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인지 해상도는 언어 해상도보다 선명하다”라고 언급했다.

뇌 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인지 해상도는 언어 해상도보다 선명하다”라고 언급했다. 바나나를 가리키며 무슨 색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노란색’이라고 답할 것이다. 실제로 바나나의 겉은 곳곳에 다른 색깔들이 섞여있고 표면은 고르지 못하다. 하지만 바나나의 디테일을 설명할 완벽한 단어는 노란색 이외에 대체할 만한 단어가 마땅치 않다. 우리의 머릿속 가장 유사한 단어로 표현할 뿐이다. 도박판에서 프로 갬블러들이 타이밍을 재는 것이나 장인이 도자기를 빚는 미묘한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잡는 감각을 말로 표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는 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을 논리적 설명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터득했기 때문이다.

 

논리적 설명보다 시행착오라는 옷을 기계에 입힌 대표적 기술이 ‘딥러닝’이다. 알파고에 적용된 딥러닝(deep learning)은 인간들의 게임이라 불리는 바둑의 영역에서 새 역사를 썼다. 2016년, 프로기사 이세돌을 꺾은 것이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인간 특유의 능력인 직관의 능력을 뛰어넘었다고 평가했다. 바둑은 경우의 수는 10의 170승으로 슈퍼컴퓨터를 돌려도 수억 년이 걸리는 방대한 분량이다. 물론 딥러닝이 경우의 수를 모두 분석해서 바둑을 두진 않는다. 최적의 해를 찾아갈 뿐이다. 딥러닝은 사람과 자연이 만들어놓은 패턴을 신기하게도 잘 발견하고 정리한다. 그만큼 다량의 데이터로부터 다양한 특징을 잘 잡아내는 것이다. 이세돌 선수의 머릿속에 있는 설명할 수 없는 바둑을 잘하는 패턴을 딥러닝은 나름대로 해석하고 판단한다. 오랫동안의 배움과 경험이 깃든 이세돌의 한 수를 딥러닝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짧은 시간 동안 스스로 깨우쳤다. 수많은 바둑 기보에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습득한 것이다.

 

“이 길은 약 5분 뒤부터 정체가 예상됩니다.”

 

최적의 해를 찾아가는 딥러닝에게 교통문제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어려운 것은 사고 시에 발생하는 책임에 관한 것이다. 딥러닝이 수많은 경우의 수에서 직관적인 결과를 내놓는데 뛰어나더라도 결과대로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이는 마치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와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던지는 질문과 비슷하다. 트롤리 딜레마는 영국의 윤리 철학자인 필리파 푸트(Philippa foot)가 처음 제시한 것으로 ‘누군가를 선택하는 문제’이다. 만일 기차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상태에서 레일 위 5명의 인부를 희생시켜야 할지, 방향을 바꿔 다른 레일 1명의 인부를 희생시켜야 할지에 대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인공지능의 결정이 인간의 죽음을 결정한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의 선택을 인정할 것인가?

 

AI 로봇인 소피아에게 “위급한 상황에서 어린아이와 노인 중, 한 명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를 구조할 것인가?”라고 묻자 소피아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엄마와 아빠 중에서 누가 좋은지 묻는 것과 같다. 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지 않다. 만약 구한다면 출구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있는 사람을 구조할 것이다. 그것이 논리적이니깐.”

 

인공지능은 고도의 효율성을 바탕으로 최적의 해를 찾아간다. 하지만 이러한 효율성이 우리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산업 발전을 이루고자하는 개발도상국이 북극곰을 찾아서 일부러 죽이지는 않지만, 북극의 빙하가 녹을 것을 예상해서 북극곰에게 허락을 구하지도 않는다. 북극곰의 서식지가 망가지거나 파괴되는 것은 산업 발전이라는 최적의 해를 구하기 위한 고려 사항이 아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우 비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고도의 인공지능이 나타나면 인공지능과 우리의 관계는 산업화를 이루고자 하는 개발도상국과 북극곰의 관계가 된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산업 발전을 이루고자 빠르게 달려가는 개발도상국이 북극곰의 생존을 우려해 줄 것이라는 믿음과 다를 바가 없다. 만약 인공지능이 이루고자 하는 어떤 목표가 생긴다면, 인류는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는 그간 인공지능이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해왔다. 그는 “북한의 핵보다 인공지능이 더 위험하다”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예전만큼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운명론적인 자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운명적론적인 자세를 갖게 된 것은 무수히 많은 설득과 노력을 했지만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
다. 그는 말한다. “아무도 듣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우리의 삶을 파괴한 고도의 인공지능은 이렇게 말할지
도 모른다. “그것이 논리적이니까.”

 

 

이 글은 <자본의 방식>(행복우물출판사)의 일부분입니다.

경제 큐레이터 유기선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금융시장과 경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여러 학자들의 사상을 거슬러 올라가 ‘돈과 자본이란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한 의문을 토대로 금융의 역사와 철학, 금융을 움직이는 심리 등에 관한 글을 썼다. 그 중 인사이트가 있는 ‘자본과 관련된 48가지 이야기’를 추려서 쉽게 단순화했다. 저자가 집필한 <자본의 방식>은 ‘2019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사업’ 선정작품으로 당선되었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있지만 먼 듯한 이야기, 돈과 자본에 대한 통찰력있는 큐레이터를 꿈꾼다.

 

 

 

관련기사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