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걸어 올라간 사람이랑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간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계단을 오른 사람은 이 건물의 비상구가 어디에 있는지, 나갈 구멍은 어디인지, 창문은 어떤 모양인지 살펴볼 수 있어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 그런 걸 볼 겨를이 없어요. 저는 이것저것 경험하면서 계단을 오르는 중이에요.”트로트 대세 진해성을 만났다.
 
“지금은 감사하게도 트로트를 많이 사랑해주시지만 언젠가는 관심이 내려오지 않겠습니까. 지겨워하실 수도 있는 부분이고요. 영탁이 형님이 <미스터트롯> 나가셨을 때 그러셨어요. 영원히 인기가 있을 건 아니니까 마인드컨트롤 잘하고 겸손하게 팬분들 잘 모시고 다녀야 한다고요. 그말, 저도 너무 잘 알고 있어요.” 
 
<트롯전국체전> 최종 우승자가 되고 이후 <트롯매직유랑단> 등 각종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보이고 있는 진해성에게 늦은 축하 인사를 건네니 무심하게 툭 던지듯 답변이 돌아왔다. 투박하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한 자락 트로트 노래처럼 들렸다. 달변가는 아니지만 과장 없이 진심을 전하는 데는 효율적인 화법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팬들도 많이 늘어났지만 진해성은 하루아침에 반짝 스타가 된 케이스는 아니다. 10년 동안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며 ‘사랑 반 눈물 반’ 등 히트곡도 보유하고 있으며, 콘서트를 열면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팬덤도 갖고 있었다. 토크쇼 <인생술집>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가 트로트 경연에 출전하게 된 시작은 목마름이었다. 
 
“트로트 팬들 사이에서 이름이 있다고 해도 아직은 저를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으시니까요. 사실 오디션 나갔다가 상처받을까봐 안 나가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친하게 지내는 개그맨 조세호 형님이 나가라고 적극적으로 권해주셨어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뭐하냐면서요. 그때도 ‘생각 좀 해볼게요’ 하고 바로 대답은 못 드리다가 출전하게 됐어요. 이렇게 결과가 좋으니 형님들이 나가라고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 계단을 오르듯 차근차근… 
한 단계 성장시킨 트로트 오디션   
 
 
진해성은 트로트 가수의 삶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방송에 출연하고 노래가 히트를 쳐도, 트로트 가수로서 부각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꿋꿋하게 한 우물만 파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좋게 되어서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한다. 
 
“가수는 대중들이 만드는 거예요. 저도 다 팬들이 만들어주신 거고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오디션 할 때 전봇대 광고도 붙여주시고, 전광판 광고도 해주셔서 정말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고맙고 미안해서 좋은 노래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렇듯 진해성이 출연한 <트롯전국체전>은 매회 화제를 모았다. 그 과정을 통해 진해성은 스스로 한 단계 성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방송되고 있는 예능 <트롯유랑단> 역시 재미있는 도전이라고 한다. 매주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 좋다고. 매번 스스로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게 되는 짜릿함도 있어서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한다.  
 
“저에겐 너무 고마운 프로그램이에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제가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좋아요. 이 프로를 통해 저의 성격이나 스타일을 많이 알게 되실 거예요. 출연자 모두 가식 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니까 시청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느낌이에요.” 
 
진해성은 <트롯전국체전> 금메달이 너무 영광스럽지만, 그 기쁨에 취해 있지 않으려고 한다. 
 
“한 방에 올라가면 떨어지기가 쉽거든요. 계단을 걸어 올라간 사람이랑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간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계단을 오른 사람은 비상구의 위치도 알게 되고, 나갈 구멍도 살펴보면서 오르거든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 그런 걸 볼 겨를이 없어요. 이것저것 경험하면서 계단을 오른다고 생각해요. 내가 힘들었던 일층에 있었던 때를 잊지 말아야겠지요.” 
 
10년이라는 시간을 트로트 가수로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내공이 생겼다. 처음에는 한 방에 뜨고 싶은 마음도 컸고, 세상물정도 몰랐다. 지금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인생 공부를 많이 했다. 
 
“지금은 회사에서 해주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제가 했어요. 처음 가수 할 때 이모와 이모부가 매니저를 봐주셨어요. 그래도 제가 운전하고 CD 들고 홍보 다니는 것, 옷 맞추는 것, 미용실 예약하는 것, 인사 다니는 것도 다 알아요. 그래서 지금 스태프들을 보면 마음이 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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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의 원동력 ‘부모님’ 
 
진해성은 인터뷰 도중 부모님을 자주 언급했다. 경남 진해에 거주하며 고깃집을 운영 중인 부모님은 진해성이 활동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아버지는 제 공연장에 오시면 사람들 반응만 보셨어요. 경연할 때도 선곡 80~90%는 아버지가 시킨 대로 했어요. 노래를 좋아하시고 제 스타일을 잘 아셔서, 어떤 노래를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제일 잘 아시는 분이세요.” 
 
경연에서 받은 1억 상금도 부모님께 드릴 예정이다.  
 
“저는 제 손에 10억이 들어와도 부모님이 필요하다시면 다 드릴 거예요. 부모님 안 계셨으면 저도 세상에 없잖아요. 어린 시절 꿈을 주셨는데, 노후는 제가 책임져야죠. 부모님이 제 돈 다 까먹으셔도 저는 괜찮아요.” 
 
결혼 계획에도 부모님이 있다. 부모님이 허락하는 사람과 결혼을 할 거라고 말하는 그에게 이상형을 물으니 ‘어른들에게 잘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제일 먼저 돌아왔다.  
 
진해성은 트로트를 통해 부모님뿐 아니라 어른들과 자연스럽게 지낼 수 있는 것이 너무 좋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생을 배웠다. 항상 응원해주고 문자로 조언도 많이 해주는 대선배 설운도는 그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자 롤 모델이다. 그의 선곡에 유독 어른들이 반응하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저는 가끔 사람들이 왜 저를 좋아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한 번씩 물어봐요. 그러면 지인들이 어머님, 아버님들이 즐겨 들으셨던 노래를 주로 불러주니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아픈 후 달라진 삶의 자세… 
7월 콘서트 기대 
 
진해성은 <트롯전국체전> 결승전에서 나훈아의 ‘공’을 부르며 “눈에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연 전 한 차례 크게 아팠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오디션 시작하기 전에 몸이 안 좋았어요. 약을 잘못 먹어서 심장에 무리가 가서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그때 인터넷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들의 사연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사람이 한 번 아프고 나니까 삶에 대한 자세가 바뀌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거, 두 눈 멀쩡하고 귀 멀쩡하게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았어요. 하루하루를 고맙게 살아가야겠구나, 쫓기지 말고 즐기면서 하나하나 느끼면서 살아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진해성의 꿈은 대중들에게 좋은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다. 단순히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많이 알리고 싶다. 겉멋이 아니라 진정성 있게  노래하는 친구라는 말을 듣고 싶다. 
 
 
“얼마나 많은 가수들이 왔다가 사라져요. 10년 동안 트로트 가수로 살면서 그걸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지금도 차근차근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아팠을 때 이렇게 죽으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도 다 못 해보고 부모님께 효도도 제대로 못 했고요. 사람 일이 어찌 될지 모르니까 젊을 때 많이 즐기고 열심히 지내보려고요.”
 
가까운 계획으로는 신곡 발매와 7월 콘서트를 앞두고 있다. 코로나19로 끝까지 지켜봐야겠지만, 관객들을 생각하면서 선곡 리스트와 멘트를 직접 짜는 시간이 너무 즐겁다. 그는 모든 콘서트를 직접 기획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야 ‘내 콘서트’거든요. 남이 시켜서 하면 그게 어디 내 콘서트입니까, 아르바이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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