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 있는 시간보다 몸져눕는 시간이 많았다. 타고나길 체력이 약했던 황보름 작가는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킥복싱 체육관의 문을 두드렸다. 킥복싱을 하는 한 해 동안 근육질로 변하는 것처럼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진 않았다. 다만 저질 체력이 일반인으로 향상되었고, 스스로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킥복싱과 여성은 쉽게 매치되지 않는다. 그래서 킥복싱을 하는 여성과 만남을 앞두고 근육이 도드라진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스튜디오에 나타난 황보름 작가는 근육질 대신 호리호리한 체형의 소유자였다. ‘저 가는 팔다리로 킥복싱을 한다고?’ 하는 생각이 들어 팔씨름을 제안했다. 결과는 황보름 작가의 완승. 두 번의 승부에서 모두 이기고 나자 황 작가는 “요즘 운동을 많이 못해서 질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라며 웃었다.

여성들이 운동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다이어트다. 체중을 줄이고 날씬해지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하지만 최근 체력과 근력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여성들이 많다. 황보름 작가도 그중 한 명이다. 황 작가는 어릴 때부터 유독 체력이 나빴다. 두세 시간 정도 쇼핑을 다녀오면 집에 들어와서 한 시간은 잠을 자야 체력이 회복됐고 김치냉장고에 있는 김치통을 혼자 못 꺼내서 늘 엄마의 손을 빌려야 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는데 그때 눈에 들어왔던 단어가 있다. 바로 근육저금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하지 않으면 삶의 질이 떨어지니까 미리 근력운동을 해두라는 뜻이에요. 저는 글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작업을 할 때 체력의 한계를 느낀 적이 많아요. 체력이 있어야 한 번 더 생각하고 더 좋은 문장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체력이 생기면 인생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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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통 하나 제대로 못 들던 그가 킥복싱을 시작한 이유

큰맘 먹고 들어선 킥복싱 체육관의 첫인상은 어두컴컴했다. 좁은 체육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주저앉아서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사람들, 체구 작은 여성들이 무거운 케틀벨을 들고 스윙 동작을 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체육관에는 헬스장에 하나씩 있는 체성분 분석기계나 체중계도 없었다. 몸을 수치로 평가하지 않고 체력 향상에만 집중해서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라 마음에 들었다.  

“등록하자마자 첫날 버피 테스트랑 푸시업을 했어요. 제가 체력이 진짜 안 좋았고 팔에도 힘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버피 테스트를 하는데 팔이 제 몸을 지탱하지 못하니까 자꾸 자세가 무너지는 거예요. 코치님이 ‘너무 심하다’는 눈으로 말하는 걸 봤어요. 못 버텨도 정해진 시간은 채워야 하니까 꾸역꾸역 해냈죠.”(웃음)

체력 훈련이 끝나면 킥복싱 기본자세를 배운다. 코치가 팔에 미트를 끼면 그곳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거나 발차기를 하는 식으로 훈련을 한다. 황 작가의 발이 미트에 닿으면서 ‘탕’ 하는 타격음이 났다. 작은 체육관에 그 소리가 울려 퍼지는 느낌이 좋았다. 그가 태어나서 발차기를 처음 해본 날이었다.

그는 매주 3일 체육관을 찾았다. 버피 테스트와 푸시업과 황 작가가 좋아하는 발차기를 비롯한 킥복싱 수업을 3개월쯤 했을까. 코치가 “지금까지는 재활운동이었다”고 말했다. 3개월 만에 저질 체력을 조금 벗어난 것이다. 황 작가가 스스로 체감하기 시작한 것은 운동을 시작하고 9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4㎏짜리 케틀벨을 들다가 어느덧 두 배 무게인 8㎏ 케틀벨을 들고 스윙 운동을 한다. 버피 테스트를 할 때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이젠 옆 사람보다 내 체력이 더 강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코치에게 칭찬도 들었다. 다섯 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타바타 운동을 할 때였다.

“타바타 운동이 시간은 짧아도 운동량이 많아서 엄청 힘들어요. 제가 9개월 정도 해 체력이 올라와서 그런지 운동이 버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코치님이 저보고 여기서 제일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셨어요. 이제는 푸시업도 좀 해요. 여성을 위한 변형 동작으로 하면 한 번에 25개도 해요. 정말 많이 는 거예요.”

꾸준히 운동을 하니 체력뿐 아니라 자신감도 붙었다. 황 작가가 생각하기에 황보름이란 사람은 늘 힘이 없고 느슨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강하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또 몸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굶으면서 마른 몸매가 되길 꿈꿨다. 2㎏이라도 찌면 약속을 2주 후로 미룰 만큼 강박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몸이 예쁘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얼마나 말랐느냐 대신 얼마나 근육이 붙었느냐가 기준이 됐다. 그래서 운동을 하고 치킨 한 마리를 먹더라도 걱정이 없다. 치킨을 먹어도 운동을 하면 근육은 상처를 받고 다시 자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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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몸매 대신 건강한 몸으로

이제 보통 사람의 체력이 됐으니 본격적으로 운동해서 근육을 키워 보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그 여파로 체육관이 휴업에 들어갔다. 체육관이 문을 닫았지만 황 작가는 운동을 쉬지 않았다. 체육관에 못 가는 대신 집에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버피 테스트, 스쿼트, 푸시업, 복근운동을 하면서 땀을 내고, 거의 매일 아파트 단지 안 5㎞ 거리를 걷는다. 다시는 저질 체력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다이어트가 아니라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근력을 위해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이 끝난 뒤 집에 가서 음식을 먹어도 실패하는 게 아니에요. 또 열심히 운동하면 근육이 찢어져서 더 단단해질 테니까요. 꾸준히만 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게 운동의 가장 큰 매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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