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스코프의 크렘린과 레닌 광장을 기점으로 큰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어린이 공원을 만난다. 그곳에는 프스코프의 도시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올가 공주의 동상이 있다. 거기에 벨리카야 강변의 언덕 위로는 유서 깊은 교회가 아주 많다. 또한 아름다운 벨리카야 강변을 따라 난 산책로 끝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방어탑, 포크롭스카야 탑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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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관광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어린이 공원의 풍경.

 

어린이 공원에서 만난 올가 기념 동상

크렘린을 벗어나 레닌 광장을 기점으로 차도를 따라가면 미카헬과 가브리엘 대천사 교회(Church of the Archangels Michael and Gabriel)를 거치게 되고 이내 프스코프의 어린이 공원(Detskiy Park)을 만난다. 여느 도시에서나 있을 법한 공원에는 판매점, 말타기, 약간의 놀이기구 등, 러시아 관광지에서 흔하게 보던 풍경이 펼쳐진다. 매력이 넘치는 공원은 분명 아니다. 이 공원 입구에 올가 공주의 기념비(Monument to Princess Olga)가 있다. 크렘린 성 삼위 일체 교회에서도 봤지만 무심하게 스치듯 봤기에 기억에 남을 리 없다. 어린이 공원의 올가 공주 동상도 무심하게 보면 ‘공주’라기보다는 ‘교회의 성인’ 동상처럼 보인다.

 

올가 공주는 프스코프 여행에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크렘린의 성 삼위일체 성당의 창시자이며 러시아 왕자 가족의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다. 러시아 땅에 기독교를 처음 소개한 인물이다.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러시아의 거룩한 사도, 고귀한 공주 올가’라고 부른다. 프스코프에는 올긴스키 제방, 올긴스키 다리, 올긴스키 예배당 등, 공주의 이름을 붙여 기리고 있다.

 


어린이공원입구의 올가공주.JPG

 

남편 암살한 드레블랴네 족들을 투항시킨 올가 공주

자료에 따르면, 프스코프에서 태어난 올가(890년경~969년)는 류리크 왕조 출신이다. 903년(13세) 경에 키예프 공국의 이고리 류리코비치(Igor Rurikovich, 878~945) 대공과 결혼한다. 942년(결혼 후 39년 뒤, 52세), 아들 스뱌토슬라프 1세(Sviatoslav I Igorevich, 942년경~972년, 재위 945년~972년)를 낳는다(52세에 출산을 했다는 게 상식선으로 이해불가지만 올가의 출생연도가 불분명하지만 남편과 아들에 대한 기록이 있으니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다 945년(55세), 남편이 드레블랴네(Drevlyane) 족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드레블랴네 족들에게 조공을 독촉하다가 암살된 것. 남편이 죽자 올가는 3살 된 아들 스뱌토슬라프 1세를 18년간 섭정(945년~963년경)한다. 아들이 성장한 이후에는 정치적 지위를 잃는다. 그러나 아들이 군사 원정에 나서면 손자들과 함께 키예프를 통치했다. 올가는 969년(79세), 키예프에서 병사했다.

 

특히 올가는 남편을 살해한 드레블랴네 족들에 대한 복수 방법이 유명하다. 올가는 드레블랴네 족들을 4차례에 걸쳐 생매장시켰다. 올가의 제1차 복수는 드레블랴네 족 출신 사신들을 태운 선박을 큰 구멍 속에 집어넣어서 생매장시키는 방식, 올가의 제2차 복수는 드레블랴네 족 출신 귀족들을 욕실에 가둔 후 불에 태우는 방식이다. 올가의 제3차 복수는 남편 추모식에서 술에 취한 드레블랴네 족을 생매장시켰다. 올가의 제4차 복수는 드레블랴네 족의 거주지인 이스코로스텐(현재의 우크라이나 코로스텐) 마을을 불태웠다. 드레블랴네 족들은 올가가 벌인 4차례의 복수 끝에 항복한다.

 

러시아 최초로 기독교 세례를 받은 올가

프스코프에는 중세에 시작된 수도원과 교회가 40여개나 남아 있다. 그 이유 중에는 올가 공주가 처음으로 기독교 개종을 한 것과 연관이 깊다. 957년(47세), 올가는 비잔틴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고자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하고 그 곳에서 개종한다. 기독교 세례명은 "옐레나"(Yelena). 올가의 기독교 세례는 키예프 대공국이 비잔티움 제국의 지원을 받아 높은 수준의 문화와 인재를 얻기 위한 정치적인 동기에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959년, 올가가 파견한 사절단이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1세 황제를 만났다는 라틴어 문서가 전한다. 올가는 아들인 스뱌토슬라프 1세에게도 기독교 세례를 권했지만 거절 당했다. 아들은 전통 신앙을 그대로 유지했고 기독교도, 유대교도, 이슬람교도들을 박해했다고 전한다. 또 올가는 바랑기아 인에게 정교회를 전파했다. 바랑기아 인들의 대규모 정교회 개종은 올가의 가르침을 받은 블라디미르 1세(958~1015, 올가의 손자) 시대에 이루어진다. 오늘날 러시아에 정교회가 많은 이유의 기원에는 올가 공주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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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스코프에서 가장 아름 다운 교회 중 하나인 언덕 위의 바실교회. 고대의 프스코프 교회 건축스타일로 만들어졌다.

 

 

언덕 위의 바실 교회 등

프스코프의 어린이 공원에서는 대충 올가공주 기념비만 보고 빨리 빠져 나온다. 특색 없는 공원보다는 시원한 벨리카야 강변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강둑을 향해 가다가 “언덕 위의 바실 교회(Basil Church on the Hill)”를 만난다. 프스코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중 하나로 고대의 ‘프스코프 교회 건축 스타일’이다. 바실 교회는 1377년에 목조교회에 지어졌다가 1413년에 석조 교회가 되었다. 프스코프에 남은 15세기 초의 유일한 석조 교회다. 현재의 모습은 2003년에 복원된 것. 

 

교회내부는 금속 이콘으로 장식되어 있다. 부언 설명이 필요 없다. 그냥 아름다운 교회다. 또 근처에는 아나스타시아 교회(Anastasia's Church)가 있다. 프스코프 연대기에 따르면, 1487년, 지독한 역병 기간 동안에 세워진 목조교회다. 1538년, 불에 타, 지붕이 무너지고 4명이 불 속에서 죽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636년에는 ‘12명의 젊은 사도’라는 기적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교회 근처에는 대장간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후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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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카야 강변도로에서 만난 신부와 하객들.

 

 

벨리카야 강변 도로 산책로에서 만난 결혼식

교회에서 언덕만 내려서면 벨리카야 강변도로(Velikaya River Embankment)다. 강변을 앞둔 골목에서 웨딩홀(Dvorets Brakosochetaniya)을 만난다. 믿기지 않을 만큼 허름한 건물 앞에 풍선 등으로 치장한 신혼부부의 차량이 있어서 알게 된 예식장이다. 지독히 낡아서 ‘설마 이런 곳이 예식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미 트베리 숙소에서 만난 커플에게 들은 말이 있다. 러시아에서 정식으로 결혼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그래서 조촐하게 하는 결혼식이 아닐까 싶다. 웨딩홀에서 강변이 멀지 않다. 결혼식이 끝났는지 커플은 강변 길에서 사진을 찍고 하객들은 삼삼오오 벤치에 모여 있다. 아버지인 듯한, 양복을 차려 입은 중년의 남자가 샴페인 한 잔을 필자에게 건넨다. 정 많은 러시안들의 결혼 풍습일 것이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만 축하를 마다할 수 없어 기꺼이 술 잔을 받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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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키야 강변 도로 산책로. 이곳에서 결혼을 하는 신랑신부를 만났다.

 

 

벨리카야 강변 도로 산책로

강변 도로에서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치를 바라본다. 강 건너편에는 필자가 머물고 있는 숙소도 보인다. 시내쪽 벨키카야 강변도로는 올긴스키 다리와 상류 최남단의 10월 혁명의 50주년 기념다리(Name Bridge 50-anniversary of October, 1967년 10월에 개통, 2016년에 복원)까지 이어져 있다. 강변을 따라 중요한 여행 포인트만 보기로 한다.

 

일단 근처에 프스코프 해군사령관기념 사인 벽(Memorial Sign to Pskov Naval Commanders)이 있다. 해군 사령관 기념비와 함께 프스코프 역사를 찬미하는 28개의 화강암 판이 벽에 길게 걸려 있다. 2014년 12월, 프스코프 해군 사령관을 불멸화시키기 위해 만든 기념물이다. 조각가 블라디미르 알렉세이 체르덴코(Bradimir Alekseevich Chernenko)의 작품. 또 한 곳이 핀란드 작곡가인 얀 시벨리우스의 동상(Monument to Finnish Composer Jean Sibelius)이다. 

 

올킨스키 다리 쪽으로 난 강변도로를 따라 가다 성벽의 계단을 오르면 핀란드의 유명한 작곡가 얀 시벨리우스의 커다란 두상이 있다. 얀 시벨리우스의 기념비가 왜 이곳에 있을까? 핀란드 쿠오피오(Kuopio) 도시와 1986년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만든 기념물이다. 쿠오피오에도 얀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얀 시벨리우스의 기념동상은 헬싱키의 축소판이다.

 


쌍둥이교회.JPG
두 개의 교회가 합쳐져 쌍둥이 처럼 보이는 교회.

 

 

14세기의 성령 버진의 중보기도와 탄생 교회

강변도로의 남쪽 상류쪽인 50주년 기념다리 쪽으로 가면 교회와 탑들이 많다. 일단 제방도로에서는 세계1차대전의 군인을 기리는 동상(Monument to the Soldier of the First World War)을 만난다. 군인 보병의 실물크기의 기념비는 당시 군사본부가 있던 건물 옆에 있다. 강변 길을 따라 더 가면 제방도로 끝 부분에 포크롭스카야 탑(Pokrovskaya Tower)이 손짓한다. 탑을 앞두고 언덕 위로 올라서면 성령버진의 중보기도와 탄생 교회(Church of the Intercession and Nativity From the Breach, Khram Pokrova I Rozhdestva Ot Proloma)가 있다. 오콜니(Okolniy) 마을의 남서쪽 모서리다. 

 

쌍둥이처럼 십자가 두 개가 지붕 위로 솟아 있다. 마당에도 돌로 된 십자가가 쌍둥이처럼 자리하고 있다. 두 개의 교회가 합쳐져 쌍둥이가 된 것. 프스코프의 연대기에 따르면 1399년에 세워진 증보기도교회와 1581년 스테판 바토리(Stephen Batory) 부대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바실리 4세 슈이스키(Shuisky, 1552년~1612년) 왕자에 의해 탄생 교회가 지어졌다. 1956~65년에 복원된 14~16세기의 전형적인 프스코프 건축물이다. 성전은 교회 기둥이 없는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기둥에는 하나의 후진과 현관이 있다. 현관에는 공통 벽이 있다. 중보기도 교회의 남쪽 벽과 북쪽의 탄생교회를 기반으로 한 교회의 천장. 가운데 벽에는 두 교회의 아치가 있다. 천장 아치 사이에는 중간 공통 벽에 수직 아치가 있다. 작지만 매우 매력적인 건축물이라서 놓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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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롭스카야 탑. 탑의 중간에느 특별한 참호가 있는데 여기있는 비밀통로를 만든 원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유럽에서 가장 큰 방어탑, 포크롭스카야 탑

쌍둥이 교회에서 포크롭스카야 탑은 지척이다. 포크롭스카야 탑은 크렘린의 탑들에 비교될 만큼 크다(지름 90m, 높이 40m, 벽두께 6m). 당연히 탑 쪽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프스코프 남쪽 경계지점에 있는 이 탑은 유럽에서 가장 큰 방어탑 중 하나로 러시아 북서쪽에서 최고로 손꼽힌다. 이 탑은 1465년, 오콜니 도시가 만들어지고 요새화를 시작하면서 1470년에 만들어진 방어탑이다. 탑의 첫 번째 층은 구조물이 서있는 바위에서 바로 잘려 나간다는 점이 독특하다. 

 

탑의 중간에는 특별한 참호가 파고 들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막다른 골목과 흩어진 비밀 통로다. 리보니아 전쟁 중에 발굴된 이 통로는 당시 최고의 엔지니어링이 개발했는데 아직도 그 원리를 밝히지 못했다. 3층에는 4.5톤의 대포가 있었다. 현재 탑은 완전히 복원되어 전시관이 되었지만 안쪽은 볼 수 없었다. 또 포크롭스카야 탑 인근에는 탱크(Tank T-34)가 있다. 1974년, 도시 해방 30주년 기념일에 만들어진 이 탱크는 원래는 프스코프 기차역 근처의 공원에 있다가 ‘50주년 기념 교량’ 인근으로 옮겨진 것이다. 50주년 기념 교량은 1967년 10월에 개통했다. 10월 혁명의 50주년 기념다리(Name Bridge 50-anniversary of October)는 벨리카야 강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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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으로 돌아오면 멀리 미카헬과 가브리엘 대천사 교회가 보인다.

 

프스코프 강 지류따라 멋진 ‘뷰’ 포인트

숙소로 가기 위에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다시 원점의 크렘린. 저녁을 먹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에서 발견한 루사코프 레스토랑(Restaurant Rusakov)을 찾으러 간다. 식당은 크렘린 동쪽, 프스코프 강 하류 쪽에 위치한다. 레스토랑이 있는 쪽에서의 풍치가 멋지다. 프스코프 강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크렘린이, 한쪽은 카페 건물이 어우러진다. 크렘린 성벽은 미들탑과 플랫타워, 비소카야 탑이 강변을 향해 휘돌아가고 강 건너편의 발람스카야 탑이 포인트가 된다. 멋진 풍경에 취해 식당에 자리를 튼다. 상당히 고급진 인테리어를 가진 식당이지만 손님은 한팀 뿐이다. 실내는 깔끔하고 종업원 또한 친절하다. 자주 먹는 올리비에 샐러드와 커피를 시킨다. 그런데 맛이 없다. 사이드로 곁들여지는 빵 조차도 맛이 없다. 그럼에도 음식 가격은 참 비싸다. 그런 날도 있는 게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크렘린 앞에서 때 아닌 폭우를 만난다. 한마디로 ‘억수’로 내린다. 비를 감지하고 미리 피할 곳을 찾아 서 있었으니 다행이다. 함께 비를 피한 남자에게 마켓을 묻는다. ‘근처에는 없다’는 그도 필자와 숙소가 비슷한 위치인 듯하다. 그와 올긴스키 다리를 함께 건넌다. 으레 그렇듯, 영혼없이 ‘어느 나라에서 왔니’라고 묻는다. 얼굴만 봐서는 전혀 구분 안되지만 그는 리옹에 사는 프랑스인이다. 그는 마켓을 알려주고 싶었던 듯하다. 그의 숙소 근처에 있는 마켓을 손으로 가리킨다. 그러는 사이 하늘에서는 물벼락이 쏟아진다. 그렇게 또 한 사람을 조우하고 헤어진다.

 

친절한 세르게이의 선물

길고 사연 많은 프스코프의 첫 날. 지친 몸을 침대에 뉘이고 잠시 쉬고 있는데 ‘세르게이’가 방문을 노크한다. 리가로 가는 버스편 예약을 도와준다는 그와 함께 커피숍에 마주 앉는다. 고마운 마음에 한국식으로 커피 한잔 사겠다고 했지만 그는 극구 사양한다. 그는 눈 앞에서 어딘가에 전화를 한다. 그가 원하는 신상정보에 답변을 다해준다. 전화를 끊고 그는 필자에게 여러 번 주지시킨다. “네가 프스코프를 떠나는 날 아침, 숙소로 차가 올 것이다”며 차가 도착할 시간과 표 가격, 짐값 없음 등의 정보를 알려 준다. 그는 행여 기억 못할까봐 몇 번이나 재확인을 한다. 

 

원하는 정보를 확실하게 알고 나서는 사적인 대화를 나눈다. 그는 역사 선생(33세)이다. 그래서 마치 학생 다루듯이 열심히 정보를 주지시킨 듯하다. 그는 3개월 간 방학기간을 이용해 여행을 하는 중이다. 그는 필자 말고도 한국인을 더 알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는 사이 세르게이는 꾸깃한 종이를 테이블 위로 꺼내 든다. 종이를 펼치니 차를 우려내는 다기용 주전자다. 분명코 프스코프의 특산품일 것이다. 그의 과잉 친절도 미안한데 예상치 못한 선물까지 받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기분이 좋은 것보다는 부담감이 더하다. 다기의 무거움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다.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계속)

 

Data

어린이 공원의 올가 공주 기념비

주소: Sovetskaya St., 13, 프스코프

 

언덕 위의 바실 교회

주소: Oktyabrskiy ave, 5, 프스코프/ 웹사이트: http://www.hramnagorke.ru/

 

아나스타시아 교회

주소: Oktyabrskiy Ave., 9, 프스코프/전화:+7 811 262-28-07/ 

웹사이트:http://anastasia-psk.ru/

 

웨딩홀(Dvorets Brakosochetaniya)

주소:Detskaya Ulitsa, 2

 

성령 버진의 중보기도와 탄생 교회

주소:Ulitsa Sverdlova, 1

 

벨리카야 방조제 길 

주소:Ulitsa Voyevody Shuyskogo, 9

 

얀 시벨리우스의 동상, 프스코프 해군 사령관 기념사인 벽, 군인 동상, 포크롭스카야 탑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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