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 그새 달라질 만큼 빠르게 흐르는 시대. 그 속도만큼 바뀌는 것을 꼽자면 ‘인식’과 ‘역할’이다. 과거 ‘코디’로 불리던 오늘날의 ‘스타일리스트’도 그중 하나다. 연예인 착장만 도와주는 존재를 떠올렸다면 오래전 이야기다. 수십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가 되었고, 새 패션 문화 플랫폼을 만드는 대표가 되었다. 스스로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스타일리스트들을 만났다.
“패션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제 역할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은 있거든요. 사회를 조금 더 건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문화로 ‘중고 소비’를 정착시키고 싶어요. 이미 제품화된 걸 구매하는 거니까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고, 제가 패션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도 좋았고….”
 
스타일리스트 구동현 실장은 중고 패션 플랫폼 어플릭시(APPLI XY)를 운영하고 있다. 한때 누군가의 손을 거친 옷과 가방, 신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플랫폼이다. 코로나19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매달 연예인, 모델, 패션 관계자들과 플리마켓을 열었다. 유행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니만큼 마켓에 진열되는 패션 아이템이 무궁무진했다. 문제는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웠고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구동현 실장은 플리마켓의 단점을 보완한 플랫폼을 기획해 산업진흥원 공모전에 응모했고 이후 국가 지원을 받아 사업으로 연결시켰다. 
 
 
판매할 제품이 입고되면 명품 감정 전문가가 정품 여부를 확인한 뒤 제품을 친환경 세탁 서비스에 맡기고, 돌아온 제품을 재차 검수해 최종 판매 가능성을 판단하는 게 어플릭시의 프로세스다.  
 
“중고 시장가가 다 검색이 돼요. 일일이 조사를 하고 적정가를 매겨서 세일즈를 하는 거예요. MZ세대는 명품이나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에 폭발적인 수요를 보이는 데 반해, 경제적으로 충당할 순 없잖아요. 어플릭시에서 합리적인 가격의 명품을 먼저 경험해보고 나중에 돈을 벌면 백화점에 가서 사는 건 어떻겠느냐, 그런 교두보 같은 역할을 하고 싶은 거예요.”
 
여성 의류 브랜드는 7년째 운영 중이다. 브랜드 성장에 대한 욕심보단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었다. 담당 연예인의 옷을 선택할 때 스타일리스트로서 온전한 의견을 제시할 수 없는 데 무료함을 느끼던 시기였다고. 
 
“마음껏 옷을 만들고 싶었어요. 시작하고 4년 동안은 되게 잘됐어요. 금방 건물주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웃음) 사드(THAAD)가 터지면서 수출이 막히고 매출은 반토막이 되고, 고정비용은 더 늘고. 번 돈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더라고요. 이제는 유지만 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정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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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구동현 실장은 패션으로 시작해 패션으로 귀결되는 사람이다. 카우보이모자를 목에 걸고 노란색 안경을 쓰고, 반바지에 워커, 가죽조끼 차림의 학창시절도, 백화점 MD로 일하던 20대 초중반 시절도 ‘옷이 좋아서’였다. 이제 스타일리스트로 전향한 지 12년째다. 그는 스타일리스트의 활동 범위가 넓어졌음을 체감한다고 했다.
 
“스타일리스트가 되면 연예인 스타일링밖에 못하는 줄 알았는데 개인 브랜드를 내서 운영할 수도 있고 다른 브랜드와 협업도 가능하고, 홈쇼핑도 강의도 할 수 있어요. 스타일리스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부쩍 커져서인 것 같아요. 어린 친구들이 저한테 DM(Direct Message)으로 ‘스타일리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자주 물어요. 대학을 가야 하느냐는 질문도 많은데, 답하기가 정말 조심스러워요. 이 사람의 가치관이 나 때문에 바뀌는 건 아닐지, 내 말을 듣고 대학 진학을 포기하진 않을지. 스타일리스트로서 내가 더 신중히 행동해야겠단 생각이 커지죠.”
 
스타일리스트가 되고서 누리는 것도 잃는 것도 생겼다. 매체로만 볼 법한 화려한 현장을 몸소 겪을 수 있는 한편, 평일과 주말의 경계 없이 일하기도 한다. 
 
“주말에 업무 전화가 와도 이상하지 않고 일요일 아침에 촬영장에 가는 것도 당연한 일상이 됐어요. 남들처럼 놀러 갈 계획을 미리 잡아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그만큼 누리는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브랜드 행사라든지, 제가 일반 회사원이었으면 모르고 지날 수 있는 상황들을 제일 먼저 보고 경험할 수 있잖아요. 현장에서 받는 에너지도 크고 늘 새로운 것을 하면서 희열을 느껴요.”
 
구 실장은 아이돌 그룹 하이라이트, 비투비, 뉴이스트, 배우 임시완, 한예슬, 조보아 등의 스타일링을 맡았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스타일리스트와 연예인의 관계. 그 선을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투비 멤버 육성재가 2019년 <집사부일체>에서 구 실장을 향한 편지를 낭독한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성재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같이 일을 해서 친해졌어요. 저랑 성격이 되게 비슷하기도 해요. 사적으로 전화를 자주 하진 않아도 의지하는 부분들이 많아요. 둘이서 여행도 자주 다녔고… 서로 믿는 사이가 된 것 같아요. 그런 관계가 쉽진 않아요. 친한 연예인이 많긴 하지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같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관계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저마다 바쁘게 살면서 자연스레 잊히는 경우가 되게 많더라고요.”
 
일부 연예인의 팬들은 의상을 두고 스타일리스트를 비난하기도 한다. 정작 구 실장은 개의치 않는다. 일희일비할 정도로 여유롭지 못하다. 
 
 
“의상을 결정할 때 한 벌만 가져가지 않아요. 아티스트랑 얘기를 나누고 결정해야 하니까요. 제가 봤을 땐 이상한 조합인데, 아티스트가 입고 싶다고 고집해버리면 제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렇게 해서 ‘워스트드레서’로 꼽히면 욕은 스타일리스트가 다 먹고.(웃음) 그런 것 하나하나 다 마음 쓰면 일 못해요.”
 
새롭게 스타일링 해주고 싶은 대상을 묻자, 그는 ‘스타트업 대표들’을 꼽았다. 
 
“자수성가한 2030 대표들 있잖아요. 특히 IT 종사자 분들 중에 공부하시느라 패션에 전혀 관심 없는 분들이요. 해외 인터뷰 때 조금 더 근사한, 자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스타일링을 하면 어떨까 해요.”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것이 돈을 버는 이유이고, 꿈이다. 
 
“실천력이 되게 빠른 편이에요. 나이가 더 들어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목표를 세우면 바로바로 실행하고 싶은데, 돈 문제가 생기면 주춤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돈을 버는 거예요. 패션에서 파생된 또 다른 무언가에 도전하는 게 제 꿈이에요. 주변에서는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하는데. 저는 몸이 하나뿐인 게 화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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