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홀리데이(2006)> 라는 미국 코미디 영화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 죽이기’로 딱 좋은 영화다. 만약 본인이 ‘시한부 인생이 된다면’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 이 영화는 비극이 아닌, 유쾌하고 재미있게 풀어 관객들에게 큰 대리만족을 준다. 그 영화의 촬영지가 바로 체코의 카를로비 바리다. 시한부 인생이 되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인지 그 도시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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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비 바리

 

 

프라하 중앙역의 티켓 창구의 스텝에게 마리안스케 라즈네 들렀다가 카를로비 바리로 가겠다고 말했더니, 방법을 찾아낸 듯, 척척 표를 끊어주었다. 마리안스케 라즈네 역에서는 헤프(Cheb)역을 거쳐서 카를로비 바리(Karlovy Vary)로 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헤프 역에서 카를로비 바리까지 가는 열차가 함흥차사다. 분명히 먼 거리가 아니라서 버스 편이 더 나을 것 같지만 그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기차역에도, 버스 정류장에도 사람이 없다. 헤프의 식당에 죽치고 앉아 있기도 지루해서 시내를 왔다갔다 하면서 시간을 떼운다. 

 

어둠이 내릴 즈음에서야 겨우 열차를 타고 카를로비 바리 역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넘었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더 난감하다. 작은 간이역(상역)은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다. 기차역 지킴이도 없고 같이 하차했던 몇 사람도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할 수 없이 불빛을 따라 내려오지만, 카페 또한 인기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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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비 바리 퍼브호텔

 

 

그렇다고 방법이 없을까? 그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택시가 온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호텔 주소를 기사에게 보여준다. 분명히 기차역에서 1km 지점의 호텔을 예약해 두었었다. 기사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안하는지는 체코어로만 말하고 있다. 택시는 구불구불한 언덕 길로 가고 있다. ‘촉’ 없어도 빙 둘러 가는 느낌은 여실하다. 요금기는 90부터 시작해 몇 초만에 160~170을 넘어섰다. 기사는 길 건너편이 찾는 호텔이라면서 돈만 받고 떠날 생각이다. 그를 붙잡는다. 바가지 택시비보다는 호텔을 찾아내는 게 더 문제다. 그들은 쉽게 호텔 간판이 보이지만 낯선 도시에 도착한 여행객은 어려운 일이다. 호텔지기 할아버지에게 택시비가 얼마 정도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기사에게 얼마 주었느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영악하게도 답변을 회피했다. 그 택시기사가 기본 요금도 안 나오는 거리를 몇 배나 올려 바가지를 씌웠다는 것을 아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날이 밝아서 거리에 나서보니 직선거리로 겨우 4km. 천천히 걸어서 1~2시간이면 다 돌아볼 정도로 도시는 작다. 전 세계 택시기사들은 늘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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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왕이 사냥하다 발견한 온천 단지

호텔은 편안했고 조식도 훌륭해서 하루 더 머물 생각이었지만 하룻 사이 몇 배의 가격이 올라 버렸다. 카를로비 바리의 국제필름 페스티발(매년 7월) 때문이다. 호텔을 나오니 흰색의 건축물인지 아니면 날씨 덕분인지 눈 앞이 환해진다. 프라하에서 서쪽으로 약 125㎞ 떨어진 지점에 인구는 5만명 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도시. 예로부터 이 도시는 인근의 마리안스케 라즈네, 프란티슈코비 라즈네와 함께 ‘보헤미아 온천 삼각지대’로 불렀다. 

 

카를로비 바리에서 가장 먼저 온천이 발견되었다. 온천 발견자는 135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 4세(1316~1378)다. 사냥 나온 황제는 화살촉에 맞은 사슴이 도망치다가 이곳 연못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봤다는 게 온천 발견 유래다. 한국의 온천 발견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다. 이곳 지명도 ‘카를의 온천’이란 뜻의 체코어 ‘카를로비 바리’가 된 것이다. 그 이후 이 온천단지는 대대적으로 발전을 거듭한다. 18세기에는 왕족, 정치가, 수많은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가 되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가족,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 등 왕족과 쇼팽, 바그너, 브람스, 리스트, 바흐 등의 음악가, 카프카, 괴테 등의 작가들이 자주 방문했다. 유럽의 저명인사들이 휴양여행으로 즐겨 찾던 곳이라 '유럽의 사교장'이라는 애칭도 붙었다.

 

특히 독일 바이마르에 살던 괴테는 총 13차례에 걸쳐 이곳 온천단지를 찾아 요양생활을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괴테가 젊은 시절에 밤새 술을 마시다가 새벽에 도망치듯 스위스로 여행을 떠나버린 곳도 이곳이었다. 또 그의 마지막 사랑은 인근 마리안스케 라즈네였다. 반면 바흐(1685~1750)의 사연은 슬프다. 의사의 권유로 가끔 온천 여행을 해야 했던, 레오폴드 대공은 이곳을 찾을 때마다 궁정악장과 악단을 데리고 왔다. 당시 쾨텐의 궁정악장이었던 바흐는 수백킬로나 떨어진 이곳에 대공 일행과 함께 온천 여행을 했다. 1720년, 두 번째 온천 여행(5월 말~7월 초)때, 근 한 달 넘은 출장을 마치고 집에 들어선 바흐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가 죽은 것이다. 출장이 길었던 탓에 이미 장례까지 치른 상황이었다. 아직 어린 네 아이들만 남기고 가버린 아내를 잃은 35세의 바흐의 슬픔이 그려진다. 바흐 마음속에 이 도시는 어떤 마음으로 자리 잡았을까?

 

이 온천단지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의 와중에도 명성을 잃지 않았다. 그러다 1948년 공산혁명 이후 외국인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20세기 후반부터 최근까지 휴양도시로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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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비 메인 타운

 

 

오랜 임상 실험등으로 건강과 직결하는 온천 효용법 관리

체코 북서쪽 독일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카를로비바리는 인구 5만 명의 소도시다. 도심 중심거리(TG Masaryka)에서 높은 산이 보이지 않는 것은 마치 분지처럼 푹 들어간 지형 때문이다. 도심 중간을 가르며 테플라(Tepla) 강이 가로 질러 흐르고, 길 양 안으로는 18세기의 건축물들이 이어진다. 이 도심의 천연 온천공은 약 12개~13개. 수백 년 동안 땅속 2,000m 아래에서 분당 2,000리터가 분출되고 있다. 온천수 수온은 42∼72℃로 고온이다. 원천이 있는 도시의 중심부로 갈수록 물의 온도는 높아진다. 탄산, 유황, 식염 등 40개 이상의 성분을 가진 좋은 수질은 질병치료에 큰 효과가 있다. 체코 온천수에 대한 연구는 매우 과학적이다. 전 세계 30개 국의 의학연구원들이 이곳에서 온천에 대한 연구를 하고 35년간 실험과 연구를 통해 검증된 치료만 시행하고 있다. 인근 유럽이나 러시아 등지에서는 관광 겸 치료 목적으로 2, 3주간의 여유를 갖고 이곳을 찾는다. 본인이 원한다면 온천 전문 의사는 개개인에 맞는 이용법과 치료방법을 제시해준다. 시 관할인 온천공은 다른 물이나 불순물이 섞이지 않도록 수질 관리를 잘 한다. 자연이 준 선물, 천연 온천수를 이용해 건강과 연결해 관광상품화 한 것은 부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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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수 전용 컵

 

 

온천 컵에 뜨거운 철분 온천 수 마시고 150년 된 전통 온천에서 시욕하고

체코의 온천 활용법에서는 온천수 마시는 것에 큰 중점을 부여한다. 거리에는 누구나 공짜로 온천수를 마실 수 있는 콜라나다(온천이 솟는 주랑)가 몇 곳 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온천수 전용 컵’을 들고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마신다. 수도꼭지마다 물 맛이 제각각 틀리고 성분, 효과, 온도도 다르다. 환자들은 하루 8~12리터를 마시면 좋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구토와 설사를 하지만 그 이후에는 몸이 좋아지는 걸 느끼게 된다. 일반인의 경우에는 하루 1.5~2리터 정도 마시면 된다. 하지만 철분 맛이 강한 온천수 마시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온천수 전용 과자’를 개발했는데, 맛은 괜찮아 마시는 게 조금 수월해진다. 이 온천수를 마시면 혈압 수치를 낮추고 아토피는 2주면 완치된단다.

 

온천욕을 하려면 적당한 온천장을 찾아가야 한다. 크고 작은 온천 호텔이 300여 개나 된다. 온천장은 시설, 수질, 성분, 부대시설 등이 제각각이다. 필자는 ‘관광안내원’이 추천해준 ‘SPA 5’를 이용한다. 카를 4세가 발견한 원탕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새로 생긴 다른 온천장에 비해 시설은 재래적이지만 가격은 저렴한 편이다. 매표할 때, 일단 시욕 시간을 정해야 한다. 이용시간이 길어지면 가격도 올라간다. 탕 안에서 수영복을 입어야 하며 남녀노소 같이 이용한다. 시설은 우리나라의 대형 스파하고는 거리가 멀다. 탕 속에 몸 담그고 빼는 것만 반복해야 한다. 온천수에 달궈진 몸을 식힐 냉탕은 바가지 하나 넣을 정도의 크기다. 이미 한국식 스파에 길들여진 필자에게는 이 원탕의 시설은 부족할 뿐이다. 더 건강체험하고 싶다면 물리치료, 마사지 등을 추가로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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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비 바리 국제 영화제 포스터

 

 

영화의 도시,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

해마다 7월, 국제필름페스티발이 열리는 기간에는 온 도시가 잔칫날이 된다. 유명 배우들, 영화 관련인, 관광객들로 온 도시는 부산하고 활력이 넘쳐난다. 1948년부터 시작된 국제영화제는 동유럽을 넘어서 이제 유럽의 대표적인 영화제로 자리를 잡았다. 이 국제영화제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고,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이 경쟁부문에 초청됐으며, 홍상수 감독의 특별전 등이 열렸다.

 

영화제가 열리는 날이면 그랜드호텔 푸프(Grand Hotel Pupp)는 더욱 부산하다. 1701년에 설립된 이 호텔은 300년도 넘게 이 지역의 지킴이 역할을 한다. 합스부르크 왕가 가족이 온천여행을 오는 날이면 으레 이 호텔에서 머물렀다. 긴 세월 동안 조금씩 증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는데 외관만으로도 충분히 고풍스럽고 화려하다. 호텔 로비에는 영화, 영화인등에 관련 사진들이 걸려 있다.

 

무엇보다 이 호텔은 영화 <라스트 홀리데이>의 촬영 장소다. 일만 하고 살던 또순이, 주인공 여사. 어느 날, 의사로부터 암을 선고 받고 그녀가 평상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실행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카를로비 공항에서 택시 타려는 사람들의 긴 줄을 보고 전용비행기를 불러 이곳에 도착한다. 어차피 죽을 것, 저축했던 돈을 펑펑 쓰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큰 대리만족을 준다. 호텔에서 머물면서 진흙팩 마사지는 물론 때 빼고 광 내서 멋진 여성으로 변신해 파티를 즐기는 여주인공. 언젠가는 영화속 주인공처럼 이곳 카를로비 바리에서 라스트 홀리데이를 즐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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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탑

 

 

온천수로 만든 전통 건강주와 크리스탈 등

이 도시의 많은 샵에서는 온천 컵, 온천 과자 말고도 온천수를 이용해 만든 화장품, 비누, 술 등 다양한 제품들을 개발해 판매한다. 1807년부터 만들어진 베헤로브카(Becherovka)라는 온천수에 한약재를 넣어 발효해 만든 전통주다. ‘베체라’는 약사가 약용을 위해 만들었다. 술 만드는 디테일한 비법은 가문의 절대 비밀. 한약재에 온천수를 배합해 1주일간 끓이고 두 달 동안 통 속에 넣어 발효한 뒤 출고된다. 알코올 함량이 38도나 되지만 소화력은 좋다. 가격은 비싸지 않고 마켓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또 온천수와 체코의 맥주를 이용해 만든 유기농 화장품도 있다. 온천수와 맥주 효소가 결합된 제품. 목욕소금이나 비누도 인기다.

 

또 1857년부터 크리스탈 제품을 만들어 온 모제(Moser)라는 공장도 유명하다. 왕실, 귀족들이 즐겨 사용하던 유리제품으로 모제가 만든 얇고 영롱한 빛깔의 와인 잔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Travel Data

항공편

인천공항에서 프라하까지 직항이 있다.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공항까지는 대략 11시간 정도 걸린다.

 

현지 교통

프라하에서 비행기, 기차,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플로렌츠(Florenc) 터미널에서 직행 버스로 약 2시간 30분 거리다. 카를로비 바리에는 기차역이 두 군데다. 돌니(하역, Dolni nadrazi) 역과 시내 북쪽의 오레 강 건너편에 호르니(상역, Horni) 역이다. 호르니 역에서 시내 중심부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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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병사 슈베이크 레스토랑.

 

 

음식 정보

스비취코바(svičkova na smetaně), 꼴레노(koleno), 굴라쉬(Gulaš) 등을 들 수 있다. 무릎이라는 뜻을 지닌 꼴레노는 족발요리다. 하얀 빵인 크네들릭(knedliky)을 즐겨 한다. 식당을 찾기 어렵다면 세계의 ‘백년 가게’로 통하는 ‘착한 병사 슈베이크(svejk)’ 체인 레스토랑을 찾으면 된다. 체코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야로슬라프 하셰크(Jaroslav Hašek) 작가가 쓴 책 제목이 상호다. 찾기도 쉽다. 익살스러운 병사 그림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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