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의 엇비슷한 얼굴 속에서도 영국인들을 구분 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들의 표정, 행동 등에는 ‘여유로움’이 있다. 시종일관 ‘Happy’한 표정에 유머스러운 말투. 영국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식민지를 거느리던 시절엔 “해가지지 않은 나라”라고 일컬었다. 강대국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했던 말. 이런 막강한 힘이 내면 깊숙이 ‘자신감’으로 스며들어 오늘까지도 이어오는 ‘몸 짓’ 인 듯하다. 필자는 멋진 런던 탑을 바라보면서 천일의 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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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런던.

 

런던 유명 여행지 둘러보고

영국 시인 겸 평론가인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 1750~1784)런던에 싫증난 사람은 인생에 싫증난 사람(When a man is tired of London, he is tired of life)”이라는 말을 했다. 이 속담을 알게 되면 인생이 싫증난 사람들은 런던으로 가야 할 것 같다. 과연 싫증난 인생을 되돌려 줄만한 가치를 런던은 갖고 있을까?

 

엘리자베스 2(Elizabeth II, 1926421~)가 살고 있는 버킹검 궁전(Buckingham Palace, www.royalcollection.org.uk), 찰스 황태자(Charles Philip Arthur George Windsor, 1948~)가 현재의 부인인 카밀라와 함께 살고 있는 켄싱턴 궁전, 웨스터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과 궁전 등을 주마간산으로 찾아본다. 영국은 현재까지도 왕족을 이어가는 독보적인 도시다. 또 템즈강(Thames River)을 바라보며 영화 <애수>를 떠올렸고,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강변 너머의 런던아이(London Eye),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1824년 개관),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등 귀에 익숙한 곳들을 찾아본다. 박물관 근처에서는 찰스 디킨스의 집이 있다고 해 집 입구만 기웃거리다가 돌아서고 만다. 이 모든 것은 런던을 여행 한다면 꼭 가봐야 할 대표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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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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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탑 그림.

 

동화 속 성 같은 런던 타워

 

 
대부분 관광객들이 그렇듯이 런던 타워(Tower of London)를 찾는다. 템즈강변을 옆에 두고 거대한 성과 멋진 다리가 어우러져 겉으로만 보면 런던의 그 어느 관광지보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모양새는 탑이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성역처럼 보인다. 한 편의 동화 속에 나오는 성 같다. 정식 명칭은 여왕 폐하의 궁전이자 요새인 런던탑(Her Majesty's Royal Palace and Fortress of the Tower of London)이다. 런던탑은 역사적 궁전의 하나로 1988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이 성은 역사는 길고 얽힌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간략하게 역사를 소개하자면 노르만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인 1066년에 세워진 요새를 기반으로 건축되었다. 런던탑의 명칭은 1078, 정복왕 윌리엄이 왕위에 오른 직후 가장 먼저 지은 탑이 중앙의 화이트 타워(White Tower). 높이가 30m11세기에는 런던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그 후 역대 국왕들이 확장시켜 10여 개 탑과 높은 성벽으로 이뤄진 지금과 같은 성이 완성된 것. 이어 헨리 3세는 1216~1272년에 걸쳐 내부의 원형 성곽을 건설하였다. 이후에도 증축과 개축이 반복되면서 14세기 무렵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갖게 되었다. 한 때는 감옥으로, 한 때는 행정기관으로 또 왕립 보물창고로도 사용되었다. 여러 차례 주요 인사를 감금한 역사가 있지만, 런던탑의 주요 기능은 감옥이 아니라 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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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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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킹검 궁전.

 

아름다움 속에 가려진 피의 역사

기억창고 속에는 더 강렬한 것을 보관하기 마련이다. 겉모습은 아주 아름다운 궁전이지만 이곳에서 벌어진 권력과 왕좌를 둘러싼 피의 역사가 더 깊게 각인된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나 등장할 사자가 감옥 위에서 서성거리는 동상만 봐도 이곳의 살육이 감지된다.

 

타워 한쪽에 있는 블러디 타워(Bloody Tower)15세기 후반, 12세에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5세와 동생이 삼촌에 의해 유폐되었다가 처형당한 곳으로 추정된다. 장미 전쟁의 와중에 에드워드 5세와 요크 공작 리처드가 런던탑에 갇혔다 행방이 묘연해지는 런던탑의 두 왕자 사건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누군가 감옥에 가는 것을 탑에 보낸다(Sent to the Tower)”라고 하는 풍속이 생기기도 했다. 16세기에서 17세기 동안 런던탑은 많은 인사들을 감금하는 장소였다. 타워 그린(Tower Green)은 앤 불린(Anne Boleyn, 1501~1536)을 포함한 헨리 8세의 두 부인, 헨리 그레이의 딸 제인 그레이(Jane Grey) 등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처형되었고, 엘리자베스 1세를 비롯해 유폐되었다가 풀려난 이들도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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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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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터민스터 궁전.

 

헨리 8세의 아들을 낳아주겠다는 앤블린

 

 
그중 긴 세월 동안에도 계속 회자되는 이야기는 천일의 앤이다. 영화(천일의 앤, 천일의 스캔들 등), 드라마, 책으로 익숙한 천일의 앤. 역사적 사실의 큰 틀은 바뀌지 않는다지만 작가, 감독의 시각에 따라 앤블린의 인물 조명이 달라진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도 겉만 아는 경우는 허다하다. 앤블린의 이야기를 되짚어보자.

 

 

앤은 헨리 8(1491~1547)의 두 번째 왕비며 튜더 왕조의 마지막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다. 앤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 강했던 여자였던 듯하다. 프랑스에서 교양을 쌓고 돌아온 앤은 후계자인 아들을 간절히 원하는 헨리8세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헨리8세 또한 첫 부인인 캐서린(스페인인)은 본인의 의지로 선택한 배우자가 아니었다. 형이 죽자 그의 나이 17살에 5살 많은 형 부인과 결혼해야만 했다. 정치적인 성향이 컸다. 첫 부인은 메리라는 딸 하나 낳았을 뿐 헨리 8세가 원하는 후계자 아들을 낳지 못한 상황이었다.

 

헨리8세가 간절히 새로운 여자를 원하고 있을 시점에서 앤이 캐서린의 시녀로 들어가게 한다. 왕의 눈에 띄기 좋은 환경을 일부러 만든 것. 아들을 낳아주겠다는, 젊고 아름다우며 당찬 여인의 유혹은 교묘한 줄다리기를 하면서 헨리8세의 정복력을 자극했다. 앤은 자기가 낳은 자식이 절대 서자가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헨리 8세는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교황에게 첫 번째 부인인 캐서린과의 결혼 무효를 신청했다. 그러나 교황 클리멘스 7세는 이를 인정할 수 없는 정치 외교적 입장에 놓여 있었다. 캐서린의 조카가 카를 5세였기 때문에 헨리와 캐서린의 이혼을 인정하게 되면 스페인 왕국과 합스부르크 왕가와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었기 때문. 클레멘스 7세는 헨리 8세의 요구를 차일피일 미루며 수년 동안 결론을 내지 않았다. 헨리 8세는 자신의 후계자인 아들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더욱 초조해지고 결국 교황과 대립해 영국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1533125일 앤 불린은 헨리 8세와 비밀결혼을 했고, 부활절에 이 사실을 공포했다. 이혼을 용납하지 않은 카톨릭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해 행해진 일이다.

 

영국의 첫 번째 여황인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

그해 9월 앤블린은 공주(엘리자베스 1)를 낳았으며 1534년 아이를 유산하고 15361월 왕자를 사산하였다. 아들을 원했던 헨리 8세는 이미 제인 세이모아(Jane Seymour)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다. 앤은 아들을 낳지 못한데다 남편의 변심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앤은 남동생에게 힘 떨어진 헨리 대신 동침을 원한다. 그게 화근이 되어 간통과 근친상간 오명을 쓰고 처형되었다. 그녀가 헨리8세와 첫 동침을 하던 날부터 단두대에 처형당하는 날까지가 딱 1000. 그래서 천일의 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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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터민스터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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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디리.

 

행복은 안경과도 같다

필자가 갔던 시기에는 성벽 주변이 온통 붉은 양귀비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1차 대전 중 전사한 젊은이들을 기리기 위해, 영국인 전사자와 같은 수인 888246개의 양귀비 꽃. 붉게 출렁이는 모형 꽃을 보면서 전사자 뿐 아니라, 긴 세월 얼마나 많은 피들이 템즈강으로 흘러갔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타워 앞 템즈강을 잇는 런던 브릿지와 87층의 더 샤드(The Shard, 2012년에 완공) 빌딩의 야경이 물빛에 흔들거릴 때 상념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남의 나라 역사를 재조명하면서 영국 속담인 행복은 안경과도 같다(Happiness is like the glasses)’는 말을 떠올렸다. 이 말은 평소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볼 땐 자신이 행복한지 몰랐다가 안경이 깨진 다음에야 행복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는 의미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인생이 보이는 것을. 우리는 늘 객관화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Travel data

항공편: 인천 영국 런던행 직항 이용해 히드로 공항까지 약 11시간~12시간 정도 소요.

현지 교통:런던 지하철은 ‘underground’ 혹은 ‘tube’라고 한다. 언더그라운드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용해보면 매우 복잡하다. 나름 색깔로 구분하게 좋게 했다지만 프랑스의 지하철하고는 비교 안 된다. 실제로 지하철 도우미가 걱정스럽게 다가와 어려워요라는 한국말을 구사했다. 선진국의 지하철이 왜 이리 복잡하고 어려울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도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버스만 이용할 수는 없으니 감안해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런던 시내 카드 구입 방법:

 
가장 중요한 것은 런던에 머무는 날짜다. 날짜에 따라 오이스터(Oyster)카드를 구입해 충전해서 이용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트래블 카드를 구입할 것인지를 선택하면 된다. 런던에서 5~6일 이상 여행할 거라면 오이스터 카드를 구입해 트래블 카드 7일 권을 추가 지불(Top-up)해서 쓰면 된다. 오이스터 카드는 보증금이 필요한데 런던을 떠날 때 돌려 받을 수 있다. 안내 창구에 가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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