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변화가 빠른 건 이미 오래전부터였다. 우린 내내 숨가빴다. 코로나19는 또 어떤가. 바이러스와의 교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 ‘뉴노멀’에 불안한 몸을 맡기고 산다. 정답이 없는 시대, 그는 일곱 명의 ‘쌤’에게 길을 물었고 나는 그에게 그를 물었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 좀 어려운 말로 하면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그리고 그 경계부에서 바라본 우리의 모습이 어떨지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당장 답을 구할 수 없더라도 이번 기회에 같이 확인해보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도 하고… 그러면서 작은 약속과 길을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머리말 중

김제동이 그렇게 나타났다. 머리말에 던진 화두를 집요하게 끌어낸 결실은 새 책 <질문이 답이 되는 순간>(나무의 마음)에 담겨 있다. 책은 다른 말로는 ‘일곱 명의 전문가와 김제동이 퍽 달라진 요즘 세상에 전하는 안부편지’로 칭해졌다. 물리(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와 건축(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천문(심채경 한국천문연구원 박사), 경제(이원재 LAB2050 대표), 뇌과학(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뇌공학과 교수), 자연사(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그리고 문화와 인문학(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 딱딱하고 따분할 수 있는 전문지식과 정보를 따뜻하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잘 팔린다.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모두 대중에 낯설지 않은 이들이다. 바로 지금 각 분야를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커뮤니케이터인 데다 몇몇은 이미 나의 인터뷰이기도 했던 인물이니 생소함은 더더욱 덜하다. 오히려 ‘안부를 묻는다’ 할 정도로 한동안 소원했던 그가 내겐 더 낯선 이였는지 모른다. 방송과 강연, 특히 ‘탈 많은’ 뉴스로만 접했을 뿐 정작 일면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겐 그를 칭하는 방법조차 준비돼 있지 않았다. MC, 사회자, 코미디언, 개그맨, 방송인, 작가… 그리고 좌빨? 이름 앞에 걸린 수식어가 많아 더 헷갈리기도 했다. 
 
김제동은 누구인가. 김제동은 대중에게 무엇인가. ‘질문이 답이 되는 순간’을 고대하며 그의 정체성을 규정하려 달려들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 아닌가. 자신도 제대로 규정하기 힘든 인생, 남을 규정한다는 일은 얼마나 허망하고 무익한가. 뭐라 규정할 수 없는, 규정할 필요 없는 김제동이 ‘진짜 김제동’인 듯하다. 이 인터뷰 기사는 김제동의 자기 고백에 바치는 나름 진솔한 안부의 편지다. 

오는 길에 ‘김제동과 어깨동무’ 페이스북을 보니 ‘줍줍패밀리’ 활동 얘기가 있다. 동작대교 근처 한강변을 돌았다. 요즘 걷거나 뛰면서 쓰레기 줍는 게 유행이다. 산책 겸 함께 걷다가 쓰레기 줍자고 시작했다. 어제는 누가 버려진 자전거를 들고 왔다. 별 쓰레기들이 다 있다. 차 지나간 곳엔 특히 담배꽁초가 많다. 생활운동으로 좋은 것 같다.
 
책 얘기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일곱 분의 전문가는 어떻게 선정했나? 방송할 때 인연 맺은 분들을 우선 떠올렸다. 김상욱, 정재승 교수 등 토크쇼 ‘톡 투 유’에 출연했던 분들이 있고, ‘오늘밤 김제동’ 할 때 만난 이정모 관장도 그런 인연이다. 김창남 교수는 대학교 때 인연이고, 심채경 박사는 칼럼이 너무 좋아서 만나고 싶었다. 칼럼을 읽고 울어보긴 그분 게 처음이었다. ‘따로 또 함께’라는 표현이 큰 울림이 있었다. 서로의 궤도를 침범하지 않고 사는 행성들 이야기를 그렇게 표현하셨다. 희한하게도, 넓고 크고 광대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떨림을 주고 울컥하게 만든다. 너무 눈에 커서 보이지 않는 큰 세계와 실생활에 관련된 미시세계를 두루 돌아보자는 뜻에서 전문가를 고루 골랐다. 
 
무작위가 아닐 것 같았다. 주제부터 인물까지 직접 기획하고 설계한 건가?  미리 촘촘하게 기획한 건 아닌데, 하다 보니 흐름이 만들어지고 일곱 분 모두가 궤를 함께하는 부분이 있는 걸 발견했다. 특히 김상욱 교수랑 만날 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양자역학 얘기를 하다가 대화 중에 다른 분들 언급이 자주 나왔다. 이런 문제는 이분, 저런 문제는 그분을 만나면 되겠네요, 라는 식으로 힌트를 주셨다. 이미 궤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궤라는 건 무엇인가? 한 분야에서 오래도록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을 보면 확실히 다른 게 있다. 칼질 잘하는 장인, 몇 단의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아주머니를 보면 느끼는 경이감 같은 것 있지 않나. 감동적이었고 다정하기까지 했다. 전혀 다른 분야지만 한곳을 향해 가는 것 같은 궤를 느꼈다. 
 
다정했다는 건 무슨 뜻인가? 한 사람하고 여섯 시간 이상 앉아 있으면 정이 든다. 눈을 맞추고 이야기 듣고 있다 보면 그 사람한테서 느껴지는 것이 있다. 학생 때 아주 재수가 좋아 진짜 좋아하는 선생님과 방과 후 따로 남아 두세 시간 앉아서 얘기 나눈 느낌이랄까. 김상욱 쌤은 과학을 모르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다정하게 말해줬다. ‘영광스러운 틀림’이라고 말한다. 이정모 관장은 과학에선 인종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말하고, 정재승 교수는 ‘생겨난 모든 것은 옳고 뇌에서 나온 모든 생각은 그 자체로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심채경 교수는 인간처럼 의지가 개입된 건 아니지만 우주의 모든 행성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따로 또 같이 어우러져 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이야기들이 죽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유현준 소장은 처음엔 어색했는데 얘기를 하면 할수록 장난기 많은 개구쟁이 같은 분이란 걸 알았다. 그게 발견되는 순간 말이 점점 쉬워졌다. 힘들었지만 축복받았다 생각했고 고마웠다. 정재승 교수는 책 쓰고 나서 이틀 정도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내가 여러 석학을 엮어서 하자는 인터뷰를 거절했는데, 이런 걸 해서 김제동이랑 동급이 돼버렸다’고 농담을 던졌다. 어려웠던 과학이 다정하게 다가왔던 걸 말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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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전문가들과 질문과 답이 오고 간 시간.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두루 넘나드는 ‘귀밝이’ 인터뷰였다. 위에서부터 김창남 교수, 이원재 대표

 

수년 전 <경향신문>을 통해 인터뷰 칼럼을 연재했다.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인터뷰집으로 두 번째인데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 그때는 애초에 책으로 내려고 작정하고 인터뷰한 게 아니었다. 만나는 인물도 신문사에서 선정했다. 섭외가 어려운 분들이 많이 나와 주셨다. 굉장히 다양한 분야 인물이었고 특히 문화예술 분야가 많았다. 소녀시대부터 신영복 선생까지 정말 다양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책을 쓰기로 기획하고 만난 거라 시작이 달랐다. 다양성은 그때가 더 나았고 깊이는 이번이 더 낫다고 말하면 맞을 것 같다.
 
한 명당 인터뷰는 몇 시간씩 했나? 그때는 서너 시간씩 했다. 매주 인터뷰를 했는데 끝나면 술 마시는 게 일이었다. 안주 좋은 집을 미리 알아두고 장소를 잡아 인터뷰했을 정도다. 황정민, 고현정 등 술 좋아하는 분이면 누구나 같이 마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랑 지금이랑 다른 건 끝나고 술을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의 차이였던 것 같다. 이번 책에선 한 사람당 6시간 이상을 인터뷰했다. 김상욱 교수는 8시간이 넘었던 것 같다.
 
머리말이나 인터뷰 대화 중에 ‘정답이 없는 시대다’라는 말이 몇 번 등장한다. 왜 그럴까? 사회의 어른 또는 우상이 없어져서 그런 걸까? 2000년대 초반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 김대중 대통령, 박완서 작가, 장영희 교수, 화가 김점선, 행복전도사 최윤희 등 존경받던 명사들이 한꺼번에 떠난 기억이 난다. 듣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영화로 치면 한 시대를 풍미한 주윤발 같은 배우가 눈앞에서 사라진 느낌 같은 것 아닐까? 장영희 선생님 글을 참 좋아했다. 책 읽으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꼰대만 있고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들 한다. 울산에 농사 도우러 갔다가 소똥으로 거름 만들 때 어떻게 말리는지 몰라 어르신들이 지나갈 때 물어봤던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그런데 요즘은 어른들한테 물을 게 없다고 한다. 어른들이 젊은이들한테 물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기술이 워낙 빠르게 발전하니까 미처 따라잡지 못해서다. 묻기 전에 대답하면 꼰대이고 물을 때만 대답해줘야 어른이라는 말 들을 땐, 나도 굉장히 속상하다. 그들(젊은이들)이 왜 먼저 묻질 않을까? 왜 그런지 나도 모른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나 같은 사람은 믿고 의지하고 물어볼 상대가 없어 아쉬웠는데….
 
젊은 세대에 문제가 있는 걸까? 하지만 그걸 심각한 문제라고 보진 않는다. 그들에게도 뭔가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기다려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애들 안 된다’는 말은 아마도 단군시대부터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씩 사람은 발전했고, 시대마다 어른이 곳곳에 있었고, 그래서 시대가 이어져 온 것 아닐까 생각한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이 이불을 발로 찰 만큼 얼마나 대단한 일인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만 해도 마흔이 훌쩍 넘었으니 뭣 좀 제대로 알 줄 알았는데, 여전히 모르겠는 게 많다. 10대, 20대, 30대에 알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다시 돌아보면 잘 몰랐던 것투성이다. 그때 쪼끔만 더 알았더라면 하는 게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인 것 같다. 어차피 사람 사는 모습은 돌고 도는 것 아닐까 싶다. 결론은, 그냥 나나 잘 돌아보고 살아야겠다는 것이다.(웃음) 욕심 좀 내서 바라는 게 있다면, 이번에 만난 분들처럼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사람한테 물어보며 살 수 있길 바란다. 누나, 언니, 형, 오빠 같은 그런 관계가 많이 구축되면 좋은 것 아닌가 싶다. 그분들이 ‘나도 잘 몰라~’ 하면 그럴수록 더 물어보고 싶고 재미있다. 
 
이정모 관장이 쓴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그런 말이 참 위안이 되지 않나? 저렇게 명망 있는 과학자도 어려운 게 있고 모르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위안이 되고 거리가 좁혀진다. 잘 모른다고 하면서도 물어보면 모두들 성심성의껏 답해주셨다. 김상욱 교수는 8시간 이상을 물고 안 놔줬다. 유현준 소장은 지쳐서 얼굴이 벌게지도록 대화했다. 진짜 고마웠던 건, 그만 끝내자고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구분과 경계를 넘어 질문이 답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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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정재승 교수, 유현준 교수.

 

‘나는 원래 비관적이다’라는 말을 했다. 인생 내내 비관적일 리는 없을 테고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그렇게 됐을까? 비관적이다. 남들과 좀 다른 것은 그걸 한 번도 극복하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극복이 안 될 거라고 늘 생각했다.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선생님이 ‘니 성적으론 교대는 안 돼!’라니까 그냥 안 되나보다 했다. ‘나는 안 돼’라고 생각했다. 그냥 비관한다.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관광과로 갔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영향이 있는지 없는지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백일 전에 돌아가셨으니 아예 없는 존재였다. 아버지가 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 건 서른 중반 넘어서 좀 힘들 때가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이럴 때 내 편 들어줬겠지, 라는 생각은 좀 했었다. 옛날엔 대개 그랬듯 나도 가난하게 자란 세대다. 누나들은 공장생활을 했고 그 토양에서 공부를 잘했어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그런데도 뭔가 잘 해봐야겠다, 뭔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한 게 없다. ‘나는 비관적이다’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사는 게 원래 그런 건 줄 알았다. 
 
가수 안예은의 ‘경우의 수’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그렇게 살면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살게 되지 않나? 그렇다. 늘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살았다. 연애를 할 때도 ‘저 사람이 끝까지 날 사랑하진 않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런 사람인 걸 알면 상대는 얼마나 피곤해할까도 생각했다. 아무튼 모든 걸 제일 끝까지 기대치를 낮춰놓고 살았다. 학교 다닐 때도 썰매 타고 학교 가기 내기를 하면 심판만 하려고 했고, 소개팅을 해도 파트너가 아닌 주선자 역할을 주로 했다. 앞에 나가 선수로 뛰는 것에 대해 두려움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든 욕먹기 싫은 거 아니었을까?(웃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면 막상 일이 닥쳤을 때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있다는 뜻 아닌가? 내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내겐 ‘하면 된다’가 없었다. 웃기게 과장한다면 내 좌우명 중 하나는 ‘할 수 없다’였다. 유머이지만 완전히 농담만은 아니다. 기본적인 정서가 비관과 슬픔이다.  조금이라도 더 슬픈 쪽을 택한다. ‘안 돼’ 했다가 되면 나중에 더 좋은 것 아닌가. 너무 비관적이어서 아예 시도할 용기가 없는 자신을 그런 식으로 포장하고 위장한 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모습이 가끔은 비겁하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될 수 있으면 최악의 경우를 상정했다. 왜 자꾸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어릴 때부터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릴 듣고 싶지 않았던 것도 큰 이유였다. 촌에서는 아버지가 없는데 행실이 나쁘면 두 배로 욕먹는다. 인사 잘 하는 습성, 되도록 겸손하려는 마음가짐이 그래서 어릴 때부터 굳어진 것 같다.
 
 
남을 웃겨야 하는 사람이 왜 슬픈가? 왜 줄곧 비관과 슬픔을 택하나? 슬픔이라는 정서를 안다는 게 좋았다. ‘비관적인 게 그렇게 나쁜 건가?’라고 자기합리화를 했던 것 같다. 안 되는 것을 창피해하거나 무서워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얘기해보고 싶었다. 예를 들면 비관이, 소극이, 작은 이, 못생긴 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한 가지 일화로, 강동원과 술을 마실 때 물어봤다. “솔직히 너 무섭지?” 했더니 “뭐가요?”란다. “넌 세월이 가면 무너진다. 하지만 난 안 무섭다. 이미 폐허 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괜찮다”라고 했다. 비교 대상인 나 같은 사람 덕분에 니들이 자신 있게 사는 거라는 우스갯소리였다. 너무 적극적이거나 활달한 사람은 원시시대부터 일찍 죽었다는 소리도 했다. 천둥소리가 궁금해 밖으로 급히 뛰어나갔다가 번개 맞아 일찍 죽는다. 호랑이 소리가 궁금해 나가본 놈이 먼저 물려 죽듯이. 그 안에서 좀 숨어 있고 ‘내일쯤 나가 보자’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오래 산다. 원래 그렇다(웃음). 우울하거나 비관적인 건 나쁜 게 아니라 생존 본능이 뛰어나고 타인에 대한 인지성과 감수성이 뛰어난 것이다. 오해는 없어야 하는 게, 이런 우스갯소리는 활달하고 잘생긴 게 나쁘다는 얘기도 아니고 그들을 끌어내리려는 것도 아니다. 비관이나 소극이, 작은 이, 못생긴 이를 좀 더 높은 위치로 갖다놓자는 뜻이다. 아래로만 본 것들에게 제 위치를 찾아주자는 것이다. 나의 비관이란 바로 그런 것 같다. 높은 걸 내려놓자는 게 아니라 낮은 것들을 먼저 생각하고 좀 더 올려놓자는 것. 존재의 이유는 다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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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채경 박사와 김상욱 교수, 이정모 관장.

 

김상욱 교수가 말한 ‘찬물에 라면 끓이기’는 실험 해봤나? 해봤다. 찬물에 면과 스프를 넣고 김이 나고 끓으면 조리 끝이다. 시간이 단축되고 편리해서 그렇게 해먹는다. 면발은 불의 세기와 시간 조절에 따라 달라진다. 이걸 응용해서 김치찌개 끓일 때도 육수 따로 내지 않고 재료 넣고 볶다가 물을 조금씩 넣으면서 자박자박 끓인다. 무엇보다 간편한 게 장점이다.  
 
유현준 소장과 공간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다. 김제동이 마음속으로 그리는 공간, 꿈의 집은 어떤 모습인가? 내 공간은 작업실 개념이 강하다. 생각하며 놀며 쓰는 공간이다. 내 공간은 40년 넘게 충분히 다 그렸다. 아직은 둘이 살 걸 꿈꿔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분이 오셔야 완성이 된다. 그분이 하자는 대로 할 거다.(웃음)
 
심채경 박사와 대화 중 ‘따로 또 함께’란 말이 등장한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표현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기러기를 연상해봤다. 홀로 날갯짓 하지만 함께 먼 길을 줄지어 간다. 우리는  모두 ‘따로’이지만 또 ‘함께’다. 내가 비관적이라 말할 땐 그 안에 슬픔의 감정이 있는데, 그건 개인의 독립성, 개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에 그렇다. 미국의 어떤 법원에 ‘모든 인간은 개별적이다’라는 말이 걸려 있다고 들었다. ‘따로’를 집중해주고 조명해줄 때 ‘함께’나 ‘전체’도 그 빛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사람을 2030이나 5060으로 묶는 것도 개별성을 존중하지 않고 규정해버리는 것일 수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쉽게 규정되고 퉁쳐지는 건 속상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따로 또 함께’라는 말을 좋아한다. 너무 개별화되고 파편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도 하지만, 그럴수록 개별성에 집중해주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사람이 외로워진다는 것은 집단에 끼지 못해서 느끼는 외로움도 있지만, 자신의 개별적 존재가 조명 받지 못할 때, 집중 받지 못할 때 느끼는 외로움이 더 크다. 예를 들어 “나 애인이랑 헤어졌어.” 그러면 “야, 실연의 상처 같은 건 한 달 안에 회복돼, 기운 내!”라고 말한다. 별로 도움 안 된다. 그게 아니라 이야기 들어주고 같이 슬퍼하고 밥은 먹었는지 챙기고 ‘그 사람이 그랬구나’ 하는 공감의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개별적 존재도 그와 연관된 사람들도 행복해질 것 같다.
 
경제전문가 이원재 대표는 미래사회의 예측변수는 인구, 기술, 기후라고 했다. 김제동의 미래 예측변수는 어떤 것들일까? 함께 사는 사람이 생길 것이냐가 가장 큰 변수가 아닐까?(웃음) 중학교 때부터 누나들과 자취하며 살았다. 누나들 시집가고 나서는 내내 혼자 살아왔다. 2년 반 전부터 함께 사는 강아지가 첫 변수였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보호소에서 입양한 20㎏짜리 중대형견이다.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다. 반려견을 키우고 나서 아이를 키우며 직장 다니는 분들을 엄청나게 존경하게 됐다. 똥오줌을 안에서 안 하니까 하루에 두 번 산책을 시켜야 한다. 강아지 하나도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데 내 아이라면 오죽할까. 강아지 때문에 다시 한 번 깨달음을 얻었다. 이래서 사람은 모든 일을 겪어봐야 안다는 말이 실감난다. 짐작만 하고 아는 척하거나 아는 척 아무 말이나 하는 건 정말 아니구나 생각했다. 생명권 보호 차원에서 이름은 얘기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얘랑 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다. 신영복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다. ‘가장 좋은 사람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사람, 너랑 함께 있으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개랑 살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결국 지금의 변수는 우리 강아지, 미래의 변수는 함께 살게 될 사람이겠다.(웃음)
 
‘일하는 김제동’의 미래 예측변수는 어떤가? 크게 변할 건 없어 보인다. 방송은 점점 더 안 하게 될 것 같고… 토크콘서트도 코로나가 사라진다 해도 예전처럼 200, 300명 모이는 대규모 콘서트가 과연 될까 의심스럽다. 그냥 가끔 책 쓰면서 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게 목표이기도 하다.(웃음)
 
정재승 교수와 경쟁교육사회에 대해 얘길 나눈 대목이 있다. 교육이 문제이긴 하다. 복잡하지만 아무 제안이나 하나만 해본다면?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인데, 게임을 정규 교육 과정에 어떤 형식으로든 넣는 건 어떨까 생각해본다.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면 해도 좋지 않을까? 필수과목 아니어도 선택학점제를 활용하면 될 것 같다. 아이들이 과연 점수랑 연결되는 제도권 하에서도 그렇게까지 게임에 열광할까? 방문을 확 열고 “야! 너 왜 게임 안 해?”라고 다그치는 지경이 돼도 그렇게 좋아할까? 만약 정말 그렇다면 거기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볼 만한 문제 아닌가? 어떤 조사를 봤는데, 애들이 ‘게임’ 하면 가깝게 떠오르는 단어가 ‘친구’라더라. 친구랑 놀 수 있는 공간이 주로 거기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공간이 달리 마땅하지 않은 게 우리 현실인 것 같다. 하긴 뭐 이것도 내 생각일 뿐이다. 애들이 들으면 “아저씨가 뭘 안다고 그래요?” 할지도 모른다.(웃음) 
 
정재승 교수 편에서 ‘신이 있어 뇌가 인지하는 건지, 뇌가 신이란 걸 만들어낸 건지’라는 대목이 있다. ‘영혼’을 믿는 사람이 20%도 안 된다는 조사결과도 소개된다. 천주교인인 걸로 아는데 신과 영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각자의 신념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는 걸 이번 작업을 통해 느꼈다. 그러니 객관적으로 어떤 게 맞느냐고 하면 나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 분야가 아닌 것 같다. 전문가들이 연구해서 밝힐 문제다. 신은 누군가가 있다고 하면 그에겐 있는 것이고, 없다고 하면 그에겐 없는 것이다. 내 경우는 신을 찾을 때는 있고 안 찾을 때는 없다. 응답을 받으면 계신 걸로 알고 응답을 안 주시면 아니다. 그냥 아버지 같고 어머니 같다고 생각하며 다닌다. 언제나 계셨으면 좋겠다.(웃음)
 
경우에 따라 온 앤 오프다? 아이고, 그렇게 되나? 넘어가자(웃음).
 
신영복 선생의 말을 빌려 ‘꼭 불행의 크기만큼의 행복이 필요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로 바꿔도 될 듯하다. 외롭고 비관적인 김제동의 소확행은 무엇인가? 술은 줄여서 예전만큼 행복하진 않고, 지금은 개가 와드득 와드득 소리 내며 밥을 잘 씹어 먹을 때가 행복하다. 산에 핀 벚꽃에 감탄하고 흩날리는 꽃비에도 마음을 빼앗긴다. 국진이 형(개그맨 김국진)이랑 가끔씩 스크린골프 치는 것도 소확행이다. 형한테 잘 배워서 얼마 전엔 3언더도 쳐봤다. 물론 스크린 얘기다. 어쩌다 필드 나가면 엉망진창이다. 찌개 간이 딱 맞았을 때도 행복하다. 아, 무엇보다 진짜로 행복한 건 ‘드라마 보기’다. <나의 아저씨> 보고 엄청나게 울었다. 가슴을 울리는 대사가 많다. 같은 작가의 <또 오해영>에도 흠뻑 빠졌다. 맛동산 하나 들고 소파에 누워 보기 시작한다. 중간에 라면도 끓여 먹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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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좌파냐 우파냐’ 식의 범주 나누기가 싫다고 했다. 그래도 김제동이 정치적 포지셔닝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김제동은 진짜 좌파인가? 그런 분들이 말하는 건 그냥 좌파도 아니고 ‘좌빨’ 아니던가?(웃음) 뭐가 됐든 함부로 규정할 순 없다. <나의 아저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가 ‘인간이 어떻게 한 겹이냐?’고 한 부분이었다. 인간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규정할 수 있겠나? 죽마고우도, 부부도 서로를 잘 모르는 수가 있다. 무턱대고 ‘넌 이렇지?’라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웃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인간이 어떻게 한 겹이냐?’고 한 그 대사가 자꾸 떠오른다. ‘사람 알고 나면 무슨 짓을 해도 못 미워해’라는 이선균의 대사가 있었다. 그 말 듣고서 되게 많이 울었다. 그렇게 날 알아주는 사람과 같이 살고 싶다. 우리는 인간을 규정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드라마 <또 오해영>에 ‘발가벗고 국토대장정을 한 기분’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나도 얼마나 수도 없이 비슷한 경험을 했는지 모른다. 나뿐 아니라 가족까지 들먹여질 때는 더 괴롭다. 대중 앞에 선 직업은 기사나 댓글로 공격당하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게 너무 일상적일 때는 살기가 힘들다. 뭔가로부터 고통 받을 때는 죽고 싶거나 죽을 만큼 힘들거나 둘 중 하나다. 죽고 싶은 건 자살충동, 죽을 만큼 힘든 건 공황장애다. 그런 일들의 연속 과정에 있다 보면 그냥 혼자 조용히 놀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왜 가만히 있냐는 말이 돌고 다시 뭘 하면 말이 생긴다. 모든 게 그 ‘규정’ 때문인 것 같다. 김제동은 무엇 무엇이라는. 그 규정이 폭력적이지 않기만 해도 좋겠다. 
 
대중연예인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걸림돌 아닐까? 대중 앞에 선 직업이라 그렇긴 하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그걸 단점이자 불만이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힘들다. 아주 친한 친구한테나 토로할 얘기다. 왜냐하면 대중연예인이 감당해야 할 것들이니까. 그런 점에서 비겁하고 싶진 않다. 누나들이 댓글을 보더니 “야, 나는 하나만 봐도 가슴이 벌벌 떨려서 더는 못 보겠다”고 한다. “넌 이걸 어떻게 견디냐?”고 걱정이다. 어떤 때는 주변에서 악성 댓글을 고발하자고 흥분하지만 늘 참자고 한다. 내 직업에 따라붙는 감당해야 하는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그걸 당연히 여기고 막 행동하는 건 다른 차원이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네 눈에서도 피눈물 난다고 말하고 싶지만, 가끔 그런 복수의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얘기하진 못하겠더라.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런 직업 가진 사람들은 다 그럴 것이라 위안 삼고 견뎌내는 것 같다. 대중연예인이라 좋은 점도 있다. 아이들에게 쉽게 말을 걸고 들을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웃음) 
 
함께한 전문가들과 유튜브로 북 토크를 했다. 댓글 사용을 차단해서 뒷말이 있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나 말고 다른 분들이 출연하는 영상이라서 그분들이 나 때문에 다치면 안 되니까 사용 중지를 걸었다. 책과 관련 없는 내용이 안 올라오게 막은 것이었다.
 
기사나 댓글을 보지 않는 건 어떤가? 그게 편하지 않을까? 나도 그러려고 한다. 사실 이왕 물어보시니까 얘기하는 거다. 그래도 이럭저럭 잘 견뎌온 것은 그 모든 것이 나의 인생과 결정을 침범하지 않도록 지키는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내가 꼭 말을 해야 되는 순간이 온다면 하고 그래도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는 것이 답일 거라 믿는다. 그러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을 어디서 찾나? 어떻게 키우나? 특별한 건 없고 계속해서 자기를 북돋우는 수밖에 없다. 친한 사람과 오래 얘기도 하고, 대외활동을 줄이고 자기를 고양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방법이다. 괜찮다는 건 거짓말이다. 남들이 그렇듯 나도 그냥 견뎌내는 것이다. 앞으로는 뭔가 나아질 것 같다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냥 비관적인 채로 견딘다. 그게 힘인 걸까?(웃음) 
 
 
책에는 과학과 인문학, 경제학 커뮤니케이터들이 나온다. 김제동이라는 인물은 무슨 커뮤니케이터라고 이름 붙이는 게 좋을까? 난 그냥 사회자라는 말이 좋다. 공익 MC라고도 하던데 적절치 않다. 영어로 쓰는 호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10여 년 동안 두 시간 이상 서서 무대 진행을 하고 코미디를 했다. 그쪽 방면으로는 장기가 탁월한 면이 있다. 체력과 내공이 있다고나 할까. 그걸 10년 넘게 한 것 보면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불리면 좋겠는데, 우리말로 옮기기가 어렵다. 판소리도 아니고… 이야기꾼이라고 해야 하나?(웃음) 아무튼 열아홉 살 때부터 마이크를 잡았으니 그거 하나는 자부심이 있다. 앞으로도 끝내 가장 해보고 싶은 것도 혼자 마이크 잡고 무대에 서는 것이다. 
 
말 잘하는 MC로 알려져 있다.내공을 쌓아놓으려면 독서량도 많을 것 같다. 이번 책을 내면서는 어쩔 수 없이 그분들 책을 미리 읽어야 했다. 솔직히 다 읽진 않았다. <경향신문> 연재 때는 일부러 인터뷰이를 파악하고 가지 않았다. 완벽히 파악하고 가면 오히려 말을 잘 못하는 것도 같다. 그냥 삐딱하게 맞닥뜨린다. 아, 그런 건 칠판 바로 앞에 앉았던 사람들 얘기죠. 공부 잘했으니까 그런 얘기 하시지만, 난 그런 얘기 몰라요… 뭐 그런 식으로 눙친다.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조금은 거리감을 두고 삐딱하게 틀어보는 거다. 그게 내 나름의 웃음의 핵심 포인트였다. 코미디언은 영원히 반정부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있다. 기울어진 곳에서 소리를 내는 것, 너무 다 아는 것보다 당연히 모르고 대응하는 것이 코미디언 MC의 매력인 것 같다. 그러니 짐작하시겠지만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시집은 그나마 자주 읽는데 이문재 시인을 좋아한다. 어떤 영감을 얻거나 문구를 차용하는 출처는 책보다는 오히려 드라마나 영화다. 독서광은 절대 아니다. 
 
지금껏 말해온 스트레스만도 한 보따리가 넘는다. 힐링은 어떻게 하나? 역시 드라마 보기가 최고다. 전편 몰아보고 눈물 흘리기가 취미다. 걷고 운동하고 스크린골프장에 가고… 그러면서 잘 털어낸다. 술자리는 해도 예전처럼 마시지 않는다.  
 
내년이면 데뷔 20주년이다. 소회를 미리 풀어놓는다면? ‘아이고 야~ 우야다가 우째 여기서 이러고 있노~’라는 생각이 든다. 한 번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인생을 살지 않았다. 연예인이 돼야지, 아니면 또 뭐가 돼야지 생각하고 살지도 않았다. 내가 한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막 서울에 올라왔을 땐 ‘경상도 사투리로 전국에 이름을 날릴 수가 있나?’라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당면과제에 집중했다고 말하면 너무 멋스러운 얘기다. 그냥 사는 데만 급급했다. 그러는 동안 내가 사는 것과 주위에서 나를 보는 것이 거리가 멀어지고 깊어지고… 그러는 중에 또 다른 내가 생겨났다. 어느새 여러 가지 이름이 수없이 생겨났고 수식어도 많아졌다. 그래서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했고 ‘나는 뭐지?’라고 스스로 묻다가 나중엔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사람을 많이 사귀게 되고, 친해지고, 때로는 나만의 비관적인 생각을 나눌 수도 있게 됐다.  
 
인생에 낙관이라곤 하나도 없나? 나는 낙관이 없다. 딱 하나, 우리 개가 내 말을 잘 듣기 시작했다는 것이 요즘 나를 낙관적이게 했다. 그 밖엔 앞으로 잘될 거라고 낙관하는 게 없다. 목표 설정도 잘 안 한다. 겁나서 설정하지 않는 것 같다. 게으르기도 하고. 그래도 꼭 해야 되는 거면 한다. 어쩌겠나, 해야지.  

두 시간 남짓한 인터뷰는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질문도 많았고 답도 많고 길었다. 질문이 답이 되는 시간이 무척 빨랐고 경쾌했지만 한편으론 뜨거웠고 무거웠다. 열아홉 살부터 청춘을 다 바친 평범한 무대 MC의 향수를 말할 때 검은 얼굴이 밝아졌다면, 이태 전 고액 강연료 논란에 대해 말할 땐 얼굴이 더 어두워진 듯하다. 어떤 일엔 기뻐하고 어떤 일엔 슬퍼하고, 어떤 때는 멀쩡하다가 어떤 때는 아프기도 한 게 사람의 일. 사람이 어떻게 한 겹일 수 있냐는 말, 여기에 갖다붙여도 될 성싶다. 김제동만이 아니라 그냥 우리 모두의 인생 이야기 아닐까.
 
<오늘밤 김제동>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 그 몇 날들 말고 ‘오늘의 김제동’은 안녕하신지 묻는다면 나는 딱히 규정할 수 없다. 그는 견딘다고 말하고 있고, 그걸 부정하고 외면할지 공감하고 응원할지는 당신의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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