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가수 딸은 돈을 벌어 꼭 엄마의 음반을 내준다고 했다. 딸은 유명 트로트 가수가 돼 약속을 지켰다. ‘송가인 엄마’ 송순단 명인이 첫 앨범 <송순단 무가>를 발매했다.

 

 
“여러분, 제 어머니의 첫 앨범이 발매되었습니다. 제가 잘되면 엄마 앨범을 만들어드린다고 약속했는데, 이제야 약속을 지켰네요. <송순단 무가> 많이 들어주시고 복 받아가세요. 맘과 뜻 잡순 대로 소원성취 발원이라.”11월 5일 가수 송가인은 SNS를 통해 어머니 소식을 알렸다. 모친은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 조교 송순단 씨. 처음, 그것도 딸이 만들어준 앨범을 낸 소감을 묻고 싶었다. 


11월 19일 만나기로 한 공식 인터뷰이는 송순단 명인이다. 현장에는 반가운 비공식 인터뷰이(?)도 나타났다. 딸 송가인이 모친을 직접 모시고 왔다. 엄마가 걸고 있던 목걸이를 받아들며 “세척할 때가 됐다”고 웃어 보였다. 무척 살가웠다. 매무새를 만져주던 사람도 딸, 카메라 앞에서 긴장한 엄마를 웃게 하던 사람도 딸, 노래를 불러 흥을 돋워주던 사람도 딸이었다. 인터뷰 중간중간 딸은 엄마의 답변을 보충했다.  

 

앨범 발매를 축하드립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송순단 아주 기뻐요.(웃음) 애들이 잘돼서 해준 거니까 보람되죠. 

따님이 동행하지 않을까 은근 기대했었는데 정말 같이 왔네요. 

송순단 딸이 같이 오겠다고 오늘 스케줄을 비웠대요. 메이크업도 딸이 다 예약해놓고.


진도에서 어제 오신 거예요? 

송순단 오늘 왔어요. 서울까지 네 시간 정도 걸려요. 어젯밤부터 내내 비가 내려서 아이고. 


<송순단 무가>는 오히려 비 오는 날과 어울리는 것 같던데요?

송순단 그렇게 느끼시는 분도 계시고 제가 무속인이기 때문에 반가워하지 않는 분도 계세요. 


이번 앨범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데뷔곡 같은 건가요? 

송순단 구구단으로 따지면 12단까지 있는 것처럼 우리 굿 종류도 열두 거리가 있는데 어떤 것은 이런 뜻이고, 또 어떤 것은 저런 뜻이고. 대대로 내려오는 굿이라 문서(가사)가 다 있어요. 

송가인 판소리 <춘향가>가 앞은 ‘사랑가’이고 뒤는 ‘이별가’이듯이 순서가 있잖아요. 진도씻김굿에도 종류가 있어요. 앨범에 있는 ‘안당’, ‘손님굿’, ‘만조상해원경’, ‘희설’, ‘종천’이 그거에요.


‘신곡’, ‘데뷔곡’이란 표현이 적합하진 않겠네요.
 

송가인 달라요. 가수들이 새로 만든 곡을 신곡이라고 하잖아요. 근데 엄마는 판소리 대목처럼, 계승하고 계신 굿을 녹음한 거예요. 굿이라는 자체가 특수해서 굿 앨범을 낸다는 것은 이례적이에요. 


‘이례적인 발매’라 하니 주변 반응이 궁금해요. 

송순단 깜짝 놀라죠. 겉으로 말은 안 해도 부러워하겠죠. 어떤 사람은 트로트보다 굿 소리를 좋아한다기에 CD를 하나 드렸어요.


녹음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송순단 가인이가 잠깐 왔었어요. 

송가인 엄마가 그런 녹음이 처음이다 보니 노래를 하다 가사가 씹히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불러야 하는데, 모르셔서 그냥 쭉 하시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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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서 해냈다 

송순단 명인은 30년 넘게 ‘진도씻김굿’을 알려왔다. 씻김굿은 망자의 넋을 씻겨 극락왕생을 비는 굿이다. 이왕 하는 굿이라면 더 제대로 해야겠단 생각에 진도씻김굿을 배웠다. 하지만 진도씻김굿은 세습무(대물림된 무당)에 의해 전승돼 와 강신무(신내림 받은 무당)인 송 씨는 지독한 텃세를 견뎌야 했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이미 포기했을 일이다. 


어떤 마음으로 굿을 하세요? 

송순단 아주 정성껏 해야지요. 정직하게 소리에 열중하고 망자들이 감동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해요. 목욕재계하고 속옷부터 다 다려 입고. 내 몸부터 정갈하게 만들어야 해서 초창기에는 남편하고 잠자리도 못했어요. 신이 내리면 부부생활을 못해요. 그것 때문에 아빠(남편)하고 싸움도 많이 했어요.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지만 엄청 고통 받았어요. 남편 입장에선 여자가 자꾸 나다니니까 안 좋은 쪽으로 오해하게 되고…. 내가 굿 하러 간 걸 질투하는 사람들은 집에 전화를 해대요. 그 집 여자 어떤 놈이랑 좋아하러 갔다면서. 그러면 내가 애기아빠한테 “나만 믿어라. 나는 우리 새끼, 가족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사는 것이다”고 설명하면서… 아이고 힘들었던 일은 말도 못해요.


신내림은 어떻게 받게 되신 거예요?

송순단 스물일곱에 가인이를 낳았는데 가인이 돌 지나고부터 3년을 (신병을) 앓았어요. 우리 시어머니가 “애(며느리) 죽는 것보다 신을 모시는 게 나으니 신 굿을 하자”고 남편을 설득했어요. 남편은 난리 난리쳤지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어요. 나는 가슴에 한이 많아요. 굿을 배울 때도 시달리고… 당골(무당)판에서 나에게 알려주려고 하질 않으니까. 


굿도 배워야 하는 거군요. 

송순단 굿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쟁이 어마어마해요. 굿을 하면 돈이 따르니까 남 잘 되는 꼴을 못 봐요. 나는 원래 무가 식구가 아니고 강신무잖아요. 전수생으로 들어갔는데 잔심부름만 시키고 가르쳐주질 않아요. 무대도 자기들끼리만 서려고 하고. 어떻게든 배워야겠다 싶어서 문화원에서 나온 책을 사가지고 엄청나게 공부했네요. 카세트테이프 조그만 거 가지고 굿 따라다니면서 녹음하고 혼자 익히고. ‘내가 문화재 전수 조교가 돼서 너그(너희) 앞에 꼭 설 거야’ 하면서 엄청 열심히 했어요. 처음엔 끼워주지도 않던 사람들이 저를 찾기 시작하더라고요. 나중에 그 사람들 죽고서 내가 굿을 해줬어요.(웃음)


전수 조교가 되려면 심사를 거친다고 들었어요.

송순단 전문 교수님 7명이랑 그 밑에 전수 조교 7명, 총 14명이 앉아 있고 저는 그 맞은편에 앉아서 심사를 받았어요. “송순단 씨 ○○(씻김굿 대목) 해보세요, ○○ 해보세요.” 그 시험 마치고 공연 때문에 일본 오사카에 갔었는데 꿈에 어떤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표창장 같은 걸 줘요. 아, 됐구나.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 오니까 문화재청에서 전수 조교(자격증) 받으러 오라고.(웃음)


그 분야 내의 입지가 ‘어느 정도’라 생각하세요?

송순단 나는 이빨이 세요.(웃음) 


어느 정도 힘을 갖고 있단 말씀으로 이해하면 되죠?

송순단 그치. 농사 지어가지곤 우리 애들 학교도 못 보냈어요. 우리가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어려웠어요. 강신무가 되면서 이 굿을 배워가지고 애들 가르쳐야겠단 생각만 했어요. 무조건 내가 열심히 해가지고 우리 새끼들 먹이고 가르쳐야겠다고. 우리 가인이 낳기 전에는 먹을 쌀이 없어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어요. 남편은 노가다를 다니니 어떻게든 밥 도시락을 싸줘야 하고 저는 애들 데리고 나가서 바닥에 눕히고 그 위로 양산 씌워놓고 일하고. 한이 맺혀서 지금도 애들한테 라면을 못 먹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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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송순단 씨 딸입니다 

직업으로 인해 천대받은 적도 많다.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딸은 무속인의 자식이란 이유로 모진 말을 듣기도 했다. 정작 딸은 개의치 않았다. 딸이 재학 중인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굿을 가르쳐 달라며 초빙할 만큼, 능력 있는 엄마였다. 

 

이력을 봤더니 ‘송가인 엄마’가 아니라 송순단 명인 자체로 이미 유명하신 분이더라고요. 

송가인 항상 “저는 진도씻김굿 엄마 딸입니다”라고 했었어요. 그러면 다들 “아, 네가 송순단 씨 딸이구나” 했어요. 진도 홍보 영상에는 늘 엄마가 들어 있어요. 대통령님 돌아가셨을 때도 엄마가 다 추모제를 하셨어요. 

송순단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를 제가 했어요. 오래전에 ○○시장이 안 좋게 돌아가셔서 그 집에서도 굿을 했었어요. 

 

무속인 딸에 대한 편견도 있었을 것 같아요. 

송순단 하루는 가인이가 학교 다녀와서 말하길 “친구가 나한테 점쟁이 딸이라면서…” 그래서 제가 “엄마 나쁜 직업 아니야. 속옷까지 다려 입으면서 정성 들여 굿을 하고 다녀. 도둑질하는 것 아니니까. 상처 받지 말라”고 우리 애기(송가인)한테 말했어요.


가인 씨도 그렇고 아드님(송가인의 둘째 오빠 조성재 씨는 아쟁 연주가다)도 그렇고 확실히 어머니의 음악적 유전자가 강한가 봐요.

송순단 얘(송가인) 오빠를 국악 시키려 하니 남편이 노발대발하고. 근데 운동회를 가서 보면 아들이 꼭 사물놀이 하는 곳 옆에 가서 징을 치면서 따라다녀요.(웃음) 

송가인 진도에 문화재가 많다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국악을 가르쳐요. 다른 지역 애들이 특별활동 시간에 만들기를 배웠다면, 저희는 국악을 배워서 공연도 하고 대회를 나가기도 하고 그랬어요.


엄마 눈에는 내 자식의 음악적 가능성이 보였어요? 

송순단 그랬죠. 애기들 사주도 있고 끼도 보이고. 제가 아가씨 때 진짜 트로트 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가방 끈도 짧고 빽도 없어서 못 했어요. 내 자식이 날 닮았으면 잘하겠지 싶어서 밀어붙인 거예요. 엄마가 이를 악물고 씻김굿을 배웠듯이 어떻게든 연습만 열심히 하라고.

 

이제 보니까 자식들이 성공 못 했어도 어머니 능력만으로 앨범을 낼 수 있었겠는데요?

송순단 자식들이 돈을 안 가져갔으면 했겠죠.(웃음) 가인이가 뜨기 전까지 돈을 가져다 쓰니까 엄두를 못 냈어요. 

송가인 제가 돈은 없어도 남 사 먹이는 걸 좋아해서 엄마한테 항상 돈 달라고 했어요. 근데 그거 엄마 닮은 거예요. 동짓날 보면 동네 어르신들 드린다고 팥죽을 엄청나게 쑤세요. 그런 걸 보고 자라서 저도 손이 커요. 엄마는 굿비까지 깎아준다니까요? 엄마랑 악사 서너 명이 가면 150만 원 정도 벌어요. 그 돈을 또 나누면 30만~40만 원이고. 몇 년 전에 엄마한테 “다른 지역 굿은 몇천만 원씩도 받는다는데 엄마도 좀 올리라”고 했는데 소용없어요. 


씻김굿 한 번 하려면 어느 정도 걸리는데요? 

송순단 제대로 하려면 다섯 시간은 잡아야 해요. 

송가인 엄마가 굿 하신다고 저녁 여섯 시쯤 나가시면 새벽 세 시쯤 오세요. 그동안 계속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엄마가 유일하게 쉬는 방법이 잠이에요. 씻김굿 자체가 국악 소리 내는 거랑 전혀 달라요. 엄마처럼 목 썼다간 목 다 나가요. 


가인 씨가 제작자 입장으로 판단할 때 어머니 음반 판매 수준은 어때요?

송가인 워낙 특수한 앨범이라서요. 제 팬 분들이 많이 알고 사주시는데 홍보가 많이 안 돼서.(웃음) 홍보가 되면 무속하시는 분들이 많이 사실 거예요. 굿을 배우고 싶어도 자료가 없어서 못 배우는 분들이 좋아하실 것 같아요. 


앨범 홍보에 딸을 활용하시면 훨씬 낫지 않겠어요?

송순단 아하하하. 딸하고 아들하고 알아서 하겠지요. 


어머님 앨범은 앞으로도 나오는 건가요?

송가인 차근차근 해야죠. 뜨기 전에 항상 “엄마 내가 성공해서 돈 벌면 앨범 내줄게” 했었는데 그거를 이제 이뤘어요. 엄마가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목소리가 깨끗하고 더 잘 나올 때 보존해야 돼요. 재작년인가 앨범을 못 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공연이라도 올리자 해서 씻김굿 발표회를 엄마 단독으로 했었어요. 


온라인 반응 보니까 몇몇 분들은 “앨범을 어디서 사야 하느냐”고 물으시던데. 

송가인 다른 음반을 사는 것처럼 음반 파는 곳에서 사실 수 있습니다.(웃음) 


어머님, 딸 덕 본다고 질투 받으시겠어요.

송순단 많이 듣죠.(웃음) 딸 덕에 더 바빠졌다고 해도 좋아요. 내 딸은 딸대로 자랑스러운 것이고, 나는 내 일 하면 되는 것이고.

 

작은 체구가 꼭 닮은 모녀. 주위를 배려하는 언행도 닮은 모녀. 한 시간 남짓 인터뷰를 마친 모녀는 감사 인사를 하고 또 하며 돌아갔다. 엄마를 위한 딸의 진심이었고, 딸을 위한 엄마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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