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순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연희를 만났다. ‘불리는’이 아니라 ‘불리던’이라는 과거형을 쓴 데는 이유가 있다. 30대를 훌쩍 지난 이연희는 결혼과 함께 청순을 벗고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카메라 앞에 앉은 이연희의 표정이 편안했다. 작년 6월 깜짝 결혼 발표 후 오랜만의 인터뷰 자리.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영화 <새해전야>에서 이연희는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고 홀연히 지구 반대편 나라 아르헨티나로 떠난 20대 비정규직 스키장 직원 진아를 연기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노숙자 신세가 되었다가, 한국의 와인 배달부를 만나고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되찾아 돌아오는 인물이다. 20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역할이다. 이연희는 “<새해전야>는 행복이 무엇인지, 삶의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주어진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소개하며 차분하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인터뷰 석상에서 만나네요. 화상 인터뷰를 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웃음) 처음 할 때는 너무 이상했는데, 이것도 서서히 적응이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시기에 영화를 개봉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영화 속 아르헨티나의 이국적인 풍광이 아름다웠어요. 1년 전 촬영한 건데 굉장히 멀게 느껴져요. 촬영 일정이 빠듯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촬영을 하고 왔었지. 운이 따라줬구나’ 생각했어요. 덕분에 작품을 보는 것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베사메무초’를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겨울 시즌의 고전 영화인 <러브 액츄얼리>가 떠오르기도 하던데요. 그런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감사함을 느껴요. ‘베사메무초’를 부르는 장면은 실제 연주자들과 촬영했어요. 미리 반주 촬영을 하고 제가 거기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어요. 진아의 상황에 맞게 노래를 불러서 진아의 심정을 표현해낸 것 같습니다. 
 
상대배우 유연석과의 호흡은 어땠어요? 아르헨티나는 언제 가볼 수 있을지 모르는, 기회가 흔치 않은 나라잖아요. 가는 과정도 힘들고요. 3일 정도 미리 가서 시차 적응을 했어요. 유연석 씨와 식사를 하면서 영화 전반적인 내용과 캐릭터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하면서 가까워졌어요. 그때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편하게 촬영을 잘 했어요.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본인이 연기한 20대 진아, 이연희와 닮은 점이 있나요? 저도 그랬어요. 무언가 열심히 한다고 의욕은 굉장히 앞서는데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나의 상황은 왜 이렇게 나아지지 않을까 초조한 생각이 든 적도 있어요. 그래서 진아를 잘 공감할 수 있었어요. 인간관계도 일도 초짜니까, 진아처럼 소심하기도 했고요. 저도 충분히 겪었던 시간이라 표현하는 데 자신이 있었어요. 
 
진아처럼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본 경험도 있나요? 네, 있어요. 일 때문이었어요. 너무 쉼 없이 달려와서 누군가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서툴고,  누구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었어요. 가족들에게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고요. 여행을 통해서 저만의 결정을 내리고 돌아왔어요. 다시 나의 생활로 뛰어들었을 때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저만의 결정을 내리고 돌아왔죠. 
 
혼자 여행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었나요? 우선 감사했어요. 저는 일찍 직업을 선택해서 경제적인 고민 없이 여행을 갈 수 있었는데, 20대 청년들은 그렇게 못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내가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구나.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 용기를 얻었어요. 여행을 하면서 시각이 달라졌어요.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본인은 삶에서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시나요?해답을 찾았나요? 일단 30대에 접어들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힘들게 20대를 겪어왔다면 이제는 차분히 들여다보고 해결해가는 과정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전에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몰랐다면 지금은 막연한 불안이나 두려움은 벗어난 것 같아요. 인생의 좋은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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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이후 달라진 점은…
 
2001년 데뷔 후 줄곧 ‘청순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연희가 어느새 서른을 훌쩍 넘겼고 결혼도 했다. 신혼 8개월 차의 행복을 만끽하는 중인 그는 사랑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새해 전야에 뭐 하셨나요? 코로나로 어디 가지도 못하고 5인 이상 모이기도 힘든 시기였잖아요. 맛있는 요리해서 가족들이랑 저녁을 먹었어요. 와인을 좋아하는데, 맛있는 음식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행복하더라고요. 
 
새내기 아내가 됐어요. 아내로서 본인의 점수를 매긴다면요? 아직 제가 감히 점수를 매기기엔.(웃음) 그냥 모자란 것 같아요. 감사하고, 제 모자람을 받아주는 게 감사할 뿐이에요. 
 
결혼을 하고 달라진 것이 많죠? 가령 사랑에 대한 생각 같은. 네. 사랑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한평생 같이 삶을 이끌어가야 되니까, 가족에 대한 사랑을 더 깊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제 부모님에 대한 사랑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요. 안정감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전에는 혼자 해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버거웠다면 지금은 누군가 내 편이 되어줘서 용기가 생기고 의욕도 많이 생겨요. 일에 대한 욕심도 많이 생겼고요. 인간 이연희로서 또 배우로서 많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이연희가 생각하는 중요한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지금 이 순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전에는 순간에 집중을 잘 못했거든요. 함께 작업하는 배우, 감독, 스태프 등 나의 동료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들에게 배움을 얻고 의지하면서 동질감, 동료의식이 생겼어요. 그분들과 만들어가는 재미를 느끼고 싶어요. 
 
30대가 되었는데 외모의 큰 변화는 없어요. 미모 유지 비결이 있다면요? 영양제에 많이 의존해요.(웃음) 얼굴에 트러블이 나면 이제는 영양제를 먹어야 하더라고요. 트러블에 맞게 각종 비타민을 다 챙겨 먹습니다. 그게 비결 중 하나고, 평소 건강한 식습관도 중요한 것 같아요. 
 
20대의 이연희에겐 줄곧 ‘청순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어요. 30대의 이연희는 어떤 수식어를 듣고 싶나요? 작품에서 캐릭터가 너무 잘 어울려서 수식어가 붙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어렵더라고요. 지금 생각난 건데 ‘젊음’을 항상 유지하고 싶네요. 40대는 생각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건강하게 맞이했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30대처럼 보이는’, ‘30대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건강함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배우로서 어떤 고민을 하시는지?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던 시기에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청순의 아이콘’이라고 수식어를 만들어주시면서 그런 이미지가 저를 이끌어왔다면, 30대는 마냥 청순할 수는 없잖아요.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배우로서의 고민도 있었고, 20대가 끝났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30대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고민도 있고요. 그런데 30대를 받아들이고 배우를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이연희가 생각하는 행복의 가치는? 행복은 멀게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같아요. 가까운 곳에서 소소하게, 작은 것에서부터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게 행복이 아닐까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일상생활에서 하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감사함을 느끼려고 해요. 나에게 주어진 삶과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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