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 그새 달라질 만큼 빠르게 흐르는 시대. 그 속도만큼 바뀌는 것을 꼽자면 ‘인식’과 ‘역할’이다. 과거 ‘코디’로 불리던 오늘날의 ‘스타일리스트’도 그중 하나다. 연예인 착장만 도와주는 존재를 떠올렸다면 오래전 이야기다. 수십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가 되었고, 새 패션 문화 플랫폼을 만드는 대표가 되었다. 스스로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스타일리스트들을 만났다.
“우리 앞으로 패션 얘기 많이 해요. 최실장이었어요. 좋아요, 구독 좀 눌러줘요. 나 이거 오래하고 싶은데.(웃음) 열심히 할게요. 다음 시간에 봐요.”
 
2018년 6월 최희승 실장은 처음 공개한 유튜브 영상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오래하고 싶단 바람을 담아 시작한 지 3년째. 최 실장이 운영 중인 ‘옆집언니 최실장’은 구독자 35만 명(5월 15일 기준)을 보유하고 있다. 
 
“유튜브를 어설프게 시작했다간 업계 사람들한테 창피할까봐 망설였어요. 제가 유명인도 아니고 포지셔닝이 되게 애매한 것 같더라고요.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 이게 반응이 없으면 본 사람도 별로 없단 소리니 부끄러울 일도 없겠구나’(웃음)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최희승 실장은 15년 경력의 스타일리스트다. 업계에서 손꼽히는 그일지라도, 잡지 시장이 축소되면서 스타일리스트로서 역할도 줄었다. 그렇다고 곧장 위기의식을 느끼진 않았다. 좋아하는 활동들로 여유 시간을 채울 수 있어 만족했다. 지난달에 일이 전혀 없었다는 걸 깨닫기 전까진 그랬다. 
 
“마흔이 다 되어가고 난 이제 뭘 해야 하나…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막막함이 밀려드는 거예요. 영역을 넓히자 싶어 예술경영 대학원에 들어갔고 ‘1인 미디어’ 영상 과제를 하게 됐어요.”
 
과제를 계기로 영상 편집 기술을 배웠다. 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영상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가령, “언니는 스타일리스트니까 명품 가방 좀 추천해줘”라는 식의 질문에 나만의 답들로 풀어가기. 오랜 시간 일하면서 쌓인 회의감을 덜어보고 싶기도 했다. 진로 고민에서 출발한 유튜브 채널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촬영부터 편집, 업로드 등 모든 과정을 혼자 했던 초반과 달리 지금은 각 역할을 맡는 직원들이 생겼다. 
 
“요즘 살짝 상승세입니다.(웃음) 상승하는 주기가 있어요. 일명 ‘떡상한다’고 하는데 영상 한두 개 조회수가 터지면서 구독자 수가 확확 늘어나는 구간이요. (구독자 수) 1만 명이 조금 넘었을 때 ‘저렴한 옷 비싸 보이게 입기’라는 영상을 올렸었는데 그게 지금 200만 뷰가 됐어요. 구독자 수가 제일 많이 증가할 때는 하루 4,000명까지 늘기도 하고 훅 빠지면서 주춤할 때도 있어요.”
 
그는 구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옷 좀 아는’ 언니와 대화 나누는 콘셉트다. 전문가로서 조언을 하기보다 구독자와 함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방향을 택했다.
 
“많은 분들이 본인은 뚱뚱하다, 못생겼다고 말씀하시면서 우울해하는데 스타일은 그런 걸 초월하는 거예요. 명품에 너무 연연할 필요도 없어요. 샤넬 여사가 했던 말인가? 방금 어떤 사람이 지나갔는데 그 사람이 입은 옷만 기억나면 옷을 잘 입은 게 아니래요. 사람이 아닌 옷이 돋보인 거니까요. 스타일은 사람의 취향, 가치관,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거예요.”
 
문득, 그의 남편이 추구하는 스타일링이 궁금해졌다. 스타일리스트 아내를 둔 남편의 특징이랄까. 쿨한 답변이 돌아왔다.  
 
“남편 스타일링은 절대 해주지 않아요. 날개를 달아주지 않죠. 귀찮아서. 알아서 잘 골라 입으면 좋겠는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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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식이 있어 가능했다 
 
인터뷰 내내 최희승 실장은 의외였다. 다르게 말하면 스타일리스트에게 갖는 편견을 부수는 사람이다.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꼭 갖고 있을 것 같은 화려함, 그것과 그는 별개인 것 같았다. 
 
“이 업계에 있는 사람들의 허세, 겉멋. 뭐 저도 느끼는 바가 있고,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할 수도 없어요. 근데 저 되게 후줄근해요. 구릴 땐 진짜 구리고요.(웃음) ‘지란지교를 꿈꾸며’(유안진의 시)에 그 구절이 참 좋더라고요. ‘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보다 품위 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그는 ‘스타일리스트’가 ‘코디’로 통용되던 시절을 회상했다. 단어에서 오는 뉘앙스가 썩 유쾌하진 않았다고. 그의 말마따나 스타일리스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게 사실이다.
 
“스타일리스트 직업군의 인기가 많아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의상학 전공자들 대부분이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가, MD도 많았다가 이제는 에디터, 스타일리스트 일을 하고 싶다고 해요. 스타 스타일리스트들이 인식 개선에 한몫한 것 같아요.” 
 
다만 ‘감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패션업계에 뛰어드는 것은 지양하라고 당부했다. 
 
“영감이 막 떠오른다고 하잖아요. 그건 꾸준한 공부와 리서치,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잘 놀 줄 알고 감각이 좋으면 이쪽 일을 잘할 거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기초, 특히 패션의 역사도 모르면서 무슨 패션을 한다고 해요. 제가 꼰대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후배들한테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해요.” 
 
 
최 실장은 지난해 매니지먼트 에스팀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최실장’을 브랜드화해 스타일리스트로서 커리어를 확장할 계획이다.
 
“스타일리스트가 되고서 ‘최악’의 상황은 없었어요. 제가 엄청난 타격을 느꼈어야 하는 건데, 오히려 일이 줄어든 게 전화위복이 됐잖아요.(웃음) 위기의식이 없는 상태로 계속 일했다면 유튜브 할 생각도 전혀 안 했을 거예요. 제가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 거라는 확신을 주려면 스스로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전문가로서의 포지셔닝이 더욱 확실해야 할 것 같고 유명인과의 친분 없이도 실력 있고 매력 있는 스타일리스트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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