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스코프에서 버스 타고 2시간 정도 가면 푸쉬킨스키예 고리에 도착한다. 푸쉬킨스키예 고리는 러시아의 국민시인으로 일컬어지는 푸쉬킨에 의해 만들어진 지명이다. 푸쉬킨스키예 고리에는 주요 문화 유산 기념물(10개)과 지역의 문화 유산(6개)이 흩어져 있다. 그중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푸쉬킨 선대의 영지인 미하일롭스코예다. 푸쉬킨은 2년간(1824~1826, 25세~27세) 이 영지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그곳엔 그의 청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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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킨의 초상화. 20대 때 모습이다.

프스코프에서 버스 타고 푸쉬킨스키예 고리로

프스코프를 꼭 방문하고자 했던 이유가 있다. 필자는 몇해 전,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여행을 했고, 그때 푸쉬킨 박물관을 관람했었다. 그가 결혼 후 살던 집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모히카 운하 옆 아파트다. 그때는 단지 ‘맛뵈기’로 찾은 러시아 첫 여행이라서 미흡하기 짝 없었다. 귀국 후 푸쉬킨에 대한 원고를 쓰면서 프스코프 근처에 영지가 있음을 알게 된다. 여행이라는 것이 늘 그렇게 놓치고 마는 장소가 많다. 그러나 러시아를 다시 가게 됐다면 생각은 달라진다. 꼭 푸쉬킨 영지인 푸쉬킨스키예 고리(pushkinskiye-gory)를 찾고 싶다. 푸쉬킨스키예 고리는 프스코프로 가면 된다는 생각에 지명을 기억해 두었던 것.

 

프스코프에서 2일째 되던 날, 이른 아침 터미널로 달려간다. 전날 여행안내소 스태프가 알려준 첫차(7시20분)를 탈 생각이다. 터미널에 도착해 티켓(240루블)을 사고 버스 탑승장을 찾는데 어제 만난 ‘검은 제복’이 아는 척 한다. 그는 전날과 다를 바 없이 술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다. 반갑지 않지만 예의상 미소로 아는 체를 해준다. 그는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줄 파악하지 않은 체 흔쾌히 사진 포즈를 취해준다. 어쩌면 그는 그저 평범한 러시안일 수도 있다. 러시안들에게는 어제의 해프닝이 일상사일 수 있다는 말이다.

 

푸쉬킨스키예 고리에서 택시타고 영지에 도착

푸쉬킨스키예 고리로 가는 미니 버스에 오른다. 충분히 당일 여행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멀다. 프스코프에서 푸쉬킨스키예 고리까지는 버스로 2시간 이상(113km)이 소요된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고 나서 푸쉬킨스키예 고리에 버스가 선다. 마을만 도착하면 여느 도시처럼 쉽게 푸쉬킨 영지를 만날 줄 알았다. 그런데 버스 터미널엔 건물 한 채만 달랑 있을 뿐 썰렁하다. 

 

마을 민가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시골 구석의 터미널에서 언어 소통 안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고 있을 때, 시야에 한 젊은 여성이 빠르게 동네 안쪽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잡힌다. 얼른 달려가 방법을 묻는데 그녀는 무척 바쁜 듯하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다가섰고 푸쉬킨 영지까지는 택시로 이동(200 루블)을 해야 한다면서 전화로 기사를 불러준다. 5분 정도나 갔을까? 택시 운전사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면서 황량한 벌판에 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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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롭스코예 박물관

푸쉬킨 영지 매표소에서 만난 영어 가이드 ‘타냐’

택시에서 내린 지점은 전형적인 러시아 시골의 너른 들판(베레즈카(Berezka) 공원). 허허벌판에 버려진 채로 서 있을 때 눈 앞으로 캠핑객들이 눈에 띈다. 길을 물으러 그곳까지 가려던 차에 어디에서 나타난 지는 알 수 없으나 커플 여행자가 여행서를 들고 들판 사이의 오솔길을 앞서 걷고 있다. 그들의 뒤를 따라 간다. 작은 개울을 잇는 다리, 카페를 지나 5분 정도 걸었을 무렵, 미하일롭스코예 박물관 리저브(Mikhaylovskoye Museum Reserve)를 만난다. 푸쉬킨의 영지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박물관 매표소에서의 티켓 구입은 다소 복잡하다. 200루블, 250루블로 나뉘어져 있어서 250루블의 티켓과 사진 허용비(100루블)도 치르고 표를 구입한다. 기념품을 사고 싶은 마음에 숍 안을 살펴보는데 나이든 아주머니의 친절성이 영 떨어진다. 그때 한 중년 여성이 다가온다. 영어를 잘 하는 그녀는 바로 박물관 아카이브 책임자(head of museum archive)인 ‘타냐’다. 

 

타냐는 이 박물관의 영어 가이드로 추가요금을 내야만 가능하다. 따로 신청하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는 길을 상세하게 약도를 그려주면서 일러준다. 그녀에게 푸쉬킨과의 러브 스토리의 대명사로 통하는 ‘안나 케른’의 집이 어디냐는 질문(현지에서는 트리고르스코예(Trigorskoye)라는 지명을 기억할리 없으니 이야기를 풀어서 질문한 것)도 한다. 타냐는 푸쉬킨의 집에서 5분 거리라고 했지만 눈 앞에는 초지와 오솔길 뿐인데다 무엇보다 버스 터미널로 가는 위치와는 정 반댓 길이라서 가볼 엄두를 낼 수 없다.(구글지도에는 트리고르스코예까지 8.6km나 되어 근 2시간을 걸어야 된다. 지름길은 약 2km~3km 정도). 그냥 미하일롭스코예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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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롭스코예 티켓 부스

 

 

푸쉬킨스키예 고리 역사

푸쉬킨의 집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일단 자료를 통해 푸쉬킨스키예 고리에 대한 역사부터 알아보자. 그래야 필자처럼 어리버리 헤매지 않을 테니 말이다. 푸쉬킨스키예 고리는 프스코프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도시 기원은 15세기의 보로니치(Voronich) 요새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보로니치에는 크렘린은 물론 최대 400개의 조세장(Tax yard)과 77개의 교회와 수도원이 있었다. 무역이 발달된 곳으로 부유한 도시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1569년, 이반 4세는 보로니치 요새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스뱌토고르스키 수도원(Svyatogorsky Monastery)을 세운다. 16세기 말, 보로니치는 최전성기였다. 이 무렵 폴란드의 스테판 바토리(Stephen Bathory)의 공격을 받는다. 딴 나라를 정복하려면 번성한 도시를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일. 보로니치 마을은 그렇게 파괴되어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진다. 

 

그 이후 1708년, 표토르 대제 때, 이 지역은 잉가르만란드(Ingermanland) 주(1710년 이후 상트 페테르부르크 주)에 포함시킨다. 1727년, 노브고로드 주가 되었고 1772년, 프스코프 주로 분리된다. 긴 시간이 흐른 1924년, 스뱌토고르스키 수도원 주변의 스비샤이 고리(Sviatye Gory, Holy Mountains)의 이름을 따 1925년, 푸쉬킨스키예 고리(pushkinskiye-gory, Pushgory 또는 푸쉬킨 언덕이라고도 함)로 변경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자치구의 이름이 바뀌다가 1960년, 푸쉬킨스키예 고리로 정착되었다. 이 지방도시는 현재 19세기 초의 모습으로 재현해, 러시아의 인기 관광명소로 손꼽힌다.

 

푸쉬킨스키예 고리에는 주요 문화 유산 기념물(10개)과 지역의 문화 유산(6개)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관광지가 미하일롭스코예다. 그외에 페트롭스코예(Petrovskoe) 영지, 트리고르스코예(Trigorskoye) 영지, 보로니치(Voronich) 요새, 스뱌토고르스키 수도원, 부그로바(Bugrova) 마을,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집이 주요 여행지다. 그러나 이 마을들은 제각각 약 4~8km 떨어져 있어서 손쉽게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니 푸쉬킨스키예 고리에서 1~2일 이상 머무르면서 렌트를 하거나 택시를 이용해서 여행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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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킨의 집

 

 

18세기 황후에게 하사 받은 미하일롭스코예 영지

관광객들의 필수 여행코스는 미하일롭스코예 마을이다. 미하일롭스코예 마을은 18세기 이후부터 푸쉬킨 조상의 영지였다. 1742년, 엘리자베스 황후(1709~1762, 표토르 대제의 장녀)는 아브람 한니발(Abram Gannibal, 1696~1781, 표토르 대제의 충신)에게 미하일롭스코예 마을과 페트롭스코예(Petrovskoe) 마을 주변의 땅을 하사한다. 한니발은 이 영지를 아들 셋에게 유산으로 분배했다. 미하일롭스코예는 아브람 한니발(Abram Petrovich Gannibal, 1696~1781, 푸쉬킨의 외조부)에게 주고 다른 아들들에게는 페트롭스코예 마을을 분배했다. 미하일롭스코예 영지는 마리아 푸쉬키나(Maria Alekseyevna Pushkina, 1745~1818, 푸쉬킨의 외조모)를 거쳐 외동딸인 나데즈다 오시포브나 푸쉬키나(Nadezhda Osipovna Pushkina, 1775~1836, 푸쉬킨의 어머니)가 물려 받게 된다. 이 영지는 푸쉬킨 시대에 ‘여름별장’으로 이용했다. 푸쉬킨은 2년간(1824~1826, 25세~27세) 이 영지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작품과 로맨스 등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푸쉬킨은 불안정하던 미하일롭스코예 영지에 머무를 때 가장 창작열을 올렸다. 푸쉬킨의 대표작인 “예브게니 오네긴”도 이 영지에서 구상된 것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처럼 ‘로맨스 결투’로 짧은 인생(38세)을 살다간 푸쉬킨. 인생을 짧게 살았기에 가장 빛난 시절이 되어 버린 곳. 미하일롭스코예 마을 여행은 마치 흑백 영화의 한 편을 보는 듯, 시간이 되돌려진다.

 

미하일롭스코예 박물관 리저브가 되기까지

이 영지는 푸쉬킨 사후 20년 넘게 주인 없이 서서 서서히 무너졌다. 1883년, 시인의 둘째 아들 그레고리 푸쉬킨(Gregory Pushkin)이 이 영지에 정착해 1899년까지 16년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정부에서 푸쉬킨 박물관을 만들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이 영지를 떠나야 했다. 그는 리투아니아 빌리우스로 떠나 죽을 때까지 살았다.

 

이후에도 박물관 개관은 쉽지 않았다. 1911년, 소규모 박물관을 개관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1917년, 10월 혁명 기간에는 불태워졌다. 그러다 1922년, 볼셰비키(Bolsheviks)에 의해 박물관이 개관하게 된다. 당시 러시아는 10월 혁명이후 사회는 어수선했고 농민들은 무질서했다. 이에 푸쉬킨의 문화 유산 보존이 꼭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해 3월 17일, 미하일롭스코예, 트리고르스코예, 스뱌토고르스키 수도원의 푸쉬킨 무덤을 주립 기념물로 지정해 푸쉬킨 박물관 보호 구역으로 정한다. 1936년에는 푸쉬킨의 삼촌의 영지인 페트롭스코예 뿐만 아니라 스뱌토고르스키 수도원까지 기념물로 추가된다.

 

1937년, 푸쉬킨 사망 100주년을 맞아 푸쉬킨 하우스 박물관(Pushkin House-Museum)으로 복원된다. 그러나 또 세계2차대전(1941년 7월~1944년 7월)때 약탈당하고 심하게 손상 되었다. 드디어 1949년, 옛 기초 위에 영지의 건물들이 복원되었다. 

 

1995년, 박물관이 확장되자 미하일롭스코예 박물관 리저브로 이름이 바뀌었고 박물관의 영토는 약 3천만 평(9800헥타르)으로 넓어졌다. 푸쉬킨스키예 고리의 유적들이 재정비되는 데는 세미온 게이첸코(Semyon Stepanovich Geychenko 1903~1993)의 노력이 있었다. 게이첸코는 48년(1945~1993)간을 이곳에서 살면서 복원작업을 했다. 2002년 2월 14일, 세미온 게이첸코 탄생 100주년과 푸쉬킨 보호 구역 80주년을 기념하는 "푸쉬킨스코예 고리의 수호자" 박람회가 열렸다.

 

집필하는 푸쉬킨 그림.JPG
집필하는 푸쉬킨을 그린 그림.

 

 

미하일롭스코예 박물관 리저브 관람하기

이제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보자. 미하일롭스코예 박물관 리저브의 본채는 18세기의 모습으로 그대로 재현한, 단아한 단층 건물이다. 러시아 박물관에서는 언제나 신발에 덧신을 신게 되어 있다. 많은 고증을 거쳐 만들어진 박물관이라지만 규모가 작아서 관람하는 시간은 길지 않고 필자가 러시아에서 본 여느 박물관에 비해 짜임새가 없게 느껴진다. 그래도 긴 시간 고증을 거치고 푸쉬킨의 동시대인의 회고록, 시인의 서신 및 시인의 작품들을 분석해서 재현한 박물관이다.

 

박물관 입구에는 1838년의 미하일롭스코예 마을의 석판화가 걸려 있는데 당대의 유일하게 남은 유산이다. 또 앙증맞은 박격포 총(1831년)도 있다. 그리고 왼쪽의 문은 유모실로 연결된다. 푸쉬킨의 유모 아리나 로디오노프나(Arina Rodionovna, 1758~1828)의 지도하에, 어린 하녀들은 바느질 작업에 종사했다. 의자에는 실이 놓여 있다. 쇼케이스에는 유모의 이미지와 함께 시인의 사본, 푸쉬킨에게 보낸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소녀들이 만든 자수는 귀중한 전시품이다. 유모의 방에 이어 부모님의 방으로 연결된다. 그곳엔 시인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의 초상화가 있다. 푸쉬킨의 어린 시절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예쁜 여동생 올가(Olga Pavlishcheva, 1830년대)의 초상화도 보인다. 다음 방, 거실에는 “할아버지와 증조부, 삼촌, 고모 등의 사진이 걸려 있다.

 

푸쉬킨 박물관 작업실.JPG
푸쉬킨 박물관 작업실.

 

 

푸쉬킨의 방

그 다음이 푸쉬킨 방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푸쉬킨이 작업실. 트리고르스크 마호가니(Trigorsk mahogany) 나무로 만든 책상과 의자. 몸을 뒤로 뉘일 수 있을 정도로 꺾여 있는 안락 의자가 눈길을 끈다. 책상에 흩어진 원고지와 책들. 그가 긴 안락의자에 몸을 길게 눕히고 다리를 꼬고 펜대와 종이를 들고 구상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시인은 “보리스 고두노프(1825년)”를 이 책상에서 집필했을 것이다. 또한 “예브게니 오네긴(예브게니 오네긴은 그가 곤차라바와 결혼하던 1830년에 출간되었다)”의 초안 구상도 했을 것이다.

 

푸쉬킨의 초상화가 눈에 띈다. 오레스트 키프렌스키(Kiprensky, 1827년, 28세)가 그린 초상화가 걸려 있다. 또한 푸쉬킨이 직접 그린 친한 친구들(표트르 뱌젬스키(Pyotr Vyazemsky), 이반 푸쉬친(Ivan Pushchin), 안톤 델비그(Anton Delvig), 빌헬름 퀴헬베커(Wilhelm Kyuhelbecker))의 얼굴 스케치가 액자화 되어 있다. 모두 이 영지를 방문했던 친한 친구들이다. 또 예브게니 오네긴, 보리스 고두노프 등. 대표 책들이 전시되어 있고 시인의 글들과 인물을 스케치한 메모지들이 있다. 그 외에도 모자와 집게가 달린 은촛대(1831년), 펜촉, 스탠드, 푸쉬킨의 지팡이, 리넨(아마포, 亞麻布) 공장(18세기 후반)의 잉크병, 푸쉬킨의 아들 그레고리의 책장 등을 볼 수 있다.

 

푸쉬킨의 전시관에서 가장 좋은 장소는 뒷 문이다. 문을 나서면 낮은 언덕 밑으로 너른 초원이 펼쳐지고 그 풀 숲 사이로 소롯(Sorot) 강(벨리카야 강의 한 지류로 80km다)이 흐른다. 멋진 뷰포인트다. 당시 푸쉬킨은 이 풍치를 봤을 것이다. 외따로 뚝 떨어진 첩첩 오지마을에서 망명 중이던 푸쉬킨의 영지생활. 젊은 푸쉬킨의 부잡한 마음을 다독여 주었던 것은 바로 이런 목가적인 풍치가 아니었을까?(계속)


Data

찾아가는 방법

푸쉬킨고리 여행 약도.JPG

 

기차편

푸쉬킨 박물관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수체포(suschevo)역. 기차역은 박물관에서 70km 거리에 떨어져 있다. 기차편은 접근이 쉽지 않다.

 

버스편

프스코프에서 푸쉬킨 고리까지 매일 여러 대의 버스가 운행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서도 매일 버스가 운항한다. 8시간 소요.

 

자동차편

프스코프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비텝스크(Vitebsk)를 연결하는 현지 도로가 있다.

 

현지 교통편

미하일롭스코예 주변에는 페트롭스코예(Petrovskoe) 영지가 있고 그 외에도 트리고르스코예(Trigorskoye) 박물관이나 보로니치(Voronich) 요새, 스뱌토고르스키 수도원, 부그로바(Bugrova) 마을 등이 대표적인 관광지다. 약 4~8km 지점 안에 따로 떨어져 있다. 도보는 거의 불가능하고 자동차나 자전거,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자전거 대여는 일부 호텔이나 숙소에서 가능하다.

 

음식정보

전반적으로 식당과 카페가 부족하다. 부그로바 마을에 U Melnitsy레스토랑이 있다. 미하일롭스코예의 베레즈카(Berezka) 카페가 있다. 푸시킨스키예-고리의 터미널 근처에는 울프스라는 작은 카페가 있다. 또는 터미널 근처에 큰 마켓이 있으니 숙소에서 직접 해 먹는 것도 방법이다.

 

숙박정보

대부분 숙박업소가 떨어져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은 푸쉬킨의 유모의 이름을 딴 아리나 R(Arina Rodionovna) 리조트 호텔(+7 811 462-11-00, https://www.arinahotel.ru/)이다. 전통적인 러시아의 목조 주택으로 실내는 유럽식으로 꾸며져 있다. 사우나, 수영장 및 바비큐장이 있다. 또 근처의 부그로보 푸쉬킨 마을(Gostevoy Dom V Bugrovo)이나 페트롭스코 마을(+7 81146 2-23-21), 푸쉬킨스키예-고리에 숙박시설이 있다. 미하일롭스코예에도 게스트 하우스가 있고 소롯강 쪽으로 가면 미니오텔(Mini-Otel)인 소세디 푸쉬키나(Sosedi Pushkina)가 있다. 페트롭스코예 영지(Petrovskoye Estate)는 1781년 아브라함 한니발(Hannibal)의 아들인 피터(Peter)에게 배분된 영지다. 1918년에 불에 타 버렸다가 1976년에 완공되고 재건축한 곳. 푸쉬킨은 그곳에 있는 삼촌을 여러 번 방문했다고 한다. 현재는 게스트 하우스로 이용된다. 미하일롭스코예에서 도보로 4.5km.

 

미하일롭스코예 박물관

월요일 휴관/매월 마지막 화요일은 청소하는 날/개관시간:10시~오후 5시까지/하계절에는 1시간 연장

 

푸쉬킨고리 웹사이트

http://pushkinland.ru/

 

전화

8 (81146) 2-23-21 , 2-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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