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을 묻는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같은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육자, 행정가 등 수많은 수식어를 단 이어령 선생이다. 그의 번쩍이는 머릿속에서 나온 창조적 생각은 우리 현대사 곳곳에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어느덧 미수를 맞은 이어령 선생, 그의 인생 전반에 걸친 창조적 사고를 톺아보는 책이 나왔다. 이어령의 마지막 제자 김민희 <톱클래스> 편집장이 장장 100시간 인터뷰 끝에 나온 <이어령, 80년 생각>이다.
 
요즘 시대를 ‘어른 실종의 시대’라고 한다. 보수와 진보가 갈라지고 남녀 간의 갈등이 심화된 지금, 우리는 갈등의 용광로 속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어른을 떠올리라면 십중팔구는 이어령이란 이름 석 자를 떠올릴 것이다.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는 하나의 타이틀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다.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이고 언론인이자 교육자, 행정가이자 문화기획자, 초대 문화부 장관,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괄기획위원 등 미수의 나이에 접어들 때까지 수많은 일을 해왔다. 통섭형 지식인으로 살아온 그의 발자취를 하나로 잇는 단어가 ‘창조’다. 이어령식 창조적 사고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는 한국 현대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겼다.
 
이어령 교수의 창조적 사고는 많은 이들이 배우고 싶어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그의 사고회로를 따라가 보면 그 답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매력적이지만 어려운 길을 나선 이가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제자이자 인터뷰 전문 매거진 <톱클래스>의 김민희 편집장이다. 김민희 편집장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100시간에 걸쳐 이어령 교수의 ‘생각의 생각’을 탐구했다. 그리고 스승의 창조적 사고를 탐구한 책 <이어령, 80년 생각>을 썼다.
 
 
#김민희가 해독한 이어령의 창조 지도
 
김민희 편집장은 이어령 교수가 이화여대에서 석학·석좌교수로 재직했던 1995년부터 2001년까지 학부와 대학원을 다녔다. 학부에서는 교양과목 ‘한국인과 정보사회’, ‘한국 문화의 뉴패러다임’을 들었고 대학원에서는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국문학 전공수업인 ‘문학과 기호학’을 들었다. 대학원을 졸업한 김민희 편집장은 이후 <월간조선>에서 언론인 생활을 시작해 <주간조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늘 멀게만 느껴졌던 스승 이어령 교수를 만나게 된다. 스승과 제자를 다시 이어준 것은 이어령 교수의 시 한 편이었다. 2015년 메르스 사태가 터지고 이어령 교수가 쓴 ‘소원시’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을 안겨준 것을 계기로 스승과 제자는 인터뷰이와 기자로 만났다. 이때의 인터뷰가 <이어령, 80년 생각>의 시발점이 됐다.

<주간조선>에 연재했던 ‘이어령의 창조 이력서’에서 <이어령, 80년 생각>까지 이어졌어요. 무려 100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지 고민이 컸을 것 같아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전체를 껑충 건너뛰면서 말씀을 이어가세요. 말에 말을 걸면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에요. 앞의 말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크게 보면 하나로 합쳐지는 신기한 경험을 여러 번 했죠. 저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의도를 파악하면서 이야기를 들어야 해서 인터뷰를 하면서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했어요. 선생님을 만나고 오면 늘 감기에 걸린 것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어요. <주간조선>의 ‘이어령의 창조 이력서’는 회고록의 성격이 강했다면 책은 회고록이라기보다 창조독법이에요. 어떻게 하면 이어령처럼 생각할 수 있는지, 그 창조력의 비결을 캘 수 있는 책을 만들려고 했어요. ‘창조 이력서’는 1년 동안 연재를 했고, 연재가 끝난 뒤 3년 동안 선생님을 만나서 책의 각을 잡아나갔죠.
 
이어령 교수의 평전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편집장이 이어령 선생의 제자이기 때문인가요? 선생님은 학연, 지연을 따지지 않으세요. 그래서 제자라고 더 챙기고 감싸는 게 없어요. 그런 성향 탓에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어른임에도 ‘이어령 사단’이라는 게 없어요. 그것 때문에 외로워하기도 하셨죠. 저는 <주간조선>에서 근무하던 2015년 오랜만에 선생님을 뵀어요. 그때 제 기사를 읽고 폭풍칭찬을 해주셨어요. 토씨 하나 건드릴 곳 없는 아름다운 글이라고. 그러다 몇 번 밥을 함께 먹으며 “한 번쯤 내가 해온 일을 톺아보는 인터뷰를 해보고 싶은데 같이 하자”고 먼저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이어령의 창조 이력서’가 시작됐죠. 제자여서 이런 기회가 생겼다기보다 제자이기 때문에 책에 충실할 수 있었어요.
 
독자 입장에서 책머리 대화와 책말미 대화가 인상적이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긴 시간 이어령 교수와 대화를 나눈 느낌이었어요.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인터뷰 전문 기자로서 지향하는 점이 있어요. 있던 것을 풀어서 쓰는 게 아니라 뮤지컬이나 연극처럼 이 순간에만 경험할 수 있는, 한 존재와 한 존재가 피어나는 생각들을 현장성 있게 다루자. 생동감 있는 팔딱거리는 느낌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독자가 나로 빙의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죠. 선생님도 저에게 “나를 박제화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셨어요. 아직도 “지나간 것은 중요하지 않다. 육체를 가진 인간들이 할 수 있는 현재의 말이 얼마나 중요하냐. 나를 박제화하는 것은 먼 훗날 내가 떠나고 나서 하라”고 말씀하세요. 책의 앞부분에는 상대적으로 선생님의 육성이 덜 담겼지만 뒤로 갈수록 선생님의 의도를 파악하고 아는 부분이 생기면서 현재성이 강조된 글을 썼어요. 책머리 대화와 책말미 대화는 독자들이 놓치지 말고 꼭 읽었으면 좋겠어요.
 
 
독자들이 그 부분을 꼭 읽기를 바라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책머리 대화에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이어령 선생이 보낸 20년 이상의 세월이 압축되어 있어요. 질문쟁이 꼬마가 어른들에게 질문하면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고 구박받는데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질문을 잃지 않고 성인이 됐어요. 질문에 솔솔 뿌린 씨앗들을 어떻게 피워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거기 담겨 있어요. 또 하나는 독서법인데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꼭 읽었으면 하는 내용이에요. 어려운 독서를 해야 전후 문맥을 파악하면서 추리력, 어휘력, 상상력이 자라요. 저도 두 아이를 키우며 <신 인재시교>라는 육아 교육서를 썼어요. 책을 쓰면서 행복한 성공으로 이끈 아이와 부모의 교육철학을 배웠다면 선생님과 나눈 대화에서는 저의 잘못된 습관을 발견했어요. 아이의 말을 나의 시각과 편견을 거쳐서 판단했었거든요. 아이의 생각을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어요. 지금은 아이가 질문하면 왜 저렇게 생각할까,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서 대답을 해줘요. 사소한 질문이라도 아는 만큼 최선을 다해 답을 해주려고 노력하게 됐어요.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과 창조적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으니 거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 같아요. 선생님의 50분 강연을 듣고 인생이 달라졌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100시간 넘게 만났으니 엄청나게 많은 변화를 겪었죠. 책을 쓰기 전에 저는 모범생 타입이었어요. 사회가 원하는 엘리트였고 사회가 원하는 틀과 고정관념에 충실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죠. 그러다 40대 초반에 선생님을 만나면서 사고의 근본이 흔들렸어요.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어요. 처음에는 울 만큼 힘들었어요. 나의 세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면서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됐어요. 선생님은 제게 고정관념과 편견 없이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법을 알려주셨어요. 선생님이 저에게 거대한 도화지를 주신 거죠. 뭔가 만들고, 쓰고, 색칠할 수 있는 도화지. 선생님이 알려준 세계가 제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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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 이어령과 ‘눈물 한 방울’
 
이어령 교수는 3~4년 전 췌장암 말기를 선고 받았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고 전보다 더 치열하게 글을 쓰는 것을 제외하면 암을 알기 전과 후의 삶이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이어령 교수는 자신이 해온 일을 정리하는 작업을 제자에게 맡겼다. 이것이 이어령 교수가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는 방법일지도. 감히 쳐다보지 못할 별 같았던 스승이 시간 앞에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제자의 마음에 물기가 어린다.

이어령 교수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따로 있을 것 같아요. 아침에 선생님께 연락이 왔어요. 그 김에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더니 “내가 하고 싶은 건 하나야. 나는 천재가 아니잖아. 나처럼 생각하면 나처럼 될 수 있다는 걸 강조해줬으면 좋겠어”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늘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고 말해요. 제가 보기에 20대 때까지는 당신이 천재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천재는 요절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선생님도 이상이나 랭보처럼 요절해야 하는데 선생님은 아흔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 나는 천재가 아니구나’라고 받아들였다는 우스갯소리를 해요.(웃음) 그저 엄청난 지적 호기심으로 여기까지 왔고, 당신이 한 많은 이벤트와 창조는 너무 재미있어서 했을 뿐이라고 하세요. “흰 도화지에 이전에 없던 세계를 창조하는 건데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냐. 지구인 78억 명 중 나라는 존재는 하나뿐이다. 내 생각은 나 혼자만 할 수 있는데 얼마나 귀하냐”면서 ‘온리원’ 사고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선생님의 말 중에 ‘360도 론’도 있어요.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뛰면 1등부터 360등까지 줄을 세워야 하지만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뛰면 각자가 일등이다. 남 따라 뛰려 하지 말고 나만의 온리원 사고를 믿고 끝까지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생각을 하라는 게 선생님께서 강조하고 싶은 말씀이었어요.
 
이어령 교수의 건강은 어떤가요? 말기 암을 알게 된 게 3~4년 전이니 지금 건강이 많이 나빠지긴 했어요. 최대한 천천히 일상생활을 하면서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건강이 안 좋으니 그간의 일을 정리하기 위해 책을 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생 회고록을 안 쓰겠다고 하시다가 마지막 제자인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것도 선생님이 한 번은 자신의 생을 정리하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어요. 
 
5년을 가까이에서 지냈으니 전에 없던 애틋한 마음이 생겼을 것 같아요. 책에 이어령 교수의 나이 듦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묻어났어요. 글을 쓰면서 울컥했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감정이 드러나면 글이 촌스러워져요. 감정을 누르고 쓰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 됐어요. 제가 학창시절에 본 선생님은 사람 같지 않았어요. 한 사람의 두뇌에 저 많은 지식과 지혜와 생각이 담긴 게 신기하기도 하고 소름이 끼칠 만큼 놀라웠어요. 선생님은 위트도 있지만 대체로 차갑고 예리하고 쌀쌀맞아요. 제가 학창시절에 봤던 선생님, 언론을 통해 본 선생님은 예리한 지성인의 모습이 자주 비춰서 더 어렵게 느껴졌어요. 그랬던 분을 가까이에서 보니까 몰랐던 모습이 보이는 거죠. 소탈한 모습, 소파에 편하게 기대어 있는 모습, 좋아하는 음식을 만나면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했어요. 마치 상상하지 못했던 달의 이면을 발견한 기분이었죠. 저는 책에서 선생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책을 보고 선생님이 “내 비밀을 그렇게 많이 보이면 어쩌냐”고 하시더라고요.(하하) 하지만 또 바늘로 콕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았던 선생님이 시간 앞에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면 울컥울컥해요. 이런 목소리를 몇 번이나 더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이어령 교수의 개인적인 상황 때문인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인 ‘눈물 한 방울’이 의미심장하게 와 닿았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눈물 한 방울의 요지는 한을 풀지 말고 마음속에 품으라는 거예요.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의 눈물을 품고 <한중록>을 썼던 것처럼, 안네 프랑크가 은신처에서 일기를 쓸 때 품었던 눈물이 많은 것을 바꾸었어요. 혜경궁 홍씨가 품은 눈물은 연산군이 아닌 정조를 등장시켰고 안네의 눈물을 품은 일기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기억유산이 됐어요. 선생님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는 대신 품었기 때문에 역사의 물꼬를 바꿀 수 있었다고 하셨어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련이 닥치더라도 눈물 한 방울의 힘이 있다면 불행한 역사에 휘말리지 않을 거라는 말이죠. 눈물 한 방울이란 말에 남들보다 반발 앞서서 큰 문명을 읽어내는 미래학자이자 휴머니스트의 모습이 담겨 있어요.  
 
이어령 교수의 뜻대로 88년의 창조적 사고를 정리하셨어요.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의 생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셨으니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요. 특히나 김민희 편집장이 몸담고 있는 <톱클래스>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잡지이기도 해요. 20~30대가 저보다 더 창조력이 강한 세대라 제가 조언을 할 자격이 있나 싶은데요? 그럼에도 조언하자면 자신감을 갖고 과감하게 본인의 길을 갔으면 좋겠어요. 최근에 유튜브 크리에이터 도티가 <플랜B>라는 책을 냈는데요. 거기 보니 그는 기성세대가 만든 틀에 들어가고 싶어 크리에이터를 시작했대요. 구독자 1,000명 정도면 충분한 스펙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래요.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도티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플랜B가 플랜A를 넘어서 지금에 이르렀어요. 새로운 창조가 된 거죠. 도티가 ‘이 정도면 플랜B를 플랜A로 가져가도 되겠어’라는 결단을 내리고 매일 콘텐츠를 하나씩 올렸대요. 성실성이죠. 창조성을 가지고 결과물을 낸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두 가지가 있어요. 결단력과 성실성. 선생님도 성실이라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죠. 본인은 성실성이라 말하지 않아요. 본인은 궁금한 게 많아서 끊임없이 우물을 팠을 뿐이라고 말씀하세요.  
 
끊임없이 우물을 파는 것도 성실함이죠. 요즘도 선생님 연구실에 가면 새로운 자료가 쌓여 있어요. 쉬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읽고 계세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현재의 탑을 쌓는 과정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늘 청년처럼 싱싱한 사고를 하고, 너무 당연해서 정의도 내릴 수 없는 부분을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이것이 이어령식 창조적 생각이에요. 선생님의 가장 멋있는 모습이기도 하고요.

 
이어령 교수는 제자가 평전 작가가 되기를 ‘강력하게’ 바라고 있다. 이데올로기와 갈등이 대립하는 한국에서 평전문학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이데올로기에 둘러싸여 인물의 업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이어령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제자가 이 길을 걸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여러 번 내비췄다고 한다. 이어령 교수의 평에 따르면 작가로서 김민희 편집장은 “저널리스트로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글을 쓰되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며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문체를 지녀 좋은 평전 작가가 될 자질을 갖춘 작가”이다. 스승의 세뇌(?) 때문인지 모범생인 성향 때문인지 김민희 편집장은 평전 작가로서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터뷰 말미에 기자가 두 번째 평전도 나오냐고 묻자 “생각한 사람이 있다”며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어령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품은 김민희 편집장의 두 번째 평전은 어떤 사람의 이야기일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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