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멜로 장인. <겨울연가>, <가을동화>를 만든 윤석호 감독이 본인의 첫 장편 영화 <마음에 부는 바람>을 선보인다. 가을이 내려앉은 어느 오후, 홍대 앞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옛날 사람입니다.”

검은색 버킷햇을 눌러쓴 윤석호 감독이 농담을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마음에 부는 바람> 개봉을 앞두고 오랜만에 마련된 인터뷰는 홍대 앞 그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가을동화>, <겨울연가>, <봄의 왈츠>, <여름향기> 등 작품마다 뛰어난 영상미를 선보여온 그답게 작업실에서도 특유의 감성이 느껴졌다. 느릿한 호흡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요즘의 그와도 잘 어울렸다.

그의 마지막 드라마 작품은 2013년 방영된 <사랑비>. 2017년 일본에서 개봉한 그의 첫 장편 영화 <마음에 부는 바람>이 11월 국내 개봉을 확정해, 꽤 오랜만에 국내 팬들과 만나게 됐다.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걸 표현한 것인데, 국내 관객들이 여전히 좋아하실는지 모르겠어요. 드라마든 영화든 사진이든, 결국 창작물에는 자기가 나타날 수밖에 없어요. 예전에 제가 보여줬던 것들을 사랑해줬던 분들이 다시 그때의 즐거움을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콘텐츠의 정서가 유효하다는 걸 같이 느끼고 싶습니다.”


시나리오 위해 북해도에서 한 달 살이 
23년 만에 우연처럼 만난 첫사랑

<마음에 부는 바람>은 드라마 <사랑비> 이후 2년 정도 영국에 머무를 때 제안을 받고 시작된 프로젝트다. 일본 현지 영화사에서 <겨울연가> 같은 감성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을 해왔다고. 마침 윤 감독도 영화 작업에 관심이 있었던 상황이라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북해도에서 한 달 동안 살면서 스토리를 구축했습니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쓰고 캐스팅 오디션, 촬영까지 3년에 걸쳐 현지 제작으로 완성했어요. 예산이 많지 않은 영화라 진한 작업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마음에 부는 바람>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자 우연에 관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23년 만에 우연처럼 만난 첫사랑 료스케와 하루카가 보여주는 3일 동안의 아름다운 사랑은 순수한 감정을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담았다. 그의 전작들과 감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의 마음, 사랑의 감정도 우연이에요. 바람처럼요. 주인공 남녀가 나누는 대화와 배경 역시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 우연한 아름다움에 대한 디테일까지 잘 찾아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삶은 아름답다는 위안을 느끼실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고요.”

영화는 100% 일본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배우도, 스태프도 모두 현지인으로 구성됐다. 어쩔 수 없는 문화의 차이는 있었지만 드라마 감독으로서 영화를 경험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첫사랑’은 소중한 가치
한류 열풍에 보람 느껴 

윤석호 감독은 ‘러브스토리의 거장’, ‘첫사랑 드라마 감독’이라고 불린다. 실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첫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스스로도 첫사랑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고 고백했다.

“유별난 거예요.(웃음) 정치, 사회, 경제, 철학적인 이슈에 비해 사랑 이야기를 하면 거대담론이 아니라고들 생각하시죠. 저는 사랑 자체가 거대담론이라고 봐요. 인간을 순화시키는 큰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첫사랑은 그런 사랑이 진솔하고 순수하게 나타나는 시기예요. 인생에서 딱 한 번이에요. 두 번째부터는 그 시기에 경험하는 강렬함은 없어요.”

첫사랑의 반복을 자칫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는 관객에게 할 말은 없을까. 윤 감독은 창작자라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기복제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대신 새로운 것(something new)을 어떻게든 섞는 노력을 해야죠. 자기복제가 아닌 자기 색깔이라고 생각해요. 르누아르의 작품 속 여성들이 똑같잖아요. 그게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identity)고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 장점이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류를 선도한 장본인으로서의 자부심도 전했다. <겨울연가>를 비롯한 그의 드라마 열풍은 정치인들이 못했던 국가 간 유대감까지 만들어낸 문화적인 사건이었다. 우리 모두가 그의 작품을 통해 문화의 힘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경험했다.

“한류를 만들려고 드라마를 만든 건 아니었어요.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만들었고, 그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았어요. 제 색깔이 글로벌하게 받아들여진 것에 대해서는 보람차고 기쁘게 생각해요. 다만 의도를 가지고 한 작업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순수하고 따뜻하고 아름답고 긍정성 있는 콘셉트의 콘텐츠가 더 글로벌하게 사람들에게 어필이 된 게 아닐까요. 저는 아름다움에 대한 것을 좋아해요. 작업실도 예쁘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름다움에 대한 걸 펼치고 사람들이 좋아하면 저도 좋아요. 그게 삶인 것 같아요.”

60대 중반이 된 그는 요즘 인생 후반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 중이다.

“영화 작업을 해보니 즐겁고 의의가 있어요. 또 하고 싶고, 계속하고 싶어요. 상업적인 영화를 찍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잘할 자신은 없고, 자기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저는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편이라,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구상을 하면서 방향성을 찾아가는 중이죠.”

그는 요즘도 대본 작업과 기획을 꾸준히 하고 있다. 본인이 한창 활동할 때와는 작업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서 조금 더 완벽하게 준비를 해나가고 싶어 한다.

“젊었을 때 꿈은 드라마 성공이었어요. 시청률 같은 지엽적인 것일 때가 많았죠. 지금은 좋아하는 걸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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