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얼마 전 대형서점을 지나다 본 현판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올해를 함축한 글귀. 당연한 일상조차 바람이 된, 유난히 다사다난한 해였다. 희로애락이 공존했다지만 따지고 보면 힘든 순간이 더 많았던 2020년. 올해를 분야별 키워드로 되짚어봤다. 더불어, 여느 누구와 다르지 않은 2020년을 보낸 5인에게 물었다. 당신의 올해는 어땠느냐고.
코로나19는 당연한 일상을 엎었다
11월 20일 기준 국내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363명으로 집계됐다. 사흘 연속 300명대다. 수도권 중심의 2차 유행이 한창이던 8월 말 이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로써 누적 확진자는 3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500명을 넘었다. 정부는 ‘3차 유행’이 진행되고 있음을 공식화했다.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는 1월 20일에 나왔다. 초기 방역이 가능할 거라 여겨졌지만 오판이었다. 바이러스 확산세는 들쭉날쭉 이어졌다. 확진자 수가 진정세를 보이다가도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부쩍 증가한 경우만 수차례. 2~3월 대구·경북 신천지 교회발 집단감염에 이어 5월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 8월 사랑제일교회·서울 도심 집회 등 수도권발 감염이 발생한 것이다. 11월 들어서는 대규모 유행을 촉발한 행사는 없었으나 전국 곳곳에 감염 위험이 도사린 상태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 누가 감염돼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코로나19는 당연한 일상을 엎었다. 지난 4월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제2부본부장은 “코로나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고 했었다. ‘나아지지 않을까’ 하던 희망은, 꿈이 됐다. ‘나아진다’는 말이 ‘이전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말과 같을 수도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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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여파는 여기저기 미쳤다. 한국은행이 9월 발표한 ‘일시 휴직자 현황 및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시기에 일을 쉬는 사람 수가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금융위기 상황에서는 기업 도산이 대량 해고로 이어져 일시 휴직자가 아닌 실업자가 양산됐지만, 코로나 위기의 경우 감염병에 따른 일시 휴직이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으로 요식·여행·운수 업종에 큰 타격이 가해졌다. 여행업계 1위 업체인 하나투어는 전 직원 무급휴직을 내년 3월까지 연장했다. 앞서 3~5월 유급휴직을 적용하다 6월부터는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 무급휴직 중이었다. 11월까지는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금으로 직원들이 기본급의 50%를 받을 수 있도록 했으나, 12월부터는 아예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백신 개발 현황에 시선이 쏠린다. 가장 최근 현황을 살펴보면 백신 개발업체인 모더나와 화이자는 백신이 90% 이상의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있다고 보고했다. 화이자는 이르면 11월 말, 모더나는 12월 초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긴급 사용 승인 신청을 할 계획이다. 이대로라면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이전에 백신 유통과 접종이 가능하다.
 

우리 정부는 임상 3상 시험 중인 백신 중 다섯 개 제품을 대상으로 구매 협상을 하고 있다. 권준욱 제2부본부장은 11월 19일 국제보건의료재단 포럼에 참석해 “아마도 내년 1분기에는 백신을 손에 쥐고 2분기에는 국내 백신 접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백신을 선구매해 접종을 시작하더라도 18세 미만 청소년과 어린이는 백신을 맞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진행하는 3상은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해, 별도 임상 시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연말은 모임이 많은 시기다. 사람 간 접촉이 늘고 식사를 위해 마스크를 벗는 상황도 빈번하다는 의미다. 정은경 방대본 본부장은 “연말연시의 모임을 최소화하고, 비대면이나 식사와 음주를 하지 않는 패턴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전파를 줄이기 어렵다”며 마스크 착용이 어려운 상황과 장소에서도 마스크 벗기를 최소화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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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자영업자 유○○ “삶의 의욕 잃었다”
거리두기 단계가 최고조일 때 기억하세요? 당연한 얘기지만 저희 노래방 문 일절 못 열었어요.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그 때 진짜 죽고 싶었어요. 코로나만 없었으면 연말이 노래방 성수기에요. 지금은 오히려 문 여는 게 더 돈 안 돼요. 손님은 없는데 기계는 돌아가니 전기세가 나오잖아요. 신문에서 ‘착한 건물주’ 얘기들 많던데 우리 건물주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인가 봐요. 그렇게 앓는 소리를 해도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내내 임대료를 다 받더라고요. 건물주도 나름의 사정은 있겠지만 나보단 낫지 않겠어요? 내가 올해를 지내면서 세상 일 모른다는 걸 너무 알겠어요. 한 치 앞도 몰라. 이놈의 코로나, 이것이 사라져야 내가 살든 말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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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차 직장인 김○○ “합리적 개인주의자된 것 같다”
어쩌다보니 마스크가 그리 불편하지 않은 날도 오네요. 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사람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안 해요. 정확히 말하면 못하는 거죠. 어차피 알아볼 수 없는 얼굴, 이제 남에 대한 관심이 줄었어요. 예전에 문유석 판사가 쓴 <합리적 개인주의자>를 읽은 적 있는데 제가 딱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 변화가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아요. 아니다, 좋을 때가 있긴 해요. 회식을 하지 않는 것. 갖은 핑계를 대면서 회식에 불참하지 않아도 되는 것.
 
올여름까지만 해도 겨울이면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웬걸요. 국내여행도 삼가야 하는 상황이에요. 제가 올해 가장 억울한 게 작년에 해외여행을 못한 거예요. 올 초 설날에 아빠가 뉴스를 보시면서 코로나를 걱정했었거든요. 사실 저는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 없었는데 지금은 건강 염려증마저 생긴 것 같아요. 머리만 좀 아파도 ‘혹시 코로나?’ 하게 돼요. 제가 감염된다는 자체도 무섭지만, 저로 인해 누군가 감염될 수 있다는 게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역적이 되는 기분이랄까. 친구 한 명은 본가가 대구라서 코로나 1차 유행 때 가족들 걱정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더라고요. 타 지역 사람들이 대구를 격리해야 한다고도 했었잖아요. 그때마다 조용히 울고. 여하튼 내년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면 ‘코로나 없는 세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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