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월 홍콩에서 한국여성 '수지 김'이 살해되자 수지 김을 북한의 공작원으로 조작해 해외 상사원 납치 공작으로 둔갑시킨 '수지 김 사건'이 재조명됐다.

안기부의 잔인한 공작으로 일가족이 고통 속에 살아야했던 '수지 김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통해 전해졌다.


18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지난 1987년 벌어진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을 재조명했다.


1987년 1월 9일  김포공항을 통해 한 남성이 입국했다. 남성 윤모씨는 취재진에게 "제가 살았다는 생각밖에 없다"며 "너무 무서워가지고 말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윤씨는 자신의 아내 수지 김이 북한의 간첩이며 납북작전에서 겨우 탈출했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씨와 수지 김은 1986년 홍콩에서 처음 만났다. 사업차 홍콩으로 간 윤씨는 아파트를 계약했다가 일정이 미뤄져 집을 비우지 못한 집주인 수지 김과 만났고, 두 사람은 한 아파트에서 지내면서 사랑에 빠져 한 달 만에 결혼했다.


윤씨는 1987년 1월 자신의 아파트에 의문의 남성들이 들이닥쳤고, 음료수 부탁에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오니 아내가 납치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내가 납치된 싱가포르에 갔고, 아내가 끌려간 곳이 북한 대사관임을 확인했다며 북한 측으로부터 정치적 망명을 요구받았고, 아내가 북한 공작원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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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윤씨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그는 아내 수지 김을 살해한 범인이었다. 윤씨는 공소시효 15년 중 두 달을 남겨두고 수지 김 살인용의자로 체포됐다.


사건 당일 홍콩 신혼집에는 수지김과 윤씨 밖에 없었으며 심하게 다툰 뒤 윤씨는 분노를 참치 못하고 둔기로 수지김을 내리친 뒤 정신을 잃은 사이 목을 졸라 살해했다. 윤씨는 아내를 죽인 후 월북 시나리오를 짰다.


시신을 침대밑에 숨긴 윤씨는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 내 북한 대사관에 찾아갔다. 하지만 북한에 왜 가냐는 차가운 반응에 급히 한국 대사관에 찾아가 "납북 직전에 겨우 탈출했다. 아내 수지김이 간첩이었다"라고 거짓말했다.


당시 안기부의 비공개 해외전문을 보면 안기부는 윤씨의 거짓말을 눈치챘지만 이를 묵인하고 수지 김을 북한 공작원으로 조작해 사건을 북한 간첩 납치 미수 사건으로 둔갑시켰다. 안기부장 장세동은 민주항쟁으로 심기가 불편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위해 납북 미수 사건을 터뜨려 여론을 뒤집으려 했다. 윤씨는 뒤늦게 아내 살해 사실을 실토했지만 안기부가 "이미 북한의 만행으로 보도됐으니 사건을 묻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공소시효를 두 달 앞두고 살인 혐의로 구속된 윤씨는 2003년 대법원에서 징역 15년 6월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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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 살아온 가족, 강제 이혼 당하기도

안기부의 조작으로 수지 김의 가족들은 간첩의 핏줄이란 오명을 쓰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수지 김의 어머니와 오빠, 언니는 사건의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고 여동생 4명 중 3명은 '여간첩을 언니로 두었다'는 비난에 시달리다 강제로 이혼을 당했다. 한 여동생의 시댁은 아들을 두고 '간첩의 씨앗'이라며 절에 아이를 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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