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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의 배우 이야기 26] 송중기의 치명적 매혹

  • 기자명 전찬일
  • 입력 2023.07.09 08:00
  • 수정 2023.08.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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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지면에 필자는 이렇게 썼다. “제76회 칸영화제가 막을 내린 지 3주가 다 돼가지만, 나는 아직도 그 자장 안에 머물러 있다. 과거에도 으레 그랬으나, 올해는 그 파장이 한층 더 크고 깊다”고. 그 주된 이유들을 몇 가지 열거했으나, 그중 하나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성황리에 선보인 신예 김창훈 감독의 <화란>에서 송중기가 펼친 연기와 그가 구현한 캐릭터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고등학생 소년이, 한 사채 및 폭력 조직의 중간 보스를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느와르성 휴먼 드라마에서 그는,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으로 분해 <쌍화점>에서의 정식 데뷔 이래 거의 볼 수 없었던, 판이하게 다른 경지의 호연과 성격화를 구축·제시하는 데 성공한다. 자신의 나이 어린 타자아(Alter-ego) 연규(홍사빈 분)와 연규의 씨 다른 동생 하얀(비비/김형서 분)에게 ‘마침내’ 삶의 다른 가능성 내지 희망을 안겨주는 일종의 ‘구세주’로 기능하면서…. 

그 문제적 수작에서 세 주·조연 배우는 양적 비중을 넘어 우열을 가리기 불가능한, 생애의 연기들을 보인다. 단적으로 홍과 김은 ‘발견’의, 송은 ‘재발견’의 열연을 구사한다. 하지만 그 차원에서는 적잖이 다르다. 두 후배가 ‘채움의 연기’를 뽐낸다면, 선배는 ‘비움의 연기’를 선사한다고 할까.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송중기에게 그런 수준의 연기와 인물 소화를 기대하지는 않았기에 그는 내게 ‘치명적 매혹(Fatal Attraction)’으로 다가서지 않을 수 없었다. 드뷔시 홀에서의 공식 상영 후, 적잖은 인파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건만 그에게 다가가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 담당 프로그래머로 초청했던 <늑대 소년>(조성희 감독)의 인연·추억을 환기시키며 눈치코치 가리지 않고 같이 사진까지 찍은 것은 그래서였다.

주지하다시피 연기자 송중기의 이름을 전격적으로 알리며 스타덤에 등극시킨 것은 2010년 방영된 KBS 20부작 사극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었다. 영화 출세작(?)은 <늑대 소년>이었다. <오감도>와 <이태원 살인 사건>에서 조연으로, <마음이 2>와 <티끌모아 로맨스>에서 주연으로 출연했으나 별다른 존재감을 각인시키진 못했던 차였다. 기억컨대 부산영화제 오픈 시네마 섹션에서 역대급 호응과 더불어 선보인 <늑대 소년>에서의 그는 남달랐다.  

그 이후 그의 행보는 나름 주목을 요하나, <늑대 소년>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의 ‘진가’(?)는 영화보다는 일련의 공중파와 케이블방송국 드라마에서 드러났다. KBS2의 <태양의 후예>와 tvN의 <빈센조> 그리고 JTBC의 <재벌집 막내아들>이었다. 평소 TV나 OTT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는 내게도, 송중기의 캐릭터 해석 및 연기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늑대 소년>을 상회하는, 가히 눈부신 활약상이었다. 

<화란>에서의 치건과 송중기는 그간의 전작들을 훌쩍 넘어선다. 그동안은 힘을 줄 대로 주며 나름의 강렬한 인상을 전해왔다면, 이번에는 정반대의 메소드 연기로 새로운 면모를 각인시킨다. 강약, 완급의 조율이 완벽하다. 강력하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고 가볍다. 그러면서도 홍사빈, 김형서 두 후배와 그들이 연기하는 배역들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는 상생·공존의 연기를 현실화시킨다. 일찍이 위대한 배우 (고)장국영이 그랬듯. 그로써 송중기 그는 전도연, 송강호, 최민식, 이병헌, 김혜수 등 목하 대한민국 최고 배우들에 견주기 부족함 없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간다. 위에서 ‘비우는 연기’를 말한 연유다. 

한데 그는 그런 대단한 선배들이 하지 못한 미덕마저 실천했다. 다름 아닌 ‘노 개런티’ 출연이다. 그는 그것이 마치 그다지 내세울 것 없는 ‘작은 결단’인 듯 말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쯤은 굳이 강변할 필요 없으리라. <빈센조> 때는 회당 출연료가 2억 정도였고, <재벌집 막내아들>은 회당 3억+α였다는 스타-배우가 영화의 가능성을 믿고 출연료 없이 출연했다는 게, 어찌 별게 아닌 선택일 수 있겠는가. 오해하지 마시라. 다른 배우들도 노 개런티 출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정한 연예 세계’에도 때론 돈보다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새삼 보여줬다는 것을 짚고 싶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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