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한 와인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헝가리 산, ‘토가이 와인’은 한번쯤 들어봤음직하다. 프랑스, 이탈리아를 능가하는 헝가리의 대표 와인으로 흔히 ‘왕들의 와인이며 와인의 왕’으로 부른다. 프랑스 루이 15세, 영국,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는 물론 역대 러시아 황제들의 사랑을 송두리째 받은 백 포도주. 어떻게 유명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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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가이 와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토가이 와인

헝가리의 대표적인 와인의 산지인 ‘토카이(Tokay, Tokaji)’는 부다페스트에서 동북쪽 200㎞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 마을은 300년 간 엄격하게 관리, 유지해 온 와인으로 200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받았다.


토가이는 작고 조용한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마을엔 100년 넘은 성당, 그리스정교회 빼고는 눈에 띄는 큰 건물도 없다. 1900년대 초반에 대규모 와인 유통을 하던 그리스인의 상점 앞, 수도꼭지 위에는 와인통 위에 앉은 소년이 포도를 들고 있다. 거기에 크고 작은 와인 가게들과 카페가 골목으로 이어진다. 포도 덩굴 무늬를 가옥의 벽과 창살에도 새겼다. 마을 한복판, 1826년에 건축된 마을회관(옛 유대교 회당) 부근엔 작은 장승공원이 있다. 이 지역에서 포도를 처음 재배한 부족을 기려 포도 농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새겨 세운 장승들이다.

 

어떻게 이곳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산지가 되었을까? 기록에 따르면 12~13세기부터 토카이 지역에서 포도가 재배되었다. 정작 유명해진 것은 1650년, 라코치(트란실바니아 귀족가문 출신으로 합스부르크에 투쟁을 이끈 헝가리 영웅) 가문에 의해서다. 당시 지방 영주인 라코치 가문은 합스부르크 왕가와의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이 가문은 프랑스 루이 14세에게 군수품을 지원받기 위해 인위적으로 와인마을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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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가이 마을

 

 ‘귀부병’ 잘 걸린 푸르민트 포도

토카이는 귀부병이 잘 걸리는 포도를 생산 할 수 있는 입지였다. 귀부병은 일교차가 큰 호수와 강가 주변에서 생기게 되는데 토가이가 딱 맞았다. 티셔(Tisza) 강과 보드그로그(Bodgrog) 강이 합수되는 화산재(약 243m) 마을이다. 티셔 강은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경계의 카르파테스(Carpates) 산맥에서 발원한다. 강줄기는 산악지대를 통과하면서 막힘 없이 급류를 이루며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두 나라의 국경을 따라 서쪽으로 흐르다가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 헝가리 세 나라가 만나는 지점에서 남쪽으로 흐름을 바꾼다. 헝가리 국토로 들어와 헝가리 국토를 남북으로 종단하며, 세르비아로 들어와 보드그로그 지방 중앙부를 지나게 되는데 바로 그 지점에 토카이 마을이 있다.

 

이곳에 귀부병에 유독 잘 걸리는 ‘푸르민트(Furmint)’와 하르쉬레벨류라는 품종을 심었다. 새벽녘 강에서 물안개가 피어나면 ‘보트리티스 시네리아’라는 곰팡이 균이 포도열매에 들러붙어 수분을 흡수해 버린다. 수분이 증발하면서 당도와 향기만 진하게 포도에 남게 된다. 수확기는 일반 포도보다 늦다. 포도의 당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건포도처럼 쭈글쭈글한 귀부병 포도를 수확해 이를 높게 쌓아서 마른 상태로 저장한다. 그러면 가장 아랫부분부터 달콤한 액체가 흘러 내리는데 맛은 아주 달콤하며 짙은 황금색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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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가이 마을의 포도밭

 

당도 높은 화이트 와인

당과 향이 농축된 것을 헝가리어로 아슈(Aszu′)라고 한다. 아슈 포도와 일반 포도를 섞어 12~36시간 보관했다가 즙을 짜낸다. 오크통에 담아 섭씨 12도의 동굴 저장고에서 18개월 숙성시키면 달콤한 와인이 완성된다. 와인을 담은 통은 발효되는 동안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수 있게 뚜껑을 꽉 닫지 않은 채 서늘한 환경에서 보관한다. 그동안 와인은 공기와 접촉하면서 색이 진해져 선명한 황금색을 띠게 된다.

 

당시 왕자는 1~3등급으로 포도밭을 나누어서 토카이 와인을 만들어냈다. 토카이 와인의 라벨을 살펴보면 3푸토뇨쉬, 5푸토뇨쉬, 6푸토뇨쉬 등으로 표기돼 있다. 푸토뇨쉬(Puttonyos)란 포도 수확 시 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담아 운반하는 일종의 등짐 바구니를 일컫는다. 달콤한 원료포도를 담는 통이다. 즉 3 푸토뇨쉬는 달콤한 원료포도가 3통 들어갔다는 의미. 원료포도 숫자가 높을수록 와인은 더 달콤해진다. 최상급인 6푸토뇨쉬는 8년 간 오크 통에서 숙성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단맛이 강한 디저트 와인이 주류를 이뤘다. 어떤 디저트 와인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진하고 달콤하며 농축된 맛과 향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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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가이의 브론즈

 

18세기 왕들의 와인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은 18세기 유럽 궁정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프랑스 왕 루이 15세는 늘 애첩 후작 마담 드 퐁파두르(Marquis de Pompadour)와 와인을 즐겼다고 한다. 달콤한 토카이 와인을 맛본 뒤 “이 와인은 왕의 와인이자, 와인 중의 왕이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합스부르크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생일 때마다 토카이 와인을 선물로 보냈다. 여왕이 살았던 개월 수만큼 보냈기에 여왕의 마지막 생일인 81세 때는 와인이 972병에 달했다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그의 러시아 궁정에도 알려졌다. 제국의 황제들은 토카이 와인을 ‘생명의 술’ 또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겨 수천km나 떨어진 산지에서 직접 운반해 왔다. 이때 용맹이 뛰어난 코사크의 기병대를 동원했다고 한다. 운송 도중 음해를 목적으로 한 독극물 투입을 경계했거나 와인의 탈취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토카이 와인을 ‘왕들의 와인이며 와인의 왕’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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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가이의 유명한 와이너리, 토가이 헤쎌레

 

왕뿐 아니라 사상가 볼테르를 비롯해 괴테, 실러, 하이네 등 작가와 베토벤, 리스트, 슈베르트 등 작곡가들도 토카이 와인을 사랑했다. 이 토카이 와인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오페레타 ‘박쥐’에도 등장한다. 헝가리 백작 부인으로 변장한 주인공이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 앞에서 국적을 증명해 보이려고 ‘차르다시’라는 헝가리 춤곡을 부르는데, 그 가사에 ‘잔을 들어 토카이를 채우고 고국에 건배’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렇듯 왕, 유명인들이 즐겨 마시면서 자연스레 품질은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이 와인은 프랑스 소테른 지역, 독일 모젤의 ‘트록켄베렌아우스레제’와 함께 세계 3대 ‘귀부 와인’으로 불린다.

 

현재 토카이 마을을 포함한 토카이 지구 28개 마을 5300㏊의 포도밭을 재배하고 있다. 주민들의 절반가량이 포도 농장이나 생산·유통, 와인 상점·식당 등 와인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다.

 

Travel Data

현지교통 

부다페스트 중앙역에서 토카이까지 열차로 2시간 30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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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토바기 국립공원

 

 

근교 여행지

데브레첸(debrecen)과 호르토바기(Hortobagy) 국립공원이 멀지 않다. 데브레첸은 예전에는 헝가리의 수도(1848-1849)였고 현재는 제 2도시다. 데브레첸에서 멀지 않은 곳에 호르토바기(Hortobagy) 국립공원(The Puszta, 푸스터는 ‘초원’이라는 뜻)이 있다. 1973년, 헝가리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99년에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광대한 초원과 늪지대가 있는 대평원. 헝가리 내에서 가장 잘 보호된 지역이며, 현존하는 중앙 유럽 최대의 목초지다. 이 초원 지대에서는 목축과 같은 전통적인 형태의 토지 이용이 2,000년 이상 유지되어 왔다. 헝가리 동부의 넓은 초원지대로, 대규모 방목이나 전통방식의 경작이 이루어진다. 넓은 국립공원에는 헝가리의 전통 가옥을 만들어 전시장을 만들어 두었고 다양한 체험꺼리도 있다. 마상체험, 도자기 체험 등. 가족들이 가면 좋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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