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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친절한 세계사, 속 깊은 미술' 양정무의 미술 이야기

  • 기자명 이상문 기자
  • 입력 2023.03.26 08:00
  • 댓글 0
  • 사진(제공) : 안규림
속칭 ‘난.처.한. 미술 이야기’로 통용되는 책의 본명은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사회평론). 한국예술종합학교 양정무(56) 교수의 시리즈 역작은 일곱 번째를 지나 8권을 향하고 있다. 이 책이 허다한 미술사 도서들을 압도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두께와 권수에 압도되지 않는 독자들은 또 뭔가.

청년 양정무는 서울대에서 고고미술학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다섯 번째로 오래된 명문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유학했다. 그곳은 미술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학교였다. 도서관보다 박물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학생, 미술관, 박물관 가이드를 가장 재미있게 하는 학생으로 소문나 젊은 날 유명세깨나 탔다고 한다. 물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현주소는 어떤가. 유학 시절 만난 아내와 가정을 꾸려 두 딸을 둔 가장이자 이미 20년 차를 훌쩍 넘긴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미술원의 관록 있는 교수다. 미술 관련 학회장 몇 가지도 맡았다.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의 작가, 에세이스트, 인기 강연자 그리고 유튜버이기도 하다. JTBC <차이 나는 클라스>에도 얼굴을 보였지만 최근엔 KBS 교양프로그램 <예썰의 전당>에서 더 자주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지은 책으로는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1~7권), <시간이 정지된 박물관 피렌체>, <상인과 미술>, <그림값의 비밀>, <벌거벗은 미술관>이 있다. 번역서로는 <신미술사학>, <조토에서 세잔까지-서양회화사>, <그리스 미술> 등이 나와 있다.

양정무라는 이름이 미술계 또는 인문학 분야에서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술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어서다. 오랜 강의 경험이 녹아든 맥락 있는 서술과 설명이 그의 진가다. 그의 책은 말하자면 ‘친절한 세계사이자 속 깊은 미술’ 이야기다. 이를 증명하듯 여러 단체와 기관에서 강의 요청이 이어지고 이런저런 집필 요구도 끊이지 않는다. 

석관동 캠퍼스와 팔당 두물머리 인근의 집을 오가는 일상이지만, 때문에 그는 늘 바쁘고 부산스럽다. 그래도 힘있고도 부드러운 말투와 여유 있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는 비결은 아마도 늘 에너제틱한 그 모습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예종 미술원 캠퍼스 연구실에서 스케줄 빠듯한 그를 겨우 만났다. 두 시간 전에 미리 나와 학교 연구실 청소를 했다는데, 별 성과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먼지가 많아 미안하다며 앉는 그가 얼마나 정신없이 지내는지 알 만하다.
 

내용이나 분량이나 대작이다. <미술 이야기>의 태동이 궁금하다. 출판사에서 초대 특강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강연록을 모아 책으로 만들자는 의뢰를 받은 게 시작이었다. 2016년에 첫 책이 나왔다.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강의노트에다 하고 싶은 얘길 덧붙이고 친절하게 문답식으로 풀어냈다. 그게 이 책의 강점이 된 셈이다.

중간중간 섞인 질문들이 생생하고 유연하다. 강의실 학생과 문답하는 듯도 하고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미술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작품을 보고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얘기를 말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질문들을 통해 이야기를 끌고 가자는 생각이었다. 질문 없이 혼자 현실과 다른 이야기, 너무 학문적인 이야기로 도약하게 된다면 딱딱하고 지루했을 거다. 발을 땅에 붙이고 보통사람들이 진짜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을 수용했다. 그 덕에 나도 더 성장했다.

질문하는 자, 답을 듣는 자가 곧 독자일 텐데, 타깃은 누구였나? 주 대상이 학생인 것 같은 느낌이다. 각 챕터 맨 뒤에 텍스트를 요약한 ‘난처하군’을 위한 필기노트가 있다. 책 제목에서 힌트를 얻어 학생 이름처럼 넣어서 그렇게 보인다. 실제 청소년층, 대학생을 많이 고려했는데 정작 주 독자층은 30대에서 50대까지 성인층, 중장년층인 것 같다. 청소년들은 입시전쟁에 갇혀 있어 이런 방대한 책과는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점이 있다. 특히 해외여행을 다녀왔거나 갈 계획이 있는 분들이 관심을 갖는다. 여행지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면 던지고 싶은 질문들이 있지 않나. 저 작품이 왜 저기 놓이게 됐고, 왜 저기엔 저런 사람이 등장하는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크고 화려하게 표현된 건지, 따지고 보면 다 이유가 있다. 그 배경에 대한 지식을 독자와 대화 형식으로 풀어냈다. 그러다 여기까지 오게 됐다(웃음).”

2016년부터 원시 고대미술부터 풀었고 지난해에 7권을 냈다. 시리즈는 몇 권까지 끌어갈 예정인가. 10권까지 갈 것 같다. 사실 처음엔 8권까지 생각했는데, 중세편이 한 권 늘었고 르네상스 편도 계획보다 더 늘었다. 르네상스 미술이 전공이어서인지 욕심이 더 났던 것 같다. 쓰다 보니 예상보다 할 말이 더 많았고 더 민감했다.

미술사 관련 도서는 시리즈 첫 출간인 2016년 이전에도 허다했다. 뭔가 다르게 주력한 점은 어떤 것이었나? 원시시대 동굴벽화서부터 그리스, 로마,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중세 르네상스를 넘고 현대까지 가야 하는 굉장히 방대한 작업이다. 이런 작업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었던 동력이자 동기는, 기존의 미술사 책들이 아무래도 기본적인 출발이 서양인의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온전한 시각이 미술사 서술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특히 현대미술에 관한 좀 심화된 글은 잘 안 읽힌다.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고 체계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쓰인 글이어서 그럴 것이다. 영국 유학 시절부터 생각한 문제였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1~7권)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1~7권)

시리즈 완결은 언제쯤일까? 2025년까지가 목표다. 학부 때부터 꿈꾼 목표였는데 너무 오래가면 큰 짐이다. 좀 자유로워지고 싶다. 

좋아서 한 일이지만 100% ‘홀릭’만은 아닐 것 같다. 굉장한 분투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알아주셔서 감사하다. 신나서 올라탔는데 이제 좀 내려오고 싶은 느낌도 있다. 하지만 독자들 눈치가 보여서 감히 그럴 순 없다(웃음). 균형을 잡으려고 텐션을 이어가고 있는데 한 번 무너지게 되면 신뢰를 잃게 될까 무서워 계속 가고 있다. 다행인 건, 사실 전체적인 텍스트는 거의 완성되어 있다. 형태와 깊이만 조절하면 된다. 7부 능선은 넘었으니 대견스럽다. 

대중이 원하는 미술 이야기는 뭔가? 피드백은 주로 어떤 내용이었나? 책을 읽고 나니 어떤 작품을 보고 싶다거나,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작품 의도를 놓쳐 아쉽다는 의견이다. 그래서 책을 읽은 뒤 다시 가보고 싶다고들 한다. 미술을 제대로, 다시 보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자극을 주는 역할에 보람을 느낀다.

해설 일변도가 아니라 대화식으로 맥락을 유지하는 게 주효한 듯하다. 그게 강점인데, 그 숙제를 하느라 힘들기도 하다. 흔한 말로 ‘야마’를 잡기 힘들어 끙끙 앓을 때도 많다. 항상 첫 줄이 문제다. 시작이 잘 나와야 풀리는데….

7권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편에선 ‘교황과 황제’ 이야기에 꽤 많은 쪽을 할애했다. 미술사라기보다 역사학이자 인문학 책 같았다. 교황이 서양사에 끼친 영향은 아주 대단하다. 미술사에도 당연히 굉장한 영향을 끼쳤으니 비중을 크게 둘 수밖에 없다. 종교개혁을 설명하려니 배경을 이해하기 쉽게 늘린 점도 있다.

인문학은 곧 역사고 역사는 곧 인문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술 이야기>를 읽은 소감도 그랬다.  그렇다. 역사와 미술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톱니바퀴처럼 서로 밀고 당기면서 진행되는 것이니까. 나는 미술 전공자이니까 미술을 늘 주인공으로 놓지만 배경이 되는 역사 얘기를 빼놓고 할 순 없다. 다른 책보다 그걸 더 주의 깊게, 우리식 시선으로 보여드리려 노력했다.

그림과 조각 등 수록된 작품 수가 만만치 않다. 방대하고 많다. 출판사 분들이 자료 수집과 저작권 해결 등으로 고생 많이 하신다. 각권 평균 쪽수가 500 안팎이다. 그중 150쪽 넘게 그림이 실리니 전권으로 치면 1,500여 작품이 실리는 셈이다.

어디에선가 ‘미술은 여전히 논쟁 중’이라는 말을 했다. 기억에 남는 또는 독자들이 알아야 할 미술계의 쟁점은 어떤 것들인가? 15세기부터 서양미술이 치고 나갈 수 있었던 동력은 원근법이다. 그 기법으로 평면이 입체로 바뀌고 입체가 완전히 과학적인 체계로 바뀌게 됐다. 인체도 훨씬 리얼해졌다. 그 100년 뒤에 생긴 쟁점은 선이냐 색이냐의 문제였다. 미술의 본질이 드로잉에 있냐 색채에 있냐는 것인데, 이 쟁점은 잘 생각해보면 굉장히 합리적인 논쟁이었다. 드로잉은 이성을, 색채는 감성을 상징한다. 이 논쟁은 예컨대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의 대결 같은 것이었다. 두 사람이 직접 붙진 않았지만 미켈란젤로처럼 선을 중심으로 드로잉을 하는 회화와 베네치아의 티치아노처럼 감성적이고 화려한 색채를 앞세운 그림들이 조류상 대립한 적이 있다. 과연 고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도 쟁점이다. 누드가 심각하게 논쟁의 중심이 된 때도 있었다. 현대에 와선 그와 더불어 페미니즘 논쟁도 빈번해졌다. 한국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쟁점은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아닐까? 지금도 한국 작가들의 고민은 ‘한국적인 게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엘리트 미술이 중하냐 대중미술이 중하냐도 늘 쟁점 아닌가? 사실 대개의 쟁점엔 답이 없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균형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미술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버린다는 것은 우열론에 종속되는 건데 그건 옳지 않다. 미술은 다양성이 확보돼야 한다.

미술을 ‘감상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영역인가, 결국 같은 것인가. 어느 쪽이 우선인 게 좋은가. 가장 보편화된 예술이 뭘까 생각해보면 미술은 음악보다 더 보편적이고 다양하고 역사가 길다. 아주 간단한 미술도 레퍼런스가 많다. 문자의 시대는 기껏해야 오천 년이지만 인간이 흔적을 남긴 미술의 역사는 훨씬 길고 방대하다. 그러니 그걸 추적하고 이해하는 일은 복잡하다. 우리가 좋은 음악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미술도 직면했을 때의 느낌을 즐기는 게 가장 좋은 자세다. 하지만 미술을 좀 더 깊게 이해하려면 역사와 스토리를 뒤집어봐야 더 재미있다. 직접 미술 행위를 하거나 감상하는 게 미술의 한 축이라면 다양한 레퍼런스를 가지고 미술을 이해하는 것도 한 축이다. 모든 미술작품은 우리 삶과 연결돼 있다. 이미지만 있는 게 아니라 기록과 데이터도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이미지로서의 미술뿐 아니라 인문학으로서의 미술도 꼭 필요하다.

여성미술과 여성작가에 대한 책이 근래에 부쩍 많아진 느낌이다. 왜 지금인가? 특별히 지금인 이유는 없다. 이미 있어야 할 연구들이 늦게 이루어진 것뿐이다. 린다 노클린이라는 미술사학자는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었는가?’라고 1971년에 물었다. 세 편의 관련 논문도 나왔다. 이유가 뭘까? 연구자들이 충분히 던질 수 있었고 던져야 될 질문을 아무도 안 던졌기 때문이다. 연구를 안 했으니 위대한 여성미술가를 발굴하지 못한 것이다. 또 하나, ‘위대한 미술’이라는 기준에 남성 우월주의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미술이란 게 상상의 세계, 재연의 세계, 장식의 세계, 이쁜 세계이기도 하지만 보기 좋지 않은 치열한 역사를 담은 세계 아니겠나. 편견과 불평등을 이겨내고 치열하게 산 여성 화가들이 그나마 존재해왔기 때문에 발굴이 더 빛난다. 최근엔 인상주의 여성 화가들이 재조명되고 주목받는다. 메리 카사트, 베르트 모리조 같은 작가들이다.

로마 미술 이야기를 하다가 ‘두 개의 우주선’을 상상해낸 걸 보고 놀랐다. 아무도 생각해본 적 없는 유니크한 상상력 같다. 혼자서 상상했다. 처음일 테니 크레딧을 넣어야 될까?(웃음) 2020년 2월 코로나 시작 때 로마에 머물고 있었다. 사람들이 코로나 어쩌구저쩌구 웅성거릴 때 아무것도 모른 채 판테온과 콜로세움 옆에서 커피 마시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이 엄청난 세계를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하는지 턱을 괴고 고민하다가 생각해냈다. 판테온 안에 들어가 보면 정말 우주선 안에 있는 것 같다. 천장 뚜껑이 열릴 것 같고 그러면 곧 날아갈 것 같고…(웃음).” 

일곱 권이 나와 있고 곧 열 권이다. 너무 많아 기가 질려 더 읽기 난처해질지 모른다. <난.처.한. 미술 이야기> 영리하게 읽는 팁을 달라. 시리즈로 이어지는 열 권이지만 각각 개별적인 책이다. 각각 단행본이라 생각해도 좋다. 그래도 굳이 묶음을 정하자면 1, 2권과 3, 4권 그리고 5, 6, 7권을 번들로 나눌 수 있다. 각각 고대와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 편이다.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건 3권과 4권이다. 쓰고 난 뒤 완주에 대한 자신감을 확실히 갖게 됐다.

중세 편이 까다로웠던 모양이다. 뭐가 어려웠던 건가? 중세 미술은 설명하기가 굉장히 미묘하고 어려운 부분도 많다. 내가 이걸 잘 설명해낼 수 있을까 부담스러웠다. 예컨대 이미지 대 반이미지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는 쟁점이라 민감하다. 성당에 가면 성모 마리아상이 있지만 개신교 교회에 가면 성상은 없고 십자가만 있다. 성상을 숭배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중세엔 그 논쟁이 굉장히 치열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가장 큰 쟁점도 그거였고, 동로마와 서로마로 갈라진 제국도 다 그 문제가 불씨였다. 민감한 문제라 균형 있는 설명이 필요했다. 그 부분이 잘 해결됐는지 성직에 계신 분들이 피드백을 보내주셨는데 좋게 평가해 주셨다.

강단에 서는 데다 <미술 이야기>만도 큰 짐인데 <벌거벗은 미술관>, <그림값의 비밀> 등 에세이 단행본도 적잖다. 슈퍼맨인가? <미술 이야기>는 강의식으로 썼다. 설명체에만 익숙하다 보니까 소금기가 약간 빠지는 걸 느꼈다. 평론가 같은 시선도 좀 필요하고, 때론 어떤 작품에 대해 특별히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고, 뭐 그럴 때가 있다. 쉽게 말해 내 색깔을 좀 더 내보이고 싶어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바쁘게 시간을 쪼개야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자꾸 하려 든다.

어릴 때 부엌 위 다락방에서 끼고 본 ‘백과사전 속 삽화’ 덕에 이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어떤 아이였나? 대전에 살다가 초등 5학년 때 바로 이 동네(한국종합예술학교가 있는 석관동)로 이사와 오래 살았다. 전학 초기라 낯설어서 5, 6월까지 쓸쓸하게 지냈는데 부엌 위 다락방이 위안을 준 놀이터였다. 백과사전을 자주 펼쳐봤는데 글보다 그림이 눈에 잘 들어왔다. 그러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나름 자주 간 것 같다. 거기 가면 시간이 잘 갔다. 초중고 통틀어 역사 과목 성적이 제일 좋았다. 자연스럽게 고고미술학과(서울대)를 지원하게 됐다. 부모님은 상경대를 가라며 당연히 반대하셨지만 고집을 부렸다. 고고학에 매료된 거지 꼭 미술을 택하자는 건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내가 미술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대학생활은 만족스러웠다. 배우는 게 즐거웠고 좋은 교수님들 가르침을 잘 받았다. 감사해서 지금도 은사님들과 계속 연락하며 지낸다.

연구자가 아닌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하긴 어떤 분은 미술사라는 학문이 있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내가 작가인 줄 알기도 한다(웃음). 작가가 될 생각 없고 소질도 없지만 혼자 끄적거리며 그리는 취미가 있긴 하다. 주제 파악을 잘하고 있어 절대 취미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A3 용지 펼쳐놓고 생각을 그리고 자료도 그리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대학 때부터 굳어진 습관 같다. 당시엔 인터넷도 디지털카메라도 없어서 강의시간에 등장하는 작품을 기록할 도리가 없었다. 시험은 봐야 하는데 기억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나눠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 수가 많으면 ‘넌 필기, 난 그림’ 하는 식으로 아예 분담을 했다(웃음). 동양미술사 수업 때 그린 노트를 잃어버렸는데, 그거 보면 산수화가 가득이다(웃음). 덕분에 시험에서 작품 놓친 적이 딱 한 번뿐이었다. 불상 작품 제목이었다.

영국 유학 생활은 평탄했나? 웬만한 유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다 겪었다. 언어도, 생활도, 경제도 문제가 없는 게 없었다. 영국 학교들은 장학금도 별로 없어 더 힘들었다. 공부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도 불안이고 특히 논문은 더 고통스러웠다. 중간에 1년 남짓 한국에 있긴 했지만 햇수로 치면 9년 유학이었다. 재미도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같은 학교에서 아내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캠퍼스 커플로 연애하다가 유학 중 결혼했다.

미술과의 인연도 이제 꽤 오래됐다. 소장가인가? 그럴 수준은 전혀 아니다. 주변에 아는 작가 전시에 가면 응원의 뜻으로 부담 안 되는 작품을 사긴 한다. 그런 것들이 조금 모아졌을 뿐이고, 다시 판 적은 없다. 아무래도 미대 교수이니 작가들과 교류가 꽤 있다. 미술비평도 종종 하게 된다. 한국 작가들이 저평가됐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라 그들과의 교류와 응원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적 모임은 없지만 학회는 열심히 참여하려 한다.

수많은 작품을 접했을 텐데, 그중 개인 취향에서 손꼽는 원픽이 있을까? 원픽을 꼽는 건 불가능하다. ‘저 정도면 정말 명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클라스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억지로 꼽으라 한다면 한 가지 답변은 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에 막 공부하는 작품이 원픽이다. 지금으로 치면 ‘폴리베르제르 술집’이다. 마네의 그 그림을 열심히 보고 있다. 영국 코톨드 갤러리에 항상 걸려 있어 유학 시절에 수시로 봤던 작품이다. 그렇게 오래 봤으면 뭔가 답을 내야 하는 의무감, 부채감 같은 게 있다. 최소한 에세이 한 꼭지라도 써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웃음)

시리즈가 완결되고 나면 다음 단계는 뭔가? 그만해야 하지 않겠나. 물론 작가론이나 명작 이야기 등 쓰고 싶은 것들은 종종 쓸 테지만 연작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오래전부터 꿈꾸는 희망은 있다. 학자로서 성취하고 싶은 업적인데, 한국현대미술사를 영어로 써보는 작업이다. 영어로 쓴 한국현대미술사가 될 거다. 한국어로 쓴 한국현대미술사를 영어로 번역해낸 책으로는 그들이 우리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이해할 코드를 영어로 건드리는 책을 내고 싶다.

근래 다시 읽은 <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에서 전엔 보지 못했던 존 러스킨(영국 미술평론가 겸 화가, 사상가)을 만났다. 그는 예술엔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고통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헤아려보는 것이라 했다. 그럴 듯한 소리 아닌가.

러스킨의 목적 달성법이 ‘데생’과 ‘말그림’이었다면, 양정무의 실천은 ‘미술 전도사’의 삶을 사는 것 아닐까 싶다. 가시든 융단이든 그가 펼쳐놓은 세계사엔 ‘속 깊은 미술’ 이야기가 가득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며 저절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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