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의 32년 축구 인생에는 꼭 부모님이 계셨다. 때로는 아들보다 더 슬퍼했고 때로는 더 기뻐했다. 아들이 필드를 떠나던 날, 부모님도 은퇴한다 말했다. 세 사람은 함께 지낼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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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얘기만 하면 왜 눈물이 나죠. 망했네, 망했어. 안 울려고 했는데.”

10월 28일 은퇴 기자회견, 이동국 선수는 담담히 소감을 밝히다 울음을 터뜨렸다. 부모님 얘기가 나오면서다. 다 알 순 없겠지만 아들이 부모님께 가졌을 마음이 전해졌다. 레전드가 된 이동국, 그를 길러낸 어머니 김명자 씨와 아버지 이길남 씨 세 사람이 첫 동반 인터뷰에 응했다.

어머니는 입고 온 니트만큼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아버지는 두툼한 종이 뭉치를 꺼내 보였다. 사전 질문에 대한 답을 한가득 수기해온 것이다. 아들은 셋이 모여 하는 인터뷰가 어색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부모님과 아들의 인터뷰는 별도로 진행됐다. 마주 보곤 털어놓을 수 없는 속내가 쏟아졌다. 부모님은 아들도 몰랐던 얘기를 추억하며 또 울고 웃었다.

은퇴식 이야기부터 꺼내겠습니다. 지켜보는 마음이 어떠셨어요?이길남(이하 길남) 그날따라 하늘도 슬픈지 부슬비가 내렸어요. 선수는 마지막 인사를 하며 울었고 팬, 동료들도 함께 울었죠. ‘내 아들 이동국이 인생을 잘 살아왔구나. 헛되게 살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특히 구단주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님이 직접 참관해 자리를 빛내주신 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은퇴하는 아들에게 부친 편지에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았던 너”라고 적으셨어요. 잊히지 않는 아들의 모습은요?길남 동국이가 한 번 결심하면 끝까지 소리 없이 밀어붙이는 고집쟁이 성격이라 그런 표현을 썼어요. 동국이가 2006년 독일월드컵 출전을 코앞에 두고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을 다쳤었어요. 급하게 독일에서 치료를 받으려고 인천공항으로 가다 영종대교 휴게소에 잠깐 머물렀어요. “엄마, 아버지 걱정하지 말라”면서 거기서 헤어지재요. 치료 잘 받고 와서 독일월드컵에서 꼭 뛰겠다고. 절뚝거리면서 뒤돌아 걸어가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후에 며느리한테 전화가 왔는데 십자인대가 완전히 끊어졌대요. 그날 전화기를 붙들고 어린애마냥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14년이 지났는데도 그때가 생생해요.

은퇴식 이후 가족모임에서 어머니가 소주를 드시고 아들을 안은 채 그렇게 많이 우셨다고요. 김명자(이하 명자) 소주 아니고 탁주.(웃음) 어렸을 때도 안아본 적이 거의 없어요. 옛날 부모, 자식 간에는 표현을 잘 못했잖아요. 동국이가 먼저 와서 안아주니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어요. 길남 엄마하고 동국이가 안는 건 처음 본 것 같아요. 그 모습을 보고 동국이 누나랑 형이랑 전부 다 울었어요. 여러 가지로 만감이 교차했겠죠.

유명인 아들을 둔 부모라서 감내해 온 부분도 있었겠죠? 길남 딱 한 가지를 꼽을 순 없어요. 자식이 공인이면 부모나 형제, 가족 모두가 공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일거수일투족 조심하자고 항상 당부를 했습니다. 그 얘기에 잘 따라준 우리 가족들 정말 감사해요.

아들에게 해주지 못해, 해줄 수 없어 아쉬움이 남은 적도 있나요? 명자 (한동안 울고서야 답했다.) 참 어렵게 살아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애가 바나나를 좋아했는데 그땐 바나나가 너무 비쌌어요. 조그만 거 하나에 4,000원. 한 입, 두 입 먹으면 없는 거예요. 실컷 못 사준 게 한이 됐어요. 또 돼지고기 조금에 김치를 왕창 넣은 찌개 끓여 먹이고… 동국이가 제육볶음을 제일 좋아했어요.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좋은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이제는 바나나도 박스째로 사줄 수 있고 고기 많이 넘은 김치찌개도 해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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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생도 동국이와

 
어머니는 유독 많은 눈물을 흘렸다. 평소 눈물을 보이는 일이 드물어 남편도 아들도 놀랐다. 어머니는 “오늘은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나 보다”며 머쓱해했다. 무뚝뚝한 부자 사이에서 균형 맞추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동국 씨 태몽이 궁금하네요. 명자 뱀이 발뒤꿈치를 꽉 물었는데 아무리 털어내도 떨어지질 않아요. 도망가도 붙어 있고. 그때까지도 동국이가 들어선 지도 모르고 5개월째 돼서야 알았으니까요. 지나가는 꿈이려니 했거든요. 5개월이 되니까 애가 뱃속에서 놀아요.(웃음) 병원 가니까 임신이래요. 길남 이미 딸 하나 아들 하나 있고 경제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동국이 할머니가 둘이면 되지 않겠느냐 했었어요. 근데 딱 꿈을 꾼 거예요. 안 낳았으면 오늘 같은 날도 없었겠죠.

아들이 부모님의 각자 어떤 점을 닮은 것 같으세요? 길남 참을성이나 선한 건 엄마를 닮았고 고집은 아빠를 닮았어요.(웃음)

동국 씨 옛 자전에세이에서 봤는데, 아들 먹일 산삼을 구하러 전국을 순회하신 적도 있다면서요? 명자 심마니들이 산삼을 캤다면서 종종 전화를 했어요. 그러면 밤중이라도 찾아가요. 옛날에 한 번 신문에서 동국이가 체력이 약해졌다고 하는데 때마침 심마니에게서 연락이 온 거예요. 포항에서 충주 계룡산으로 산삼을 구해서 바로 전주로 넘어갔어요. 근데 애는 안 먹는다고 하지, 아버지는 안 먹으면 돌아갈 수 없다고 하지. 아휴, 사정사정해서 겨우 먹였어요.

정작 부모님은 산삼 드셔 보셨어요? 명자 못 먹어봤지요.(웃음) 길남 돈도 없었고 패물을 싹 끌어 모아도 산삼 살 돈은 안 되더라고요. 부족한 돈은 나중에 드리겠다고 했더니 심마니가 이동국 선수 부모니까 믿는다면서 줬어요. 밤늦게 운전해서 갔는데 애가 안 먹겠다고 하니 얼마나 속상해요. (포항으로) 돌아가면서 많이 울었어요. 명자 패물 팔아서 지 산삼 산 것까진 모를 거예요.

덩달아 울컥하네요. 길남 전에 한 스님이 동국이 만나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대요. “너희 아버지 돌아가시면 그 뱃속을 한 번 봐라. 새카맣게 타고 없을 것이다.” 그만큼 애간장이 다 타고 없단 뜻이겠죠. 명자 저는 더 먼저 타버려서 없을 거예요. 이게 스트레스 받아서 찐 살이지, 원래 날씬했어요.(웃음)

앞으로 아들이랑 해보고 싶은 건요? 길남 전부터 생각해왔어요. 이동국 전시관을 작게 만들어서 트로피, 팬들이 보내준 편지, 모든 소품들을 전시하고 싶어요. 23년 동안 그대로 보관했어요. 기념관처럼 꾸미고 제가 직접 관리를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요. 동국이랑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은 그런 게 아닐까요. 명자 저는 아빠하고 동국이 따라가면 돼요.(웃음)

이미 호미곶에 전시관 부지를 마련하신 걸로 알아요. 길남맞아요. 근데 동국이는 수도권 쪽을 생각하고 있고 저는 호미곶 바닷가 쪽을 생각하고 있어서 상의 중이에요.

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길남많은데… 동국이가 은퇴 기자회견장에서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경기를 하면서 힘들 때 정신이 내 몸을 지배한 것 같다”는 말이 상당히 감동적으로 들렸어요. 운동장 아닌 세상에서도 그런 정신력으로 살아간다면 초콜릿처럼 달콤한 인생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며느님에게도 한마디 해주세요. 길남 편지를 써왔습니다. 읽어볼게요. ‘신랑 이동국과 2005년에 결혼해서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 지도 15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5남매 똥강아지들 낳고 아무 탈 없이 잘 키워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이제부터 축구선수 남편이 아닌 사회초년생 이동국 남편이라 생각하고, 간혹 한 번씩 짜증을 부리더라도 슬기롭게 대처해주길 바란다. 무슨 뜻인지 알지? 고맙다. 우리 다함께 따뜻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자.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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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길남 씨가 심경을 적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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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형제는 나의 그림자였다

인터뷰 현장에는 큰딸 재시 양도 잠시 있었다. 아빠 이동국은 딸의 순간순간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자신을 지켜온 부모님처럼.

어머님이 자꾸 울컥하셔서 저도 감정 조절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인터뷰를) 따로 하자고 했잖아요.(웃음) 어떤 분들인지 너무 잘 아니까.

어떤 분들인데요? 본인들 꿈도 있었을 텐데 그걸 다 버리고 저 하나만 보신 분들이세요. 제 꿈이 부모님의 꿈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저도 자식을 키우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은퇴 기자회견 때 아버지 얘기를 하다 펑펑 울었죠. 은퇴 준비를 하면서 3~4kg이 빠졌어요. 어떤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자다가도 생각나면 새벽에 눈뜨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으면서 혼자 울기도 하고. 대신 이야기를 완전 숙지해서 기자회견 때는 울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거든요. 아버지가 그 전날 “네가 은퇴하는 순간 축구 선수 아버지의 삶도 은퇴다”라고 하셨어요. 그건 숙지가 안 돼서 눈물이 터진 거죠. 눈물이 나면 말이 안 나온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연기자들 눈물 흘리면서 말하는 거 다 거짓말이라고 농담할 정도로요.(웃음)

어머님의 매체 노출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아들이 소개하는 ‘우리 엄마’는요? 강한 분이셨던 것 같아요. 녹록지 않은 형편에서 삼남매를 키워내셨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아버지보다 더 인내하셨고, 눈물은 아버지보다 없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눈물 흘리시는 건 봤는데 어머니는 거의 못 봤어요.

은퇴식 끝나고 어머님을 안아드렸다면서요. 고생하셨다고 감사하다고 안아드렸어요. 술기운에 한 거죠.(웃음) 어머니란 되게 큰 존재잖아요. 엄청 큰 산 같았는데 안아보니까 폭 들어와요. 아, 우리 어머니가 참 가녀린 사람이었구나 처음 느꼈어요.

‘엄마 음식’ 중에 기억에 남는 메뉴 있어요? 제육볶음. 일요일 아침 식사를 할 때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어요. 아버지가 일요일 아침에 5,000원을 주시면 자전거를 타고 가서 삼겹살을 사왔어요. 하루는 자전거를 타다 돈을 빠뜨렸나 봐요. 30~40분을 돌아다니면서 찾는데 없어요.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넌 밥도 먹지 말라”고. 마당에서 엎드려뻗쳐 하고 있었던가. 학교 들어가기도 전 일인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 정도로 아버지가 무서웠어요.

굉장히 엄한 아버지였다고 들었어요. 너무 심했죠. 해병대 하사관 출신이시고 월남전에만 두 번을 참전하셔서 군인처럼 대하시는 게 있었어요.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너무 많았어요.

덜 엄했다면 지금 달랐을까요? 아버지 덕분에 남매들 모두 사고 친 적 없이 비뚤어지지 않고 잘 자란 것 같아요. 근데 옛날 얘기를 꺼내면 아버지가 싫어하세요. 매년 이사를 다녔어요. 여인숙을 개조한 곳에서 산 적도 있고, 한 대문 안에 열한 가구가 산 적도 있고, 돼지 키우는 산중턱에서도 살아봤고. 그런 얘기를 하면 아버지는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안 좋아하세요.

“축구 선수 이동국의 인생이 빛이라면 부모 형제는 나의 그림자”라고 했었어요. 제가 운동을 시작하면서 누나랑 형이 피해본 게 많았죠. 아버지가 티 나게 차별을 해버리시니까.(웃음) 고기반찬이 있으면 막내아들 앞에 두셨어요. 누나랑 형이 많이 이해해줬어요. 지금도 “야, 우리는 아버지한테 허락받고 이거 먹어야 한다”면서 웃을 정도예요. 고맙죠.

부모님이 패물까지 팔아서 산삼 구한 건 아셨어요? 몰랐어요. 그런 부분 때문에 화를 냈던 일도 있었죠.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5남매 아빠로서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 않나요? 저는 아이들을 그렇게까지 키우고 있진 않거든요. “너 밥 안 먹어? 그래, 먹지 마. 알아서 해.” 저도 와이프도 이런 스타일이에요.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저도 따라 하고 싶어요.

아이들한테 큰소리 내는 아빠는 아닌 것 같아요. 아내가 엄한 편이고 저는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편이에요. 아내가 말하길 아빠가 잔소리를 하면 애들이 다가가지 못하니 친구처럼 하래요. 악역은 본인이 하겠다고. 애들이 엄마가 자주 때린 건 기억을 못하고 제가 한 번 때리면 그걸 기억해요. 그래서 ‘아빠는 항상 아이들 편’, 아내랑 그렇게 작전을 짰어요. “엄마한테는 비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많아졌어요.

아빠 이동국은 5남매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위치죠? 그…렇죠?(웃음) 큰애들이 학교 다닐 때 핸드폰이 없으니까 친구들이 놀렸대요. 너희 집은 부자인데 왜 핸드폰이 없느냐고요. 가끔 2G폰은 줬었거든요. “엄마아빠가 부자인 거지 네가 부자는 아니잖아”라고 했더니 학교 가서 그대로 말했나 봐요. 애들이 듣고서 “오오오올~” 했대요.(웃음)

부모가 돼보니 자식이 어떨 때 제일 슬퍼요?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물을 얻지 못해 실망할 때. 아무래도 운동하는 딸이 있어서요.

테니스 선수인 재아 양이 아빠가 경기장에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한 인터뷰를 봤어요. 그건 예전인 것 같아요. 재아는 아빠한테 인정받고 싶은 게 제일 커요. 아빠가 자꾸 운동선수의 삶에 대해 말하고 냉정하게 얘기를 하니까, 아빠만 보면 더 잘하려고 해요. 그런 부분이 스트레스였다면 이제는 주니어의 눈높이에서 얘기해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SNS를 보니까 셋째 딸 설아 양도 운동신경이 좋던데. 운동신경은 좋은데 설아는 얼굴 타는 게 싫대요.(웃음)

재시 양은 모델을 준비하는 것 같더라고요. 사진 찍히는 것도 좋아하고 미용도 좋아하고. 본인이 옷을 만들어서 입는 모델을 하겠단 생각을 갖고 있더라고요. 아이가 꿈을 위해 달려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많이 생각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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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이동국은

이동국의 등번호 ‘20번’은 전북 현대의 영구결번이다. 전북에서는 20번을 달고 뛰는 선수가 나올 수 없다. 마흔한 살 필드플레이어는 K리그 통산 548경기, 228골, 77도움을 기록했다. 그의 한 경기, 한 경기는 K리그 역사로 남았다.

코로나 때문에 축소를 했는데도 굉장히 화려한 은퇴식이었어요. 대기업 총수가 30~40분 넘게 비를 맞고 서서 꽃다발을 전해주시러 왔잖아요. 역대 처음이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을 듯해요. 너무 감사했어요. 정의선 회장님이 “고생했습니다. 이제 은퇴도 했으니 자주 연락합시다”라고 하셔서 더 감동이었어요. 은퇴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셔서요. 뭐, 연락처를 안 주고 가시긴 했지만요.(웃음) 저희 아버지께는 “훌륭한 아들을 키워주셔서 감사하다. 이동국 선수를 정말 존경합니다”라고 하셨대요.

앞으로 팬들은 어디서 이동국 선수를 볼 수 있나요? 제가 달려가야죠.(웃음) 가족이 하는 유튜브 채널이 있어요. 처음엔 애들이 상업적으로 비칠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너무 재밌어 하고 직접 콘텐츠도 짜고 남매끼리 더 친해지는 걸 보면서 ‘내 생각이 잘못됐구나’ 했어요. 애들하고 더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이제 저를 유튜브를 통해 보시면 되죠.

지도자가 될 계획은요? 준비는 하고 있지만 당장 지도자를 해야겠단 생각은 안 해요. 젊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 도전하고 싶단 생각이 있어요. 지금껏 축구만 해왔기 때문에 그 외에 내가 뭘 했을 때 잘할 수 있는지, 행복할 수 있는지 찾아가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지도자에 대한 준비를 하는 이유는 언젠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조건이 안 돼서 못하면 안 되잖아요.

이제 이동국 전 선수라고 부르는 게 맞겠죠? 호칭이 실감돼요?
아직은요. 어차피 시즌이 끝나고 휴식기라서요. 내년에 선수들이 동계 훈련을 시작할 때 저만 집에 있으면 그땐 실감나겠죠.(웃음)

부모님께 전하는 한마디로 마무리할게요. 이 정도로 훌륭하게 은퇴하게 해주신 데 감사하고 고생 많으셨어요. 경기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셨잖아요. 이제는 편히 내려놓으세요. 제2의 삶에서도 축구선수로서 해온 것처럼 어떤 일을 해도 자신 있어요. 제2의 인생을 또 같이 갈 수 있게끔 할 테니 너무 서운해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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