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미술품에도 남다른 안목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이 개인적으로 소장한 작품만 1만 3,000여 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고인의 유족들이 상속세를 자진 납부해야 하는 기간이 가까워지면서 생전 고인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전문가 못지않은 안목으로 미술품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재계의 큰 별은 떠나면서 남긴 상속세 스케일도 남달랐다. 지난해 10월 25일 별세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유족들에게 약 11조 원이 넘는 막대한 상속세를 남겼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을 비롯한 고인의 유족들은 막대한 상속세를 물게 됐다. 상속법에 따르면 상속인은 고인이 사망 후 6개월 전까지 관련 상속세를 국세청에 신고해야 하기 때문에 4월 30일까지 상속세의 일부를 납부해야 한다. 
 
 
삼성가의 상속세 자진 신고 납부기한이 다가오면서 재원 마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가가 금융권 대출과 주식 배당 등을 통해 마련한 현금과 미술품 등 자산을 매각하면서 상속세를 충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법률대리인을 맡은 김앤장을 통해 지난해 말부터 한국화랑협회,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등에 미술품 감정을 의뢰했다. 아직 정확한 감정가가 나오진 않았지만 대략 2~3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 이건희 회장은 미술품에 전문가 못지않은 안목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고인은 ‘특급이 있으면 컬렉션 전체의 위상이 올라간다’는 자신만의 지론에 따라 다양한 미술품을 수집했다. 일명 ‘이건희 컬렉션’이라 부르는 미술품들은 국보, 보물뿐 아니라 현대 서양미술의 거장 작품까지 약 1만 3,000여 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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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보 제219호 백자청화매죽문항아리 2 국보 제258호 백자청화죽문각병 3 국보 제11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4 이중섭의 황소 5 마스 로스코 무제(붉은 바탕 위의 검정과 오렌지색) 1962 캔버스에 유채6 알베르토 자코메티 거대한 여인Ⅲ 19607 국보 제217호 정선의 금강전도 8 국보 제209호 달항아리 9 모네의 수련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로 모은 
‘이건희 컬렉션’
 
이 회장은 1980년대 무렵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를 실행할 정도로 고미술품에 애착을 보였는데 이로 인해 국보 30점과 보물 82점이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됐다. 우리나라 전체 국보 문화재 중 11.2%, 보물 문화재 4.9%가 삼성이 소유하고 있다.
 
삼성가의 소장품이 처음 공개된 것은 2004년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하면서부터다. 당시 리움에는 소장품 1만 5,000여 점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7,460점의 약 2배에 달하는 수치다. 현재 리움미술관이 공개하고 있는 소장품은 고미술품 300점, 현대미술품 200점 총 500여 점이다.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이 쓴 <리 컬렉션>에 따르면 이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미술품은 국보급 문화재가 상당수이다. 국보 제216호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국보 제217호 ‘금강전도’, 국보 제118호인 고구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보물 제1392호인 이암의 ‘화조구자도’, 국보 제261호 ‘백자유개호’, 보물 제1199호인 ‘홍백매도’, 국보 제133호 ‘청자동화연화문표주박모양주전자’, 보물 제1386호 ‘청자상감어룡문매병’ 등이 있다.  
 
고미술품 외 근현대 작품도 상당수다. 고인은 미술을 전공한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의 조언에 따라 국내 작품 2,200여 점과 서양 미술품 1,300여 점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작품 리스트를 보면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 김환기의 ‘전면점화’ 등이 포함돼 있다.
 
서양 작품의 수준도 놀랍다. 모네의 ‘수련’, 피카소 ‘도라 마르의 초상’, 샤갈의 ‘신랑신부의 꽃다발’ 등 세계적인 작품들 역시 이건희 컬렉션의 일부다. 특히 경매시장에서 1,000억 원대에 팔려 화제를 모은 미국 추상주의 화가인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화’와 현대 조각의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 로댕의 청동조각 ‘이브’도 있다. 팝아트의 대가인 앤디 워홀, 제프 쿤스, 데미언 허스트의 대표작도 이건희 컬렉션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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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설립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삼성미술관 리움.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할 공간을 설립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 리움을 지었다.

 

이건희 컬렉션 중 가장 가치 있는 수집품은 
‘조선 백자’
 
1만 3,000여 점의 ‘이건희 컬렉션’ 중 수집품의 위상을 높인 무가지보(無價之寶)는 조선시대 백자다. 이 회장의 소유로 문화재청에 등록된 국보급 백자는 국보 제219호 조선시대 ‘청화백자매죽문호’, 국보 제309호 ‘달항아리’, 국보 제258호 ‘청화죽문각병’, 국보 제261호 ‘백자유개호’, 보물 제1425호 ‘백자철화매죽문호’ 등이 있다. 
 
‘청화백자매죽문호’를 구입할 당시 일화는 유명하다. 이종선 전 부관장이 <리 컬렉션>에서 밝힌 일화로 이 회장의 남다른 안목을 보여주는 예다. 청화백자매죽문호가 이 회장 수중에 들어올 당시 전문가들 역시 이것이 진품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학자들과 골동품상들 사이에서 진품 여부에 대해 시비가 적지 않았지만 이 회장은 청화백자매죽문호가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사들였다. 이후 1976년 서울 종로구 관철동 부근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이 회장 소유의 백자와 비슷한 모양의 백자 어깨 부분 파편이 출토되면서 도굴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 백자는 결국 가치를 인정받아 1984년 국보로 지정됐다.
 
 
고인과 가까이 지냈던 이우환 화백은 <현대문학> 3월호에 ‘거인이 있었다’라는 제목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기고했다. 이 화백은 “이건희 회장은 한국의 미술품이라 하더라도 작품의 존재감이나 완성도가 높은 것을 추구하며 언제나 세계적인 시야로 작품을 선별했다”며 “특히 옛 도자기 컬렉션을 향한 정열에는 상상을 초월한 에로스가 느껴진다”고 썼다.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은 <리 컬렉션>에서 “이 회장이 안료 등을 직접 공부하며 스스로 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전했다.   
 
삼성 측은 ‘이건희 컬렉션’을 어떻게 활용할지 아직 밝히지 않았지만 두 가지 방법 중 한 가지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4월 30일까지 납부해야 할 상속세를 충당하기 위해 미술품 경매에 내놓거나 삼성문화재단이 관리하는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 귀속시키는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행방은 3월 말, 미술품 감정이 끝나는 대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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