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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로 나온 장애②] ‘유나 엄마’ 나경원 전 의원 “한없이 희망적이었다가 한없이 무너지기도”

  • 기자명 이근하 기자
  • 입력 2022.08.28 06:40
  • 수정 2022.08.29 10:19
  • 댓글 0
  • 사진(제공) : 안규림, 나경원 전 의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우영우의 아버지는 자폐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묻는 딸에게 “자폐인과 사는 건 꽤 외롭다”고 답했다. 자폐인의 부모라면 겪고 있을 고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시청자라는 나경원 전 의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에게서 발달장애인 딸을 둔 엄마의 현실에 대하여 들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자주 보고 있다고 들었다. 평소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남편이 먼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라고 했다. 역시 문화의 힘을 느꼈다. 정치를 시작하고 노력한 것들 중 하나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었다. 쉽게 말해 장애인도 당당하게, 장애인 정책은 시혜나 배려가 아니며 인간으로서 당연히 존중돼야 하는 권리라고 알려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했는데 많은 분들이 드라마를 통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 다행이다. 다만 현실의 장애는 유형이 너무나 많고 경중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우영우’ 하나로만 재단해선 안 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지적 장애인은 사랑할 수 없는 것인가를 다룬 내용이 기억난다. 서른 된 딸아이가 늘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고, 혼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해당 방송분에서 지적장애인의 엄마가 이런 대사를 한다. “우리 혜영이 몸이고 돈이고 마음이고 다 뽑아먹으려는 나쁜 놈들에게서 혜영이를 지켜야 한다”고. 혹 그 대사가 와 닿았던 것인지? 장애인에 대한 정책이라든지 모든 건 바로 장애인의 시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내가 장애인 아이를 둔 엄마이지만 우리 딸과 나는 또 다르다. 그런데 그 대사는 너무 엄마의 시각이 아니었나 싶다. 엄마는 딸이 상처받고 이용당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랬겠지만 딸이 그 남자를 정말 좋아했다면, 엄마의 시각으로만 재단하는 것이 맞을까. 모든 생각의 중심은 당사자여야 한다. 우리 유나가 앙상블 같이 하는 남자애를 좋아한다. 연습하고 오면 맨날 그 친구 이야기만 한다. 한 달에 90만 원씩 꼬박꼬박 모아서 독립하겠다고 한다. 독립을 시킨다고 해서 방치할 순 없고 양측 엄마가 각자 개입해서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자신이 없다.(웃음) “엄마가 바빠서 너도 제대로 못 봐주는데 지방에 사는 그 친구까진 힘들다”고 한 적 있다. 그랬더니 유나 왈, “서울 사는 앙상블 친구를 사귀어 볼까?”(웃음)

독립을 시켜도 안 시켜도 걱정인 게 부모 마음 아닐까. 유나 씨가 독립한다면 유난히 걱정되는 부분은?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많다. 유나는 인터넷 검색, 네이버 길 찾기를 굉장히 잘한다.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시켜서인지 문장력도 좋고 카카오톡 메시지 보내기도 잘한다. 지하철 타기는 나보다 잘한다. 솔직히 나는 지하철에 익숙하지 않지만, 유나는 혼자 매일 두 번씩 환승하면서 다닌다. 유나가 “엄마 이쪽이야” 하면서 당당하게 나를 끌고 다닌다. 대신 손의 협응력이 약한 편이라 핀 꽂기나 운동화 끈 묶기를 잘 못한다. 유나보다 언어 표현력은 약한데 다른 부분을 더 잘하는 친구들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저마다 다르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로서 가장 힘든 때는? 상대방이 우리 아이에 대한 이해가 없을 때다. 심지어 장애인 아이가 있는 엄마들끼리도 서로 이해 못할 때가 있다. 아이마다 특성이 다르기도 하고, 결국 ‘내 아이’, ‘네 아이’가 있는 거다.

딸이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알고서 눈물 흘리며 출근했다는 인터뷰 기사를 봤다. 그때와 지금의 마음가짐을 비교하면? 많이 담담해졌고 우리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더 깨닫고 있다. 딸이 내 껌딱지라서 행복하다. 서른 된 딸한테 엄마아빠랑 여행가자고 하면 따라나서는 애가 어딨나.(웃음) 오늘날까지 한없이 희망을 가졌다가 또 한없이 슬럼프에 빠지기를 거듭한다. 아이의 장애 진단을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은 모든 부모가 느꼈을 거다. 우리 아이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됐다. 우유병을 빨 수 있을까조차 의심이 들었다. 근데 키우다 보니 우리 애가 남들보다 느려도 할 순 있다는 희망을 본다. 그렇게 희망에 부풀다가 한순간 무너지기도 한다. 애가 나이가 들수록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유나처럼 장애 정도가 아주 심하지 않은 경우는 자기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 다른 사람과 차이가 있다는 걸 인지한다. 남이 나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유나 씨를 키우는 동안 사회적 장치, 시선의 변화 등을 체감하나? 엄청 달라졌다. 전과 비교하면 장애인에게 기회가 많아졌다. 유나를 키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장애인 통합교육이 가능하느냐가 논의될 정도였는데, 지금은 통합교육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사실 나는 장애인 조기 치료·발견, 특수교육법 개정안, 특수교사 증원 등이 정착되도록 노력을 많이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을 더 많이 배우게 된 것 같다. 요즘은 장애인 고용 문제에 대한 고민이 크다. 

나경원 전 의원과의 인터뷰 전날 유나 씨는 앙상블 공연 무대에 올라 드럼을 연주했다. 
나경원 전 의원과의 인터뷰 전날 유나 씨는 앙상블 공연 무대에 올라 드럼을 연주했다. 

유나 씨가 도서관 사서 보조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코로나가 기승했을 때 딸이 너무 화를 내더라. 사람들이 왜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느냐면서. 코로나가 창궐해서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출근을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장애인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임금을 받고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함도 있지만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자존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득 유나 씨는 나경원 전 의원이 엄마라서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사회적으로 목소리 높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나. 복이 있는 걸까. 우리 유나가 진짜 행복할까? 유나가 너무 안됐다. 엄마의 정성에 따라 장애 아이가 더 발전하는 경우도 있는데, 유나는 그러질 못했다. 나는 너무 바쁜 엄마였다. 장애인 행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우리 애는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 이 행사는 우리 유나도 참석했으면 좋았을 텐데’ 한다.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가 취직하면 찾아가기도 하는데 나한테는 쉽지 않다. 엄마로서 나는 빵점이다. 

(나 전 의원과 인터뷰를 마친 뒤 유나 씨와 짧은 전화 통화를 나눴다. 유나 씨는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늘 웃어주는 멋진 엄마다. 본받을 점이 많다”고 말했다.)

유나 씨가 딸이라서 얻은 게 있다면? 유나 덕분에 상대방의 입장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유나 씨보다 어린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장애인, 비장애인(둘째 아들) 둘 다 키워보니 아이 키우는 건 비슷하더라.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다. 무척 힘들 때도 있지만 기쁨을 받는 부분이 더 크다. 결국 모든 부모에게 아이는 무한한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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