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는 사람들의 활동을 극도로 제한하는 세계적인 유행병으로 두 계절을 보내고 이제 가을 문턱이다. 가을이 오면 소슬바람 불어오고 언제나처럼 잎들은 고운 빛으로 물들고 그리고 낙엽을 떨구리라. 모든 것이 헝클어진 듯 만족스럽지 못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가니 이러한 시기 또한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적인 팬데믹 속에서 요즘 우리가 가장 손해보고 사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사람과의 만남일 것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갖는 만남이 꺼려지는 요즘이니 자연스럽게 외식도 줄이고 모임도 피하게 된 지 오래다. 결혼식은 자의반 타의반 스몰웨딩으로 치러지고, 장례 또한 고인과 각별했던 지인들과 가족 위주의 가족장으로 치러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람과의 모임으로 우리의 사회생활이 꽃피워진다고 생각하면 요즘 우리는 반쪽의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처음 만난 사람과 더 긴밀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을 때 “언제 식사 한번 하시죠?”라는 말로 첫 만남의 물꼬를 트곤 한다. 근대사회가 무르익던 빅토리아 시대, 즉 1800년대 중반의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인연을 맺고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갔을까. 19세기 사람들의 사회생활은 가정으로의 손님 초대로 시작되었다. 귀족계급의 상류층들은 넓은 집과 매주 이어지는 손님 초대를 유지하기 위해 많게는 100명이 넘는 하인을 거느리기도 했다. 당시의 손님 초대 횟수는 신분을 구분 짓는 잣대와도 같은 것이었다. 상류층들은 10코스 이상의 정찬 파티를 적어도 매주 한 번씩은 열었다. 세계 도처에 식민지를 거느렸던 유럽의 당시 사정과 맞물려져 지금까지 정찬의 표본이 되는 화려한 빅토리아 시대의 테이블 세팅이 탄생되었다. 빅토리아 시대 식탁을 떠올리면 늘 등장하는 것이 스털링으로 만든 값비싼 3구 촛대, 일일이 용도를 알기도 힘든 다양한 커트러리 그리고 스털링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크리스털 센터피스 등이다.
 
화려한 상류층의 홈파티에 비해서 중산층의 홈파티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뤄졌다. 남편의 출세와 사업의 번창을 위해서 안주인은 필요한 인맥들을 집에서 여는 홈파티를 통해서 쌓아나갔다. 남편의 사업을 위한 인맥뿐만 아니라 자녀의 결혼을 위한 인연 또한 이렇게 초대하는 사람들을 통해 맺을 수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1800년대 초반부터 레스토랑이 출현했지만 19세기 중반까지도 보통 사람들에게 레스토랑은 낯설고 보편적이지 않았다. 외식이 없었던 그 시기에 사람들과의 식사는 늘 집에서 이루어졌고 잘 차려진 식탁은 그 집안의 품격과 능력을 나타내주었다. 식사 공간은 손님들의 이목을 끌기에 좋은 장소로서, 사업 거래나 결혼 성사 등 사회적 관계를 키우기에 적합했다. 그래서 신흥 중산층들은 신분상승을 위한 과정으로 집안에 큰 살롱을 가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곳을 꾸미기 위해서 값비싼 유리로 장식된 그릇장, 해외에서 들여온 카펫과 칠기 공예품은 늘 등장하는 단골 장식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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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을 화려하게 꾸며준 다양한 장식품

식탁 또한 화려하게 꾸며졌는데 이때 등장하는 은으로 된 포크, 나이프 등의 커트러리 종류는 코스 메뉴의 정도에 따라 많게는 12개까지 놓였다. 커트러리의 사용은 귀족과 평민의 식사습관을 구별해주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기 때문에 신흥 상류층들은 귀족계급을 모방하기 위한 도구로 이러한 것들을 각별히 준비했다. 메뉴가 많아지다 보니 스푼이나 나이프, 포크의 종류가 매우 세분화되었다. 가령 머스터드 스푼, 메론 스푼, 소금 스푼, 칵테일 포크, 과일 포크, 아스파라거스 포크 등 그 종류가 무궁무진했다. 이렇게 준비한 집에서의 손님 초대는 예절을 갖추고 음식을 즐기는 식사문화로 자리 잡았다. 식사 도구의 사용 기술뿐만 아니라 식사 중에 나누는 고상한 대화는 계층을 구별 짓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요리는 정교해졌고 식사 서비스, 식탁보, 정돈된 식사 도구의 배열, 냅킨을 접는 기술 등의 격식이 신분을 구별 짓는 형식으로 이해되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정찬 식탁에서도 종이 냅킨을 쓰는 것이 당연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식탁에서는 정교하게 무늬가 새겨진 다마스커스 천으로 된 냅킨과 식탁보가 거의 필수품이었다. 이런 이유로 얼마나 많은 종류의 냅킨과 식탁보가 그 집안에 있느냐가 중요한 관심사였고 부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손님 초대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루어졌으니 집안은 항상 정돈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손님 초대가 있는 날에는 정원에서 재배된 다양한 꽃들이 식탁의 중앙과 현관을 아름답게 꾸몄다. 18세기 티가든에서 시작된 유럽인들의 정원 가꾸기 취미는 19세기 들어 손님 초대가 일상이 되면서 더욱 빛을 발했고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개인주의가 성숙했고 연애결혼이 성행하면서 이전에 비해 결혼에서 사랑과 행복이 부각되었다. 가족의 중요성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은 가족의 헌신과 가정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겼다. 손님 초대의 공식적이던 식사 공간은 가족이 매일 한자리에 모이는 사적인 장소로 변모해갔으며, 예절을 갖춘 식사문화의 전통은 오늘날의 레스토랑이나 가정에서 좋은 본보기로 활용되고 있다.
 
코로나로 우리의 일상과 사회생활이 여러 가지 변화를 겪으며 한 해의 반이 지나가버렸다. 소박한 집밥이 이제까지의 우리 식탁이었다면 남은 두 계절 동안에는 꽃과 예쁜 그릇이 있는 근사한 식탁을 가족에게 선사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은 모든 것이 힘겹고 낯설지만 이 또한 지나가게 되면 가족이 함께 집밥을 자주 할 수밖에 없었던 이 시기를 추억할 날이 올 것이니 말이다.
 
 

 
백정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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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갤러리 이고 대표. 한국 앤티크과 서양 앤티크 컬렉터로서, 품격 있고 따뜻한 홈문화의 전도사다. 인문학과 함께하는 앤티크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와 앤티크 컬렉션을 활용한 홈 인테리어, 홈파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고갤러리: 02-6221-4988 블로그: blog.naver.com/yigo_gallery 인스타: yigo_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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