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함께 살겠다고 결심하기까지 수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그 기반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변하면 사라질, 허망한 맹세에 나의 모든 것을 걸어도 될까. 혼자였을 때 뾰쪽했던 마음이 둘이 되니 조금씩 말랑해지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감정을 믿지 않았던 ‘짜짜미’와 나를 드러내는 것이 힘들었던 ‘뭉돌이’, 이 둘이 함께하자 ‘어쩌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싹텄다.
의심이 많은 여자와 솔직하지 못한 남자가 만났다. 뮤지션 오지은과 성진환은 연애부터 결혼까지 10년이 넘는 기간을 함께하고 있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끼리 만났는데 함께할수록 더 즐겁고 행복해졌다.
 
혼자일 때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행복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던 오지은은 성진환을 만나 실없지만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던 성진환은 오지은의 솔직함 덕분에 자신의 마음을 더 들여다볼 용기가 생겼다. 오지은은 성진환을 만나 ‘짜짜미’가 되었고 성진환은 오지은을 만나 ‘뭉돌이’가 되었다. 만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뜨면 ‘와, 이 사람이 나랑 같이 있다니 정말 고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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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거인 오지은과 성진환
 
그런 두 사람이 함께 책을 냈다. 성진환이 만화를 그리고 오지은이 글을 쓴 에세이집 <괜찮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라면>이다. 두 사람의 만남부터 결혼 후 반려견 흑당이와 반려묘 꼬마와 함께하는 소소한 행복을 담았다. 결혼한 사이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남편, 아내로 부르지 않고 동거인으로 칭한다. 결혼이라는 맹세에 기대는 대신 존중이 두 사람을 이어주고 있다. 달달할 것 같지만 담백한 단호박 수프 같은 이야기다.
 
같이 사는 사람과 공동 작업한 책이 나왔어요. 기분이 어때요? 지은 앨범도 거의 솔로로 내고 책도 쭉 혼자 냈었어요. 음악이나 글은 혼자인 시간에 대해 많이 쓰고 둘이 함께인 시간은 비밀 아닌 비밀처럼 뒀어요. 책 맨 처음에도 썼지만 인디언 속담에 ‘행복한 일을 말하고 다니면 공기 중의 귀신이 질투한다’는 말이 있어요. 저는 그 말을 믿는 편이에요. 저 혼자 책을 쓸 때는 상실이나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했는데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처음엔 좀 어색했어요. 그래도 독자들이 좋게 받아들여주신 것 같아서 지금은 저도 좀 편해졌어요. 성진환 씨와 같이 홍보해야 하는 건 여전히 어색하네요.(웃음)
 
진환 씨는 이제 가수 말고 작가님이라는 호칭도 생겼어요. 진환 사실 그렇게 불릴 때마다 좀 어색해요.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책으로 나올 거라는 상상을 전혀 하지 못했거든요. 오지은 씨와 함께 책을 내겠다는 결정도 가벼운 마음으로 한 건데 완성될 때가 되니까 부담이 꽤 커져 있었어요. 이미 세 권의 에세이를 낸 중견 작가 오지은에게 흑역사를 안겨줄까 봐 공포가 생겼거든요. 다행히 많은 독자들이 따뜻하게 받아들여주셔서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진환 씨는 만화를 그리고 지은 씨는 글을 썼어요. 같이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진환 제가 SNS에 그려서 올리던 일상 만화가 시작이에요. 그러다 저희 반려견 흑당이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이걸 책으로 만든다면 만화 사이사이에 흑당이 엄마가 쓴 글이 들어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책에 들어갈 내용을 지은 씨와 함께 고민하면서 저희가 생각하는 가족과 관계로 이야기의 범위가 넓어졌죠. 지은 저는 처음에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성진환 씨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림을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제 글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의견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농도를 조절하는 게 힘들었어요. 남이 잘 지내는 이야기가 재미있기는 힘들지 않나요?(하하) 성진환 씨 만화가 굉장히 따뜻하고 삶을 보는 자세가 남달라서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아서 같은 이야기를 하되 다른 톤으로 쓰려고 노력했어요. 책 내고 ‘단짠단짠했다’는 후기를 읽으면 뿌듯합니다. 만화는 ‘바닐라라테’, 글은 ‘아메리카노’ 같다고 하더라고요.(하하)
 
함께 책을 내서 좋은 점과 불편했던 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떠셨나요? 진환 함께 해서 훨씬 좋은 책이 되었어요. 저 혼자 만들었다면 아마 예전 에피소드들을 다시 그렸을지도 몰라요. 직설적이면서 영롱한 오지은 씨 글 덕분에 제 만화의 스토리텔링에도 힘이 실리고 부족한 부분이 많이 가려졌다고 생각해요. 불편한 점은 마감이 가까워질수록 서로가 제2의 편집자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 마감이 코앞인데 편집자가 집에 상주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웃음) 그런데 지나고 보니 서로 조금씩 빠직했던 순간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어요.
 
두 사람이 함께한다는 틀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와요. 이야깃거리는 어떻게 정했어요? 진환 많이 우울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속에서도 가끔 터지는 웃긴 순간에 집착하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 순간을 묘사한 만화가 쌓이니까 자연스럽게 소소한 행복의 기록이 됐어요. 코로나 때문에 무기력했던 마음을 만화를 그리면서 버텼어요. 빠르게 성장하는 흑당이의 놀라운 순간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었고요.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아기 고양이 꼬마와 넷이 지내는 요즘도 그런 소소한 행복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기록하고 있어요. 지은 제가 글을 쓸 타이밍에는 성진환 씨가 그린 만화가 거의 완성이 된 상태였어요. 그래서 독자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이야기가 뭘까 고민해봤어요. 성인 남녀가 잘 지내기 위해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는 일들도 적게 됐고요. 똑같은 일을 성진환 씨와 저의 시각에서 각각 작업하는 것도 있었고 제가 흑당이를 보는 마음에 대해 쓴 글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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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한 오래 지키고 싶은 행복
 
 
점이었다가 선이 된 두 사람은 반려견 흑당이와 살게 되면서 세모 모양의 행복을 그리게 됐다. 그러다 얼마 뒤 길 고양이었던 꼬마가 오면서 행복은 네모가 됐다. 두 사람은 영원한 행복을 믿지 않지만 최대한 길게 이 행복을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부부’라는 제목에 나온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가 두 사람이 서로 맞춰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죠. 그 과정이 힘들지 않았나요? 지은 결혼식을 준비할 때 제가 공감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부모님 세대와 생각이 다르니까요. 그때 성진환 씨가 초반에 부모님과 저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이었는데 그때 저희 둘 사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인 것 같아요. 아마 많은 커플들이 거기서 벽을 느끼지 않을까요. 진환 동거인의 뜻에 맞춰서 제가 바뀌었다기보다 느리지만 조금씩 함께 변해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아요. 지금도 이런저런 것들을 함께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 이래서 불편했구나. 억울했구나. 미안했구나’ 하고. 물론 오지은 씨가 여성으로 살면서 각종 위험과 차별을 겪었으니 변화가 즉각적일 수밖에 없죠. 저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 속도를 맞추려는 노력을 최대한 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어렵거나 괴롭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머물러 있으려고 하면 괴롭겠지만 그렇지 않으니까요.
 
느리지만 조금씩, 어떤 방향으로 변했나요? 진환 저희 둘의 관계는 결혼 전과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결혼보다 같이 산 게 더 오래되기도 했고요. 결혼식을 치르고 혼인신고도 했지만 그 맹세가 강력하다고 여기진 않거든요. 다만 저희를 아는 분들이 결혼 후에 둘을 묶어서 생각하는 건 확실히 달라졌어요. 그래서 대외적으로 서로에게 누가 되지 않게 더 조심하려는 경향이 생겼어요.
 
함께 긴 시간을 보냈어요. 두 사람에게 동거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지은 인터넷에서 웃긴 글 같은 거 보면 제일 크게 웃어주는 사람이요. 없으면 큰일 나는 존재입니다!(웃음) 진환 미움 받기 싫은 사람, 상처 주기 싫은 사람, 늘 같이 있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은 사람.
 
서로를 짜짜미, 뭉돌이라고 부르던데 어떻게 생긴 애칭이에요? 지은 민망한 질문이네요.(하하) 처음에 성진환 씨가 저를 실제로 보고 나서 생각보다 작아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무대에선 커 보였대요. 그래서 쪼미라고 부르다가 쪼쪼미, 짜미, 짜짜미 이렇게 됐어요. 아이고, 부끄러워라. 살면서 뭔가 더 푸근해진 느낌일지도 모르겠네요. 진환 연애 초반에 오지은 씨가 붙인 별명이에요. 말씀드리기 쑥스럽지만 뭉돌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상의 시츄 같은 인상이었다고 합니다.(하하) 집에서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불린 호칭이기도 해요. 저도 좋아하는 호칭이라 이제는 게임이나 온라인에서도 쓰고 있어요. 솔직히 할아버지 나이가 되어서도 그렇게 불리고 싶어요.
 
두 사람이 지내다가 이제 강아지 흑당이, 고양이 꼬마도 생겼어요. 아이들은 잘 지내나요? 지은 흑당이는 매일매일 정말 예쁘고요. 점점 더 예뻐지는 것 같아요.(웃음) 요즘도 가끔 흑당이를 훈련을 시키고 있어요. 너무 많이 짖으면 화장실에 잠시 넣어두고 있는데, 흑당이가 자주 까먹는 것 같아요. 같이 행복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고 있어요. 꼬마는 오자마자 저희 집을 평정했어요.(웃음) 저랑 성진환 씨, 흑당이 모두 소심하고 남의 생각을 많이 읽으려고 하는 편인데 꼬마는 자신의 행복을 진취적으로 쟁취하는 고양이에요. 꼬마랑 흑당이가 잘 지내줘서 일단 그게 제일 고마워요. 사실 꼬마는 곧 중성화 수술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해서 걱정이 돼요.
 
진환 씨가 흑당이와 함께 인터뷰를 하는 상상이 재밌었는데요. 흑당이가 행복에 대한 인터뷰를 한다면 뭐라고 할 것 같나요? 진환 “잠깐씩 떨어질 때도 있지만, 기다리면 언제나 엄마, 아빠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눈앞에 나타나요. 2년 반 동안 같이 살면서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그 믿음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할 것 같아요. 흑당이라면 왠지 이렇게 명쾌하게 대답할 것 같아요. 아, 제가 상상하고 제가 울컥하네요.
 
 
혼자였다가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또 넷이 됐어요. 지은 씨는 인연이란 걸 믿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나요? 지은 올해 꼬마가 길에서 저희 집으로 온 걸 보고 한 지인이 그런 말을 했어요. 흑당이랑 꼬마가 깔맞춤해서 온 걸 보면 운명은 있는 것 아니겠냐고.(웃음)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좋은 일이 제 인생에 생긴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지금 두 사람에게 행복은 어떤 모양인가요? 지은 지금은 저와 성진환 씨, 흑당이, 꼬마 이렇게 넷이 만드는 네모입니다.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행복의 모양은 계속 바뀔 수 있지만 최대한 길게 이 균형을 지키고 싶어요. 최대한 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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