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 그새 달라질 만큼 빠르게 흐르는 시대다. 그 변화의 속도만큼 바뀌는 것을 꼽으라면 ‘인식’이 아닐까. “그건 옛말이지”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는 이유라면 이유겠다. 인식의 대상이 무엇이든,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엄마’도 그중 하나다. 희생, 살림, 육아로 상징되던 존재는 옛말. 이제 엄마라는 이유로 자신을 잃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나’를 찾아 나선, 그렇다고 엄마의 위치를 놓치지도 않는 사람들. 요즘말로 ‘힙한 엄마’들을 만났다.
“20대 의대생이고 2세 아기의 엄마예요. 본과 2학년을 마무리하고 있어요. 캠퍼스 커플로 만나 이제 3년 차 주부에요. (…) 적당하게 비위 맞추며 일하고, 유예했던 모든 만남과 피곤을 주말에 해결하고 늘 바둥거리며 살다가도 월급이 들어오면 카드값 갚기 바쁜 그런 궤도에 올랐다가는 다신 못 내려올 것 같았어요. 대기업에 들어갔단 이유로 나 같은 사람도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할 수 있었어요. 이 돈으로 공부해서 의대를 가겠다며 다음 날 퇴사했어요. (…) 육아와 병행하고 있는 의대 공부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버티고 있는데도 참 힘드네요. (…) 작년에만 방충망이 두 번 찢어졌어요. 떨어져 죽겠다고 내가 다 찢어버려서요. 그때 깨달았어요. 연고 없는 곳에서 결혼하고 의대 공부를 하고 육아를 하며 버틸 수 있는 힘은 수다와 공감이란 걸. 남편도 누가 됐든 사람들이랑 자주 얘기하라고 해요. 그래서 시작했어요. 온전히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이곳에서 더 행복해지고 싶어요.”
 
지난해 말 유튜브 채널 ‘클레어(Claire)’에 올라온 이 영상은 일주일 만에 조회수 307만을 기록했다. 육아와 의대 공부를 병행하는 것도 모자라 유튜브 크리에이터, 작가 활동까지 하는 서른 살 이도원 씨의 이야기. 13만 구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1인 4역의 도원 씨는 이력도 평범하진 않다. 동국대학교 생물학과에 입학해 연세대학교 생화학과에 편입, 졸업한 뒤 대기업에 입사했다. ‘엄친딸’로 비쳐졌지만 그는 늘 의사가 되고 싶었다. 집안에 알리지도 않고 의대에 도전했다. 합격 통지서를 받고서야 부모님에게 전했다. 어렵사리 시작한 의대 생활 중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되어버렸다. 
 
“결혼 준비 때문에 1년을 휴학한 상태였는데 신혼생활 중에 아이가 생겼어요. 남편도 의대생이라 걱정이 두 배였죠. 남편이 우리는 공부할 것도 많고 힘든 시기도 많을 텐데, 꽃길을 걷게 해주겠단 얘기는 못해도 같이 고생하고 같이 성공하자고. 그렇게 다짐하고 결혼했는데 진짜로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더라고요.”
 
기상하자마자 간단한 반찬을 만들어놓고 출근한다. 공부, 발표, 회진 등을 마치면 저녁 시간이 가까워진다. 곧장 남편, 시어머니와 교대해 육출(육아 출근)을 한다. 아기가 잠들면 과제를 시작한다. 잠시 멍 때리는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바닥을 훔친다. 아이가 입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이물질을 치우기 위해서다. 부부 둘 다 국가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공부를 소홀히 할 수도 없다. 성적이 일정 기준을 벗어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평균 수면 시간은 5~6시간, 도원 씨는 요즘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잠자는 것’을 꼽았다. 
 
“이 생활이 길어질수록 주변 가족들의 도움을 더 받아야 하니까 그게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든 더 빨리 졸업해야 돼요.”
 
타이트한 하루를 더 타이트하게 보내야 하는 그가 ‘굳이’ 유튜브까지 시작한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어요. 너무 지쳐서 누웠는데 잠은 안 오고 대화는 하고 싶고. 남편도 공부하기 바빠서 얘기를 적극적으로 공유할 시간이 없거든요. 온라인 세상에서 낯설지만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한테서 받는 위로와 긍정적인 말들이 큰 힘이 돼줬어요. 이 일은 계속하고 싶어요. 편집을 직접 하기 때문에 영상을 한 달에 하나씩밖에 올리고 있지 못하지만요.”(웃음)
 
읽어보기조차 괴로운 악플이 달릴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찾아 꺼내는 지난 메모들. 도원 씨는 크고 작은 성취를 하면 그날의 느낌과 다짐을 잊지 않고 글로 남긴다. 가령 대학생 시절 축제의 함성 소리를 들으며 벤치에 누워 밤하늘에 집중하던 순간을 기록한 적이 있다. 한참 초라해지는 것 같다가도 그 글을 꺼내 읽으면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다. 
 
11월 출간을 목표로 책도 쓰는 중이다. 글감이 떠오르면 메모장에 적어두고 일주일 중 하루를 글 쓰는 데 할애한다. 
 
“우리는 너무나 비슷한 고민들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 내 꿈은 무엇인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고민하잖아요. 그때 나는 어떻게 결론을 내리고 해결했는지, 제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요.”
 
도원 씨는 ‘엄마’가 무언가에 도전하기 위해선 육아 걱정을 붙잡아줄 수 있는 지원군, 꿈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의 열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 남편까지 모두 도원 씨의 도전의식을 북돋워주는 존재다. 양가 부모님 모두 젊은 시절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길 권한단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들이 자라, 어릴 적 엄마와 보낸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면.  소신이 담긴 답변이 돌아왔다. 
 
“엄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늘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는 사람일 수 있겠지만, 아이가 자랄 때 옆에서 인생 선배로서 좋은 사회적 모델로 비쳐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가 마냥 아쉬워할 것 같지 않아요. 잘 놀아주기도 하고요.(웃음) 어느 분이 댓글로 ‘대단하다’고 하셨는데 저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 주어진 일을 꿋꿋하게 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실수도 많고 못하는 것도 많아요.”(웃음)
 

관련기사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