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쌍의 재벌 부부가 탄생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서경배 회장의 장녀 민정 씨와 보광창업투자 홍석준 회장의 장남 정환 씨. 삼엄한 경비 아래 치러진 비공개 결혼식이다. 당일 현장을 스케치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보안요원들이 주변을 경호했다.
“서민정이라고 했던가. 오늘 여기서 결혼한 거죠?”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재벌끼리 결혼한다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니 알았죠. 근데 재벌 결혼식은 진짜 어떻던가요?”

취재를 마치고 신라호텔 정문 앞에서 올라탄 택시 안, 기사가 대뜸 물었다. 무척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평범하지 않아서 화두가 되는, 그래서 더 궁금증이 이는 재벌의 일거수일투족이다. 재계 결합으로 이어지는 ‘혼사’는 특히 관심사다. 아모레퍼시픽그룹과 범삼성가의 혼맥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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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하차해 입장하는 신부 민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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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원이 한복을 챙겨 영빈관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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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그룹 서경배 회장 장녀 서민정.

약혼식도 결혼식도 신라호텔에서

식이 거행된 곳은 신라호텔 영빈관. 서민정 씨와 홍정환 씨는 10월 19일 오후 6시 공식 부부가 됐다. 올해 초 지인 소개로 만나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단 사실이 보도된 이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다. 앞서 6월 27일에는 결혼식 장소와 같은 곳에서 약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일정은 바로 전날에서야 알려졌다. 정확한 시간 등 세부 내용은 당일까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앞서 약혼식 때 만난 경호원이 전한 얘기가 떠올랐다. “오늘 행사 자체가 언론에 알려질 게 아니었는데 보도가 되는 바람에 양가가 예민한 상황”이라고 했었다.

예식 세 시간 전 도착한 영빈관 주변으론 이미 경호 인력이 배치돼 현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약혼 날과 동일하게 취재는 일정 거리에서만 허용됐다. 영빈관으로 입장하는 하객 얼굴을 육안으로 분별하기 힘든 거리였다. 코로나 때문에 착용한 마스크도 얼굴을 가렸다.

오후 3시 10분 한 경호원이 한복 여러 벌을 든 채 나타났다. 흰색 무늬가 수놓인 남색 저고리와 노란빛 치마, 그 뒤로 파스텔 톤 한복 두 벌이 얼핏 비쳤다. 취재진 카메라를 의식한 듯 식장을 오가는 사람 모두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10분쯤 지나 벤츠 한 대가 영빈관 입구로 들어섰다. 경호원들이 도열하기 시작했다. ‘특정 인물’이 도착했다는 의미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서경배 회장이 순식간에 하차해 입장했다.

곧이어 신랑신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차량에 탑승해 도착했다. 오후 3시 27분 홍정환 씨가, 오후 3시 35분 서민정 씨가 차량에서 내려 빠르게 이동했다. 신부는 어깨 부분이 시스루 재질로 된 흰색 웨딩드레스, 풍성한 면사포를 착용한 상태였다. 귀걸이와 힐, 마스크 모두 새하다. 마스크 표면이 레이스로 장식된 걸로 보아 직접 제작한 마스크로 추정된다. 약혼식 드레스와 비교해보면 차분한 색감이 비슷하다. 민정 씨는 약혼식에서 옅은 살구색 홀터넥 실크 드레스를 입었었다. 프랑스 브랜드 지방시의 드레스로 가격은 550만 원대다.

악기 가방을 메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연주를 하러 왔다고 했다. 약혼식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굳이 차이점을 꼽자면 트럭이 거대한 ‘하프’를 운반해왔다는 것이다.

해가 짧아진 터라 주변은 일찍이 어둑해졌다. 스탠드 조명이 영빈관을 비췄고 때마침 하객들이 몰려들었다. 대개 입구까지 차를 타고 이동한 탓에 취재 카메라에 잡히는 시간이 극히 짧았다. 그마저도 속도를 내 걷고 경호원들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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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식 당시 영빈관 입구 틈으로 보이는 서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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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식이 끝난 뒤 카메라에 잡힌 홍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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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내외는 약혼식에 참석했었다.

주례 대신 부친 덕담, 축가는 가수 크러쉬가

하객 수는 많지 않았다. 양가 부모와 직계 가족, 친구 등 40명가량이 참석했다. 약혼식 손님이 100명에 가까웠던 점을 고려하면 결혼식 규모를 최소화한 셈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개인사이기 때문에 (규모를 줄인) 이유까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7월 현대중공업 정기선 부사장은 코로나 확산 위험성을 감안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결혼식을 치렀다. 민정 씨 부부도 비슷한 이유가 작용했을 걸로 해석된다.

다수 예상과 달리 홍정인 JTBC 스튜디오 본부장을 제외한 삼성가 일원은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정환 씨는 삼성가와 친인척 관계다. 정환 씨의 부친인 홍석준 회장은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홍석조 BGF그룹 회장의 동생이다. 홍 전 관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아내다. 따라서 정환 씨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고종사촌 지간이다. 홍정도 중앙일보·JTBC 사장, 홍정인 본부장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환 씨 부부는 약혼식을 통해 친인척과 미리 인사한 것으로 보인다. 약혼식에는 이재용 부회장만 불참했었다.

식이 열리기 전, 중년 부부 하객이 밖으로 나왔다. 예상치 못한 이유였다. 부부는 “우리 애들도 결혼을 준비하고 있어 영빈관은 어떨지 구경하러 왔을 뿐”이라고 했다. 이날은 초대받은 하객이 아니면 영빈관에 절대 들어갈 수 없다. 경호원 측의 실수였다. 한 경호원이 부부에게 “저희 직원들이 하객인 줄 알았다. 혹 찾는 곳이 따로 있다면 안내해드리겠다”고 했다. 부부는 이날 결혼식 올리는 당사자조차 모르고 있었다. 도리어 기자에게 “한가운데 잔디가 깔려 있고 장식이 무척 화려했다”며 “유명한 사람이 결혼하느냐”고 물었다.

악기 가방을 든 두 명도 예식 전 밖으로 나왔다. 둘은 “식전 행사 연주자라서 그것만 마치고 나왔다. 신랑신부 얼굴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었다. 서경배 회장과 홍석준 회장의 덕담이 주례사를 대신했다. 축가는 크러쉬가 맡았다. 식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됐고, 하객들은 아모레퍼시픽의 프랑스 향수 브랜드 ‘구딸’ 제품을 답례품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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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가 가수로 참석한 크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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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인 JTBC 스튜디오 본부장.

신혼집은 초고가 ‘한남더힐’?

결혼식과 더불어 ‘신혼여행’, ‘신혼집’에 쏠리는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부부의 신혼집으로 서울 용산구 ‘한남더힐’이 유력해졌다. 한남더힐은 9월 전용면적 243.642㎡(74평) 1층 매물이 77억 5,000만 원에 거래돼 올해 전국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아파트다. 또 2015년부터 해마다 최고 실거래가를 올린 아파트다. 남편 홍정환 씨가 60평형 한 채를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남더힐이 신혼집으로 지목됐다. 관련 취재 중 만난 입주민은 “서민정(씨)이 여기 살고 있다”며 신빙성을 더했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한남더힐 거주 이야기를) 들은 건 맞지만 확실한지는 모른다”고 조심스러워했다.

한남더힐은 대기업 총수 일가를 비롯해 유명 연예인이 보유한, 또는 거주하는 아파트로 이름 나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성이 이노션 고문, 박세창 아시아나 IDT 대표이사 등이 대형 세대를 갖고 있다. 5월 결혼한 소지섭·조은정 전 아나운서의 신혼집도 이곳이다. 입주민 외에 ‘확인’ 받은 사람만 출입할 수 있는 뛰어난 보안성이 강점이다. 인사들이 이 아파트를 선택한 주요인이다.

‘막강 혼맥’ 재벌 부부 자산은?

1991년생인 민정 씨는 아들이 없는 서경배 회장의 뒤를 이을 유력 인물로 거론된다. 2019년 10월 1일 아모레퍼시픽 본사에 재입사해 뷰티 영업전략팀 과장 위치인 ‘프로페셔널’ 직급을 맡고 있다. 2017년 1월부터 6개월 동안 오산공장 SCM(공급망 관리) SC제조기술팀에서 평사원 신분으로 일한 적도 있다.

민정 씨가 이전에 근무했던 부서와 현재 부서는 화장품 사업의 바탕을 익힐 수 있다는 점이 같다. 서 회장이 1980년대 후반 장항공장에서 첫 업무를 시작했던 점으로 미뤄보아, 차기 회장으로서 요구되는 역량을 쌓으려는 민정 씨의 의지가 읽힌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민정 씨의 재입사가 3세 경영의 시작을 예고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한편, 회사 측은 “CEO를 논할 단계가 아니”라고 일축했다.

글로벌 재원으로서도 두각을 드러낸다. 민정 씨는 미국 코넬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2015년 베인앤드컴퍼니(Bain& Company)에 입사했는데, 이곳은 맥킨지앤드컴퍼니, 보스턴컨설팅그룹과 더불어 세계 3대 컨설팅업체로 꼽힌다. 위상과 영향력이 높아 세계 상위권 대학 출신들도 입사하기가 까다롭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유명 컨설팅 기업이니만큼 대형 글로벌 기업의 사업전략·영업·조직관리 관련 자문을 맡아 민정 씨로선 업무 경력 이외에 넓은 인맥과 정보력을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재벌가 중에선 그를 포함한 구광모 LG 회장과 최윤정 SK바이오팜 책임매니저, 윤상현 한국콜마 사장 등이 여기 출신이다.

민정 씨는 아모레퍼시픽그룹 2대 주주로 지분 2.93%를 갖고 있다. 계열사인 이니스프리(18.18%), 에뛰드(19.52%), 에스쁘아(19.52%)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정환 씨는 민정 씨보다 여섯 살 많은 1985년생이다. 보광창업투자에서 투자심사 총괄 업무를 맡고 있다. BGF그룹(0.52%), BGF리테일(1.56%) 등 친가인 보광그룹 관련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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