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했던 미국 대선. 도널드 트럼프와 접전 끝에 11월 8일 조 바이든이 승리를 선언했다. ‘바이든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바이든을 둘러싼 조력자 여성들이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바이든을 백악관 새 주인으로 만든, 든든한 조력자 여성 3인방을 소개한다.
바이든이 본인의 페이스북에 동생 밸러리 바이든 오웬스의 생일을 축하하며 올린 사진.
#2
특급 참모 여동생
밸러리 바이든 오웬스

 
“그는 나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을 믿도록 했다.”

조 바이든이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 여동생 밸러리 바이든 오웬스를 두고 한 말이다. 자서전에서는 ‘가장 친한 친구’라고 표현했다.
 
<뉴욕타임스>는 밸러리를 “오빠의 정치적 분신 겸 동료”라고 소개했다. 대선 캠프의 숨은 전략가인 밸러리는 바이든의 고교 학생회장 출마부터 6선에 이르는 상원의원 선거, 부통령 선거, 그리고 이번 대선까지 선거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책사이자 보좌관, 가족의 일원으로서 바이든의 50년 넘는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그림자처럼 수행해왔다.
 
밸러리는 늘 오빠를 격려하며 청중 겸 조언자 노릇을 했다. 1972년 돈과 조직 모두 열세였던 30세의 바이든이 상원의원에 도전했을 때, 밸러리는 직접 주민의 집에서 여는 커피 모임을 조직했다. 홍보물 배송비를 아끼기 위해 자원봉사자가 홍보물을 유권자에게 직접 배달해주는 방식을 고안한 것도 밸러리의 아이디어였다.
 
두 살 차이가 나는 바이든과 밸러리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남매 사이였다. WP에 따르면 바이든은 초등학교 시절 선도위원을 맡았는데, 밸러리의 규칙 위반을 알게 되자 신고 대신 위원직 사퇴를 선택했다. 가족보다 소중한 게 없다는 게 어린 시절부터 바이든이 지켜온 가문의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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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어머니와 그의 남매들. 사진상 어머니 진 바이든의 오른쪽이 장남 바이든이고, 왼쪽이 밸러리다

 정치인으로서 치명적인 바이든의 말더듬증 극복을 도와준 것도 밸러리였다. 어린 시절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에 놀림을 받은 바이든은 밸러리를 포함한 동생들을 앉혀놓고 말더듬을 교정했다. 덕분에 정계 입문 뒤에는 이런 과거를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달변가가 됐다.


밸러리는 이번 대선 캠프에서 공식 직함을 맡지 않았다. 하지만 오빠의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문 작성에 첫 아내, 딸, 장남을 잃은 오빠의 비극적 가족사와 코로나19로 인한 미국인의 아픔을 연결하는 아이디어를 내는 등 연설문 검토, 대선 후보 TV 토론 준비, 광고 등을 도맡으며 종횡무진으로 활약했다.
 
단순히 바이든의 측근이라서가 아니라, 미국 정치계에서 밸러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선거전략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이자 백악관 선임보좌관인 제러드 큐슈너같이 바이든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지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밸러리가 바이든을 따라 백악관에 입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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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초의 흑인 여성 부통령 당선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선출이 대통령 선출보다 더 역사적 의미를 갖는 건 미국 역사상 이번이 처음”

바이든의 당선이 확정된 11월 7일, 가 보도한 내용이다. 여성, 흑인, 아시아계라는 ‘3종의 유리 천장’을 한 번에 깬 장본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이번 미국 대선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이다. 승리 연설에서 그는 “내가 여성 최초의 부통령이지만, 내가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는 명연설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인도 태생으로 미국에 정착한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흑인·백인·아시아계·라틴계 심지어 북미 대륙 원주민들까지 “수 세대에 걸쳐 싸우고 희생해 온 여성들”을 호명했고, 이들의 희생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 울림은 미국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과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까지 이어졌다.

해리스 당선인은 1964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자메이카인인 아버지 도널드 해리스는 UC버클리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은 19세에 미국 UC버클리로 유학 와서 캐나다 맥길대 교수를 지낸 유방암 연구자다. 엘리트 부모 밑에서 굴곡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그의 나이 7세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어머니와 함께 저소득층 흑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 지냈다. 지난 6월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버스로 통학하는 공립학교 어린 소녀가 인종차별로 상처를 입었다. 그 어린 소녀가 바로 나였다”라는 말을 남기며 사회적인 편견을 경험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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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과 해리슨의 인연에는 5년 전 뇌종양으로 사망한 바이든의 장남 보 바이든이 있었다.
흑인 명문 하워드대 출신 해리스가 워싱턴 DC의 흑인 명문 대학 하워드대를 졸업한 것도 상징성을 가진다. 하워드대는 미국 사회에서 뿌리 깊은 백인 위주의 대학 문화에 맞서 흑인 인재들을 육성하기 위한 대학이었다. 해리스는 하워드대 출신이란 자부심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여기서 정치사회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캘리포니아대 헤이스팅스 로스쿨을 거쳐 검사로 입문했다. 헤이스팅스 로스쿨에선 흑인학생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04년 샌프란시스코 검사장, 2011년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에 출마해 당선하면서 ‘선거의 여왕’이 됐다. 이때도 흑인 여성으로는 최초였다. 검사장과 장관 시절 강력한 추진력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눈에 띄었다. 2016년 11월 선거에서 그는 캘리포니아를 대표했던 바버라 복서 민주당 상원의원이 은퇴를 선언하자 오바마와 바이든의 후원을 등에 업고 상원의원에 도전했다. 캘리포니아는 민주당의 텃밭으로 통한다. 그의 상원 진출 역시 역사를 만들었다. 첫 아시아계이면서 흑인 여성으로는 역대 두 번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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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흑인 여성 부통령 당선인 카멀라 해리스는 여성·흑인·아시아계라는 3종의 유리 천장을 한 번에 깬 장본인이다.

바이든 괴롭힌 여전사에서 러닝메이트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해리스는 지난 6월 당시 유력 후보였던 바이든과의 토론에서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 주목받았다. 본인을 괴롭힌 여전사 해리스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데는 선거 전 발생한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이 크게 작용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한편으로 5년 전 뇌종양으로 사망한 바이든의 장남 보 바이든의 역할이 작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보가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을 지낼 때 해리스는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이었고, 두 사람은 친분이 있었다. 당시 부통령이던 바이든은 해리스를 주목해서 봤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해리스가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되고 있다. 만 78세인 바이든은 스스로가 4년 후 재선 도전을 하지 않을 것이란 뜻을 내비치고 있다. 그렇다면 향후 4년의 재임기간 동안 그는 클린턴이나 오바마와 같은 민주당 내 젊은 차기 대권주자들을 키우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중에서 해리스는 가장 강력한 선두 주자로 올라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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