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얼마 전 대형서점을 지나다 본 현판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올해를 함축한 글귀. 당연한 일상조차 바람이 된, 유난히 다사다난한 해였다. 희로애락이 공존했다지만 따지고 보면 힘든 순간이 더 많았던 2020년. 올해를 분야별 키워드로 되짚어봤다. 더불어, 여느 누구와 다르지 않은 2020년을 보낸 5인에게 물었다. 당신의 올해는 어땠느냐고.

202012_062_1.jpg


 
01 수면 위로 떠오른 ‘N번방’
대형 불법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이 폐쇄된 지 4년이 지났다. 그사이 디지털 성범죄는 더 악랄해졌다. 약점을 잡은 피해자를 ‘노예’라고 부르며 성 착취를 일삼는 가해자들, 이를 관전하는 또 다른 가해자들. ‘N번방 사건’이라고 부른다. ‘N번방’이란 명칭은 1번부터 8번까지 각자 다른 이름이 붙여진 8개의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 성 착취물이 올라온 데서 붙었다. 3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구속에 이어 공범인 ‘부따’ 강훈, ‘이기야’ 이원호도 구속수감 됐다. 그리고 5월 N번방 개설자 ‘갓갓’이 긴급체포 됐고 그의 공범 안승진의 신상이 공개됐다. 이들 일당에 대한 공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직장인 장○○ 씨 “가장 충격이었다”
올해 제일 충격적인 사건이었어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히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사건 아닌가요? 가끔 미디어에서 여성 청소년을 성적 대상화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발 멈춰야 해요. 아직 미혼이지만 언젠가 아이를 낳을 때가 온다면 고민이 앞설 거예요. 이 사회에서 내 아이를 완전히 보호할 자신이 없어졌거든요. 잊을 만하면 드러나는 성범죄들, 제발 한 해 정도는 아무 사건이 없으면 안 될까요?
 

202012_062_2.jpg


02 고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7월 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연락 두절됐다’는 신고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박 시장은 고인이 됐고, 박 시장으로부터 4년간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고소인이 등장했다. 박 전 시장의 피소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선 “고소인이 왜 이제야 피해를 밝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으며 피해자 측은 “피해가 있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위력 성폭력의 특성’을 강조했다. 피해자는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지 100일째 되는 10월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관련 수사는 끝나지 않았다. 최근 검찰이 성추행 피소 사실 유출 경위를 수사하기 위해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혹 실체를 규명할 유의미한 증거를 확보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20대 취준생 이○○ 씨
“ 이제 그런 농담도 안 돼” 지나온 29년 중 어느 때보다 버거웠던 해였어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사건이 가장 그랬죠. 박 전 시장이 갑자기 세상을 등진 것도,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것도, 어느 하나 현실감 있는 게 없어요. 그 일이 일어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네요. 어느 논란 하나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않아 찝찝해요. 그 일로 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요. 음식점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예전보다 예민해지더라고요. 저뿐 아니라 손님들도 그래요. 한 분이 무심코 예쁘다, 젊은 아가씨가 가져다주니 맛있다 등등 농을 던지면 일행이 말려요. 요새는 그런 농담하면 큰일 난다면서. 잘 모르겠어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래도 분명한 건 시대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요.
 

202012_062_3.jpg

 
03 ‘임대차 3법’ 도입
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를 골자로 한 법안이다.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은 7월 30일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7월 31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바로 시행됐다. 이로 인해 세입자는 추가 2년의 계약 연장을 요구할 수 있고 집주인은 자신이 실거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단, 임대료는 직전 계약금의 5%를 초과해 인상할 수 없다. 전월세상한제의 근거가 되는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8월 4일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준비 기간 등을 감안해 내년 6월 1일 시행 예정이다.
 
04 재벌가 결혼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고 할 만큼 궁금증이 이는 세상이다. 재벌가는 어떤 옷을 입는지 무엇을 먹는지 등등. 평범하지 않아서 화두가 되는 일거수일투족. 재계 결합으로 이어지는 ‘혼사’는 특히 관심사다. 올해 재벌가의 혼사가 잇따랐다. 7월 4일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열두살 연하의 정 모 씨와 백년가약을 맺은 데 이어, 10월 19일 아모레퍼시픽 그룹 서경배 회장의 장녀 민정 씨와 보광창업투자 홍석준 회장의 장남 정환 씨가 결혼했다. 정 부사장의 아내는 대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화제가 됐었다.
 

202012_062_4.jpg



05 이건희 별세
한국 재계의 거목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고인은 입원 보름 만에 혼수상태에서 회복, 입원 6개월 무렵부터 최근까지 자가호흡을 하며 지낸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 회장의 별세로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가 열렸다. 11월 2일 이 회장의 별세 후 처음 맞는 사내 행사 ‘창립 51주년 기념식’이 진행됐으나, 이재용 부회장은 불참했으며 별도의 메시지도 내놓지 않았다.
 

202012_062_5.jpg


06 출소하는 조두순
2008년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혐의로 수감 중인 조두순이 12월 13일 사회로 돌아온다. 조두순은 과거 범행을 저지른 장소이자 현재 부인이 살고 있는 안산으로 돌아간다. 그의 출소 시기가 다가오면서 피해 아동 가족의 거취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결과적으로 피해자 가족은 안산을 떠나기로 했다. 경기 안산시는 시민 불안감 해소를 위해 무도 유단자 청원경찰 6명을 채용했으며 법무부·여성가족부·경찰청은 조두순의 재범 방지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공동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조두순의 주거지 반경 1㎞ 이내 지역을 여성안심구역으로 지정해 CCTV 35대 우선 증설, 방범초소 설치 등 범죄 예방 환경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관련기사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