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이 매력적인 박규리 캘리그래피 작가의 집을 찾았다. 요즘 가장 핫한 아티스트답게 집 역시 컬러, 배치 등 구도의 밸런스가 잘 이뤄져 어디를 바라봐도 감각적이다.
아침이면 창으로 따스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거실.
구도의 밸런스가 잘 잡힌 매력적인 집 
 
 
‘손으로 그린 문자’라는 뜻의 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기계적인 표현이 아닌,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 있는 글자체를 의미한다. 캘리그래피 작가 박규리는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도자기가 아닌 캘리그래피 작가로 전향해 많은 이에게 긍정의 메시지와 페인팅으로 일상의 행복을 전한다. 
 
“대학을 다니다가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갔는데, 거기서 편집숍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어요. 한국으로 돌아와 제가 디자인한 패브릭 작품과 제 취향의 물건들을 전시하면서 커피까지 판매하는 편집숍 개념의 복합문화공간을 열었는데, 이때 현실과 이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죠. 제 작품 말고도 예쁜 디자인이 세상에는 무궁무진한데 굳이 이 일을 지속할 이유가 있을까를 고민했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나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게 바로 캘리그래피였어요.”
 
그렇게 시작한 캘리그래피는 그에게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 굳이 한곳에 머물지 않아도 인터넷이 되는 곳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고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해외에서 여름과 겨울 각각 한두 달을 머물며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몇 해 전부터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가 유행했었죠. 자유롭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과 여가를 함께 즐기는 삶이야말로 제가 추구했던 라이프였어요. 1년에 서너 달은 해외에 있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지냈는데, 해외에서는 주로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 머무니 한국에 있을 때는 도심과 조금 떨어진 근교에서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어 지금의 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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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캘리그래피 작가 박규리. (우) 창가에서 들어오는 빛을 가득 받는 공간.

 

한적한 근교에 자리한 그의 집은 2층 구조로, 1층은 작품 활동을 하는 아틀리에 겸 스튜디오이고 2층은 주거 공간으로 분리해 사용하고 있다. 1층은 거실과 방 사이가 슬라이드 문으로 나뉘어져 문을 닫으면 프라이빗하게 작업에 집중할 수 있고 문을 열면 거실과 작업실이 연결돼 시원한 개방감을 준다. 그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경쾌한 캘리그래피와 페인팅 작품으로도 유명하지만 SNS상에서는 인테리어 고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저 역시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저만의 스타일이 생겼고 작업은 물론, 공간을 연출할 때 밸런스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죠. 이 밸런스가 잘 유지되려면 미술에서 모양, 색깔, 위치 등을 짜임새 있게 잡는 구도를 잘 생각해야 하는데 공간 역시 구도가 잘 잡혀야 안정감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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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목공 작업으로 창에 단을 제작해 낭만적인 창가를 연출했다.(우) 공간을 아늑하고 입체적으로 만드는 조명을 집 안 곳곳에 두었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가구나 소품이 아무리 예쁘다고 하더라도 그것들로만 채워진 공간은 오히려 개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건 구도인데, 컬러는 깔끔한 화이트나 베이지 등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공간마다 컬러로 포인트를 줘 생동감 있는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모든 공간에 다 힘을 주기보다는 시선이 가는 장소를 확실하게 스타일링한다. 가구를 배치할 때도 무턱대고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삼각, 사각 모양의 전체 구도를 잡아야 균형이 맞아 보인다. 가구의 부피와 높낮이도 신경 써야 한다. 기본적으로 작은 공간은 그에 맞는 작은 사이즈를 고른다. 사소한 이야기 같지만 이런 작은 차이가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제가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만큼 제 공간 역시 매력적이었으면 좋겠어요. 화이트 티셔츠에 청바지를 매치하고 여기에 클래식한 샤넬 백을 매는 것이 더 감각적이고 센스 있어 보이는 것처럼 공간도 똑같죠. 기본적으로 구도를 잘 맞춘 공간에 적절히 클래식한 브랜드와 캐주얼한 브랜드가 섞였을 때 전 더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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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맞은편에 위치한 작업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으로 그린 집 
 
‘빛의 화가’로 불리는 모네의 작품 속에는 시간에 따라,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사물과 사람이 인상적이다. 캘리그래피 작가 박규리의 집 역시 모네의 작품처럼 매 순간순간 빛이 주는 아름다움이 가득 담긴 집이다.  
 
“집이 동향이라 아침에는 동쪽 창문에서 해가 가득 쏟아지고, 오전 12시가 지나면 또 남쪽 창문에서 밝고 따스한 낮의 햇살이 들어와요.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블라인드 커튼 틈 사이로 들어오면서 테이블에 그림자를 만들어내는데, 저는 이걸 ‘그림자멍’이라 불러요. 테이블 위에 그려진 빛과 그림자를 보고 있으면 정신이 멍해지면서 들뜬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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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오로지 숙면에 집중할 수 있는 침실. (우) 캘리그래피 작업에 필요한 재료들 또한 하나의 인테리어 소품이 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1층 남쪽 방향에 나 있는 작은 창가다. 이사할 때 유일하게 손 본곳이 바로 남쪽 창인데, 목공 작업으로 소품을 올려놓을 수 있는 단을 제작해 감성 충만한 창가를 만들었다.
 
“오래전부터 창가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외국에는 창가에 촛대나 목각인형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오브제들로 꾸며놓죠. 밖에서 창가를 바라봐도 그 집 주인의 취향이 그려지는 낭만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창가 역시 남향의 해가 잘 들어 제가 즐겨 보는 책이나 소품 등을 자주 바꿔가면서 올려놓는데 그저 보고만 있어도 평화로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최근 급격한 기후 변화와 코로나 팬데믹 등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환경 보호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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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2층 욕실에는 직접 캘리그래피로 작업한 거울을 달아 경쾌한 분위기를 더했다.(우)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놓은 캔버스 작품들.

 

“그동안은 환경의 심각함을 인식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더라고요. 작가로서 환경 보호에 일조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다가 브랜뉴백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어요. 가방에 캘리그래피와 페인팅을 그려 넣는 작업이에요. 하루가 다르게 출시되는 명품백은 많은데 유행이 지나서 혹은 너무 오래돼서 옷장 속에 잠자고 있는 가방들이 많잖아요. 이걸 다시 꺼내 새로운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죠. 이 역시 환경을 위해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했어요.”
 
그는 환경을 위한 작품 활동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만의 방식으로 환경 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다. 인테리어를 좋아하다보니 가구를 많이 구입했는데, 필요 없게 된 가구는 되팔거나 지인의 집에 빌려주기도 한다. 또 새로 출시된 가구 대신 오래오래 이야기가 쌓여온 잘 만들어진 빈티지 가구를 구입한다. 이렇게 작은 실천이 하나하나 모여 결국에는 다시 되살아나는 아름다운 자연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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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옆 공간은 작은 테이블과 스툴, 라탄 의자를 배치해 휴식의 공간으로 꾸몄다.

 

 
“제 인생 모토는 ‘도전은 무한히, 포기는 빠르게’예요.(웃음) 할 수 없는 것을 탓하고 불평하는 대신 제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하죠. 그 도전이 거창하지 않아도 돼요. 아니다 싶으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것에 또 도전하죠. 비록 작은 것이라도 먼저 도전하는 기쁨을 누려보세요. 도전을 통해 나를 새롭게 알게 되는 기회도 가질 수 있고 새로운 인생의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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