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칩거했던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기생충>을 계기로 침묵을 깨고 점점 보폭을 넓히고 있어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카데미 영화박물관 이사회 부의장에 선출된 데 이어 미국 연예잡지 <더 할리우드 리포터>에 ‘올해의 국제 프로듀서’로 선정됐다.
지난 2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며 한국 영화사의 놀라운 역사를 썼다. 당시 대중의 시선이 <기생충>의 책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이미경 CJ 부회장에게 쏠린 순간이 있었다. 이 부회장이 작품상 수상 시 무대에 올라 인상적인 소감을 전했다.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하다. 당신 자신이 되어줘서 감사하다. 나는 봉 감독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그의 미소, 머리 스타일, 그가 말하고 걷는 방식, 특히 그가 연출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의 유머 감각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놀리지만 결코 심각해지지는 않는다. <기생충>을 지원해준 분들, <기생충>과 함께 일한 분들, <기생충>을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국내 그룹 경영 일선에서는 한 발짝 물러났던 터라, 이 부회장의 깜짝 수상 소감은 내내 화제였다. 당시 CJ는 <기생충>의 북미 인지도를 높이는 마케팅 비용으로 100억 원가량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1995년 영화 사업에 처음 뛰어든 이후 꾸준히 아티스트와 콘텐츠를 발굴하며 식품 기업이었던 CJ를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큰손’으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아카데미 영화박물관 이사회 부의장 선출

<기생충>으로 오랜만에 존재감을 드러낸 이미경 부회장의 보폭이 점점 넓어지는 모양새다. 국내 그룹 경영 일선에서는 한 발짝 물러났지만, 해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계속 활동해온 그는 2017년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이 됐다. 이후 한국 영화를 미국에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기생충>의 활약 당시 이 부회장이 숨은 주역으로 주목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9월에는 2021년 4월 개관 예정인 미국 아카데미 영화박물관 이사회 부의장으로 선출됐다. 2019년 11월 이 박물관의 이사에 선임된 이후 약 10개월 만의 행보다.

미국 아카데미 영화박물관 이사회는 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 및 배우 톰 행크스, 돈 허드슨 아카데미 CEO, 데이비드 돌비 입체음향설비 돌비 대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부회장의 이번 부의장 선출 배경에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미친 영향력 및 유력 인사들과의 스킨십 강화 등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 1995년 할리우드 영화사인 ‘드림웍스’에 투자한 이후 꾸준히 영화 산업에 관심을 가져왔다. 2019년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 아들 데이비드 엘리슨의 ‘스카이댄스 미디어’에 1억 달러(약 1,150억 원) 이상을 투자해 눈길을 끌었다.

美 언론 ‘올해의 국제 프로듀서’ 선정

미국의 연예 종합매체 <더 할리우드 리포터(THR)>는 지난 8일 보도된 장문의 기사에서 세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주목한 이미경 부회장을 ‘올해의 국제 프로듀서’로 선정했다고 전했다. 는 1930년 창간 이후 90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 언론사다.

는 이 부회장의 감동적 인생과 놀라운 인맥, 글로벌 K-컬처에 대한 헌신을 집중 조명했다. 그리고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석권으로 정점을 찍은 이 부회장의 행보를 소개했다. “<더 할리우드 리포터>가 선정한 올해의 국제 프로듀서는 미키 리다. 이 부회장은 매우 대단한 프로듀서”라면서 “<기생충>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이후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 부회장이 국내외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장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의 인생도 짚었다. “대학 졸업 후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면서 “CJ를 설탕, 밀가루 등의 제품 판매 기업에서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확장하는 데 집중했다. 이 부회장은 CJ그룹을 모든 영역의 문화를 지원하는 회사로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소비재 산업에서 문화 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현재 CJ그룹은 영화 사업에서 7개국의 4,222개의 극장 스크린과 16개의 TV 네트워크를 영위하고 있다”면서 “음악 사업에서는 매년 전 세계에 300회 이상의 콘서트와 축제를 개최한다. 브로드웨이에서는 뮤지컬 <킨키부츠>에서 <물랑루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지원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 K-컬처를 전하기 위한 이미경 부회장의 노력도 집중 조명했다. 영화, 콘서트 등의 사업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던 케이콘(KCON)을 온라인 중계 방식으로 전환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이 코로나19 이후의 변화된 대중문화 산업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케이콘은 한국의 문화가 글로벌 주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이 부회장의 지론이 담긴 대표 사업 중 하나로, K-POP 콘서트를 비롯해 뷰티, 푸드, 패션, 드라마 등 한국의 다양한 문화와 연계된 콘텐츠를 해외 팬들에게 선보이는 축제다. 지난 8년간 북미, 아시아, 중동, 유럽, 중남미, 오세아니아 등지에서 열렸고 매년 그 규모가 커졌다.

경영 복귀 가능성은?

이 부회장은 지난 2014년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정치적 풍파를 겪은 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그래서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올랐을 때, 전무후무한 성과를 낸 만큼 이미경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할 명분이 충분하지 않겠냐는 평가가 나왔다. 존재감을 제대로 입증한 만큼 화려하게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반면 그룹 내부에서는 이 부회장이 굳이 경영에 복귀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내다봤다. 굳이 국내 복귀를 하지 않고도 미국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지원과 영향력은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몇 달이 흐른 지금, “활동 반경이 다소 넓어질 수는 있겠으나 경영 복귀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아카데미상 수상 당시의 전망은 사실이 됐다. 국내 경영 복귀와 별개로 이 부회장은 해외에서 본인만의 행보를 꾸준히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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