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세상을 떠난 스물아홉 살 김 모 씨. 생모는 28년 만에 그를 찾았다. 정확히는 딸의 유산을 찾기 위해 왔다. 유족 간 법적 분쟁으로 번졌다.
 
 
딸이 숨지자 28년 만에 나타난 생모가 억대 유산을 받아간 ‘제2의 구하라’ 사건이 발생했다. 생모는 사망보험금과 퇴직금, 전세보증금을 가져간 데 이어 유족이 병원비와 장례비용을 고인의 카드로 결제했다며 ‘부당이익금 반환’ 소송까지 걸었다. 서울동부지법은 두 차례 조정기일을 열어, 생모가 유족에게 전세보증금 일부인 1,000만 원 미만의 돈을 지급하기로 합의한 후 재판을 마무리했다. 

“2차 조정이 끝나고 엄마가 많이 우셨어요. 다음 생엔 언니가 꼭 본인 친딸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너무 불쌍하다고.”

 

숨진 김 모 씨의 동생은 이번 사건에 대한 취재에 적극 응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기사를 보고 친모(생모)가 죄책감이라도 갖고 살면 좋겠어요. 언니 돈을 떳떳하게 쓰면 안 되는 거잖아요.” 


장례식장에 오지 않은 생모 

 

고 김 씨는 재혼가정에서 자랐다. 1991년, 김 씨가 태어난 그해 친부와 친모는 이혼했다. 친부는 1996년 A씨와 새 가정을 꾸리고 함께 김 씨를 길렀다. 부부 사이에 딸이 태어나 네 가족이 됐다. 사망한 김 씨는 고등학교 입학 무렵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하다 A씨가 친모가 아님을 알게 됐다. 동생에 따르면 김 씨와 친모는 일체 교류 없이 지냈다. 친부는 2014년 세상을 떠났다. 

 

“언니가 성인일 때 아빠가 돌아가셨으니까 그때라도 언니가 원했다면 생모랑 살았을 거예요. 언니는 원하지 않았어요.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과 같이 살 필요가 없었겠죠.”

 

김 씨는 올해 2월 말 고인이 됐다. 난소암 판정을 받고 1년도 안 돼서였다. 친모 측 연락을 처음 받은 건 올 1월 중순이다. 문자 발신인은 자신이 사촌언니라며 간간이 연락하고 싶다고 했다. 김 씨는 연락하기 싫다고 선을 그었다. 

 
“(사촌언니가) 왜 연락을 한 건지 몰라요. 언니는 아픈 걸 어떻게 알고 딱 연락을 하느냐며 불안해했고, 그제야 보험금이 생모한테 갈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언니가 보험사에 직접 갈 수 없는 상황이라서 엄마나 제가 대신 수령자 변경을 해야 됐어요. 근데 병간호 때문에 엄마는 무조건 병원에 있어야 하고 저는 일을 해야 하고. 그렇게 미뤄진 거예요. 제가 보험사에 갔더니 언니 녹취가 필요하대요. 언니가 오늘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월요일에 녹취하겠다고 했는데, 그날 딱 떠나버렸어요. 수령인 변경을 못한 거죠.”

친모는 사망보험금을 포함해 김 씨가 남긴 1억 5,000만 원을 챙겼다. 상속제도를 규정한 현행 민법상 직계 존속인 친모는 제약 없이 딸이 남긴 재산 모두를 상속받을 수 있다, 상속권 절반을 가진 친부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다. 또 친모는 계모와 이복동생이 딸의 카드로 결제한 병원 치료비와 장례비 등 5,000만 원도 자신의 재산이라고 주장, 해당 금액을 편취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친모를) 카페에서 한 번, 2차 조정 때 또 한 번 봤어요. 처음 만난 날은 누가 봐도 힘들게 살아온 행색이었어요. 조정 때 보니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염색도 새로 하고 금팔찌, 금반지를 하고 있더라고요. 언니에 대해선 저희에게 단 한 번도 묻질 않았어요. 그런 얘기라도 꺼내주지… 처음부터 끝까지 돈 얘기뿐이었어요. 친모가 주장하길 언니 앞으로 채무가 있으니까 전세보증금에서 그걸 제외한 1,000만 원을 주겠대요. 저희가 알기론 언니는 채무가 없어요. 상속인이 아니라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친모는 딸의 장례식장에 오지 않았다. 친모의 언니와 조카가 발인일 새벽 찾아와 “사망 보험금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언니 지인들 중엔 가정사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텐데 거기서 어떻게 그런 이야기부터 꺼낼 수 있어요. 엄마는 우리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이 일을 왜 붙잡고 있느냐고 하세요. 언니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싫다고. 하지만 저는 너무 억울하고 괘씸해요. 친모가 자기변명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최근 동생은 직장을 퇴사했다. 김 씨의 암 진단비, 생활비, 변호사 선임비용 등을 퇴직금으로 내기 위해서다. 

 

“우리 언니도 생전에 못 누린 걸 친모가 누릴 거라 생각하면 하… 친모 분, 평생 죄책감 갖고 사셨으면 해요.”


생모는 딸의 데이트 통장도 가져갔다


 
동생이 기억하는 언니는 말썽 한 번 피운 적 없다.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생활 중이었다. 직장 근처에서 자취하면서도 매주 본가에 들러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였다. 


“가족 여행 중에 언니 배를 보는데 유난히 불러 있더라고요. 혼전 임신 아니냐고 제가 농담을 했더니 언니도 느낌이 이상했던가 봐요. 병원에 갔더니 (암) 말기래요. 참담했죠.”

 

예비 형부는 언니의 임종을 지켰고 상주 역할도 자처했다. 현재는 김 씨 유족과 연락하지 않는다.

 

“언니 커플이 언니 명의로 데이트 통장을 갖고 있었어요. 엄마가 오빠(언니 남자친구)한테 ‘데이트 통장이니까 네가 돈을 다 빼서 장례식장 오셨던 분들께 답례라도 하라’면서 줬어요. 친모가 그 돈도 부당이익금이라고 소송을 걸었고, 오빠가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증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혹시라도 오빠한테 나쁜 영향이 될까 봐 일부러 말 안 하고 우리가 갚기로 했어요.” 

 

고 김 씨의 생일은 7월 27일이다. 동생은 언니가 좋아하던 불고기를 들고 납골당에서 올해 생일을 축하했다. 취재에 응하기 3일 전, 언니가 꿈에 나왔다고 했다. 

 

“(언니가) 자꾸 졸립다고 해요. 피곤하대요. 너무 고단하니까 한숨 자고 일어나서 얘기하재요. 깨고 나면 안 보일 거면서…”

양육 의무는 했지만 상속권은 없다?

가수 고 구하라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양육을 포기한 부모가 유산을 받게 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른바 ‘구하라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이 제2, 제3의 구하라 사건까지 나왔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법무법인 에스 노종언 변호사에게 물었다.

 

친부가 재혼을 했고 계모가 직접 양육을 했어도 상속 권리를 주장할 수 없나? 계모는 상속권이 아예 없다. ‘상속’은 혈연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입양을 하지 않는 한 계모에게 상속권은 없다.

입양을 한 경우라면? (친부가 사망했다는 전제 하에) 계모와 생모가 상속권 반반을 갖게 된다. ‘친양자제도’라는 것도 있다. 양자와 친부모 사이 관계를 완전히 끊고 양자를 친자와 동일하게 취급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때 계모는 1상속권자가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계모가 할 수 있는 법적 대응은? 없다. 할아버지가 손주를 키웠는데도 생모가 모두 상속받은 사례도 있다. 할아버지는 혈연이라도 후순위 상속인이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형식적 가족과 실질적 가족의 대립이다. 혈연은 있되 가족의 의무를 하지 않은 사람, 혈연은 아니어도 실제로 가족인 사람들. 법이 이들 중 누구를 보호하느냐의 문제다. 

‘구하라법’ 입법 진행 상황은? 20대 국회 때 발의됐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되면서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과 다시 추진 중이다. 대한변호사협회, 한국여성변호사회도 공식 지지의견을 내는 등 열심히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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