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은퇴를 선언했던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인생 2막을 제대로 열었다. 본인이 만든 스타트업 빅케어에서는 코로나와 독감의 위험도를 측정하는 앱을 개발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고, 재혼 후 가정에 충실한 시간을 보내며 꽉 찬 인생의 맛을 만끽하고 있다.
 
남경필 대표와 마지막 인터뷰는 2017년 3월 탄핵 정국의 어느 날이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그는 바른정당 소속으로 일찌감치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세대와 지역을 오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던 중 마련된 인터뷰 자리. 몇 번의 일정 변경 후 정장에 파란색 넥타이 차림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약속 장소로 들어오던 그의 모습은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다.
 
정치 은퇴 후 처음으로 마련된 인터뷰 자리.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남경필 대표와 직접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일정을 잡았다. 강남구 삼성동 본인이 대표로 있는 스타트업 ‘빅케어’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주황색 니트와 청바지, 스니커즈 차림이었다. 달라진 패션 스타일도 놀라웠지만,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밝아진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 독감 위험도 알려주는 ‘디지털 백신’
 
“빅케어는 코로나19로 시작됐어요. 원래는 아이들을 위한 성장, 성인들의 비만, 어르신들의 치매를 막아낼 수 있는 솔루션을 분야별로 추진하고 있었어요. 코로나와 독감은 계획에 없었던 거예요. 지난 8월쯤 신문 칼럼을 읽는데 ‘사회적인 백신’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마스크를 쓰는 행위가 상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한 ‘사회적인 백신’이라는 내용이었다. 남 대표는 그것을 앱으로 구현하는 디지털 백신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지금 빅케어가 제공하는 자신의 건강 상태와 기저질환, 위치에 따라 코로나와 독감의 위험도를 측정하는 기능이 됐다.
 
“저희가 ‘돈 벌자’를 목표로 했으면 못 만났을 거예요. 좋은 곳, 행복하게 만들자는 데 뜻을 모은 분들이에요. 행복하기 위해서 공포를 낮춰주자고 뜻을 모은 거죠.”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송인 교수, 코로나맵 최초 개발자인 이동훈 대표와 동반 인터뷰를 제안한 건 남경필 대표였다. 본인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두 사람의 전문 영역이 코로나와 독감의 디지털 백신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소개했다.
 
“제가 언제 기술을 배우고 수학, 공학, 알고리즘을 배우겠어요. 제 장점은 이런 훌륭한 분들, 사회를 살기 좋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고자 뜻을 같이하는 분들을 묶는 역할이에요. 이해가 충돌할 때 해법을 도출하는 것이 정치의 영역인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플랫폼 비즈니스, 빅테크 기업들이 가야 할 방향도 그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더 나아가, 단순히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가치를 키우는 방식으로 플랫폼 비즈니스를 변하게 하고 싶습니다.”
 
지난 8월부터 합류한 딥러닝 전문가 송인 교수는 지식이나 경험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찾다가 빅케어를 만나고 ‘아, 여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돈을 좇지 않고 공공의 가치를 추구하는 비전과 열정에 투자하는 것이 좋았다고.
 
코로나맵을 출시해 화제가 됐던 이동훈 대표 역시 ‘공공의 이익 실현’에 공감해서 대기업을 포함한 수많은 기업들의 협업 제안을 뒤로하고 빅케어와 손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동훈 대표의 코로나맵이 없었다면, 송인 교수의 방대하게 축적된 딥러닝 전문 영역이 없었다면, 빅케어의 코로나 위험도 측정 기능은 애초에 출시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는 앞으로도 이렇게 지휘자 역할을 하고 싶어요. 산업에 들어와 보니, 엄청나게 열심히 기술을 만들어내시는데 협업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협업만 되면 엄청난 파워가 일어날 영역인데 그걸 못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사실 저는 정치할 때도 그런 걸 하고 싶었어요. 여야가 싸우지 않고 연정, 협업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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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코로나 맵을 최초로 개발한 이동훈 모닥 대표, 남경필 대표, 빅케어의 기술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송인 교수.
 
 
데이터가 지키는 건강과 행복
 
 
2019년 3월, 은퇴 선언 후 그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정치 복귀는 언제 할 것이냐”다.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절대 안 한다”는 대답을 건넸다.
 
“정치 안 하는 요즘이 좋아요. 저는 한국 정치의 구조적인 문제, 양극화가 싫었어요. 플랫폼 회사의 장점은 상대를 때려눕히거나 죽일 필요가 없어요. ‘세상 좀 좋게 만들어보자. 그 과정에서 돈이 벌리면 서로 공유하자’ 이거면 되거든요. 제조업 시대에는 비슷한 업종이 나타나면 경쟁에서 이겨야 하지만, 플랫폼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상대를 때려눕히는 게 아니라 상대의 장점을 품어서 파이를 키우다가 이익을 공유하면 돼요.”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봉이 김선달’과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잇고 싶다고 말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듯이 데이터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인프라를 소유가 아닌 공유를 하고 싶다고. 나이팅게일에게서는 새로운 구조를 만든 천재적인 능력을 배우고 싶다.
 
“나이팅게일이 간호사로 알려져 있지만 수학자이자 통계학자예요. 환자들이 많이 죽는 것을 보고 병원의 구조를 새로 짰어요. 약품의 재고 관리, 병상 배치, 일지를 적으면서요. 그야말로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사람이죠. 서로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가면서 장점을 협력해 새로운 밸류를 만드는 의미에서 봉이 김선달 선생의 정신을 잇고 싶고, 나이팅게일의 새로운 구조를 따라가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급자 위주의 데이터를 소비자 위주의 산업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남경필 대표는 얼른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데이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데이터를 평생 만들어내요. 그런데 자기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진료 기록은 병원에 흩어져 있어요. 우리 회사의 모토는 ‘내 데이터는 내 것’이라는 거예요. 나의 데이터를 모아 주권을 찾아서 그것을 분석해 나의 건강과 행복을 찾자는 겁니다. 라이프 데이터야말로 예정된 공포를 막을 수 있는 힘입니다.”
 
 
재혼 후 찾은 새로운 인생의 맛 
 
 
남경필 대표의 인생 2막이 풍요로운 것은 벤처사업가 이외에 재혼으로 새로 꾸린 가정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18년 8월 그는 네 살 연하의 아내와 깜짝 재혼했다.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린 그는 본인의 페이스북에 “저 오늘 결혼했습니다”라는 글을 남기면서 새로운 출발을 세상에 알렸다. 2014년 지방선거를 전후해 전 부인과 이혼한 그는 두 아들을 돌보며 살아왔다.
 
“정치 끝내고 보니 내가 쫓았던 게 신기루인 것 같아요. ‘정치는 허업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맞아요. 사람에겐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 있고 급한 일이 있는데, 정치를 하게 되면 급한 일부터 하거든요. 사실 가족들과의 시간, 집사람, 아이들, 부모님과의 시간이 훨씬 소중한 일입니다.”
 
남 대표는 요즘 주말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정치하는 동안 주말에 온전하게 쉰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요즘은 매주 가족과 함께한다.
 
“제가 정치하면서 단풍놀이를 한 번도 못 해봤거든요. 얼마 전에는 어머니, 장인·장모님 모시고 단풍놀이도 하고 온천도 즐기고 왔어요. 올해는 벚꽃놀이도 했네요.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그렇게 살아야죠. 정말 중요한 걸 위해서요. 요즘은 집사람이랑 자기 전에 ‘감사합니다’ 하고 자요. 예전에는 그런 이야기가 안 나왔는데, 요즘은 하루하루가 감사해요.”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사진을 보여주면서 한참 동안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함께 지내는 장남과 보내는 일상도 감사하다. 직장이 가까워 아침마다 같이 운동하고, 퇴근도 같이 한다. 집에서는 맥주를 마시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본인이 찾은 인생의 진짜 행복을 전하면서 남 대표는 버려야 새로운 게 채워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버리지 못해서, 용기를 내지 못해서 행복과 한 걸음 떨어진 사람들을 위한 묵직한 팁을 건넸다.
 
“버리는 거 쉽지 않아요. 용기가 필요해요. 자기 성찰과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기도나 명상을 추천해요. 아침에 일어나 10~20분 정도 명상을 하다보면 내면과 대화할 수 있어요. 내 속을 들여다보는 거죠. 아침에 일어나서 후다닥 챙겨서 나오는 삶과 10분이든 20분이든 마음을 들여다보는 삶은 차이가 있어요. 제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꾼 책 중 하나가 <청소부 밥>이에요.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책인데 습관 하나가 인생을 바꾼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요. 저는 새벽기도를 다녔어요. 처음에는 9시만 되어도 졸렸는데, 점점 정신과 신체에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무슨 일이든 마음만 먹으면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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