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도 찍었고 바닥도 쳐봤다. ‘인생사 새옹지마’라지만 너무나 굴곡졌던 삶의 여정. 정희자 전 서울힐튼호텔 회장의 농밀한 시간을 들여다봤다. 삶 자체가 장르를 넘나드는 사람이다.
경주 벌판을 뛰어놀던 시절의 정희자 회장.
#대우 해체, 자살 기도  
 
 
1999년 국내 재계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벌어졌다. 대우의 몰락.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대우가 해체될 줄 알았느냐’에요. 해체될 줄 알았으면 미리 준비를 했겠지.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나는 호텔이랑 미술관만 경영했으니 그룹 전체 사정을 모르기도 했고요.”
 
남편이 신규 사업을 할 때마다 조바심이 생긴 건 사실이다. 조선소에 이어 전자제품, 자동차까지 영역을 넓힐 때마다 불안감이 커졌다. 우리가 섬유로 일어섰으니 섬유만 하면 안 되겠느냔 아내의 말을 남편은 듣지 않았다.
 
그룹이 해체되고 소송과 재판,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쳤을 땐 죽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죽으려고 목을 매었다가 풀었다 했다. 장과 위 수술만 여덟 번을 겪었다. 김우중 회장은 5년간 해외 유랑생활을 하며 건강을 잃었다.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정 회장은 마음을 다시 고쳐먹어야만 했다. 수사를 받고 있는 병든 남편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 그들을 책임질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게 야속하고 후회된다 했다. 수십 년 동안 일해 돈을 모았지만, 본인 명의로 된 건 없었다. 서교동 집과 신문로 집은 정 회장이 매입했지만 모든 재산을 남편 명의로 하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더 애통한 건 힐튼호텔, 경주선재미술관, 방배동 자택, 안산농장 모두 채권단에 넘어갔다. 힐튼호텔은 분신 같은 존재였고 안산농장엔 아들이 안치돼 있었다. 결국 정 회장은 선재 씨를 화장시켰다. 
 
“진짜 가족 힘으로 버텼어요. 내가 없어지면 우리 애들은 어떻게 돼요. 애들도 몰랐을 거야. 내가 죽으려고 목을 맸는지 어쨌는지, 물에 빠졌는지 어쨌는지. 부모로서 책임이 있잖아요. 낳아놓고 나만 떠나봐. 애들 없었으면 내가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몰라.”
 
 
#남편의 마지막
 
“(결혼 생활 55년 중) 같이 보낸 게 20년은 될까. 떠나기 전 1년 동안 병원에 있을 때가 제일 오래 붙어 있었지. 어떤 날은 나 혼자 집에 들어가는 게 싫어서 좁은 병원 침대에서 자고 그랬어요.”
 
김 회장은 2019년 내내 병원에 있었다. 기억은 흐렸고 잘 듣지 못하며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 그도 아내만 보면 특히 반가워했다. 아내가 오기만 기다렸다가 뽀뽀를 하고 포옹했다. 자식들은 로맨스를 늦게 꽃피운다며 놀렸다. 
 
“흔히 애들 이름 붙여서 누구 엄마 하잖아요. 우리는 부끄러워서 여보 당신 소리를 못했어요. 나중에서야 어이 김우중 씨, 정희자 씨 하면서 이름을 불렀지.(웃음) 그러다 죽을 때 가까워서는 자꾸 엄마래요. ‘엄마, 돈 천만 원만 줘. 다시 사업하려면 돈이 필요하잖아. 돈 좀 해와. 사업해야지.’ 심신은 쇠약해져도 사업가 본성은 살아 있었던 것 같아요.”
 
세계를 누빈 남편의 말로는 병원 침대 위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남편이 개인 재산을 털어 지은 아주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 정 회장은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것 하나는 병원 아이디어를 내고 밀어붙인 일”이라 했다. 
 
그리고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자녀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잘 자란 일이다. 
 
“선정이가 능력 있는 큐레이터가 되어서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고 선협이가 MIT를 나오고 선용이가 하버드대를 나와서 기특한 것이 아니다. ‘엄마, 어제 잘 주무셨어요? 식사는 잘 하셨어요?’라고 물으며 늙고 병든 어미를 챙기는 마음 씀씀이가 대견하고 기특한 것이다.”(<내 마음에 비친 나의 모습> 중)
 
딸과 두 아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순번을 정해 엄마를 돌본다.
 
“우리 친구가 그래요. 요새 그런 효자들이 어디 있느냐고. 그래서 내가 자기 엄마인데 당연한 거 아니냐 했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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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1세대의 끝 
 
 
정희자 회장 자택에는 책이 빼곡하다. 화장실에도 책을 둔다. ‘무엇’을 하든지 배우는 것이 먼저라 했다.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세상 경험, 그것이 그의 결단력의 원천인 것 같았다. 인터뷰를 마무리 짓고 도란도란 주고받은 몇 마디가 기억난다. 

그럼 요즘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세요? 자는 거 서너 시간밖에 안 될 거예요. 못 자. 불면증이 되게 심해져서 밤이 길어요. 낮은 뭐 이렇게 저렇게 지내는데 밤에는 얘기할 사람도 없잖아요. 엉뚱하게 TV 채널만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그럼 어떨 때는 내가 바보가 돼서 ‘이 TV가 터지면 어떡하지’ 싶어서 다른 방으로 가요.(웃음) 그래서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안 터진다네?(웃음)
 
독서도 여전히 많이 하신다면서요? 그럼. 아, 요새는 신문 읽는 사람도 별로 없다면서? 아침에 바닥에 있는 신문을 딱 집으면 잉크 냄새가 확 퍼지는 거, 그게 참 좋아.
 
김 회장님이 “모든 게 팔자소관”이란 말을 종종 하셨다던데. 회장님도 살아보니 그렇던가요? 죽음, 삶, 탄생 이런 거는 내 마음대로 안 돼. 하나님, 부처님 섭리에 따르는 것 같아. 죽고 싶은 사람이 다 죽어지나? 아니잖아요.
 
재벌 아내는 좀 다르지 않을까 했어요. 당연히 살림 같은 건 직접 안 할 줄 알았거든요. 요새 젊은 재벌들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우리는 1세대잖아. 물론 일이 너무 바쁠 땐 아주머니 도움도 좀 있었지만 나 때는 다 그렇게 살았어요. 
 
인터뷰 내내 ‘박정희 전 대통령’, ‘이병철 창업주’, ‘김일성 주석’ 이름이 나오니까 신기하기도 했어요. 1세대잖아.(웃음) 내가 죽으면 우리 시대는 다 끝나는 거예요. 이병철 회장, 정주영 회장 다 나랑 같이 밥 먹던 분들인데 왜 이렇게 일찍 돌아가셨나 하지. 아, 물론 나이 차이는 좀 있지만.
 
오늘 막내 아드님이 같이 오셨잖아요. 자꾸 “제일 사랑했던 두 남자”라고 하셔서 서운하겠어요. (웃음) 아냐, 아냐. 우리 막내를 제일 사랑해. 아니다, 우리 여덟 살 막내 손자를 너무 사랑해. 

정희자 관장은 10년도 훨씬 넘게 자서전을 준비했다. 남들보다 대단한 업적이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살아온 세월을 정리하고 싶었다. ‘김우중 회장 아내’가 아닌 정희자의 삶. 하지만 김우중에게도, 정희자에게도 서로가 있어 더 빛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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