 있던 카페 안쪽으로 들어서지를 않아 카지미에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안뜰(Józefa 12)을 놓쳤다. 이 안뜰을 지나 마이셀사(Meiselsa) 거리까지 길이 이어지는데 이 골목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의 영화 세트장이었다고 한다.

다시 크라쿠프를 갈 기회가 생긴다면 유대인 지구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다. (계속)

Travel Data

코웨아 이팀 레 토라 회당(Kowea Itim le-Tora Synagogue) 주소: Józefa 42, 크라쿠프

하이 시나고그(High Synagogue) 주소: Józefa 38, 크라쿠프

카지미에시 역사 벽화_펍 브랭가(Pub Wręga) 주소: Józefa 17, 크라쿠프

유다 벽화 주소: św. Wawrzyńca 16

오크롱글락(Okrąglak) 주소: Estery 46, 크라쿠프

모르데차이 게비르티그 기념관 주소: Berka Joselewicza 5, 크라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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