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사유리가 비혼모가 됐다. 사유리는 아이를 갖기 위해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골라 시험관시술로 아들 젠을 낳았다. 사유리를 비롯해 이제 세상에 자신이 싱글맘임을 밝히는 사람이 늘고 있는 분위기다. 세상 밖으로 나온 싱글맘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월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던 ‘정인이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양부모에게 학대를 받다 사망한 16개월 정인이의 이야기에 전국이 슬퍼했다. 이 사건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입양 후 양부모가 일정 기간 내 입양을 취소하거나 입양 아동을 바꿀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입양 부모의 경우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에는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입양하려는 마음은 강하지만 아이와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 입양아동을 바꾼다든지 입양 자체를 위축시키지 않고 활성해 나가면서 입양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후 거센 반발이 일었다. 이때 국회의원 중 가장 큰 목소리를 냈던 이가 국민의힘 소속 김미애 의원이다. 그는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의 입양 아동에 대한 인식에 분노한다”며 “입양 아동이 시장에서 파는 인형도 아니고 개나 고양이도 아닌데 아기를 인형 반품하듯이 다른 아기로 바꿀 수 있냐”며 분노했다.
 
정인이 사건, 대통령 발언에 분노한 싱글맘 국회의원
 
김 의원이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그 역시 입양한 딸을 키우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2011년 생후 80일 된 딸의 엄마가 됐다. 결정은 갑작스러웠지만 입양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결혼을 하면 아이를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 2011년 43세가 되면서 덜컥 겁이 났다. 아직 미혼이었고 나이를 먹어서 내가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입양기관에 가서 일을 ‘저질렀다’. 입양 서류를 접수한 지 40여 일 만에 작고 소중한 딸을 품에 안았다.
 
“상담을 갔더니 아이엠에프 이후로 입양 못 간 아이들이 넘쳐난다는 말을 듣고 너무 괴로웠어요. 그날 집에 와서 누웠는데 머릿속에 수십 명의 아이들이 떠돌아다니는데 어떻게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급하게 입양을 해서 사람을 구하지도 못했어요. 제가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의뢰인에게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하고, 저는 그때부터 하던 일을 줄였어요. 우리 딸을 입양하기 전에 열한 살 된 친언니의 아들을 제가 키우게 되면서 졸지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됐어요. 조카가 상처가 많아서 그 아이를 돌보면서 딸을 키우느라 분주히 살았죠.”
 
김 의원은 열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엄마 없이 자라면서 어른들이 엄마, 아버지를 비난하는 말을 하는 것이 너무 상처였다. 자라는 과정에서도 고생을 많이 했다. 버스비를 제대로 구하기 힘들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방직공장에서 여공생활을 했다. 홀로 실비집을 차려서 장사도 해보고 돈이 필요해 보험설계사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스물아홉 살에 야간대학에 들어가 사법시험을 봤고 변호사가 됐다. 
 
가난해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던 소녀가 변호사로 인생역전을 이뤘지만 어릴 때 힘들었던 자신을 잊지 않았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처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받는 아이들의 위탁보호자가 됐다. 소년원을 들락거리면서 아이들을 도왔다. 김 의원은 “그때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커졌다”고 했다. 이런 개인사가 김 의원과 딸을 가족으로 이어준 셈이다.
 
결혼도 안한 싱글 여성이 갑자기 아이 엄마가 되니 주변에 입양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김 의원은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 딸의 엄마가 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다만 나중에 아이가 자신이 엄마의 친자식이 아니라고 했을 때 충격을 받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그때를 대비해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쏟았다. 나중에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동안 엄마에게 받았던 사랑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이가 입양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양가족 모임을 다니기도 했다. 주변 친구들이 모두 입양아라면 김 의원이 딸이 입양을 받아들이기 한결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 의원은 아이에게 입양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다. 언젠가 밝혀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언제가 좋을지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때 이미 경험이 있는 선배 입양 부모들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밝히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서 힘겹게 아이에게 입양을 고백했다.
 
“제가 그랬어요. ‘엄마가 결혼 안 한 거 알지? 엄마는 임신도 한 적 없어. 엄마는 마음으로 너를 낳았단다.’ 그랬더니 딸이 괜찮다면서 반응이 너무 쿨한 거예요. 저는 눈물을 흘리면서 힘들게 이야기했는데 말이죠. 나중에 보니까 그게 괜찮은 게 아니었어요. 그때부터 제 옷을 들추고 배에 딱 붙어서 아기 흉내를 내더라고요. 길을 가다가 임신한 여성들을 보면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하고. 그런 진통을 겪다가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자기가 친구들한테 먼저 자기가 입양아라고 말하고 다닐 만큼 당당해졌죠.”
 
아이와 함께하는 4일, 국회에서 3일
 
아이가 자연스럽게 자신이 입양된 아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것도 엄마와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의원은 딸이 48개월이 될 때까지 한시도 아이를 품에서 떼어놓은 적이 없다고 했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주고 싶었다. 김 의원의 불우했던 성장 과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선천적으로 아이가 몸이 약한 탓도 있었다. 김 의원의 딸은 2kg의 작은 몸으로 세상에 나왔다. 수시로 아이가 토하고 기절하는 탓에 늘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으로 살았다. 아이가 여섯 번 기절했을 때는 지옥에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김 의원은 “수시로 아팠던 아이가 지금은 오히려 다이어트를 걱정해야 할 만큼 건강하다”며 웃었다.
 
 
“아이 학교에 행사나 봉사활동이 있으면 열일 제쳐두고 무조건 가요.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아이 학교에 교통 봉사가 있을 때면 다 참석했어요. 제가 이렇게 열심히 사랑해주니까 아이도 알아요. 엄마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김 의원과 만났던 날은 마침 그가 딸을 만나러 부산으로 가는 목요일이었다. 오후 4시 30분에 부산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러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목요일에 부산으로 가면 아이와 4일 정도 시간을 보내고 월요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회로 출근한다. 김 의원은 “몸이 고단하긴 해도 온 힘을 다해 아이를 사랑해줄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었다.  
 
“아이가 저한테 별말을 다 해요. 낳아준 엄마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고, 아빠가 궁금하다는 말도 하고. 그날 스스로 나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면 자기 전에 저한테 고백해요. ‘엄마 오늘 제가 이런 말을 해서 나빴어요. 용서해주세요’ 하면서요. 그러면 저는 ‘말해줘서 고마워. 니가 이렇게 행동한 건 잘못한 거야’라고 말해줘요. 아이가 스스럼없이 엄마에게 자기 이야기를 다 해주는 게 정말 감사하죠. 그만큼 아이가 건강하다는 증거니까요.”
 
여성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싱글 워킹맘은 더하다. 변호사로 일할 때도 바빴는데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는 더욱 바빠졌으니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것이 보통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김 의원은 행복하다고 한다.
 
“큰아이가 사춘기가 오거나 아이들이 아플 때도 힘들었고, 요즘은 너무 바빠서 문제에요. 그래도 아이들을 키우기로 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제가 딸 이야기를 할 때면 그렇게 웃는대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딸을 입양한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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