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얼마나 아프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 호기심과 불안감 섞인 물음이었다. 생각해봤다. 나도, 그들도 왜 이 바이러스를 두려워하는가. ‘모르기 때문’이다. 투병 기록이 누군가에겐 정보가 되길 바랐다.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저자 김지호 씨는 그때의 ‘50일’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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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씨는 입원 중 일상을 사진과 글로 남겼다.

“10XXX번이고. 아, 코로나 검사를 받으면 이름 위에 번호가 붙거든요.(웃음) 그런 번호를 갖고 있는, 5월 10일에 입원해서 6월 29일에 퇴원한 김지호입니다.”

본인 소개를 요청하자 ‘확진자 번호’부터 답했다. 김지호 씨는 할머니 장례식에 와준 친구 여섯 명과 답례 식사를 한 자리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그중 한 명이 연쇄 감염자였고, 지호 씨는 그날 모임에서 그 친구를 제외한 유일한 확진자가 됐다.

증상을 자각해 검사를 받은 게 아니다. 친구의 또 다른 친구가 양성으로 판정나면서 친구는 밀접 접촉자로 분류됐다. 친구가 해당 사실을 알릴 때까지도 지호 씨는 열도, 인후통도 없었다. 검사를 받고 온 당일 저녁부터 침을 삼킬 때 불편함과 미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친구의 코로나 확진 가능성을 알게 된 후로 재택근무를 신청해 집에 머무는 등 자체 자가 격리 중이었다.

“신기해요. 같이 사는 룸메이트도 그날 같이 식사한 친구들도, 접촉한 부모님도 안 걸렸는데 저만 걸렸어요. 사람들은 ‘너 마스크 똑바로 안 썼지’라고 했어요. 아뇨, 우한 전염병 소식을 듣자마자 KF94마스크를 200장 넘게 ‘플렉스’하고 휴대용 손소독제를 주머니에 꼭 넣고 다닐 만큼 건강 염려증이 있는 사람인데요? 지금은 농담 반, 진담 반 그렇게 생각해요. 내 콧구멍, 눈구멍이 크니까 바이러스가 침투했던가 보다.”(웃음)

역학조사관과 보건소 담당자의 동선 조사가 이어졌다. 양성 사실을 채 받아들이기 전에 입원 절차까지 진행됐다. 집 앞 공원으로 찾아온 구급차에선 방호복 복장의 간호사가 내려 지호 씨를 태웠다. 그는 구급차 안에서 바라본 한강은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이었다고 떠올렸다.

1인 병실을 배정받았다. 사람 몸만 한 기계 하나와 냉장고, 침대, 혈압측정기, 옷장, 서랍장이 놓였다. 병실 밖 이동은 절대 금지이거니와 창문은 열 수 없도록 못이 박혀 있었다. 지호 씨가 병실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전화 돌리기’다. 가족과 회사에 상황을 알려야 했다.

“통화를 하면 할수록 죄책감이 들었어요. 어느새 죄인이 되어 있더라고요. 전염병을 옮기는 죄인. 통화할 때마다 변명처럼 상황을 설명해야 했고, 설명이 끝나면 모두 하나같이 ‘어쩌다 걸렸느냐’고, ‘조심하지 그랬느냐’는 걱정 같은 원망을 했어요.”

입원만 기다렸다는 듯 고열이 찾아들었다. 온몸이 뜨거워져 양쪽 겨드랑이에 아이스 팩을 끼고 견뎠다. 목 안이 따끔거리고 가래가 끓었다. 침을 삼키려 해도 열 때문에 마른입 안이 더욱 쓰기만 했다. 침대에 닿는 신체 부위의 근육까지 고통이 느껴졌다. 입원 첫날 온갖 통증에 엎치락뒤치락하기를 반복하다 비로소 잠이 든 시간은 새벽 두 시 반. 이 정도는 경증에 가까운 편이다.

“입원하고서 2주간 38.5도였어요. 고통은 상대적인 거잖아요. 많은 이들이 ‘정말 많이 아픈가’를 묻는데 저는 괜찮았다고 말해줘요. 실제로 저는 경증으로 분류됐어요. 아픔의 정도를 1부터 10까지 둔다면 5와 6 사이였어요. 열이 안 내려서 눈이 빠질 것 같긴 했는데 뭐랄까, 정말 너무 피곤한 상태로 독한 감기를 만나서 몸살 난 느낌이었어요.”

하필 여름으로 접어든 때였다. 병실에서는 에어컨과 선풍기 사용이 불가능했다. 에어컨을 켜면 내부 공기가 HEPA 필터를 거치지 않고 외부로 나가게 돼 음압병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고, 선풍기를 돌리면 비말이 에어로졸이 되기 때문이다.

“너무 더워서 저도 모르게 의료진에게 짜증을 낸 적이 딱 한 번 있어요. 자다 깼는데 침대 시트가 다 젖어서 바닥에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더라고요. 샤워실이 바깥에 있어서 수건에 물을 적셔서 닦는 게 전부였어요. 순간 제 자신한테도 화가 나는 거예요. 왜 내가 걸려서 이러고 있나 싶어서요.”

두 달 가까이 지나서야 퇴원 통보를 받았다. 병원에서 사용한 물품은 락스를 희석한 소독액을 뿌린 뒤 챙겨가지고 나왔다. 보호 장비와 환자복을 벗어던지고 샤워를 끝으로 코로나바이러스와 작별했다. 아니, ‘작별’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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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진료에 한창인 의료진.
3 병원식 일부. 지호 씨는 다양한 메뉴를 맛보게 해준 영양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완치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두려워했다

“후유증이요? 음, 지금은 다 극복했지만 정신적 후유증이 있었던 거 같아요. 사람 눈을 못 마주쳤어요. ‘저 사람은 또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나.’”

지호 씨는 코로나로 인한 신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욱 컸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의 부주의한 행동이 확진을 불러온 것이라고 직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가벼운 안부부터 문책 아닌 문책까지, 입원 후 2주간 전화 연락이 빗발쳤다. 병이 나으면 주변 반응도 나아질 거라 여겼다.

“병원에서 고생하셨어요. 근데 회사에 있는 사람들이 지호 씨로 인해 코로나에 옮을까 봐 두려워하네요. 그래서 말인데 우선 재택근무를 3주 정도 더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동료들은 완치된 지호 씨를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재택 일주일 만에 사측은 ‘회사 밖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일해 보라’며 퇴사를 종용했다. 지호 씨는 합의서를 작성하고 퇴사했다.

“확진과 동시에 사람에 대한 환멸을 느꼈어요. 특히 회사.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당연히 무섭죠. 하지만 누군가의 민낯을 봐버렸다는 게….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왜 더욱 두려워하는지 계속 생각했어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해요. 다수 확진자들이 사회 지탄을 무서워하고 있는데 ‘내가 걸렸었다’고 어떻게 공개할 수 있겠어요.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그 시선을 조금만 견디고 실제 이야기를 전한다면 누군가는 위로를 받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지호 씨는 ‘코로나에 걸리면 아프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다수 매체가 다루는 소위, ‘자극적인 기사’가 알 수 없는 고통의 정도를 키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자신의 코로나 투병기를 통해 잘잘못을 가리려는 것이 아니다.

“책을 내기 전에도 블로그에 투병 기록을 남겼었거든요. 지인들한테 공유했더니 어떤 친구는 ‘주변에 자가 격리 중인 사람한테 도움이 되겠다’며 보여주겠대요. 마찬가지에요. <코로나에 걸려버렸다>가 정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면서 버텨왔고 버티고 있고, 끝내 이겨낼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 믿음을 위해 오늘도 마스크는 꼼꼼히 써야 하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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